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화 (12/240)

# 12

입단 테스트 (2)

갈로아를 떠난 후에 블루로즈단을 따라 어느 장소로 이동을 개시했다.

말을 타고 쭉 달려 3일이라는 소요 기간을 보낸 뒤에 도착한 장소.

왠지 불길함이 가득한 장소였다.

주변 풍경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숲도 있고, 강물도 있고.

하나 위화감이 들었다.

숲은 숲인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이 자꾸 전신을 훑었다.

기분 나쁜 감각이다.

이동하는 와중에 리오나는 내 표정을 살폈다.

“얼추 눈치를 챈 거 같은데.”

“무슨 눈치?”

“이 숲 말이야.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지?”

잘 아네.

아까부터 정체 모를 위화감이 계속해서 내 신경을 자극했다.

이게 뭔지 정확히 모르겠다.

해답을 들려준 쪽은 리오나가 아닌 레임스였다.

“사일런트 포레스트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다. 여기서부터 50미터를 쭉 따라 걸어가면 사일런트 포레스트가 나오지. 참고로 어떤 곳이냐 하면…….”

“말 안 해 줘도 돼. 대충 알 거 같거든.”

“…….”

레임스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쏘아봤다.

녀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말을 끊은 게 아니었다. 나는 정말로 이 숲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일런트 포레스트라…….’

《델리피나 전기》 2권에 언급되는 장소다.

흑마법사 지하드의 저주가 숲을 감염시켜 탄생한 곳으로, 소리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이곳에 왜 나를 데려온 걸까?’

이제부터 리오나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들어가서 1달을 버텨라. 정확히는 30일. 만약 무사히 살아서 돌아온다면, 너를 우리 B팀 정식 멤버로 받아 주지.”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

“없어. 그게 이번 테스트의 전부야.”

생환이 목표라 이 말이지.

그나저나 1달이라니……. 길기도 하다.

“하겠나?”

리오나는 나에게 재차 도전 의지를 물었다.

“할 거야. 아니, 해야만 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어떻게든 우리 용병 조직에 들어오려고 하는 이유가 뭐지? 레임스에게 복수하기 위함인가?”

“저 거구한테 복수하려면 진작 했어.”

“그럼 뭐지?”

주인공 만나려고.

이 말이 목구멍 언저리까지 튀어나왔다.

그러나 말해 줄 순 없었다.

“평소에 정말 들어가고 싶었던 곳이거든. 내 인생의 목표랄……까?”

“그런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내가 부끄러움이 좀 많거든. 그래서 감정을 밖으로 잘 표현 못 해.”

“……뭐, 좋아. 아무튼 조건을 내걸었으니, 완수하면 난 군말 없이 받아 주겠어.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알아서 해. 단, 네가 테스트에 동의했으니까 여기서 죽어도 우리 책임은 아니야. 그러니까 그걸 명심하도록.”

“땡큐.”

여태껏 나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던 레임스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가방만 하나 던져 줄 뿐이었다.

왜냐, 이유는 뻔했다.

내가 클리어를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저주받은 숲, 사일런트 포레스트.

‘말로만 듣던 장소를 내가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소설 속으로 들어올 줄도 몰랐지만 말이다.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으나, 말은 더 이상 가기를 거부했다.

‘가면 안 된다는 걸 직감한 건가?’

어쩔 수 없지. 무의미한 희생을 보고 싶진 않았다.

“자, 가라.”

결국 말을 풀어 줬다.

자유의 몸이 된 말은 나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내 숲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50미터라고 했지.

“금방 도착하겠네.”

레임스에게 건네받은 가방을 메고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설마 여기에 이상한 물건 같은 게 들어 있진 않겠지?

갑자기 불안해지네.

* * *

숲의 입구에는 큰 나무가 좌우에 한 자루씩 심겨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다수의 나무판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판자에 누군가가 써 놓은 문구들이 보였다.

1~2개가 아니었다.

