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5화 (15/240)

# 15

입단 테스트 (5)

첸버는 계속해서 종이를 넘겼다.

저기에 내가 모르는 로인의 과거가 적혀 있는 건가?

그러나 딱히 특별할 건 없었다.

첸버가 요약한 대로 전쟁터에서 부모를 잃고 소년 병사로 키워졌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자잘한 에피소드는 그냥 넘겨도 될 수준이었다.

첸버는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라바인 전투에서 머리를 크게 다치기라도 한 건가? 보니까 본인 과거인데도 잘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예, 특히 화염 폭풍에 휘말렸을 때에는 거의 죽는 줄 알았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혼자서 숲속에 덩그러니 있더라고요. 제 이름이 로인이었고, 라바인 전투에 참가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나머지는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부분 기억상실인가. 뭐, 머리를 다쳤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너는 다행인 축에 속하는 거야. 라바인 전투에 참가한 다른 용병 조직들은 거기서 상당한 전력을 잃었거든. 우리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갈로아에서 블루로즈단이 이터블을 찾았던 건가?

블루로즈단은 라바인 전투에서 맹활약했던 용병 조직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만큼 희생 또한 컸다.

첸버는 다시 한번 나를 응시했다.

“전력을 복구하기 위해서라도 뛰어난 인재가 있으면 최대한 영입을 하고 싶은 게 나와 제나드 단장의 솔직한 심경이야. 그때 마침 자네의 소식을 듣게 되었지. 리오나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혼자서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박살 냈다고 하던데, 정말인가?”

“네,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그곳에 들렀다가 오셔도 됩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왜냐하면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들르고 왔거든.”

철저한 거 봐라……. 아니지, 오히려 잘됐다. 입 아프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리오나는 내가 사운드 이터들을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첸버에게 직접 설명했다.

소규모 게릴라전을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했다.

첸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군. 담력도 있고, 실력도 충분히 있어.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자네를 우리 용병단에 넣고 싶을 정도야.”

“저도 블루로즈단에 지금 당장 들어가고 싶은 심경입니다.”

깨알 같은 자기 어필을 했다.

면접을 볼 때 중요한 건 지원자의 열의와 의욕이다.

출판사에 지원했을 때, 대표님 앞에서 ‘제가 장르 문학 업계를 살리겠습니다! 믿어 주세요!’라는 말도 안 되는 포부를 드러낸 적 있었다.

대표님은 이렇게 의욕이 넘치는 청년은 오랜만에 본다면서 나를 합격시켜 줬다.

그게 여기서도 통할 거란 생각은 안 한다.

그래도 이 정도로 의욕이 있다는 걸 부각시켜 두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첸버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지막 질문에 잘 대답하면, 합격시켜 주지.”

“네, 말씀하세요.”

뭐, 간단한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군. 숨김없이 아주 솔직하게.”

도대체 뭘 물어보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저 사람이 왜 그러나 싶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을 듣고, 나는 첸버가 왜 나에게 이토록 솔직함을 강요했는지 알게 되었다.

“라바인 전투에서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얻은 적이 있나?”

* * *

보물을 삼키는 드래곤, 벨라시오닉.

라바인 전투에서 벨라시오닉은 죽으면서 강력한 화염 폭풍과 동시에 녀석이 생전 삼켰던 보물들 중 일부를 남겼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전 세계적으로 굉장히 핫한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하나같이 다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레전드급 아이템들뿐이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노리는 아이템 헌터들은 꽤 존재한다.

소설에서도 등장한다.

주인공 라스와 절친이자 동시에 믿을 만한 동료라 할 수 있는 등장인물이 있다.

이름은 카이딘.

그는 아이템 헌터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다가 우연한 계기로 라스의 동료가 된다.

라바인 전투에 참가했던 블루로즈단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지닌 위력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을 확률이 컸다.

그래서 더더욱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 이제부터가 문제다.

-첸버와 친밀도를 올릴 기회입니다.

-대답 여하에 따라 친밀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갑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내가 용신단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이렇게 쉽게 밝혀도 될까?

만약을 대비해 전면 부정할까?

아니면 모른 척할까?

답은 이미 정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나질 않아요.”

부분 기억상실이라는 요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제3의 선택지를 골랐다.

첸버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함인 듯했다.

그래, 지겹도록 한번 봐라. 표정 연기에는 자신 있으니까.

작가가 말도 안 되는 계약 조건을 제시했을 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부장님한테 ‘갈굼’받으면서 일해 왔었다.

이 정도 일은 우습다.

첸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부분 기억상실이라고 했으니 더 이상 물어봐도 의미는 없겠네. 좋아, 합격이야.”

-첸버와의 친밀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친밀도 상승에 따라 개연성도 소폭 상승합니다.

소폭 상승이라…….

100점짜리 대답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성과다.

친밀도가 하락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이제 정말로 테스트 더 안 보는 거 맞죠?”

혹시 몰라 첸버에게 못을 박아 두기 위해 물었다.

첸버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대신에 견습 기간이 있어. 그건 감수해야 한다. 기간은 1달. 괜찮지?”

