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1화 (11/240)

# 11

입단 테스트 (1)

갈로아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디울프들을 다 죽였으니, 영웅 대접을 받는 게 아니냐고.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일이 벌어졌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병사들은 내게 창을 겨눴다.

“뭐, 뭐 하는 녀석이냐!”

병사들은 겁에 질린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왜 그러나 싶었다.

도중에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옷차림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디울프들의 피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병사들은 자연스레 나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원정 나갔던 용병 중 한 명인데요.”

“뭐?”

“용병이라고? 이미 돌아온 게 아니었나?”

엄밀히 말하면 다는 아니었다.

원정대장을 비롯해 몇몇은 그곳에서 개죽음을 당했으니까.

신분을 증명하는데 꽤나 절차가 복잡했다.

애초에 나는 라바인 전투에서 전사자 취급을 받았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수단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때, 의외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그 남자, 저희랑 같이 원정 나갔던 용병 맞아요. 제가 보장하죠.”

블루로즈단의 B팀 대장, 리오나가 나를 변호해 줬다.

‘오, 나이스. 타이밍 좋네!’

리오나를 따라 도심으로 들어설 때까지 나는 병사들의 끊임없는 경계의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병사들뿐만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걸을 때마다 사람들은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강가에서 씻고 올 걸 그랬나?’

리오나는 나를 블루로즈단이 묵는 숙소로 인도했다.

“방을 빌려 뒀어. 가서 씻고 와. 이야기 좀 하게.”

“돈은? 얼마 주면 돼?”

“안 줘도 괜찮아. 그보다 네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듣고 싶으니까.”

많이 궁금할 것이다.

샤워를 하면서 나는 머릿속을 다시 정리했다.

어떤 식으로 리오나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 가야 좋을지.

대부분은 이런 고민이었다.

리오나와 함께 다녀야 주인공인 라스와 어떻게든 엮일 수 있게 된다.

나는 라스가 1년 후, 어디서부터 모험을 시작하는지 구체적인 장소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행하는 건 망할 놈의 개연성 시스템 때문이었다.

생각을 해 보라.

리오나고 뭐고, 엮일 만한 요소들을 다 무시한 채 라스를 만났다고 치자.

당연히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또다시 벙어리가 될 터.

어떻게든 라스와 플래그를 성립시킬 수 있는 개연성을 만들어 둬야 한다.

리오나와 친분을 유지하는 건 이 원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샤워를 마치고 리오나가 기다리고 있는 여관의 로비로 향했다.

리오나 말고 한 남자가 추가로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레임스였다.

그를 보자 인물 정보가 갱신되었다면서 레임스에 관한 사항이 펼쳐졌다.

-레임스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C

-블루로즈단 B팀의 부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 불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의외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일면도 있다.

이 거구와 귀여움이라는 단어가 매칭이 잘 안 된다.

짐짓 모른 척하며 자리에 앉았다.

레임스는 아까부터 나를 못마땅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나 리오나는 달랐다.

“말해 봐.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가 다 죽였거든.”

내 말을 듣자마자 레임스가 바로 반론을 가했다.

“거짓말도 정도껏 쳐라! 그 많은 디울프를 혼자서 처리했다고? 네가 무슨 소드 마스터도 아니고! 아니면 뭔데! 대마법사라도 되냐?”

“아니, 마법의‘마 ’ 자도 몰라.”

“그럼 무슨 수로 없앴는데. 말해 봐!”

“이거로.”

나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남자는 주먹으로 말하는 거잖아.”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군.”

내 행동을 보자마자 레임스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 와중에 리오나는 끝까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감정 컨트롤이 상당히 능숙한 여자였다.

리오나는 내게 재차 물었다.

“진짜야?”

“물론.”

“너에 대한 일화는 들어서 알고 있어. 99점으로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1점은 인성 문제로 감점받았지만.”

“설령 99점으로 통과했다고 치더라도 혼자서 디울프 이십여 마리를 없애는 건 불가능해. 분명 무슨 비결이 있을 거야. 그걸 말해 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안 믿을 녀석들이네.

‘하아, 골치 아프다.’

이대로 가다가 리오나에게 신용도를 잃게 되면 친밀도에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닐까 하고 걱정되었다.

그건 곤란하다.

또 벙어리 신세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리오나와 계속 엮이려면 친밀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적어도 대화는 가능한 수준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냥 적당히 둘러대도록 할까?

“바슬라, 누군지 기억하지?”

“그 딸꾹질하는 마법사?”

“어. 사실 녀석이 한 마법, 제대로 발동되고 있더라고. 너희가 간 후에 마법이 갑자기 한꺼번에 빵! 하고 터졌어. 덕분에 디울프들이 한꺼번에 몰살되었지.”

“그거, 정말이야?”

“적어도 내가 주먹만으로 디울프들을 학살했다는 말보다 믿을 만하잖아. 안 그래?”

“…….”

현실성 있는 핑계를 골라서 대충 둘러댔다.

소설 속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거짓말 실력만 주야장천 늘어나는 거 같다.

이러다가 피노키오처럼 어느 순간 코가 길어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까지 했다.