-절대로 들어가지 마시오!

-여긴 지옥이야!

-들어가는 순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돌아가!

-살고 싶으면 도망쳐!

“무슨 귀신의 집도 아니고.”

아니지, 생각해 보면 얼추 맞긴 하다.

저주받은 숲, 사일런트 포레스트에서 금기시되는 행동이 있었다.

말을 해선 안 된다.

말을 하는 순간, 이곳에서 살아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면, 목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30일 동안 무사히 지낼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과연 목소리를 내지 않고 1달을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자신 없다.

“들어가기 전에 실컷 말이나 내뱉고 들어갈까? ……아니, 됐다. 어차피 나 혼자인데.”

걸음을 재촉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숲의 풍경과 뭔가가 다르긴 했다.

그 사소한 곤충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안 들렸다.

여긴 숲이 아닌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일단 자리를 잡았다.

가방을 내려놓는 소리도 나지 않게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내용물을 살폈다.

육포, 나이프, 밧줄 등등. 생존 필수품들이 들어 있었다.

레임스가 나를 싫어해서 내심 여기에 장난질을 치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자리에 앉아 《델리피나 전기》를 읽었던 내용을 차근차근 곱씹어 보았다.

자세하진 않지만, 이곳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관련된 이야기가 2권 초반부에 언급된다.

주인공 라스와 대적하는 악당 중 한 명, 데르킨 백작.

그가 주로 사용하는 아티팩트가 있다.

저주받은 보석, 블랙 다이아몬드.

그 다이아몬드가 바로, 이곳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다.

이 저주받은 숲은 블랙 다이아몬드를 지키기 위해 흑마법사 지하드가 일부러 만든 곳이다.

블랙 다이아몬드에 관한 정보는 많이 퍼지지 않았다.

데르킨 백작은 블랙 다이아몬드의 소재지가 이곳임을 알고 군대를 동원해 블랙 다이아몬드를 차지한다.

중간에 데르킨 백작이 어떻게 블랙 다이아몬드를 얻게 되었는지 회상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데르킨 백작은 이번에 블랙 다이아몬드를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내가 블랙 다이아몬드를 가로챌 거니까!’

그나저나 이 넓은 숲에서 블랙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찾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아아.”

‘목소리’를 냈다.

사일런트 포레스트에서 소리는, 특히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건 금지되어 있었다.

소리를 먹는 괴물이 이곳에 잔뜩 포진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르릉.

놈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네발 달린 괴물들.

사운드 이터.

소리를 먹는 괴물이라 알려진 녀석들이다.

놈들은 소리를 내는 생명체를 발견하는 즉시 잡아먹는다.

참고로 놈들이 가장 맛있게 먹는 부위는 바로 성대다.

그래, 내 성대가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 그런데 이걸 어쩌나?

“어흠! 뭘 망설이냐, 괴물 녀석들아! 다 한꺼번에 덤벼! 귀찮으니까!”

난 소리 잔뜩 낼 건데?

* * *

블랙 다이아몬드의 소재는 명확하지 않았다.

사운드 이터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 있다는 것만 안다.

달려드는 사운드 이터의 주둥이를 양손으로 잡고 그대로 찢어 버렸다.

피는 나지 않았다.

목숨을 다한 녀석들은 검은 연기와 함께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직접 손으로 없애 버렸다.

이러기를 꼬박 3일을 계속했다.

잠도 안 자고 계속해서 사운드 이터와 싸웠다.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돌아 버릴 지경이네……!”

정신력이 오래 버티질 못할 것 같았다.

비록 용신단을 통해 드래곤의 육신을 손에 얻은 나라 하더라도 정신은 평범한 인간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사일런트 포레스트를 돌아다니면서 보이는 사운드 이터마다 족족 다 찢어발겼다.

이제는 내가 아무리 소리를 내도 사운드 이터들은 겁을 먹고 달려들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휴. 힘들다, 힘들어! 야야! 잠깐 쉬자!”

