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화 (2/240)

# 2

소설 속으로 (1)

혼란스러운 와중에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병사들을 재촉했다.

“5분 뒤! 벨라시오닉의 숨통을 끊으러 간다! 다들 준비를 서두르도록!”

“예!”

이들은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벨라시오닉과의 전투는 장장 139일 동안 이어졌다.

숨통을 끊으러 간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오늘이 딱 139일째인 모양이다.

하지만…….

마지막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아니, 읽었다.

-벨라시오닉과의 마지막 전투.

녀석은 죽기 직전, 거대한 화염 폭풍으로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살아남은 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화상으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이어 가는 건 불가능했다.

이것이 라바인 전투의 최후다.

즉, 멍 때리고 있다가 화염 폭풍의 먹잇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위험하다.’

내가 든 방패를 살펴봤다.

그러자 이상한 문구가 떠올랐다.

-아이언 실드

-등급 : 노멀

-방어력 : 10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평범한 방패. 특별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게임 아이템의 설명 같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러나 이내 그냥 머릿속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해 보라.

소설 속 세계로 들어왔는데, 게임 문구 같은 설명구가 시야에 보인다고 놀랄 게 뭐 있나?

여하튼 아이언 실드만으론 부족하다.

‘화염 저항력이 높은 아이템은 없나?’

하나 일반 병사에게 그런 옵션이 달려 있는 방패를 줄 리 만무했다.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방패를 구해야 한다.

아니면 그에 준하는 매직 아이템이라도!

어물쩍거리는 사이에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인파에 밀려 등 떠밀리다시피 나도 전장으로 다시 나서게 되었다.

또다시 지옥의 풍경이 펼쳐졌다.

* * *

오크들의 사체 타는 냄새를 넘어 넓은 공터로 향하는 군대.

인간뿐만 아니라 드워프, 엘프 등등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한곳에 아우러져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벨라시오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드래곤이 피 칠갑이 되어 이들을 맞이했다.

덩치가 어마어마하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실제로 여기서 접하니 할 말이 쏙 들어갔다.

위압감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벨라시오닉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도 대단했다.

‘하기야…… 수십, 아니 수백, 수천만이 동원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 또한 만만치 않았다.

벨라시오닉이라는 드래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벨라시오닉이 부리는 몬스터 군단이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연합군과 몬스터 군단의 정면충돌!

그 속에서 나는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회사에서 마우스, 컴퓨터만 만질 줄 알았던 샐러리맨인 내가 검과 방패를 들고 몬스터와 어떻게 싸우라고!’

초록색 피부를 지닌 오크 하나가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대상은 하필이면 나였다.

“으악!”

몸을 옆으로 날렸다.

행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분명 내 몸은 저 무지막지한 도끼 앞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졌을 것이다.

오크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무래도 내가 놈의 공격을 피해서 화가 난 모양이다.

어쩌지? 싸워야 하나?

검을 들었다.

‘겁나 무거워!’

원래 이렇게 무거웠나 싶을 정도였다.

‘판타지 소설을 보면 병사들은 이런 검쯤은 우습게 휘두르고 다니던데.’

역시 상상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에 오크가 다시 한번 도끼를 겨눴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는 양날 도끼.

아까처럼 피하려고 했다가 돌부리에 걸려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틈을 노려 오크는 나를 없애기 위해 세 번째 도끼질을 시도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쿵!’ 소리가 들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죽이려고 도끼를 휘둘렀던 오크가 사늘한 사체가 되어 있었다.

짧게나마 나와 대화를 나눴던 선임 병사가 오크의 측면으로 파고들어 옆구리에 검을 찔러 넣은 것이었다.

선임 병사는 내게 소리쳤다.

“로인! 정신 똑바로 안 차리냐! 죽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죽기를 원한다면 말해! 내가 이 자리에서 고통 없이 죽여 줄 테니까!”

