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4화 (14/240)

# 14

입단 테스트 (4)

처음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들어왔을 때, 나는 정신없이 싸우기만 했었다.

최악의 스타트였다.

덕분에 나는 날짜 감각을 상실해 버렸다.

낮과 밤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오늘이 며칠째인지.

기록하는 것을 깜빡해 버리고 만 것이다.

오늘이 28일째인 줄 알았는데, 리오나 일행이 온 것으로 보아선 30일이 넘어 버린 듯했다.

실제로 리오나는 내게 다가와 종이 수첩을 꺼내더니, 이렇게 적어서 보여 줬다.

-33일째야. 약속한 기간보다 3일 더 살아남았네.

“왜 필기로 보여 주는 거야? 말로 하면 될 것이지.”

“…….”

리오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가 육성으로 말이라는 것을 하자, 대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신경 안 썼다.

“괜찮아. 말해도 된다니까? 내가 보장할게.”

말을 하면 할수록 용병들의 얼굴은 사색으로 변해 갔다.

몇몇 용병들은 무기를 꺼내 들었다.

저들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곳에서 소리를 내면, 사운드 이터들이 소리를 낸 근원지를 먹어 치우기 위해 달려든다.

그러나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장악했던 사운드 이터들은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지 않았다.

왜냐고? 내가 싹을 다 뽑아 버렸으니까.

하나 블루로즈단은 설마 내가 이곳을 강제로 정화시켜 버렸을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정상이다.

레임스는 크게 입을 뻥긋거렸다.

‘입 좀 다물어, 미친 녀석아! 그러다가 괴물들이 날뛰면 어쩌려고?’

“사운드 이터들 말하는 거지? 그런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깡그리 다 없애 버렸으니까.”

‘개소리도 정도껏 하시지! 너 혼자서 그 무지막지한 괴물들을 박멸시켰다고? 지나가던 개가 다 웃겠네!’

“개가 어떻게 웃냐? 멍멍 짖는 소리밖에 못 들었는데.”

‘알았으니까 좀 닥쳐! 죽고 싶어서 환장했냐?’

“말해도 괜찮다니까 그러네. 평생 속고만 살았나! 누가 보면 너, 금붕어인 줄 알겠다. 계속 입만 뻐끔거리니까.”

저 레임스란 엑스트라 녀석은 나를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인지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은 죄다 안 믿는다.

‘거참, 진실을 말해 줘도 믿을 생각을 안 하니…….’

답답한 쪽은 저놈이 아니라 오히려 나였다.

한편, 리오나는 나와 레임스의 다툼을 지켜보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표정을 굳혔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러더니.

“아아아.”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레임스와 용병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이윽고 정신이 든 모양인지 다시 무기를 빼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하나 5분이 지나도, 10분이 지나도 사운드 이터들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로인의 말이 맞나 보네. 지금쯤이면 사운드 이터들이 우리를 급습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리오나만이 유일하게 내 말을 믿어 줬다.

열심히 친밀도를 올려놓은 보람이 있군.

“거봐, 내 말이 맞지?”

“그 많은 사운드 이터들을 어떻게 박멸시켰지?”

“어떻게는. 때려눕혔지. 30일 동안 할 것도 없고 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사운드 이터들을 유인해서 한 마리 한 마리 사냥했어. 심심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던데.”

거짓말을 약간 섞었다.

원래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서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있는 사운드 이터들을 전부 내가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그리고 3일 동안 ‘참교육’을 시켜 줬다.

막판에 가선 거인과 24시간 내내 싸워서 사일런트 포레스트라는 저주받은 지역을 만들어 낸 근원인 블랙 다이아몬드까지 파괴시켰다.

이것이 여기서 펼친 나의 30일간의 일대기였다.

하나 진실을 말해 줘도 믿지 않을 녀석들이라는 걸 잘 알기에 최대한 현실성을 가미해 말해 줬다.

