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6화 (6/240)

# 6

첫 원정대 (1)

갈로아는 넓은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좀 부적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아스툰에 비해 배로 큰 곳이었다.

자, 이제 혼자 남았는데, 어쩐다…….

“일단 밥부터 먹을까?”

아르헨에게 받은 금화가 있으니 이것으로 끼니를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후 3시.

점심시간이 끝난 지도 한참 된 시간이다.

덕분에 가게 내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어서 옵쇼!”

배에 살집이 푸짐하게 자리 잡은 중년의 아저씨가 테이블에 앉은 나에게 다가왔다.

인물 등급을 보니 엑스트라로 표기된다.

엑스트라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흘렸다.

“음? 형씨, 여기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좀 있거든. 어디 보자, 남쪽에서 왔나? 아니, 그러기에는 피부가 너무 새하얀데. 생긴 걸로만 봤을 때에는 어디 높은 귀족 집안의 자제분같이 생겼어, 하하하!”

“오, 어떻게 아셨어요? 저, 서민 체험해 보려고 일부러 변장하고 다니는 거였는데. 눈치가 빠르시네요.”

“……?”

엑스트라 아저씨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지금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사죄할 기세였다.

그 전에 미리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농담이에요. 그냥 아저씨 농에 어울려 준 것뿐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하하.”

“뭐, 뭐야! 난 또 진짜인 줄 알았잖아! 어휴, 십년감수했네. 그보다 귀족 사칭은 중형이라고! 확 신고해 버릴까 보다!”

“하하하, 미안해요. 웃자고 한 소리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나였으니까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림도 없어. 잘 알아 두라고.”

리액션이 굉장히 재미있는 아저씨다.

내가 다녔던 출판사 근처에 이 엑스트라 아저씨랑 비슷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분식집, 야근할 때마다 자주 들르곤 했었는데…… 아쉽다.’

분식집이 연상되니 거기서 자주 먹었던 제육볶음이 먹고 싶어졌다.

“여기에 제육볶음 있어요?”

“제육볶음? 그게 뭐여?”

하긴, 있을 리가 없지. 여긴 이세계, 아니 소설 속 세계니까.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서 매콤하게 간을 맞춘 다음에 밥이랑 같이 먹는 음식인데요. 비슷한 게 있다면 그거라도 괜찮아요.”

“음, 오케이. 어떤 건지 알겠어. 원래 메뉴에는 없는 음식이지만, 특별히 자네를 위해서 만들어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기대할게요.”

친절하고 유쾌한 아저씨 덕분에 점심은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 특제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어디로 갈지 생각에 잠겼다.

기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고 싶다.

내가 갈로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핫 플레이스에 가서 한꺼번에 사람들의 인물 등급을 확인하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까.

갈로아라는 도시는 내게 있어서 굉장히 낯선 곳이다.

소설 속에서 본 기억은 있지만, 직접 오는 건 처음이다.

우선 현지인에게 명소를 물어보도록 하자.

“아저씨.”

“또 왜, 이번에도 질 나쁜 농담하려고?”

“아니에요. 그냥 뭣 좀 물어보려고요. 혹시 갈로아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관광 명소 같은 곳이 있나요?”

“관광이라고 불릴 만한 곳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모이는 곳이라면 있지.”

오, 나이스. 도시라면 적어도 자랑거리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암!

“어디인데요?”

“갈로아 광장에 ‘이터블’이 있는데. 뭔지 아나?”

“네, 물론이죠.”

모를 리가 있나. 《델리피나 전기》 1권 초반부에 등장하는 요소 중에서 아저씨가 말한 이터블이라는 게 있다.

라바인 전투에서 희생된 수많은 영웅들과 장정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묘비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묘비가 거대한 검의 형태로 제작되었다는 점이라고 할까?

주인공인 라스가 제2장에서 동료와 함께 이터블에 들러 벨라시오닉과 몬스터 군단과 싸우다 죽은 옛 동료들의 희생을 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터블은 한 도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도시에 설치되어 있다. 주로 희생자들의 출신지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고 기억한다.

여기도 그중 하나인 걸까?

하여튼 좋은 정보를 얻었다.

“정보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잘 먹었습니다. 이건 팁이에요.”

팁으로 1만 제피를 올려놓았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자면 1만 원과 같은 가치를 지녔다.

참고로 아저씨가 나에게 준 제육볶음의 가격은 5천 제피였다.

음식 가격보다 팁을 더 많이 주니 가게 아저씨는 당혹감을 드러냈다.

“아니, 이렇게 많이 안 줘도 되는데…….”

“친절하게 대해 주신 보답이에요. 그럼 많이 파세요.”

소설 속으로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들른 음식 가게.

첫 가게로 좋은 가게가 걸린 거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 * *

광장은 갈로아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찾기가 매우 쉬웠다.

큰길을 따라 쭉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갈로아의 길들은 전부 다 광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기하다.

판타지 소설 편집자로 나름 오랫동안 근무를 했었지만, 이렇게 직접 내 눈으로 판타지 세계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다가 길거리 음식 같은 게 있으면 바로바로 사 먹었다.

“여기, 엘라소 꼬치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500제피로 엘라소 꼬치라는 것을 구입했다.