누가 죽고 싶다고 했나. 살고 싶다고, 이 양반아…….

그래도 선임 병사 덕분에 살았다.

말은 험하게 해도 저 선임 병사, 로인이라는 후임을 평소에 많이 아꼈나 보다.

다시 검을 들었다.

휘두르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그래도 맨손으로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싶어서 무기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소년 병사 로인의 몸은 꽤 가벼웠다.

나도 이 몸에 슬슬 적응한 모양인지, 아까보다 움직이기 훨씬 편했다.

그렇다고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선임 병사와도 떨어지게 되었다.

‘곁에 붙어 있으면 그래도 생존 확률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젠장, 살기 위해서 발버둥이라도 치자!’

이런 생각을 가지며 요리조리 공격…… 아니,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

왜냐하면 조만간 거대한 시한폭탄이 터질 테니까.

이 시한폭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주 훨씬 빨랐다.

갑자기 벨라시오닉의 몸에 불이 붙었다.

피보다도 진한 붉은 불꽃이 벨라시오닉의 몸을 감쌌다.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난 안다.

“엎드려요!”

뒤늦게 소리를 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화염 폭풍이 연합군에게 쏟아졌다.

메테오 마법에 비해서 그리 위력적이진 않았다.

그냥 미친 듯이 뜨겁다는 정도?

몸을 바짝 숙인 덕분에 나는 화염 폭풍 속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피해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나 내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상태는 그리 온전치 않았다.

아까 나에게 말을 걸었던 선임 병사도 전신 화상을 입은 채 쓰러졌다.

이것만으로 끝나진 않는다.

“방패를 찾아야 해, 어서!”

저건 벨라시오닉의 마지막 발악이다.

어차피 벨라시오닉은 죽는다.

‘죽을 땐 죽더라도 혼자서 죽진 않겠다, 이 자리에 있는 놈들 모두를 죽이고 떠나겠다는 생각이겠지!’

한마디로 말해서 ‘자폭’이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눈에 들어오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레지 실드

-등급 : 유니크

-방어력 : 54

-화염 저항력 : 75%

-살라만다의 불길 속에서 가열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높은 화염 저항력을 지닌 아이템.

내 생존 본능이 레지 실드를 보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저거다! 저것만 있으면 그래도 어떻게 살아 볼 순 있겠다!’

냅다 뛰기 시작했다.

레지 실드는 아까 우리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던 지휘관의 팔에 감겨 있었다.

지휘관은 이미 화염 폭풍으로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화염 폭풍에 방패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말이다.

레지 실드를 집어 들었다.

화염 폭풍으로 인해 달궈진 방패는 내 손에 화상을 선사했다.

뜨거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게 없으면 진짜로 죽는다!’

레지 실드를 겨우겨우 오른팔에 착용했다.

‘가만…… 이것만으로 살 수 있을까?’

고작 레지 실드 하나 찼다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 아이템 주인은 죽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거 하나로 부족한 것일지도!

‘찾아야 해! 화염 저항 옵션이 붙은 아이템은 죄다 찾아야 한다!’

미친 듯이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화염 폭풍으로 인해 서로 치고받고 싸웠던 전쟁 통은 순식간에 시체 밭으로 돌변했다.

덕분에 아이템을 찾아 해매는 건 수월했다.

화염 저항력이 붙은 망토에 헬멧, 갑옷, 기타 등등.

화염 저항력 성애자처럼 미친 듯이 아이템을 모아 온몸에 덕지덕지 착용했다.

‘이 정도면 살 수 있겠지?’

사실 나도 모른다.

그냥 운에 맡기기로 했다.

이어 두 번째 화염 폭풍이 생성되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몸을 바닥에 바짝 붙였다.

그러고 난 뒤에 레지 실드를 앞으로 치켜들었다.

화아아악!

뜨거운 화염 폭풍이 이번에도 불어닥쳤다.