예상했던 바다.

편집자가 되기 전에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쳤다.

3개월에 비해서 1달이면 우습지.

“알겠습니다.”

“정식으로 우리 블루로즈단 일원이 된 걸 축하한다.”

첸버는 내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마주 잡은 두 손.

일개 편집자였던 나는 오늘부로 용병이 되었다.

* * *

블루로즈단은 따로 거점을 두지 않고 있었다.

거점을 두면 물론 사무를 볼 때 편할 것이다.

그러나 단장인 제나드는 거점이 존재하면 적대적인 세력에게 급습당하기 쉽다는 이유로 거점을 지정해 두지 않고 그때그때 임시로 지정한다고 한다.

단장 제나드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용병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직업이다. 용병 생활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적을 만들게 된다. 그 적들로부터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거점을 두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나쁘지 않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단, 귀찮긴 하다.

리오나와 레임스 그리고 B팀은 이미 내가 있는 마을을 떠났다.

첸버도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리오나의 말에 의하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나에게 사수가 붙을 거라고 했다.

그 사수로부터 견습 기간 동안 용병으로서 교육을 모두 받아야 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임무였다.

‘누가 사수가 될까?’

블루로즈단은 1, 2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엘리트 용병 팀이지만, 소설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사람은 오로지 리오나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이건 모르는 일이다.

내가 3권 이후부터 안 읽었으니까 말이다.

1, 2권에 자주 블루로즈단 이름이 언급되었으니, 후속 권에서 실제로 블루로즈단이 중요한 역할을 도맡으며 등장할지 모른다.

그래서 일단 블루로즈단에 붙어 있기로 했다.

어쩌면 리오나 말고 인물 등급이 높은 캐릭터가 존재할지 모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었다.

일단 기대를 걸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이 사수라는 녀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이 마을에서 혼자 3일 동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라스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까지 이제 8개월가량 남았다.

나는 그 안에 라스와 미리 연줄을 만들어 놓고 싶었다.

1분1초가 아까운 상황에서 장장 3일이나 낭비하다니.

늦어도 너무 늦다. 딱히 시간을 정해 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귀여운 신입이 들어왔는데 후딱후딱 마중 나오지 않고.

너무하지 않은가?

사수라는 녀석이 오면, 왜 늦었냐며 엉덩이를 확 걷어차 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도 마냥 기다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기로 했다.

오늘도 늘어지는 기분을 안고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으로 가는 이유가 있었다.

델리피나라는 대륙의 역사, 배경 그리고 기본적인 상식에 대해 알기 위해서였다.

내가 비록 《델리피나 전기》라는 소설책을 읽고 이곳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소설 속에선 배경 설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델리피나 전기》는 설정집이 아닌 소설책이다.

주인공의 일대기를 그리는 책이었기에 상세한 배경 설정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진 않았다.

이것을 미리 알아 두기 위해 3일 동안 도서관에 드나들었다.

오늘도 도서관에 출근 도장을 찍고서 책을 살폈다.

어제 읽다 만 《인간과 이종족의 대결 역사》에 관한 책을 꺼내 들었다.

얌전히 책을 읽는 와중에 한 남자가 내 맞은편 자리를 차지했다.

“책을 많이 좋아하나 보네.”

“뉘신지?”

나이가 많다고 다짜고짜 반말부터 찍찍 내뱉는 사람을 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한 남자.

그의 어깨에 익숙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파란 장미. 블루로즈단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어깨 쪽을 가리켰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아, 그렇습니까?”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남자는 ‘어라?’ 하며 도리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너, 로인이라는 사람 아니야? 생긴 게 딱 맞는 것 같은데.”

“맞는데요.”

“그러면 반응을 해야지, 왜 모른 척해? 순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줄 알았잖아. 쪽팔릴 뻔했네.”

“그냥 한번 모른 척한 거예요. 세상이 많이 흉흉하잖아요?”

“듣고 보니 그렇군.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이치지. 흠흠.”

이 남자, 순진한 면이 있다.

그냥 대충 둘러댄 말을 철석같이 믿다니.

그냥 웃자고 던져 본 농담이었는데.

남자는 굳이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자신을 소개했다.

“드레인이라고 한다. 네 견습을 책임질 사수가 되었지. 앞으로 잘 부탁한다.”

“로인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잘해 봐요.”

“그래그래, 만나자마자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긴 한데, 실은 의뢰가 들어와 있다.”

“의뢰요?”

“우리는 용병이잖아. 의뢰로 벌어먹고 사는 존재니까 의뢰는 당연히 받는 거지. 그치?”

“뭐…… 맞는 말이네요.”

내가 놀란 건 다른 부분에서였다.

견습인 나에게도 의뢰 수행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이 신기했다.

보통 견습이라면 실습을 나서기 전에 먼저 이것저것 교육을 시켜 두는 법 아닌가?

그런데 블루로즈단은 교육이고 뭐고 이런 것 없이, 그냥 다짜고짜 견습생을 바로 실전에 투입시키는 모양이다.

‘여긴 강하게 키우는구나.’

그만큼 나도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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