30일 동안 공을 들여 소규모로 사운드 이터들을 사냥했다.

이렇게 말을 해 주니 리오나는 그나마 내 말을 믿어 주는 낌새를 보였다.

물론 레임스는 끝까지 내 주장을 부정했지만 말이다.

“저 새끼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잘도 나오더라! 뭐? 역으로 사운드 이터들을 사냥했다고? 우리 용병단원들도 쩔쩔매는 사운드 이터를 네놈이, 그것도 혼자서 어떻게 상대하냐!”

“왜 못해? 내가 너희보다 강한데. 못할 게 있나?”

“뭐라고?”

결국 레임스의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레임스.

그때, 리오나가 검을 들어 레임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서라.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남자는 내가 제안한 테스트를 통과했어. 결과가 이미 증명하고 있는데 태클을 거는 게 의미가 있어?”

“그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리오나의 말이 옳았으니까.

결국 레임스는 리오나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한편, 리오나는 소리라는 이름의 평화를 되찾은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바라보면서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네 덕분에 앞으로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대신할 새로운 테스트 장소를 물색해야겠군.”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이고. 아무튼 이것으로 합격이지?”

“그래, 합격이야. 단, 실기 합격이지만.”

잠깐만. 실기 합격이라고?

불안감이 몰려왔다.

설마 이거 말고 테스트가 또 있나?

리오나는 옅은 미소를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임원 면접이 기다리고 있어.”

“아니, 용병단에 들어가는데 무슨 면접까지 봐?”

“네가 인성이 안 좋으니까.”

“인성에 문제없다니까 그러네.”

“그건 아무래도 좋고. 너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과 나, 이렇게 두 명이 네 면접을 볼 거야. 거기서 통과하면 그 즉시 바로 입단. 어때?”

“이번에는 확실하지? 설마 면접 통과하고 나서 ‘사실 다른 테스트가 또 있었습니다.’라고 하기 없기다?”

“약속할게.”

일개 용병단 주제에 들어가기는 더럽게 힘드네. 그나저나 면접이라…….

출판사 취직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대표님 앞에서 면접을 봤는데.

소설 속 세계에 와서도 면접 신세라니.

참으로 구슬픈 인생이다.

* * *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있는 동안 내가 먹은 건 육포 그리고 말린 과일밖에 없었다.

덕분에 미각이라는 걸 상실할 뻔했었다.

나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온 소수의 용병단과 함께 근처 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바로 집 나간 미각을 되찾는 일이었다.

“어서 옵쇼!”

“여기, 메뉴별로 하나씩 다 주세요!”

들어가자마자 가게 주인장한테 음식 싹 다 가져오라고 호쾌하게 지시를 내렸다.

음식값은 리오나가 대신 내 준다고 했다.

테스트받느라 고생했으니 자신이 사겠다나 뭐라나.

그래서 부담 없이 주문했다.

가게 주인장은 갑자기 들어온 대량 주문에 얼씨구나 하면서 어깨춤을 덩실거렸다.

오후 3시다 보니 가게는 매우 한산했다.

마침 파리만 날리던 찰나에 나 같은 손님이 왔으니 잘됐을 것이다.

음식이 하나둘씩 차려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어 치우는 동안, 잠시 자리를 비웠던 리오나가 돌아왔다.

“내일 중으로 첸버 님이 도착할 거다. 도착하자마자 바로 면접 실행할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첸버가 누군데?”

“S팀의 부대장님.”

참고로 블루로즈단 S팀의 대장은 제나드라는 인물이다. 블루로즈단의 단장이기도 하다.

그곳의 부대장이라 함은, 제나드 다음으로 서열 2위라는 것을 뜻했다.

“그렇게 높은 사람이 오는 거야?”

“첸버 님이 인사까지 담당하고 있으니까. 그분이 오케이하시면 레임스 같은 녀석들도 군말 없이 너를 같은 용병단으로 받아들일 거야. 그러니까 귀찮더라도 받는 게 좋아.”