리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못해 하는 행동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이미 난 처음에 진실을 말했으니까. 안 믿은 그쪽이 잘못이라고.

“볼일은 끝났어?”

내 물음에 리오나는 ‘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 그리고 이거.”

리오나는 내게 두툼한 주머니를 건넸다.

“이게 뭔데?”

“의뢰 성공에 대한 보수. 원정대장이 죽어 버려서 내가 대신 돌아다니면서 용병들에게 보수금을 나눠 줬어. 이건 네 몫이야.”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한눈에 봐도 아르헨이 준 것보다 더 많은 주화가 담겨 있었다.

‘오, 괜찮네. 나쁘지 않다.’

용무 다 마쳤으니 리오나와 레임스는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이대로 리오나를 떠나보내면 안 된다.

“잠깐만. 이번에는 내 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무슨 말?”

“궁금한 게 있어서. 정식 문의라고 할까?”

리오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에 도달했다.

리오나와 친밀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그녀 근처에 계속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블루로즈단에 입단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

* * *

내 말을 들은 순간, 레임스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너, 너너너! 방금 뭐라고 했어. 우리 용병단에 입단하겠다고?”

“왜. 안 되냐?”

“절대로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진 안 돼!”

그러다가 진짜로 흙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비록 소설책을 2권까지밖에 안 읽은 나지만, 블루로즈단이 어떤 용병단인지는 어렴풋이 기억한다.

블루로즈단.

용병 조직이면서 특이하게 군대처럼 뚜렷한 체계가 잡혀 있는 조직이다.

블루로즈단은 크게 3개의 팀으로 구성된다.

B팀, R팀 그리고 S팀.

S팀은 블루로즈단 총단장인 제나드가 이끄는 조직이다.

영향력으로 따지면 S가 가장 강하고 그다음이 R팀, B팀이다.

블루로즈단에서 B팀이 전력상, 그리고 공적상 가장 뒤처지는 팀인 것이다.

그리고 B팀은 보다시피 리오나가 대장을 맡고 있다.

리오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받아들이면, B팀의 전력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허풍이 아니었다.

정말이다.

생각을 해 보라.

드래곤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용병 팀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전력이 안 되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하나 속사정을 모르는 레임스는 나의 입단 지원에 결사반대를 하고 나섰다.

“전력은 개뿔! 민폐 덩어리 하나 들이는 꼴이겠지! 대장, 절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만난 지 3일도 안 된 놈인데, 뭘 믿고 받아 줍니까? 그리고 저 녀석, 인성이 더러운 녀석이라고요! 원정대 테스트받을 때 인성으로 감점 먹은 녀석입니다!”

그놈의 인성 타령은……. 진짜 더럽게 조잘거리네. 나만큼 착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도 레임스의 입을 틀어막을 생각은 없었다.

팀원을 받고 안 받고는 오롯이 해당 팀의 대장이 결정한다.

리오나만 잘 설득하면 된다.

리오나는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눈을 마주쳤다.

‘음, 몇 번을 봐도 참 예쁜 얼굴이란 말이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리오나의 붉은 입술이 드디어 움직였다.

“블루로즈단에 들어오려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혹시 알고 있나?”

“대충.”

“그럼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공짜로 받아 줄 거라곤 생각 안 했다.

“내가 제시하는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정식 팀원으로 받아 주지. 단, 쉽진 않을 거야.”

“대장!”

레임스의 눈이 뒤집혔다.

리오나가 내게 입단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그냥 깔끔하게 거절해요! 저런 녀석은 받아 봤자 도움이 안 된다니까요? 우연히 디울프들 쓰러뜨린 거를 마치 자기 실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녀석이에요!”

“그 실력을 지금 검증하려는 거잖아. 그리고 입 좀 다물어. 아까부터 주변 사람들이 계속 노려본다.”

“…….”

아무리 불같은 성격의 레임스라 하더라도 대장인 리오나의 말에는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였다.

역시, 어느 세계를 가더라도 직장 상사가 짱이지. 암. 나도 부장한테 한마디도 못 했는데.

어쨌든 잘됐다. 적어도 기회는 거머쥐게 되었으니까.

“테스트 내용이 뭔데?”

“너에게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선택지야?”

“그런 셈이지.”

뭔 수작이래, 이건?

머릿속이 복잡해질 무렵, 리오나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서 브이(V) 자를 만들었다.

“첫 번째, 쉽지만 오래 걸리는 테스트. 그리고 두 번째, 어렵지만 짧게 걸리는 테스트.”

“기간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오래 걸리는 건 반년.”

“너무 길어. 두 번째 거는?”

“1달.”

솔직히 1달도 긴 거 같은데. 그래도 반년보다는 나으려나.

“결정했어?”

리오나는 내게 대답을 재촉했다.

이미 답은 정했다.

“두 번째로.”

“참고로 미리 말해 두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위험한 거야?”

“말했지? 겁나 어렵다고.”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망설여지는데.

아니지.

괜히 겁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험 볼 때 고치기 전의 선택지가 답인 경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수정은 없다.

이대로 가즈아!

“그래도 두 번째로 해 줘.”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리오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이렇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그러나 아름답다라는 느낌보다는 뭐랄까……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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