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화 (13/240)

# 13

입단 테스트 (3)

키가 족히 10미터에 달할 것 같은 거인이 나를 깔아뭉개기 위해 발을 들어 올렸다.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묵직함.

피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양손을 위쪽으로 뻗었다.

쿠웅!

엄청난 무게감이 양팔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나름 버틸 만했다.

용신단이 없었으면 아마 ‘납작쿵’이 되었을 것이다.

고맙다, 벨라시오닉아. 나한테 이런 보물을 줘서!

“흐읍!”

기합을 내지르며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의 오른발을 밀어냈다.

거인은 잠시 행동을 멈췄다.

설마 내가 이런 괴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잠시뿐이었다.

이번에는 주먹을 말아 쥐고 내게 휘둘렀다.

소행성 하나가 떨어지는 걸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나도 주먹을 쥐었다.

주먹 대 주먹 싸움은 지고 싶지 않았다.

꽈과광!

거인의 주먹과 내 주먹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충격파가 주변으로 퍼졌다.

이번에도 생각보다 버틸 만했다.

오히려 거인의 주먹이 뭉개졌다.

파워 대결은 나의 승리로 돌아갔다.

거인의 입에서 침음이 튀어나왔다.

뭐랄까, ‘우우우…….’ 하는 그런 소리를 냈다.

‘설마 아파서 우는 건 아니겠지?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녀석의 몸이 경직되었을 때를 노렸다.

두 다리에 힘을 주고서 위로 크게 도약했다.

순식간에 거인의 시선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그때였다.

갑자기 거인이 움직였다.

여태껏 보여 주지 않았던 빠르기였다.

거인은 양 손바닥을 휘둘렀다.

마치 모기를 잡을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럼 내가 모기가 되는 건가? 갑자기 기분 확 나빠지려고 하네.

“곱게는 안 당한다, 이 녀석아!”

양팔을 수평으로 뻗어 녀석의 손바닥 공격을 막아 냈다.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거인 녀석이 나를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박치기였다.

엄청난 충격이 전달되었다.

이윽고 내 몸은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혔다.

땅바닥이 푹 파였다.

설마 거기서 박치기를 해 올 거라곤 예상 못 했었다.

“퉤, 퉤!”

입에 흙먼지가 잔뜩 들어갔다.

소설 속 세계라고 흙의 맛이 다르거나 한 건 아니었다.

바닥에 처박힌 나를 보면서 거인은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 말이지?

“넌 오늘 뒈졌다.”

저 덩치 큰 녀석을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쥐어 패 버리기로 결심했다.

* * *

거인과 장장 24시간을 쉬지 않고 싸웠다.

하루 종일 주먹질, 발길질을 다 대동해서 싸우고 싸운 결과.

거인의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지쳐서였다.

거인의 체력은 무한이 아니었다.

물론 나도 체력이 무한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인보다는 체력이 좋았다.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고 준비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거인이 손을 들었다.

한 손도 아닌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것이다.

뭐냐, 이건. ‘푸쳐 핸섭’ 같은 건가?’라고 생각했더니 그건 또 아니었다

“항복한다고?”

“…….”

거인은 고개를 수차례 위아래로 끄덕였다.

말은 못 하지만, 내 말은 알아듣는 모양이다.

그러면 얌전히 블랙 다이아몬드를 내놓으라고 할 때부터 내놓았을 것이지.

사람 귀찮게 하고…….

“그러면 네놈 이마에 박힌 그거, 내놔.”

“…….”

“어허, 항복한다며. 안 내놓는다 이거지?”

“…….”

거인은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마지못해 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인이 알아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꺼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녀석의 페이크였다.

나를 방심하게 만들어 놓고, 갑자기 두 손으로 깍지를 끼더니 그대로 나에게 내려쳤다.

하나 거기에 당할 내가 아니었다.

오른 주먹을 휘둘러 놈의 일격을 튕겨 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하긴, 말 들을 녀석이었으면 진작 들었겠지.”

거인은 엉덩방아를 찧었다.

겁에 질린 반응이었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살기다.

한 번의 외침으로 몬스터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벨라시오닉의 살기.

검은 연기의 거인이 감당해 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녀석의 이마에 안착했다.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를 떼어 내려고 안달을 하는 거인 녀석.

그러나 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바닥 크기만 한 블랙 다이아몬드를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조금만 힘을 가했을 뿐인데, ‘폭!’ 하고 뽑혔다.

동시에 거인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검은 연기의 거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중간 과정은 치열함 그 자체였으나 끝은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어휴…… 겨우 끝났네.”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들어온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이 숲의 정복자가 되어 버렸다.

* * *

소멸된 건 검은 연기의 거인만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던 사운드 이터들도 전부 다 사라졌다.

덕분에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소리’라는 것이 다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듣는 벌레의 울음소리.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이제야 정상적인 숲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오른손에 들린 블랙 다이아몬드를 내려다봤다.

말이 다이아몬드지, 겉으로 봤을 때에는 보석 모양을 한 석탄처럼 생겼다.

아이템 내역을 살펴보기로 했다.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 : 유니크

-마력 +152

-저항력 +65

-흑마술 전체 스킬 공격력 3배 상승

-흑마법사 지하드가 천 명의 인간을 희생해 만들었다고 알려진 불길한 보석. 소켓 아이템에 착용할 수 있다.

