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
엘과 알의 대행자-1
#1
새로운 다크어스 게이트가 속속들이 생겨나자 사람들은 얼마 전에 벌어진 그런 사태가 다시금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하고 불안에 떨었다. 때가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몬스터로의 공포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된 그들에게 다시금 튀어나오기 시작하는 게이트는 연일 안심하라고 떠드는 언론에 대해 불신하는 세태가 생겨났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각 국가는 다크어스 몬스터에 대한 방어를 시작했다.
제황이 바라던 상황의 시작이다. 제발 다크어스를 틀어막을 때까지 알아서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왜 이렇게 번거로운 짓을 하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크어스의 관한 영상을 풀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다크홀의 주인이라는 것들은 철저히 사회의 이면에 숨어 조종하는 이들이었다.
고작 한다는 짓이 언론을 통해 세계인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
그 어떤 진실이라도 하루아침에 외계인음모론 같은 황색기사화 시켜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제황이 직접 나서서 그것을 발표하는 방법도 있었다. 지금 세계에서 제황의 말을 무시할 이는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다크홀의 주인들도 제황에게 승복을 한 것이다. 물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말이다.
그렇지만 제황은 그보다 좀 더 빠르고 거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배알이 꼴린다. 생각해보라. 당신이 세계의 운명이 걸린 일을 하려고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는데 다른 놈들이 뒤에서 제 밥그릇 깨지는 것을 못견디고 딴짓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제황은 백린이 과거에 썼던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백신의 투입. 다소간의 희생을 감안한 방법이다.
다크어스 게이트는 철저히 다크홀의 주인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사는 곳 혹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업기반이 있는 곳에서만 발생했다. 그리 크지 않은 게이트들이 속속들이 생겨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웃기게도 평범한 시민들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그들이 사는 곳이나 중요한 사업기반이 있는 곳은 대부분 철저한 보안 속에 선택받은 이들만이 거주하거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꽤 잘 방어해 냈다는 것이다.
역시나 숨겨둔 힘이 있는 것인지 무려 8성헌터들로만 구성된 무시무시한 화력의 레이드팀들이 떼거지로 나타나 몬스터들을 방어해냈다. 제황이 나타나기 전에는 엠페러나 엠페러스만이 최강자였다. 그런데 그런 이들로만 구성된 공격대까지 보유하고 있을 줄이야. 그런 힘이 있었으면 진즉에 좀 쓰면 좋았을 것을 저들이 위기에 빠져서야 꺼내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전 제황이 드래곤을 상대하면 이용했던 레이저위성병기 또한 자기 것처럼 사용하는가 하면 듣도 보도 못한 자폭용 드론들도 대거 나타나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백미는 아이언솔저라고 불리는 사이보그 병사들이었다.
수백기의 로봇들이 개떼처럼 나타나 몬스터에 달라붙는데 그 하나하나의 공격력 또한 대단할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자폭장치가 내장되어 있어 폭발 시 몬스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줬다. 마나 방어막이 체외에서만 작용할 뿐이지 체네로 들어가면 작용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용한 교묘한 한수였다. 몬스터의 몸에 난 갖가지 구멍으로 기어들어간 그것들이 내부에서 폭발하자 몬스터들도 속수무책으로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순간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었다. 항거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절대적인 강함 앞에서는 오버테크놀로지도 소용이 없었다.
콰콰쾅! 콰쾅! 우지지직!
“피해! 물러나라!”
“도망쳐!”
빌딩만한 몬스터들이 나타난 순간부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온전히 관전자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궁신이 보여준 영상 속에서 갈대처럼 쓰러지던 그것들은 수십 발의 미사일도 버티며 사방천지를 지옥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크홀의 주인들이 가진 기반 중에서 아주 일부분일 뿐이지만 상황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들이라고 남들의 뒤에서만 노는 건 아니다. 외부로 드러난 사업체들도 아주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몬스터와 관련된 산업체들이다.
몬스터의 마나석이나 부산물을 연구하는 최첨단 연구소에서부터 그와 관련된 가공공장 혹은 거래소 등 고부가가치가 있는 물질등을 다루는 모든 곳에 다크어스 게이트가 생성되었고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은 그들의 자산들을 하루아침에 내려앉혀 버렸다.
