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97화 (297/301)

# 297

쌍신합일...그리고-2

#1

회심의 일격을 가했지만 룰러는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승기를 잡고 여유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사방에서 검고 끈적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났고 그것들은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을 향해 일제히 달라붙었다. 그리고 폭발!

쾅! 쾅! 콰콰쾅!

천지를 진동하는 연속적인 폭발음, 대기의 파동으로 인해 공간의 일그러짐까지 일어나 백두산 전역을 두들겨 댔다. 본래라면 최후에 최후까지 아꼈을 비장의 수지만 룰러 또한 ‘아끼다 똥 된다’ 라는 것을 잘 아는 전략가였다.

밀어붙여야 할 때는 최선을 다해 밀어붙인다.

설혹 그것이 악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쿠르르르...쩌적...쩌저적...

백두산이 깊고 가파른 골짜기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늘 위의 구름은 폭발의 근원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파헤쳐져 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욱한 흙먼지가 날아올랐다. 집체만한 바위들이 쪼개지고 유폭을 얻어맞은 작은 산봉우리 하나가 쪼개진 후다.

“크크...”

룰러는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준비해 둔 묘수가 완벽하게 먹혀들어갔기 때문이다.

과거 몇 번을 사용했던 검증된 그의 공격기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미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흙먼지가 모두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그 가운데 있어야 할 존재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음?”

가루가 되어 버린 것일까?

존재감이 깨끗이 사라졌다. 그 어디에도 제황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폭발을 피해 땅속으로 숨는다?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고작 땅속으로 숨는다고 자신이 느끼지 못할 리 없다. 그리고 그의 공격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폭심지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깊고 깊은 검은 구멍이 자리해 있다.

대지 따위는 그의 공격력을 일 푼도 깎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은 빈틈없이 모든 방위를 공략했다. 그런데 없다? 그때 폭심지 가운데의 공간 사이로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허공중에 생겨난 손가락 하나가 생겨났다. 그리고 위에서 아래를 주우욱 찢고 마치 가죽을 찢듯이 좌우로 쫘악 벌어졌다.

나타난 것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끔한 모습의 제황이다. 특이한 것은 그의 드러난 양팔 위로 수천 개의 깨알 같은 문자들이 회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룰러의 얼굴이 분노로 인해 꿈틀 거린다.

“신기한 수법을 쓰는군.”

“기본이지.”

“알고 있었나?”

“한 번쯤 이런 공격이 날아올 것 같았을 뿐이다.”

“크크...크크크! 공간을 다루는 마법이라...한 방 먹었군.”

마법이 아닌 술법일 뿐이지만 제황은 굳이 그 말을 정정해 주지 않았다.

이번 공격은 제황도 좀 놀랐으니까.

사실 타격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첫 번째 공격은 온전히 기본 방어력으로 버텨내야 했다.

그리고 룰러의 음험하고 살의 넘치는 신력을 억지로 무시하며 술법을 전개했다. 이것은 오랜 세월 다양한 상대와의 전투경험을 지닌 궁기의 본능적인 대처가 빛을 발한 것이다.

그 경험이 큰 위험 하나를 넘기게 해줬다.

“상대로는 부족함이 없군.”

제황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룰러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투기와 전투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는 다크어스에서 수만은 존재들과 수만 년의 세월에 걸쳐 생사를 건 전쟁을 벌였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잠들어 있던 전투에 대한 갈망이 제황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통해 다시금 발현하고 있었다. 그 또한 다크어스에서는 전투의 신이다.

콰아아앙!

룰러는 덩치의 잇점을 이용하여 빠르게 공간을 압축해 들어갔다.

자신의 장점으로 타인의 단점을 만든다. 전투의 기본 중에 기본이다.

단 세 걸음 만에 제황의 앞에 도달한 룰러다. 엄청난 속도로 인해 발생한 폭풍이 1차적으로 제황을 두들겼다. 동시에 공간을 접듯 나타난 룰러의 모든 공격 수단이 제황을 향해 날아들었다. 드래곤의 입이 제황을 잡아먹을 듯 짓쳐들고 강력한 두 앞다리는 그가 서 있는 공간 자체를 찢어버릴 것처럼 날아든다. 등 뒤에 달린 수십 개의 손은 저마다 갖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캐스팅함과 동시에 제황이 있던 공간으로 마구 던져대기 시작했다. 촉수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제황의 몸을 집요하게 노렸다.

콰쾅! 콰콰쾅! 우득! 퍼퍼퍽!

츠츳...츠츠츠츠츳... 파파파파팡!!!

그리고 그런 룰러의 돌격에 제황은 주늑 들지 않고 마주 돌격해 들어갔다.

일견 절대 상대가 될 수 없는 압도적인 질량의 차이가 있었지만 마주해 가는 제황의 눈에는 한점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제황 또한 지구의 전투신이다.