우리나라 음식 중에서 양 꼬치와 비슷한 맛이었다.

그 밖에 와플 비슷한 것도 있고, 과일 주스도 팔고 있었다.

“관광 온 기분이네.”

외국에 나가면 딱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난 살면서 단 한차례도 외국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원고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인생을 보내느라 너무 바쁘게 지내 왔다.

신선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이터블에 도착했다.

“와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묘비의 규모가 상당히 컸다.

게다가 검이 지면에 꽂혀 있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다 보니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검날 부분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갈로아 출신인, 죽은 병사들의 이름들.

혹시 로인이라는 이름을 지닌 소년 병사도 있나 찾아봤지만, 여기엔 없었다.

거대한 묘비 앞에 서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

각자 들고 온 꽃다발을 묘비 앞에 내려놓았다.

인류 최악의 전투라 불리는 라바인 전투.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영웅들이 사라진 이 전투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안겨 줬다.

이 전투에 나도 참가했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 강시언이 아니라 로인이 참가한 거였지만 말이다.

나 혼자 맨손으로 있기에도 그래서 근처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을 찾았다.

도중에 눈에 띄는 꽃이 있었다.

노점 상인은 내 시선을 눈치챈 모양인지 바로 영업 모드를 발동시켰다.

“손님,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 꽃을 원하시는 거죠?”

“이건 어떤 꽃입니까?”

“블루 로즈라고 해요. 말 그대로 파란 장미죠.”

이전 세계에 있을 때에는 붉은 장미만 봤는데, 파란 장미를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음, 이것으로 할까?’

보니까 수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딱 한 송이 남았다.

“이거 한 송이 주…….”

말을 이어 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불쑥 모습을 드러낸 한 남자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아줌마! 블루 로즈 한 송이 주소!”

“블루 로즈? 방금 이 청년이 먼저 주문했는디. 이를 어쩐댜.”

남자의 시선이 내게 고정되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했다.

거의 내 2배에 육박했다.

“뭐냐, 넌.”

생긴 대로 논다.

판타지 소설에 보면 자주 나온다.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불한당 같은 녀석이.

이미 눈앞에 있는 남자와 비슷한 덩치를 지닌 산적들을 여러 명 때려눕힌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너보다 먼저 온 손님인데.”

“어쭈? 이 새끼가 말하는 꼬라지 봐라?”

“댁도 말투가 썩 좋진 않네.”

“뭣이 어쩌고 어째?”

남자의 화가 극에 달했다.

혹시 몰라서 남자의 인물 등급을 먼저 확인해 봤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등급은 엑스트라였다.

남자는 경고도 없이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주먹이 나를 맞힐 일은 절대로 없었다.

후웅!

남자의 주먹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벌써부터 놀라기엔 너무 이르다고.

왼 주먹을 뻗어 녀석의 안면에 가져갔다.

처음부터 놈을 때릴 생각이 없었다.

주먹이 얼굴에 닿기 직전에 움직임을 멈췄다.

하나 남자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단지 풍압만으로 저 거구를 날려 보낸 것이다.

‘대단하네. 역시 벨라시오닉의 보물이야.’

내 능력에 스스로 감탄했다.

반면, 남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자는 나를 향해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덩치 큰 광견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남자는 무기를 꺼내 들었다.

건틀릿이었다.

‘권사인가? 어울리긴 하네.’

쿵쿵대면서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몸집에 비해서 움직임은 꽤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일반인 기준에서 봤을 때의 평가고, 내 기준으로 볼 때에는 한참 멀었다.

다시 한번 남자의 주먹을 피했다.

건틀릿을 낀 저 주먹을 정통으로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았다.

물론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요리 피하고 저리 피하고…… 계속 피하기만 했다.

노리는 게 있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헥헥헥……!”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거구.

10분이라……. 그래도 나름 오래 버텼다.

제풀에 쓰러지기를 바랐다.

이제 슬슬 한계가 온 듯했으나…….

“어떻게든 한 대 먹인다! 반드시!”

투지가 대단하다.

처음에는 이 거구와 엮이게 된 게 불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소란을 일으킨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우리 주변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이 사람들의 인물 등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전부 다 엑스트라라는 점이었지만 말이다.

‘여기도 꽝인가?’

목적은 달성했다.

이제 씩씩거리며 열을 내는 저 남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일만 남았다.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힘 조절을 잘해야 한다.

까딱 잘못하다가 남자의 몸이 터질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거구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며 내게 일격을 날렸다.

회피.

그리고 반격을 가했다.

뻐어어어억!

남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거구는 호흡곤란을 일으키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고꾸라졌다.

‘일행은 없나? 내가 처리하기 귀찮은데…….’

주변을 훑으며 외쳤다.

“혹시 이 남자랑 일행이신 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혹시 나한테 보복을 당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가?

거구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하더라도 놈의 동료한테까지 화풀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

이런 생각이 들 무렵, 갑자기 몇몇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중에 유독 한 명의 여성에게 시선이 갔다.

예쁘게 생긴 여성이다.

하나 미모가 문제가 아니었다.

“말도 안 돼…….”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다 엑스트라일 때, 여성 혼자만 ‘단역’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찾았다, 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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