다행이라고 할 것은 이 다크어스 게이트들이 뭔가 잘못 생성되었는지 약 일주일 가량만 지속된 후 자체적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도쿄에 나타나 오오가무시를 토해냈던 그런 게이트들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이 꽤 교묘한 현실에 누군가의 지독한 테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세상에 게이트를 생성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단 네 명뿐이었다. 권제와 이루미, 제황 그리고 그 테러리스트 당사자인 백린이다. 비밀은 적게 알아야 비밀인 법이고 제황은 그것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휴우”
백린은 이마에 송글송글 솟은 땀을 닦으며 보람참 표정을 지었다. 제황으로부터 받은 9티어 마나석은 총 20개... 그것을 이용해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아다니며 다크어스 게이트를 만들어낸 그였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20개째의 게이트의 씨앗을 완성한 그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대기하고 있던 밀령들이 그가 만든 그것을 컨테이너에 실고 세심히 밀봉했다.
마나석과 진법, 술법 등이 융합된 그것은 지름 3미터 가량의 반구형의 판이었는데 이것을 설치하고 마나석을 꽂아 시동시키면 게이트가 생성된다.
이 마지막 선물이 갈 곳은 로스차일드 가문이라고 하는데 마지막이니만큼 꽤 심혈을 기울였기에 얼마나 멋진 게이트가 생성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일을 마친 그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윽..."
가슴이 따끔거린다. 그의 가슴에 박힌 마나석에서 느껴지는 아픔이다.
물론 그 성능에 대해 의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이 마나석을 박아넣은 이의 무식함에 치를 떨 뿐이다. 조금만 더 세심하게 대해줬으면 이런 고통은 없었을 테지만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일단 살려준 건 살려준 거니까.
그는 새롭게 만든 오른손으로 가슴 부위를 쓸었다.
전에 다크어스의 몬스터에게 뜯겼던 부위지만 그는 술법을 이용해 손을 대체할 것을 달았다. ‘흑염룡’ 이라고 이름 짓기는 했지만 정식 명칭은 천주혈안수 라는 것이다. 본체를 잃어버린 두억시니의 신위를 재료로 만들어 낸 그의 비장의 무기이고 사용하기에 따라 9티어 몬스터도 한방에 죽일 비장의 무기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군.”
그는 곁에 놓아두었던 카페인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마시며 입맛을 다셨다.
과거에는 자신 홀로 이 짓을 했었다. 그의주위에는 누구도 믿을 수 있는 이가 없었으니까.
천주세가가 벌인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있게 한 선조가 저지른 짓의 속죄이기도 했지만 대한민국에 있는 그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는 홀로 다크어스와 지구의 융합을 막기 위해 고분 분투했었다.
뭐 그러다가 선조가 가장 두려워하던 삼신가의 징벌자 무련천가의 가주인 제황을 만나 속절없이 죽을 뻔했지만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이제는 함께할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아니 단순히 조력자가 아닌 그보다 훨씬 강력하고 또 두려운 인물이다.
그는 과거 무력의 부족함으로 엘어스를 돌아다니며 수십 년간 자신의 힘이 될 오크들을 길러냈다. 오크들이 무식하고 야만적이기는 하지만 그 방향성을 제시할 지도자만 현명하다면 그들만큼 써먹기 좋은 이들이 없었다. 뭐 그 헬칸과 오크 군단들도 제황 단 일인에게 지리 멸절해 버렸지만 후회는 없다. 그의 강력한 조력자인 제황은 이제 ‘신’ 이니까. 게다가 그의 곁에 있는 궁기 또한 제황과 거의 비슷한 강력함을 자랑했다.
과거 엘어스에서 무한고의 담배들을 모조리 상납하며 굽실거리며 비위를 맞춰야 했던 두 드래곤들조차 그들에게 패해 부하가 되었다.
“조금 허전하기는 하군.”
수십년간 함께하던 선조는 사라졌다.
던전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소멸되었다.
