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
에필로그-3 최종화 -THE END
#1
담담하고 초탈한 제황의 목소리가 웬지 안쓰럽다.
“허어...”
동철은 놀람과 동정을 담아 제황을 바라봤다.
자신은 둘만으로도 벅차다. 이제 다리에 힘이 붙어 한창 말썽꾸러기가 되어 가 하루가 다르게 골치가 아파 오는데 이 집은 말 만한 것들만 스물 일곱...
가만 자세히 보니 제황의 눈가에 짙은 다크서클이 보인다.
수천수만의 몬스터와 홀로 대적하면서도 얼굴 표정하나 변하지 않던 제황이었는데 그도 저 시끌벅적한 자식군단에는 두손 두발 다든 눈치다.
그나마 궁기가 나서서 군기를 잡아주니 다행이랄까.
“짜식 힘들었구나.”
“후우...말도 마라.”
동철과 제황이 한창 동병상련의 감정을 나누고 있을 때
권제는 조금 전 무적권을 쓰던 남자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두어 동작을 본 것뿐이지만 무적권의 창시자로서 그 완벽한 동작에 취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고작 한 살이라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최소한 가르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 그의 눈가에 인재욕이라는 활화산이 활활 타오른다.
“제황아.”
“예. 할아버지.”
“나...나 여기서 살면 안되겠느냐?”
“예?”
권제의 뜬금없는 제안에 제황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니 그 뭐냐. 보아하니 애들이 워낙 많아서 예절을 잡아 줄 어른이 부족한 것 같으니... 흠흠... 내가 애들을 봐주면 너나 네 처자나 좀 쉴 수도 있을 테고...”
“그, 힘드실 겁니다. 여러모로...”
권제의 속마음을 읽은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그가 가진 인재에 대한 욕심이야 그 자신이 4성 헌터였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세계 최강자 탑3의 권제라도 불가능한 일은 존재했다. 물론 봐주면야 자신이야 좋다.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권제는 저 아이들을 제어하기 힘들어 보인다.
“힘들긴...고작해야 아이들 아니냐.”
권제의 대답에 제황은 쓴웃음을 삼켰다.
“고작 아이라...”
고작 아이라는 권제의 말에 제황은 지난 일 년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참 좋았다. 뭔가 이야기로 들었던 출산이나 육아 같은 것은 모두 건너뛰기는 했지만 남산만 했던 궁기의 배가 쏙 들어가고 아장아장 걸어와 달라붙은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단 삼 일만에 끝났다.
태어나자마자 걸어 다니던 스물일곱의 재앙 덩어리들은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날아다니며 온 집안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궁기와 다시 만든 무련천가의 건물들이 재앙덩어리들의 난동에 하루가 지나면 한 채가 풀썩 주저앉았다.
뭐 그것도 나름 괜찮았다. 그래도 그와 궁기가 낳은 사랑의 결실 아닌가. 그러나 그 생각도 한 달이 지나자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의 배움의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어느새 남자 여자 편을 가른 것들이 제황과 궁기에서 훔쳐 배운 무술들로 박터지게 싸워대기 시작하자 그들을 말리느라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잊고 산지 오래다.
그나마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조금씩 예의와 범절을 궁기에게 강제 주입 당하면서부터 얌전해졌다. 그리고 그 얌전해진 수준이 지금 저것이다. 아마 엄마인 궁기나 자신이 하루라도 집을 비우면 저것들은 당장에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이야 궁기와 자신이 제어할 수 있지만 앞으로 이년 삼 년만 지나면?
장담하건대 권제는 두손 두발 다 들고 도망치리라. 아니 도망이나 칠 수 있을까.
“그보다 상의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제황은 권제의 무모한 도전을 막으려 화제를 돌렸다.
“그게 뭐냐?”
권제의 반문에 제황이 슬쩍 고개짓을 했고 잠시 후 둘은 무련천가 뒤쪽에 있는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무련천가 안에 있는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뭔가 내외를 구분짓듯 돌울타리가 쳐진 곳이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선 권제는 순간 섬뜩함이 느껴지는 기감에 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게 뭐냐?”
권제의 물음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룰러입니다.”
“뭐?!”
제황의 대답에 권제가 대경실색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와 직접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제황과 룰러의 싸움에서 발생한 파동만으로도 전세계가 떨렸었다. 강자였기에 그것들 다른 이들보다 좀 더 강하게 느꼈던 권제이기에 룰러의 무서움을 안다. 후에 제황이 백두산에 있던 상고의 절진과 바벨, 그리고 백린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최후의 전투에서 이기기 힘들었을 거라는 말했었다. 그런데 그 룰러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왜 여기에...”
“비록 그 육신은 죽였지만, 놈의 근본은 신... 궁기의 말로는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는 단순히 육신을 죽이는 것으로 그 신위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고 하더군요. 놈이 이 지구의 윤회의 고리에 섞이면 차후 놈이 부활할 수 있다고 했기에 궁기와 제가 놈의 신위를 거둬 이곳에 봉인했습니다.”
“그렇구나.”
“예.제가 속세로 나서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녀석의 신위가 다시금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에 다크어스 게이트를 새로 열었지요?”
“그래.”
권제가 고개를 끄덕일 때 제황은 건물의 입구를 막고 있는 바위 위에 새겨진 봉인술의 글귀들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예전에 이루미양에게도 당부했지만 다크어스게이트가 늘어날수록 룰러가 부활할 위험이 커집니다.”
게이트... 이 세계로 향하는 출구... 현재 전세계의 발전을 주도하는 마나석이라는 신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무한한 청정에너지원으로 이제는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그 물건... 그런데 룰러의 위험을 전파하고 게이트를 다시 틀어막는다? 권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엘어스라는 대안도 있지만 엘어스는 정복보다는 화합으로 그 방향이 정해진 상태다. 무분별한 몬스터의 레이드는 자칫 엘어스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근래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다크어스의 공략이었다. 그런데 그 다크어스의 공략이라는 것이 룰러를 다시금 깨우고 있는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냐?”
그 육신이 없는 신위 뿐이지만, 건물 밖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 마저도 무시무시한 지경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제 안사람과 함께 이놈을 확실히 봉인할 매개체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그게 어떤 것이냐.”
“글쎄요.”
권제의 물음에 제황은 쓴웃음으로 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없다. 다크어스와 엘어스, 지구에는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나마 궁기와 연구 끝에 봉인의 매개체로 쓸만한 한가지는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다. 그렇기에 찾아야 한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말이다.
“이대로 간다면 인류는 부활한 룰러와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저는 그것을 막을 생각입니다.”
제황의 그 말에 권제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내가 네게 부끄럽구나.”
이제 다 끝났다며 은퇴를 선언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의 손자는 지금도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아니 이전보다 더 고독한 전쟁이 되리라.
어쩌면 그때는 이계가 아닌 지구와 싸워야 할 수도 있다. 탐욕스러운 인간은 절대 마나석을 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멸망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달으리라.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말이다.
“가자꾸나. 할 이야기가 더 많아졌어.”
“예.”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