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최후의 전투-1
#1
쿠우우웅!!! 쩌저저적...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거대한 산이 들썩거린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저 산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저것을 이루고 있는 구성물질이 어떤 것인지 아는 그들이었다. 그 구성물질의 대단함을 어른들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질로 만든 쓰레기벽’
‘수천조원을 갈아 만든 희대의 돈지랄’
‘타이탄 더스트’
저것은 무려 8티어와 9티어 몬스터 사체를 원재료로 하는 것이다.
아니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10티어몬스터도 갈아 넣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저것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쓰레기일 것이다. 미국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원재료가 워낙 비싸 연구소의 케케묵은 자료보관실에 묻혀 있던 것을 꺼내왔다고 한다.
10티어몬스터의 사체는 손바닥 두 개 크기도 수백억에 달한다.
그런 엄청난 가치의 몬스터 사체를 통째로 갈아 넣은 것이다.
무적성은 미쳤다. 이미 9티어 몬스터 사체 수백 구를 갈아 넣은 저 특수방벽의 구성물질은 전세계에 전해진 후다.
희대의 돈지랄이라며 뒷말이 무성했지만 지금 그 말을 한 이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타이탄더스트로 만들어진 그 벽이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저 벽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공포는 빠르게 전염되어 갔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최정예헌터들이었다. 루키 따위는 없다. 모두 10년 이상 구른 백전노장 들...그들 중에서도 최하 기준이 5성! 그런 이들이 무려 팔천! 그런 대병력이 약 500m의 거리를 둔 채 방사형으로 포위하고 있다.
개중에는 헌터생활을 접고 은퇴하거나 은거했었던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화가 늦은 초인들답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이들이다. 풍부한 실전경험을 지닌 이들이기에 그들이 나서서 다른 헌터들을 다독여야 하건만 그들 조차도 지금은 패닉에 빠져 공평하게 공포를 나누며 키우는 중이다.
“쿠우우웅!!!”
다시 한번 커다란 충돌음이 대지를 진동하자 헌터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이놈들! 네놈들이 진정 헌터가 맞느냐! 우리가 최전선이다! 절대! 물러서지 마!”
우락부락한 덩치에 반들반들한 대머리, 험상궂은 얼굴에는 자상이 한가득한 한 노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백상아리라는 이명을 지닌 부산 토박이 헌터로 7성 초입의 능력을 지녔다. 세상살이에 환멸을 느껴 일찌감치 은퇴했지만, 꾸준히 성장했다면 권제와도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거라 평가를 받던 인물이었다.
몸이 온전하지 못한 이들도 끼어 있었다.
한때 명성을 날렸지만, 불의의 사고로 신체 중 일부를 잃고 은퇴했던 이들도 모두 참가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한 이름값 했던 헌터들 모두 모여 있다.
“쿠우웅!!!”
“으아악!”
간이 약한 몇몇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물러서지 마라!”
“대열을 유지해!”
각 클랜의 클랜마스터들과 간부들이 독전관처럼 외치고 다녔다.
그러나 물러서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한다. 저 엄청난 벽을 쌓았음에도 진동을 계속 이어진다. 벽이 무너지고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부터 아비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젊은 헌터들 중에는 클랜이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고위 헌터들도 상당 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정도 규모의 게이트 방어전은 처음 치루는 그들이다.
게다가 최근 발생했던 다크어스 게이트의 대참사가 그들의 뇌리에 박혀 있었다.
9티어 몬스터도 공포인데 10티어 11티어라는 말도 안 되는 몬스터들이 출몰했다.
동원령이 발동되었기에 무단이탈 시 전재산 몰수와 함께 헌터라이센스 박탈은 물론 곧장 빌런으로 등록이 되어 헌터사무국의 추적에 쫓기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진즉에 이곳에서 발을 뺐을 것이다.
“씨발, 개죽음 당하는 거 아니야.”
“야, 도망치자.”
젊은 헌터들 사이에 전투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헌터신조! 하나 헌터는 인간의 발전과 존속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 늙은 사내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단 한 명의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 서린 처절함이 물러서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한 명의 목소리가 두 명이 되고 곧 세 명 네 명이 그 외침을 따라한다.
목청을 높이는 것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대융합 시대 그 약육강식 무법의 시간을 거친 그들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젊은 헌터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항시 그들을 애송이 취급하며 쓸데없는 잔소리만 늘어놓던 노인들이지만 지금 그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와 처절함은 그 어떤 젊은이 못지 않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헌터신조를 목이 찢어져라 외쳤다.
“하나! 헌터는 민간인의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지킨다!”
“하나! 헌터는 최전선의 방벽이며 최후의 수단이다!
”하나! 목숨을 바쳐 인류를 구하고 명예를 지키자!
“하나! 단 하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천명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렸던 이들을 기억하라!”
대융합 시대 때 헌터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돌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레이드에 뛰어들며 주문과 같이 읊조리던 그것은 후일 헌터신조가 되어 모든 헌터들이 필히 외워야 하는 말이 되었다.
헌터 아카데미에서 첫 시간에 배우며 달달 외우게 되는 이 헌터신조를 현대의 헌터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거의 유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한 노병의 입에서 그 헌터신조가 토해지는 순간 물러서던 이들은 다시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빌어먹을...”
자신의 자리에 다시금 선 한 젊은 헌터 하나가 작게 욕을 중얼거리며 허리춤의 냉병기를 매만졌다. 몇 년 전까지 흙수저였던 그였다. 운좋게 자연각성을 이루어 디바우저로 칭송받으며 승승장구했다.