-특수 옵션 : 사자의 군대 스킬 사용 가능

‘유니크 아이템이라…….’

《델리피나 전기》에 등장하는 아이템 등급은 총 다섯 가지다.

노멀, 매직, 레어, 유니크, 그리고 레전드.

최종 등급인 레전드 바로 아래 등급이 유니크다.

따지고 보면 블랙 다이아몬드 아이템 등급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삼켰던 디울프의 푸른 송곳니는 레어였으니까.

그보다 한 등급 더 높은 셈이었다.

블랙 다이아몬드는 흑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에게 유용한 아이템이다.

내가 가지고 있어 봤자 무용지물이다.

난 흑마법에 빠질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건 저주받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괜히 누군가에게 넘겼다가 데르킨 백작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박살 내 버린 의미가 없어진다.

어차피 사용 목적은 정해 놓았다.

-벨라시오닉의 육신이 탐욕에 굶주렸습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용신단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보물을 삼키는 용, 벨라시오닉.

벨라시오닉은 보물이라 불리는 아이템들을 삼킴으로 인해 본인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드래곤이었다.

그래서 벨라시오닉을 쓰러뜨렸을 때, 녀석이 삼켰던 보물 일부가 다시 전 세계에 퍼졌던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용신단이다.

용신단은 벨라시오닉의 성향에 따라 아이템 흡수를 갈망하고 있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해당 아이템은 소멸된다.

대신, 용신단의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아이템 등급이 높을수록 능력치 상승폭 또한 늘어난다.

이건 이미 디울프를 통한 실험을 거쳐 확인한 결과였다.

이제 이걸 삼키면 된다.

갑자기 오른쪽 손등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자그마한 문양 같은 게 드러났다.

오른손을 블랙 다이아몬드에 올려 뒀다.

그러자 블랙 다이아몬드의 형태가 무너져 내리면서 가루로 변했다.

가루가 모여 작은 환약으로 변했다.

디울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블랙 다이아몬드의 색깔을 본떠서 그런지 알약의 색깔은 새까맣게 보였다.

누가 보면 초콜릿인 줄 알겠다.

딱 먹기 좋은 크기였다.

“잘 먹겠습니다.”

꿀꺽.

물 없이 그대로 삼켰다.

-블랙 다이아몬드를 삼켰습니다.

-아이템의 능력치를 흡수합니다. 용신단의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블랙 다이아몬드의 효과로 인해 흑마법 저항력이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디울프의 푸른 송곳니처럼 아이템이 지닌 특수 옵션 효과를 내 몸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었다.

“꺼억!”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트림이 나왔다.

보물을 삼키고 레벨 업 하는 엑스트라, 로인.

개성 있는 캐릭터네.

마음에 들었다.

* * *

로인이 사일런트 포레스트로 들어간 지 32일째.

원래 약속한 테스트 기간은 30일 생존이었다.

2일이나 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로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리오나는 레임스를 비롯해 그녀가 이끄는 팀 B의 용병 단원들 소수를 이끌고 다시 한번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찾았다.

레임스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대장님, 그 녀석 틀림없이 죽었다니까요. 가 봤자 의미가 있습니까?”

“하다못해 시체라도 거둬 줘야지. 안 그래?”

“이미 사운드 이터들의 배 속에 있을 텐데요?”

“그러면 유품이라도 챙기든가.”

“대장님은 너무 정이 많아서 탈입니다.”

“정이 아니야. 최소한의 의무이자 책임감이지.”

로인은 죽을지도 모르는 용병 테스트에 자원했다.

그가 그런 성의를 보였으니, 리오나도 그만한 성의를 보이기로 했다.

시체를 못 찾는다면 유품이라도 찾아서 가족들에게 전달한다.

이것이 리오나의 원래 의도였다.

사일런트 포레스트로 향하는 입구에 늘어선 B팀 용병단원들.

리오나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이상한데.”

“뭐가요?”

“숲속에서 동물들 소리가 들리는 거 같지 않아?”

“에이, 대장님. 농담도 정도껏 하세요. 이 앞은 사일런트 포레스트라고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숲입니다. 대장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알지. 아는데…… 들리는 걸 어쩌라고.”

리오나는 레임스에게 귀를 기울여 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마지못해 리오나의 말을 따르는 레임스.

“……엥?”

레임스는 처음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일런트 포레스트 안쪽에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벌레들이 우는 소리도 들렸다.

“여기, 사일런트 포레스트 맞죠?”

레임스는 혹시 몰라 장소를 다시 확인했다.

경고 문구가 가득 적혀 있는 판자들이 나무 기둥에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선 사일런트 포레스트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사일런트 포레스트라 불리는 게 아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구역이었기에 이런 별칭으로 불리는 것이었다.

수상함을 느낀 리오나.

“가 보자.”

리오나가 먼저 앞장섰다.

꺼림칙하지만 레임스와 대원들도 리오나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대장 혼자서 사일런트 포레스트 안으로 들여보내기에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동식물의 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들이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분명 사일런트 포레스트에서 나는 소리였다.

“…….”

대원들은 혹시 몰라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계속해서 전진하다가 낯이 익은 한 남자를 발견했다.

남자는 리오나 일행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담아 인사했다.

“오, 왔네!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우적우적.

태평하게 육포를 씹어 먹으며 이들을 반기는 로인.

그 모습에 리오나와 일행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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