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3화 (3/240)

# 3

소설 속으로 (2)

근처에서 들려오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물이 흐르는 소리까지.

틀림없이 1급 청정수가 흐르는 물일 것이다.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깨끗한 물맛은 정말 오랜만이었으니까.

서서히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나는 물에 반쯤 잠긴 상태였다.

천만다행히도 머리가 아래가 아닌 위쪽을 향해 있었다.

만약 아래였다면, 콧구멍이고 귓구멍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다 물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상반신을 일으켰다.

수심이 굉장히 얕은 강물이었다.

“……여긴 또 어디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어서 그런지 손가락 끝이 전부 다 불어 있었다.

근처를 둘러봤다.

산속인 거 같은데.

“그보다 나, 살아 있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옷은 전부 불타 있었다.

태어났을 때 그대로의 상태였다.

즉, 알몸이다.

몸은 멀쩡해 보였다.

분명 여러 차례의 화염 폭풍으로 인해 내 피부는 전부 타들어 간 상태였다.

살아도 산 게 아닐 정도로 심한 전신 화상을 입었는데. 문제는 지금의 내 몸은 너무 깨끗하다.

잡티 하나 없다.

대신 잔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있었다.

‘원래 이 몸의 상태가 이랬나?’

그때는 갑옷을 둘둘 두르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렇게 몸이 좋은지 깨닫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몸을 내 몸처럼 다루려고 하니까 위화감이 느껴졌다.

손을 움직여 봤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잘 움직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생기를 느꼈다.

“이상한데?”

죽다가 살아난 사람의 몸 상태가 아니다.

내 몸에 무슨 이상 현상이라도 생긴 건가?

“……그보다, 역시 꿈이 아니었구나.”

소설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을 때에는 꿈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렇게 다시 재정신이 드니 더 이상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깨닫기 싫은 현실을 깨달아 버린 이 기분.

마치 편집자가 되고 나서 처음 느꼈던 기분과 같다.

‘그 기분, 잘 알지. 암.’

근처에 걸칠 만한 옷 같은 거 없나 해서 찾아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이 깊은 산골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했다.

어디 보자……. 나뭇잎이라도 대충 떼서 가릴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꺄아아아아악!”

바로 머리 위에서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들려왔다.

‘목소리 참 크네. 아니면 산골짜기라서 유독 더 크게 울리는 걸까?’

여하튼 사람이 있는 거 같으니 일단 가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긴 절벽이다.

기어서 올라가거나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하는데.

“점프 같은 걸로 못 올라가려나…….”

보니까 소설 속 세계는 마법이라는 게 존재했다.

어쩌면 이 소년 병사의 몸도 마법을 쓸 수 있는 체질일지도 모르지 않나?

사실 나도 잘 안다.

이거, 질 나쁜 농담이라고.

아쉬움에 가볍게 점프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투우웅!

몸이 순식간에 위로 솟구쳤다.

“어어어어어?”

내가 해 놓고 내가 놀랐다.

‘뭐지? 내가 이렇게 점프력이 좋았나?’

엇 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비명이 들린 위치까지 도달했다.

일단 착지.

맨발이라서 아플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발바닥도 멀쩡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평범한 소년 병사의 몸이 아닌데?’

게다가 몸도 멀쩡하게 재생되어 있었다.

감도는 생기.

몸에 힘이 자꾸 솟아올랐다.

뭔가 계기가 있을 거야. 육체가 강화된 계기가.

“설마……?”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 게 있었다.

화염 폭발이 발생하기 전에 삼켰던 그 약.

용신단!

“이런 능력을 지닌 보물이었나.”

이름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효능이 있는지 잘 몰랐다.

사실 아이템 설명도 좀 불친절하지 않았나.

난 《델리피나 전기》를 고작 1, 2권밖에 읽지 않았다.

그래서 벨라시오닉이 남긴 보물들이 무엇인지 전부 다 알진 못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동안에도 비명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마어마한 속도다.

단거리선수를 뺨칠 정도의 빠른 속도로 비명이 들린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참극이 벌어져 있었다.

산적으로 보이는 다수의 남자들이 모험가들을 덮친 것이다.

바닥에는 습격당한 일행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살아남은 모험가는 고작해야 셋.

그중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부상을 입은 남자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모험가는 여자 하나에 꼬맹이로 보이는 소년이 한 명.

무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민간인일 확률이 높았다.

반면 산적들의 숫자는 열셋이었다.

‘많네, 많아.’

산적 중 한 명이 손도끼를 들고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죽기 싫으면 거기 뒤에 있는 계집과 꼬마를 얌전히 넘겨라.”

“개소리 그만 지껄이고 덤벼라. 너희 같은 불한당에게 도련님을 넘겨줄 것 같으냐!”

“허세하고는. 그렇게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지!”

산적은 손도끼를 높게 추켜올렸다.

‘어떻게 하지? 끼어들어야 하나? 그렇지만 내가 싸울 수 있나? 난 무기도 뭐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빠직!

나도 모르게 발밑에 있는 나뭇가지를 밟아 버렸다.

‘진짜 재수도 더럽게 없지. 게다가 소리는 왜 이리 크게 나는 거야?’

손도끼를 휘두르던 산적의 동작이 그대로 정지했다.

열댓 명의 시선이 동시에 내 쪽으로 향했다.

“아, 안녕하세요……?”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네고 말았다.

예전부터 인사성 하나는 바른 청년이란 칭찬을 많이 받았으니까.

그러나 산적들은 황당하기 그지없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냐, 넌?”