콰콰콰쾅!!! 쾅쾅!!!

두 신의 충돌이 백두산을 연신 두들겼다. 그 정상에 있는 천지는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 요동쳤고 골짜기들은 박살나며 부서져 나갔다. 둘은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룰러가 압도적인 덩치와 다채로운 공격을 한다면 제황은 그것을 스피드로 대응하는 중이다.

그 모습이 마치 인파이터와 아웃파이터의 싸움 같다.

제황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붉은 강기와 화살로 룰러의 공격에 대응했다.

전장 100미터의 거체가 입을 쩌억하고 벌리며 달려드니 제황 따위는 한입에 삼켜버릴 것 같은 동굴이 보인다. 그러나 제황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두 주먹을 모았다.

“무적진천권세”

우르르르!!!

천둥 같은 소리가 울리며 제황의 주먹으로부터 막대한 강기의 주먹이 뻗어 나갔다. 권제의 독문무공인 무적권의 절초다. 궁기의 공격이 날카롭게 파고든다면 권제의 주먹은 해머로 두들긴다. 달려드는 머리를 두들김과 동시에 무적진천권세의 반동으로 몸을 뒤로 빼며 뒤로 숨긴 손아귀에서는 작은 화살 한 대가 맹렬히 회전하고 있다.

퓨슉!!!

은밀히 쏘아져 나간 그 화살이 룰러의 눈에 꽂혔다.

“크악!”

눈에 화살이 꽂힌 룰러가 비명을 내질렀다. 화살은 관통한 것도 모자라 룰러의 머리를 회전을 일으키며 헤집고 다녔다. 빠르지 않은 공격이지만 교묘한 그 일격에 룰러의 전신으로부터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제황을 멀찌감치 밀어냈다.

제황은 그 기운에 순응하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렇게 물러나는 제황의 보보(步保)마다 룰러의 마법들이 날아와 꽂힌다.

물러서는 듯 하면서 공격하고 공격하는 듯하면서 적에게 잘못된 정보를 끊임없이 주입한다.

가히 전투의 신들 다운 싸움이다.

“잔머리는 그만 쓰지?”

“너만 할까. 크큭”

언제 눈을 다쳤냐는 듯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룰러가 제황의 말에 비아냥거렸다.

그 대답에 제황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진짜 잔머리라면 지금 룰러가 부리고 있다.

“시간을 끌수록 내가 불리하다는 건 아니까 굳이 숨길 필요 없다.”

“!!”

제황의 말에 룰러가 침묵했다.

그의 두 눈에서 섬뜩한 빛이 흐른다.

“아는 것 치고는 여유가 있군.”

“뭐 예상 범위 안이었으니까.”

제황은 어깨를 으쓱했다. 새삼스럽게 그걸 말하느냐는 투지만 그 실상을 보면 꽤 심각했다.

제황은 어째서 지금 룰러가 시간을 끌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다크어스로부터 몬스터들이 넘어올수록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과 그들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룰러에게 공포를 느낄수록 룰러 또한 지구로부터 공포와 절망이라는 이름의 신성을 공급 받고있는 것이다.

마치 그가 다크어스에서 룰러에게 존재감을 드러내 룰러와 연결된 다른 존재들에게 신성을 얻은 것처럼 룰러 또한 각 다크어스 게이트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통해 신성을 가져가고 있는 것이다.

“예상 범위 안이라... 네놈은 정말 마음에 안 드는구나.”

룰러의 몸에서 뿜어진 검은 기운이 구체화되어 그를 감쌌다.

너울거리며 뿜어지는 그 기운이 룰러의 본체를 한층 거대하게 만든다.

더 이상 숨길것이 없다는 듯 룰러는 흡수한 힘을 거침없이 뿜어내기 시작햇다.

찌직...찌지지직...

룰러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머리가 위아래로 쩌억 갈라지고 상체가 변하며 상체로 엉겨붙어 들어갔다.

그것들이 모두 크고 작은 드래곤의 머리로 변한다.

쿠쿵! 쿠쿠쿵!!!

길게 뽑혀 나온 촉수들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땅을 디딘 튼튼한 네 개의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경시할 수 없기에 제황도 서둘러 대응에 준비했다.

콰아아아아!!!

그들이 서 있던 공간 전체가 암흑으로 뒤덮였다.

빛도 소리도 집어삼키는 그 암흑 속에서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제황이 튀어나왔다. 등으로 붉은 날개가 달린 제황이 하늘로 치솟을 때 그를 뒤따라 수십 개의 검은 구체가 따라 올라온다. 마치 유도미사일이라도 되는 듯 날아온 그것들을 피해 날던 제황이 공중에 멈춰 생성해낸 화살로 요격을 했다.

그러나 룰러가 뿜어낸 검은 구체의 숫자도 압도적이다.

연이어 날아 올라오는 숫자는 이미 수백

화살로는 더 이상 감당이 안 될 양에 제황의 미간이 꿈틀한다.