수천년에 걸쳐 사고라는 사고는 다친 것도 모자라 이 재앙을 일으킨 원흉이기는 하지만 몇 십 년간 함께 다녔기에 정들기도 한 선조였다. 그를 위해 잠시 묵념을 한 백린은 이내 두 손을 자연스럽게 바지춤에 쑤셔 넣고 걷기 시작했다.
이제 드디어 이 지겨운 과업을 끝낼 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올때까지 밀린 만화나 봐야지."
#2
삐이이이.... 디리딩딩딩...둥둥둥...
“엘의 축복이 강림했도다. 그 가호 속에 고대의 용사가~”
“꺄아아아... 엘의 용사가 강림했도다.”
기이한 박자에 맞춰 울리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사방에서 오색의 꽃잎들이 떨어지고 환호가 울린다. 제황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 사이를 걸었다.
전에 만났던 수인족 소녀가 말끝마다 ‘크릭~ 우네~ 쿠나’ 그러더니 이렇게 다채로운 표현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수인족의 수도가 제황의 방문을 다함께 반기고 있다.
그를 향해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제황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엘 조차도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계획은 엘과 알을 소환한 후 곧장 지구로 데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엘은 홀로 나타났다. 이유는 알이 아직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궁기에게 당한 상처가 너무 심해 거의 소멸 직전까지 갔던 알이었다. 엘은 제황과 궁기에게 알의 회복을 도와줄 것을 요청했고 제황은 그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엘의 레어로 그녀의 텔레포트를 이용해 이동했는데 하필이면 당시 엘어스에 있는 다크어스의 게이트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과 엘이 그것들의 처리를 부탁했다는 것이다.
본래라면 엘이 처리했어야 할 일이지만 엘은 알을 돌보느라 다크어스의 몬스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별로 어려울 것은 아니기에 그것들을 모두 몰살시켜 버렸다.
그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가 싶더니 신전으로부터 성기사니 신녀니 하는 것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본래라면 무시하려 했는데 엘이 나서서 지구의 신께서 행한 일이라고 계시 비슷한 사기를 치며 말하자 몬스터를 잡느라 소모되었던 신위가 쭉쭉 차올랐다.
손해볼 것은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였다.
물론 딱 거기까지였다.
더 어차피 볼일은 다크어스에 있었고 엘어스는 드래곤들과의 볼일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동네였으니까. 문제는 알의 상태를 보고나서부터다.
“대체 어떻게 하면 알을 이렇게 만들지.”
엘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흥. 적에게 아량 따위는 베풀어주기를 바랐던 건가? 맛있더라. 이 녀석... 특히 저 부위..”
공격의 당사자인 궁기가 잠에 빠져 있는 수인족 하나의 가슴 부위를 입맛 다시며 엘의 으르렁거림에 답했다. 궁기의 입장에서는 적을 상대한 것뿐, 그리고 그녀가 지닌 신화는 동종의 신격을 지닌 존재들에게 치명적인 것들이 많았다. 서방을 지키는 자로서 다른 신들과의 전투를 통해 신화를 쌓아올린 그녀는 신을 먹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으로 알을 공격했다.
궁기가 알의 드래곤하트를 씹고 뜯고 맛보는 바람에 알의 드래곤하트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엘이 어떻게든 회복시키려 했지만 그녀 혼자로는 부족하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알이 수면을 통해 몸의 자연회복력으로 드래곤하트를 회복하는 것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제황은 알을 던전으로 끌고 갈 수 없다.
“이래가지고는 알은 너를 도울 수 없어.”
궁기와 더 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듯 엘은 제황에게 말했다.
“흠.”
어느 정도 알이라는 이 레드드래곤의 상처에 책임이 있는 건 둘째 치고 도움이 필요한 건 이쪽이니 도와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 방법은 모른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지?”
제황이 묻자 엘은 슬쩍 궁기의 눈치를 보는 듯 하며 입을 뗐다.
“일단 네가 이곳에서 이 땅에서 신성을 얻어야해.”
“그리고?”
“음, 단순한 신성만으로는 안돼.”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궁기는 당장에라도 찢어버릴 살기를 발하며 으르렁거렸다.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뒈지고 싶다고 하지.”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닌 엘의 말이다.
그녀의 말에 제황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라쿤의 여왕이랑 결혼을 하라는 말은 못들은 것으로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