“변태?”

이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나는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치고 있으니까.

부상당한 남자의 보호를 받던 여자와 소년은 얼굴이 잔뜩 빨개진 채 시선을 다른 곳으로 던졌다.

‘죄송합니다, 두 분. 아무리 바빠도 뭐라도 걸치고 올 걸 그랬네요.’

어느새 산적들은 내 앞으로 모여들었다.

“너, 이름이 뭐냐?”

“이름, 이름이라…….”

뭐였더라? 선임 병사가 나보고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 맞다!

“로인입니다.”

“로인?”

“……어.”

“근데 갑자기 웬 반말이냐?”

“네가 먼저 반말했으니까.”

“어쭈?”

산적은 기가 막힌 모양인지 헛웃음을 삼켰다.

부장님이 나에게 늘 그랬다. 상대방이 강하게 나오면 나도 똑같이 강하게 나가라고.

그래야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나 뭐라나.

일단 한번 해 보긴 했는데, 딱 봐도 역효과가 난 거 같다.

“이 새끼가 돌았나!”

산적은 예고도 없이 나에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말이 손도끼지, 팔 하나는 충분히 절단하고도 남을 만큼 묵직하고 커 보였다.

손도끼의 날은 정확히 내 오른쪽 어깻죽지를 노렸다.

그러나 뭐랄까……. 산적의 움직임이 너무 느리게 보였다.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옆으로 몸을 살짝 뺐다.

부웅!

산적의 일격은 허공을 갈랐다.

무게중심이 무너진 산적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추하다, 추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산적은 열이 받은 모양인지 씩씩거리며 내게 도끼를 계속 휘둘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손쉽게 피했다.

너무 느려서 하품이 다 나올 정도였다.

진짜로 내 몸이 어떻게 되긴 했나 보구나.

“헉헉…… 쥐새끼 같은 녀석……!”

결국 산적은 체력이 달리는 모양인지 거친 호흡을 내쉬기 시작했다.

보기와는 다르게 허약하네.

“네놈! 반드시 죽이겠다!”

그런 말은 공격을 명중시키고 나서 하라고.

혼자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지 부하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같이 공격하자는 뜻임을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산만 한 덩치를 가진 남정네들 여럿이 나 하나 잡겠다고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분위기 자체는 삼엄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뭐랄까…….

‘재미있네.’

저들의 행동이 눈에 빤히 보여서 요리조리 피하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공격도 한번 해 볼까?

선두에 있는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녀석은 흠칫 놀랐다.

오른손을 뻗어 이마에 딱밤을 선사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터어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녀석이 뒤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고작 딱밤 한 대에? 용신단이라고 했나? 굉장한 보물이었네. 그보다 로인이 원래 용신단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었나?’

소설 속에는 이런 능력을 지닌 등장인물은 없었는데……. 아니지, 내가 2권까지만 읽다가 말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3권부터는 로인이란 이름을 가진 괴력 소년 병사 캐릭터가 등장했을지도.

좋아.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니들은 다 뒈졌다.”

어디 한번 날뛰어 볼까?

* * *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세등등하던 산적들은, 지금 알몸이 된 채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얼굴과 몸은 멍이 들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아주 조금, 약간만 사랑의 매를 들었을 뿐인데 놈들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산적 놈 중 한 녀석의 옷을 빼앗아 대신 입었다.

마침 사이즈가 딱이었다.

“전체 주목.”

“주, 주목!”

복명복창하며 나를 바라보는 산적 녀석들.

……그러니까 진작 알아서 기었어야지.

“앞으로는 이런 짓 하지 말고 착한 일만 하고 살아라. 그리고 내 눈에 띄지 마라. 만약 내 말을 어겼다간…….”

돌멩이를 든 주먹을 꽉 쥐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돌멩이를 목격한 산적들의 눈은 동그랑땡이 되었다.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아,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드네.”

“알겠습니드아아아아아!”

“좋아, 그럼 꺼져.”

내 말에 산적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쳤다.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니 이런 능력을 얻게 될 줄이야…….

참으로 신기하다.

‘자, 산적들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했으니…… 앞으로 어쩐다?’

고민에 휩싸인 찰나에 부상을 입었던 남자가 내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강시언…… 아니, 로인입니다.”

무심코 본명이 튀어나왔다.

나는 지금 소설 속 등장인물이다.

주연급인지 조연급인지, 아니면 무명의 엑스트라인지 아직까진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 세계인 만큼 이곳의 등장인물 이름을 활용하기로 했다.

적어도 이 세계에 강시언이란 남자는 없을 테니까.

“혹시 어디로 가시던 길이었습니까? 괜찮다면 저희 영지로 가시겠습니까? 도련님께서 보답을 하고 싶으시다는군요.”

“저희 영지?”

“예, 벤디 도련님의 아버님이 근처에 있는 아스툰의 영주님이십니다. 육로로 가면 2일 정도 걸리니, 목적지가 없으시다면 아스툰에 잠시 들르시지요. 저희를 구해 주신 보답은 확실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벤디라는 소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새로운 인물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정보를 열람합니다.

-벤디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F

-아스툰 영주, 아르헨의 외동아들. 성격은 착함. 단,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해 세상 물정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인물 정보? 가만. 등급까지 나오네?’

엑스트라다.

무명 캐릭터라는 소리인가?

이런 정보도 보이고, 참으로 편하다.

여하튼 운이 좋다.

안 그래도 길 잃은 양 신세였는데, 잘됐다.

“같이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련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군말 없이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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