훈련을 고되고 몬스터는 두려웠지만,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그는 단시간 내에 5성 헌터가 되었다. 집안의 기둥이 되었고 친구들의 자랑이 되었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스포츠카도 수집할 수 있게 되었고 연예인 뺨치는 여자친구도 사귀었다. 그리고 이제 인생 좀 피려고 하는데 이딴 일이 터진 것이다.
마음은 당장 물러서라고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두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존심일까? 아니다. 그것은 오기였다.
“니기미 절대 안 죽어.”
억울해서라도 못죽는다.
-방벽이 돌파당했을 경우 1차 저지선은 군이 책임집니다. 모든 헌터들께서는 이점을 유의하시고 각 클랜 지휘자들의 지시에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에서 다크어스 게이트를 막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헤드셋으로 무감각할 정도로 침착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마지막으로 궁신께서는 지금 다크어스에 직접 침투하여 게이트를 막아내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모두 하나 되어 지구를 방어합시다.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 말에 모두의 가슴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저것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그때부터 지구는 지옥이 도래한다.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인류가 생존을 위해 급급했던 그때의 무법시대가 재래하는 것이다.
“쿠쿠쿠쿠쿵!!”
다시금 게이트를 가로막은 벽이 둔중하게 울렸다.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공포를 가져다줬던 그것이지만 헌터들은 오히려 전의를 다졌다.
#2
“음...”
룰러의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의 연속이다.
고대인들의 던전으로부터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짐과 동시에 그곳으로 향하던 그들의 존재감이 한순간에 지워진 것이다.
“아직 살아있었나.”
생각지 못한 일격이었다.
과거 고대인의 던전을 기억하는 룰러였다.
그의 권속들의 침투를 꾸준히 방어해 냈지만 어느순간 활동을 멈춘 그것이 다시금 살아난 것이다. 아니 과거 보였던 것을 뛰어넘는 엄청난 공격을 보여줬다.
이전에야 그에게야 좀 성가신 존재들일 뿐이었지만 그들의 강함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의 그에게 비해서도 전혀 꿇리지 않는 그것들을 단숨에 처치했다.
“내가 떠난 후 네가 좀 힘들겠군.”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한계가 명확하니까요.”
불멸의 군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고대인의 던전이 가지고 있는 역량은 딱 그 주변까지였다. 어차피 다가서지 않기만 하면 그만이다.
“본래 계획대로 해야겠군.”
룰러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크어스 전역에 뻗어있는 그의 신위가 깨어났다.
그는 그의 신위에 복종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명했다.
“지구를 공격하라.”
#3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 같은 바람만이 가득한 설산 위 가장 높은 곳 바위 위에는 붉은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한 명의 여인이 단아하게 정좌하고 있었다. 살을 에다 못해 베어버릴 것 같은 추위 속에서도 옅은 한 장의 옷만으로 몸을 가린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기운이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가고 있다.
대체 얼마나 오래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기운에 눈발을 침습하지 못했지만 그녀를 중심으로 둘러진 둥근 원 주위로는 얼음이 한가득 끼어 있었다.
고고하게 감겨 있던 그 눈이 어느 순간 번쩍 뜨였다.
투투툭...투툭...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의 몸을 뒤덮고 있던 얼음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한곳만을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느껴진 것이다.
“놈이구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그녀는 룰러가 지구로 이동하는 것을 제황이 놓쳤을 경우에 대비한 제황의 마지막 대비책이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전 룰러와의 만남에서 룰러의 마나를 추적한 바 있는 궁기뿐이었다.
처음 궁기는 제황의 이 뜻을 거부했었다.
아무리 제황이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를 홀로 보내는 것은 너무 위험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도 떨어져 본 적 없는 반쪽이었다. 그렇기만 제황의 간곡한 부탁에 그녀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제황이 믿을 만한 진정한 존재는 그녀 뿐이었으니까.
“어째서지.”
그렇지만 제황의 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전 세계 그 어느 곳에 있더라도 그를 느낄 수 있는 그녀다.
아직 그가 다크어스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지금부터 그녀가 할 일은 단 하나...
“놈을 막는다.”
슈슉...
그녀의 몸이 사라졌다.
백린의 술법으로 이미 전 세계 어디든 단한번 이동할 수 있는 이동술법진을 설치해 놓은 곳이다.
잠시 후 그녀가 나타난 곳은 백두산의 천지연 위였다.
“이런 곳에 있었구나.”
공교롭다고 할까.
룰러가 선택한 곳은 대한민국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절묘하다.
그곳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9티어몬스터가 레이드 되어 아직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은 깊고 깊은 오지에 위치한 다크어스 게이트였다. 물론 이곳 또한 헌터 전력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숫자는 다른 곳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콰콰쾅!!!”
타이탄더스트로 만들어진 벽이 터져나간다.
게이트를 둘러싼 수천의 헌터들의 표정에는 긴장보다는 공포가 더하고 있었다.
공중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궁기가 무한고에서 무전기를 꺼냈다. 룰러의 출현 위치를 파악하는 데로 연락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늙은이!”
-궁기님.
저편으로부터 걸죽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전을 받은 상대는 권제였다.
그는 지금 남쪽 경기도 부근 게이트에 대기하고 있다.
“위치 찍어졌지?”
-아! 예! 허! 이것은...
권제도 발신위치를 확인하고는 놀란 것 같다.
“튀어와!”
-알겠습니다! 그동안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연하다!”
무전을 끝마친 궁기는 게이트를 뚫고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노려본다.
그들 사이로 존재감을 숨긴 룰러가 느껴진다.
-날뛰어주지.
드드드드득!!!
그녀의 몸이 쑤욱 하고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호랑이의 그것과 닮은 그렇지만 수백 배 거대한 거체가 공중에 나타났다. 본체로 현신한 그녀가 아래를 향해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끝장내주마!”
그녀의 외침이 산천이 뒤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