잠시 휴식.

자리에 앉아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노골적으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사운드 이터들은 겁을 먹은 모양인지 멀리서 나를 지켜만 볼 뿐 덤벼들진 않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운드 이터들을 없앴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녀석들의 보스를 불러올 수 있는 걸까?”

혼자서 꼬박 3일을 있다 보니 혼잣말이 늘었다.

<캐스트 ×웨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이 왜 가상의 친구 윌슨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대로 무의미하게 싸움을 계속 이어 나가면 낭비 그 자체다.

머리를 써야 한다.

블랙 다이아몬드가 사운드 이터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놈들이 많이 몰려 있는 장소를 찾아가야 한다.

“야, 거기 너.”

가장 앞쪽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운드 이터 한 마리에게 손짓했다.

놈들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녀석을 지목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일로 와 봐.”

“…….”

“안 오면 내가 찾아간다. 나한테 찍힌 녀석들이 여태껏 어떻게 됐는지 알고 있지?”

“…….”

결국 사운드 이터는 마지못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때마다 녀석에게 딱밤을 선사했다.

“옳지, 착하다.”

강제로 녀석을 착하게 만든 후 목에 밧줄을 연결시켰다.

애완견을 산책시킬 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

물론 다른 사람이 봤을 때에는 ‘뭐 하는 짓인가?’ 싶을 거다.

“좋은 말로 할 때 네놈들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안내해라.”

-크르릉!

놈은 나에게 반항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 반항은 꿀밤 한 대로 인해 무의미해졌다.

사운드 이터는 마지못해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 나갔다.

‘흠, 경치는 나쁘지 않단 말이야.’

주변 경관이 아름답긴 하지만, 이놈의 사운드 이터들 때문에 관광 명소로 이름을 날리기에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사운드 이터와 함께 사일런트 포레스트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가 안 온다면 내가 찾아가는 수밖에.’

3일 동안 숲속을 돌아다니면서 싸우다 보니 대충 지리는 외웠다.

아무리 머리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정된 공간을 계속 반복해서 돌아다니면 얼추 이곳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난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대충 읽은 1, 2권 소설의 내용을 전부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까.

문제는 3권부터 안 읽었다는 거다.

“슬슬 나와야 정상인데……. 오, 저기인가?”

사운드 이터들이 잔뜩 몰려 있는 장소가 보였다.

그 위에 검은 연기를 풀풀 풍겨 대는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딱 봐도 블랙 다이아몬드처럼 생겼다.

손을 뻗어 블랙 다이아몬드를 낚아채려 했다.

그러나 블랙 다이아몬드는 내 손을 피해 공중으로 치솟았다.

“뭐야, 갑자기?”

블랙 다이아몬드에서 다수의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밤? 아니, 낮과 밤이 이렇게 갑자기 바뀔 리 없었다.

하늘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검은 연기의 거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와 함께 산책을 즐기던(?) 사운드 이터는 바들바들 떨더니 이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뭐, 까짓것 도망치게 놔두기로 했다.

‘어쨌든 내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거인의 이마에 블랙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자기 보호를 위해 임시로 거인 몬스터를 만들어 낸 듯했다.

“네가 여기 보스 몬스터냐?”

“…….”

묵묵부답이었다.

애초에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내 목적은 오로지 하나.

놈의 이마에 박혀 있는 블랙 다이아몬드뿐이었다.

“너 말이야, 이마에 점이 하나 있는 거 같은데.”

주먹을 있는 힘껏 말아 쥐었다.

“내가 빼 줄까?”

검은 연기의 거인은 대답 대신 발을 들어 올렸다.

나를 깔아뭉갤 심산이었다.

호락호락 당할 생각은 없었다.

검은 연기의 거인과 벌이는 한판 승부.

리오나는 30일 동안 생존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미 내 목적은 많이 변질되어 있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블랙 다이아몬드를 내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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