제황의 두 손이 모아지고 마치 시위를 당기듯 한 손이 뒤로 쭉 물러난다. 그 사이로 붉은 강기로 이루어진 활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글거리는 붉은 화살 한 대가 나타난다.

파아앙!!!

마주 쏘아진 화살은 검은 구체들을 거슬러 암흑의 공간으로 날아갔다.

화살은 암흑을 집어삼키며 나아갔고 잠시 후 룰러의 본체를 두들겼다. 그리고...

콰콰콰쾅쾅쾅!!!

땅이 흔들리고 대기가 미친 듯이 요동친다.

암흑이 퍼져 나가며 그에 노출된 모든 것들이 녹아 사라져 버렸다. 하늘로 솟구친 공기의 파장이 모든 것을 찢으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는데 그 사이로 불안정한 모습으로 제황이 떨어져 내렸다.

쿠웅...

땅에 내려선 제황의 무릎이 굽혀졌다.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는데 암흑이 사라진 자리에는 룰러가 꼿꼿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공격을 주고 받았지만, 실상 데미지를 입은 쪽은 제황이었다.

“어때. 이것도 예상 범위 안인가?”

“...”

룰러가 비꼬듯이 물어왔다.

그 말에 제황은 아무 대답 없이 그를 노려볼 뿐이다.

“좀 더 대화를 주고받고 싶지만 상태가 안좋아 보이니...”

룰러가 몸을 웅크렸다.

그것은 돌진을 위한 예비동작...

퍼엉!

“재빨리 끝내주지!”

#2

스으으으...

차가운 바람이 몰아닥쳐 뭉게뭉게 피어나는 흙먼지들을 안고 사라졌다.

시야를 가리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지자 드러난 것은 하나의 거대한 검은 짐승과 그 앞에 비틀거리며 서 있는 하나의 인영 뿐이다.

“지겨운 놈”

“마찬가지야.”

둘 모두 몸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

룰러의 몸 곳곳은 흉하게 파여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검은기체가 연신 뿜어지고 있었다. 촉수들과 마법을 사용하는 손들은 이미 안으로 갈무리한지 오래다. 제황과의 전투에서 촉수와 마법이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사용하지 않았다.

제황 또한 머리카락 곳곳이 뭔가에 탄 듯 그슬려 있었다. 입가에는 가는 핏줄기가 흐르고 왼팔은 피투성이가 되어 축 늘어뜨린 채다.

우득...우드득...

제황이 재생에 가까운 힘으로 왼팔을 고치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는 동안 룰러 또한 몸에 난 구멍들을 수복하고 있다.

둘 다 전투에 있어서는 신급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치고 들어갈 때를 알고 빠져서 힘을 보충하는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일 줄 안다. 게다가 둘은 신의 위치에 있었기에 단순한 외부의 상처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른 시간은 고작 십분 남짓이지만 둘은 그 사이에서 수백수천의 충돌을 벌였다.

그리고 결론은 둘이 막상막하라는 것이다.

“내 실패군.”

계획은 모두 틀어졌다.

사실 알고 있었다. 제황이 나타났을 때부터 계획은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가진 역량을 계산했을 때 승리하더라도 지구에 뿌리내린다는 계획은 성공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승리조차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냈다. 지금 시간은 자신의 편이 아니다.

“얌전히 간다고 해도 보내주지 않겠지?”

“당연하다.”

사라진 제황이 다크어스게이트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애초에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넌 다크어스로 돌려보내기에 너무 위험하니까.”

“역시 그렇지.”

룰러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라고 해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돌아간다면 곧장 차원장치를 박살내 버릴 테니까 말이다. 제황 또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도 돌아갈 생각이 없다. 아니 돌아가더라도 그냥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런데 말이야.”

“?”

“나도 이대로는 못가거든.”

룰러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존재감까지 옅어져 간다. 마치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제황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

쿠웅...

룰러의 몸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빙산이 녹아 깨져나가듯 모두 깨져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가 서 있던 자리의 공중에는 음울한 검은 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보석 하나가 남았다.

그것은 천천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우우우...

“너만은 죽여주마.”

보석으로부터 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신력이 맹렬히 뿜어지기 시작했다.

“큿”

그 신력에 저항하기 위해 제황은 몸을 낮췄다.

이전의 그것과는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막대한 힘이다.

대체 왜 이런 힘을 지니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였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스으으으...

보석은 서서히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 크지 않은 존재다. 잘해야 인간의 소년 정도의 크기일까?

“난 모든 근원의 시작이며 끝이자 죽음조차 지배하는 절대자!”

핑....

“훅...”

제황이 두 손을 교차하기도 전에 그의 앞에 나타난 존재의 손이 제황의 배를 꿰뚫었다.

“커억...”

“내가 이 모습을 꺼내게 한 것을 후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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