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첫 원정대 (5)
“실은 말이야.”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역시 나다. 편집자 짬밥을 괜히 먹은 게 아니다.
리오나에게 계속 대화를 걸려고 시도했던 이유를 설명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뭐야, 이거.”
내 팔을 내려다봤다.
피부가 거칠어졌다.
동시에 불길한 느낌이 내 전신을 감쌌다.
“왜 그래?”
리오나가 내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도 당황스러울 것이다.
멀쩡하게 말하던 내가 뜬금없이 이상한 행동을 하니까.
“…….”
주변을 살폈다.
이 위화감, 틀림없다.
“근처에 뭔가가 있어.”
우리를 노려보는 존재가 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사냥감의 눈빛처럼 느껴졌다.
노골적인 적의가 감지되었다.
리오나는 바로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서 근처에서 자고 있는 블루로즈 단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단원들을 발로 뻥 찼다.
순간 단원들은 화들짝 놀라 깼다.
깨우는 방식이 참 화끈하시네.
“일어나. 놈들이 왔다.”
“놈들이라면…….”
“설마 몬스터 녀석들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
나도 리오나를 따라 발로 뻥뻥 차면서 다른 사람들의 잠을 깨우려고 했으나, 차마 양심상 그럴 순 없었다.
내가 차면 잠에서 깨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박살 나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주먹을 움켜쥐었다.
수풀 속에서 얼핏 보이는 붉은 눈동자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놈들이다!”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라!”
상황은 긴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군단.
늑대의 형상을 한 몬스터였다.
일반 늑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족 보행이 가능하다는 점일까.
저 몬스터, 기억이 난다.
1권 후반부에 라스가 의뢰를 받고 몬스터를 퇴치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디울프라는 녀석이었다.
-수많은 디울프의 등장에 병사들은 겁에 질렸다.
사기가 저하되었다.
그러나 단 한 명, 라스만이 유일하게 전의를 내뿜었다.
“겁먹지 마라. 싸우기도 전에 겁부터 먹으면 이미 지고 들어가는 전투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죽기 살기로 싸워! 그것만이 살길이다!
라스는 디울프들을 향해 검을 겨눴다.
그의 말에 병사들은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라스와 디울프들의 싸움을 알리는 문구였다.
디울프란 몬스터의 덩치는 3미터에 달했다.
한 마리에 용병 두세 명이 동시에 덤벼들어야 제압이 가능해 보였다.
문제는 이런 녀석들이 열 마리나 있다는 것이었다.
라스는 저런 녀석들을 상대로 용케도 기죽지 않고 싸울 생각을 했구나.
역시 주인공은 달라.
블루로즈단 레임스가 원정대장에게 소리쳤다.
“이야기했던 것과 다르잖소! 분명 디울프는 두세 마리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나, 나도 그렇게 들었…….”
원정대장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뒤에서 갑자기 등장한 디울프에게 머리를 뜯겨 버렸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힘이다.
게다가 움직임도 빨랐다.
힘과 스피드를 동시에 지닌 몬스터.
보통 녀석이 아니다.
‘하긴, 주인공인 라스조차도 여러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기 힘들 정도라고 묘사되어 있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원정대장을 대신해서 레임스가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이! 거기 있는 마법사! 뭐든 좋으니 강력한 마법으로 캐스팅해! 우리가 시간을 벌 테니까!”
그러는 사이에 리오나는 혼자서 디울프를 상대하고 있었다.
‘대단하네. 두세 명이 달라붙어도 쩔쩔매는 디울프를 단신으로 상대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편 바슬라는 레임스의 고함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주문 영창에 돌입했다.
바슬라의 캐스팅이 끝날 때까지 용병들은 어떻게든 버티자는 일념으로 디울프들을 맞이했다.
게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빌어먹을! 이렇게 위험천만한 일거리인 줄 알았더라면 그냥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자는 건데!”
게럴 입장에서 봤을 땐 이 의뢰가 쉽게 느껴졌나 보다.
‘불쌍한 녀석…….’
하지만 여기 있는 자들은 운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있으니까.
자세를 잡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디울프 두 마리가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뒤에서 게럴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놈아! 그러다가 죽어!”
“안 죽어. 너 집에 돌아가서 발 닦고 편하게 자게 해 줄 테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네 목숨 걱정이나 해.”
“저 새끼가 뭐래?”
게럴은 아직 내 능력을 모른다. 아마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디울프의 날카로운 발톱이 내게 날아들었다.
하나 놈들의 발톱은 내 몸에 상처 하나 입히지 못했다.
쩌적!
오히려 발톱에 금이 갔다.
디울프들은 고통에 못 이겨 울부짖었다.
정신 못 차리는 틈을 이용해 주먹을 뻗어 디울프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푸우욱!
별로 좋지 않은 감촉이 오른손을 통해 전달되었다.
녀석의 심장을 터트렸다.
순식간에 한 마리를 즉사시킨 후에 나머지 한 녀석은 발 차기로 머리를 박살 내 버렸다.
내 모습은 상당히 어설펐다.
살아생전 태권도 학원 한번 다녀 본 적 없었다.
격투기 초보자가 어설프게 주먹과 발을 휘두르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 내 주먹질은 사상 최강의 주먹질이었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디울프의 신체가 으깨지거나 관통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닥에 여섯 마리의 디울프 사체가 널려 있었다.
처음에는 열 마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디울프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열 마리에서 여섯 마리를 죽였으니 네 마리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놈들의 숫자는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귀찮은 녀석들.”