그러나 아이템들 덕분에 난 이번에도 화염 폭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벨라시오닉의 숨이 붙어 있다.

녀석의 마지막 불꽃이 타올랐다.

살아남은 이가 거의 없었다.

저 마지막 한 방으로 모두가 다 죽을 것이다.

다시 한번 레지 실드를 들어 올렸다.

이미 몸에 감각이 사라졌다.

양다리는 화염 폭풍의 영향으로 인해 피부가 증발되어 있었다.

근육이 다 보일 정도였다.

‘살아남는다 해도 정상적인 삶은 꿈도 못 꾸겠네.’

통각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러나 살아남고 싶다는 본능이 더 강했다.

벨라시오닉의 외침과 함께 세 번째 화염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강렬한 화염 폭풍이 나를 덮쳤다.

파르르 떨리는 오른팔.

이미 오른팔과 머리, 몸통을 제외하고 나머지 신체 부위에는 무감각 상태다.

제대로 달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난생처음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찾았다.

‘만약 신이 계시다면…… 그리고 나를 정말로 불쌍히 여기신다면…… 부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내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은 걸까?

대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벨라시오닉의 화염 폭풍이 잦아들었다.

텅!

녹아 버린 레지 실드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체조차도 재가 되어 바람에 사라졌다.

만약 레지 실드가 없었다면 나도 저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을 게 분명하다.

수많은 자들이 영웅이 되었고, 수만은 영웅들이 이름을 남기고 죽었다.

그것이 라바인 전투의 마지막이다.

‘더 이상은 무리야.’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축 늘어졌다.

살아남긴 했지만 이대로 가면 죽을 게 뻔하다.

절로 감기는 눈꺼풀.

그 사이로 붉은 화염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벨라시오닉이 아직도 살아 있나?

공포가 밀려왔다.

하나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심장.

인페르노 하트다.

틀림없다.

벨라시오닉은 죽으면서 여러 개의 보물을 남긴 채 사망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페르노 하트.

화염을 다루는 능력을 주는 아이템이다.

그 밑에는 검이 하나 꽂혀 있었다.

에어리얼 소드.

벨라시오닉의 발톱으로 만들어진 최강의 검이다.

이 밖에 다른 보물들이 많이 널려 있었다.

이들은 훗날, 델리피나 대륙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서서히 눈이 감겼다.

툭.

레지 실드를 들고 있던 오른손 밑에 뭔가가 느껴졌다.

유일하게 내 몸에서 감각이 남아 있는 신체 부위.

오른손을 더듬더듬 움직였다.

작은 알약이었다.

“이건 또…… 뭐야……?”

이런 보물도 있었나?

약 같은데.

모르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떠올리자, 떠올려야 해!’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살렸다.

‘그래, 용신단!’

-용신단

-등급 : 레전드

-레벨 : 1

-보물을 삼키는 드래곤, 벨라시오닉의 육신이 지닌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진귀한 아이템. 보물을 삼키면 삼킬수록 스텟 레벨이 올라가며, 새로운 액티브 스킬이 개방된다.

벨라시오닉이 토해 낸 보물 중 역작이라 알려진 최강의 보물!

드래곤의 육신이 지닌 능력을 얻게 해 준다고 알려진 아이템이었다.

서서히 눈이 잠겼다.

인페르노 하트는 지금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이글거렸다.

위험하다.

방금의 화염 폭풍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보다.

벨라시오닉이 남긴 보물은 한곳이 아닌 세계 각지에서 발견된다.

그 영향은 아마도…….

인페르노 하트의 폭발 때문에!

“빌어먹을……!”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입을 벌렸다.

‘뭐 하는 짓이냐고? 뻔하지 않은가!’

손에 들고 있던 용신단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흙도 같이 씹혔다.

씹기를 포기하고 그냥 통째로 꿀꺽 삼켰다.

이 용신단이 저 화염 폭풍 속에서 내 목숨을 구원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보물이기를.

그렇게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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