하긴, 서열 2위가 인정한 남자를 밑의 쫄따구들이 무슨 수로 부정하려고 들까?

좋은 정보였다.

그나저나 첸버라…….

머릿속으로 첸버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다.

블루로즈단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용병은 리오나가 전부다.

그녀는 실제로 라스와 만나기까지 하니까.

게다가 내가 읽은 1, 2권 분량에 리오나가 등장한다.

기억을 못 할 리 없었다.

리오나보다 더 높은 지위를 가진 첸버는 그럼 엑스트라인가?

혹시 또 모른다.

내가 못 읽은 3, 4, 5권 중 한 곳에 등장할지도.

왠지 기대감이 생긴다.

서열 2위라고 했으니까, 어쩌면 인물 등급이 조연일지도 모른다.

‘제발 조연이어라. 주연까진 바라지도 않으마!’

음식을 먹으면서 난 그렇게 간절히 기원했다.

* * *

첸버를 만난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렇다.

정말로 무심하시다.

눈앞에 있는 30대 후반의 안경을 쓴 남자는 말끔한 인상에 훤칠한 키를 지닌 훈남이었다.

하지만 인물 등급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첸버

-인물 등급 : 단역

-종합 능력 : A

-용병 조직 블루로즈단 S팀에 소속되어 있는 남자. 부대장으로서 전략 연구 겸 인사를 담당하고 있다. 단장 제나드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인물 중 한 명.

단역이라…….

리오나와 같은 등급이다.

그보다 단역 주제에 종합 능력은 꽤 높다.

하긴, 서열 2위라고 했으니까 높은 건 당연하려나?

‘근데 왜 인물 등급이 단역이야? 저 좋은 능력을 활용해서 등급 좀 높여 보지.’

첸버란 남자는 먼저 내게 악수를 권했다.

“반갑습니다. 블루로즈단 S팀 부대장, 첸버라고 합니다.”

“로인입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말 편하게 해도 될까?”

이미 말 놓고 있으면서.

“네, 그러시지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첸버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작가 미팅을 수십 번 넘게 참가했던 나의 내공이 이럴 때 빛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첸버는 리오나와 함께 여관방 하나를 추가로 빌려 나를 그곳으로 데려갔다.

방 안에는 의자 3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창가 쪽 의자에 자리 잡은 리오나와 첸버. 맞은편에는 내가 앉았다.

첸버는 가방에서 수십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다.

뭐냐, 저건.

“여기에 오기 전에 너에 대해서 뒷조사를 좀 해 봤어. 신상 조회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우선…… 라바인 전투에 참가한 소년 병사 로인이라고 나오던데. 어릴 때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고. 맞지?”

내가 몰랐던 정보들이다.

로인이라는 소년, 고아였구나.

솔직히 나는 저게 맞는 정보인지 아니면 나를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날조한 정보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라바인 전투에 참가한 소년 병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감이 왔다.

저 정보는 진짜다.

“예, 맞습니다.”

“군대 기록을 살펴보니까 넌 사망 처리되어 있더라고. 원한다면 다시 군대로 돌아가서 군인으로 재입대할 수 있는데.”

“재입대는 안 합니다.”

“왜?”

왜긴? 어떤 정신 나간 녀석이 재입대를 해?

대한민국 남자라면 재입대라는 말을 들은 순간, 그 단어를 입에 올린 녀석의 뚝배기를 깨 버릴 것이다.

참고로 뚝배기는 머리를 뜻한다.

“자유가 없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용병을 지원하기로 했다?”

“네.”

“뭐, 좋아. 네가 사망 처리된 덕분에 명예 전역 취급되고 있으니까. 원한다면 내가 알아서 새로운 신분으로 세탁해 줄게. 물론 어디까지나 이번 면접을 통과해서 성공적으로 우리 조직에 들어온다는 전제하에.”

“알겠습니다.”

오, 서비스 좋네. 이건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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