슬슬 짜증이 나려고 했다.
그때 마침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슬라가 거의 주문 영창을 끝낸 것이다.
게럴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바슬라의 이름을 연호했다.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아 강력한 범위 공격 마법이 발동……하긴 개뿔.
“딸꾹!”
중요한 순간에 바슬라가 갑자기 딸꾹질을 해 댔다.
순간 용병들은 벙찐 표정으로 바슬라를 바라봤다.
당연한 말이지만, 바슬라가 시전했던 마법은 주문 영창이 틀어지자마자 실패로 돌아갔다.
강력한 공격 마법 대신에 이상한 양 한 마리가 튀어나와서 ‘메에~’라는 소리를 들려줬다.
겨우 딸꾹질을 멈춘 바슬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긴장을 하면 딸꾹질이 나오는 버릇이 있는지라…….”
“저딴 녀석을 누가 데려온 거야?”
“마법사라고 비싼 돈 주고 데려왔더니,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었잖아!”
용병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바슬라 탓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인물 정보는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
디울프는 우리들의 사정을 고려해 주지 않았다.
우리를 가운데에 두고 포위망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두 주먹으로 디울프의 두개골을 박살 내던 레임스가 리오나에게 외쳤다.
“대장!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대로 가다가 다 죽게 생겼다고!”
“어쩔 수 없지.”
리오나는 허리춤에서 작은 병 같은 것을 꺼내 들었다.
투명한 액체를 담은 병의 뚜껑을 열었다.
저게 뭔가 싶었다. 병을 공중으로 던짐과 동시에 리오나는 우리에게 경고했다.
“내가 신호를 주면 동시에 눈을 감도록. 하나, 둘…… 셋!”
용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리오나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 순간, 병이 터지면서 강렬한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일시적으로 적을 실명시키는 능력을 지닌 액체 같았는데, 나는 눈을 그대로 뜨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실명 효과를 받지 않았다.
용신단 덕분이었다.
‘하긴, 드래곤의 육체가 저런 빛 따위에 영향을 받을 리가 없지.’
용병들은 각자 2초를 세다가 눈을 떴다.
실명 포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가장 먼저 선두에 선 건 레임스였다.
“죽기 싫으면 따라와!”
용병들이 그 뒤를 따랐다.
후발대에는 리오나가 남았다.
그녀는 아직 남아 있는 나에게 다급히 손짓했다.
“뭐 해! 안 따라오고!”
“먼저 가! 내가 맨 마지막으로 따라갈게!”
“…….”
리오나는 내게 설득이 통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아는 것 같았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겠지.
모두를 위해 나 혼자 희생을 자처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 반대다.
누군가가 남아서 시간을 끌어 주면 나머지 사람들이 살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하나 내 목적은 희생이 아니었다.
마지못해 돌아서는 리오나.
그녀가 떠나자 타이밍 좋게 실명 포션의 지속 효과가 사라졌다.
잃어버린 시야를 되찾은 디울프들은 나를 보면서 송곳니를 드러냈다.
‘어디 보자…….’
대충 눈으로 훑어보니 이십여 마리 정도는 된다.
“실험해 보기에는 딱 좋은 숫자네.”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등장인물마다 종합 능력이라는 게 있었다.
이 종합 능력 랭크를 내 의지대로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싶었다.
이에 관한 실험을 거행할 예정이었다.
몸을 풀기 시작했다.
디울프들은 나의 이런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부터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알 리가 없겠지. 몸풀기 끝.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 * *
살아 있는 무언가를 죽을 때까지 패 본 적은 없었다.
여기에 오고 처음 해 봤다.
원래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때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소설 속 세계의 나는 달랐다.
지금 여기에 서 있는 건 편집자 강시언이 아니다.
소년 병사였던 로인이다.
살아 숨 쉬던 디울프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이놈들을 때려눕히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처음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아이템 하나를 발견했다.
디울프를 잡으면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 존재한다.
-디울프의 푸른 송곳니
-등급 : 레어
물리 공격력 : +55
-특정 디울프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 무기에 합성하면 추가 공격력을 얻을 수 있다.
용신단의 정보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보물을 삼키는 드래곤, 벨라시오닉의 육신이 지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 보물을 삼키면 삼킬수록 스텟 레벨이 올라가며, 새로운 액티브 스킬이 개방된다.
벨라시오닉의 능력을 손에 얻은 나라면, 보물을 삼켜 능력치를 키울 수 있을 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흡수 가능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용신단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Yes!’다.
푸른 송곳니는 가루로 변하더니, 이내 먹기 좋은 크기의 작은 환약으로 변신했다.
이것을 삼키면 되는 건가?
꿀꺽!
맛은 없었다.
대신, 이로운 효과를 얻었다.
-디울프의 푸른 송곳니를 삼켰습니다. 삼킨 아이템의 효과로 추가 물리 공격력 +55를 얻습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2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스텟이 오릅니다.
-드래곤의 육체 스킬 레벨이 상승합니다. 더 강한 신체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로인이라는 엑스트라 캐릭터의 정보를 열람했다.
인물 등급은 여전히 엑스트라였다.
‘그럼 어느 부분이 갱신된 걸까?’
뻔했다.
-종합 능력이 B에서 A랭크로 상승했습니다.
보물을 삼키면 용신단의 레벨이 오른다. 이건 곧 랭크 업에 영향을 미친다.
‘역시!’
내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