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81화 (281/301)

# 281

신과함께-2

#1

아무도 감지할 수 없는 신의 의지, 그의 영역 지금 제황의 감각은 이곳과 더불어 남극대륙 일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아카식레코드에서 얻은 힘이다. 그 빛의 구는 단순한 우주의 기억이 아닌 아카식레코드의 기본 아키텍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치 하위 단계를 모두 학습한 정식이용자에게 좀 더 높은 등급의 사용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은 하는 것이랄까?

비록 정식 인가를 받아 사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얻은 것은 많았다.

하나 재미있는 것은 이것 또한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다.

[차원과 공간의 이해 ??급]

등급조차도 없는 그런 문구가 상태창에 생겼다. 스킬이든 신화든 분류조차 없는 무성의한 문장 하나지만 그 안에 축적된 의미는 결코작지 않다. 명황안이라는 스킬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더 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쿠쿠쿵...

“음”

오직 살의만이 가득한 의지의 외침이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그를 현실로 끄집어냈다.

눈을 뜬 제황의 눈이 가늘어졌다. 깨달음을 반추하는 시간을 방해받아 기분이 상한 것이다. 물론 이미 얻을 것은 얻었기에 손해 볼 일은 아니었지만, 사유의 시간을 방해받은 냉혹한 신은 가혹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시끄럽군. 사라져라.”

파팟...파파파파파팍!!!!

그의 몸으로부터 폭발한 붉은 선이 천지사방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비명도 울부짖음도 소음도 없었다. 모든 것이 멈췄다. 공포에 질려있던 헌터들도 맹렬한 살의를 분출하며 다가오던 몬스터들의 파도도 그 붉은 빛에 휩싸이는 순간 멈췄다.

“하아아...”

밀려오는 충만감...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강렬한 파동이 온몸을 구석구석 가득 차 온다. 인간의 한계 따위는 완전히 벗어버렸다.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 전부를 아우를 것 같은 기분... 의지가 꿈틀거린다. 세상 모든 것을 덮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껍데기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제황은 더 이상 의지가 확장되는 것을 막았다.

이것은 함정이기도 하다. 인간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던진다는 것, 완전한 신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칠정오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신이라는 존재다.

제황은 아직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러니 여기까지다.

쿠쿵...쿠쿠쿠쿵... 쿠쿠쿵...쿵쿵...

눈을 가리고 있던 거대한 그림자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황이 서 있는 곳을 시작으로 초거대몬스터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입을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성서에 나오던 신의 이적을 바라보는 이들이 이랬을까?

모세에 의해 갈라지는 홍해의 역사를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제황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자인 이루미와 그녀의 스승인 신덕 조차도 이 장엄한 순간은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다.

너무나도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그 권능 앞에 숨 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제황 뿐이다.

“대충 끝났군.”

제황은 펼쳤던 의지를 완전히 갈무리했다.

의지 안에 있던 모든 악의적 생명체의 명을 거뒀다.

문득 배가 고파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올망졸망한 세 쌍의 눈이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수천수만의 살육을 펼친 냉혹한 학살의 신이건만 아이들은 여전히 귀엽다.

그 아이들을 보는 순간 제황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육아원에서 선생노릇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기색을 살피는 것에 익숙하다.

“얘들아 괜찮니?”

제황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떡진 머리를 헝클이며 물었다.

멍하니 입을 벌린 세 아이는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궁신이 눈앞에 있다.

세계 최강의 헌터, 아니 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 무력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했으며 그의 손짓 한 번에 재앙이라고 불릴 몬스터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간다.

“많이 놀랐을 테니 잘 달래주세요.”

“알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이루미가 고개를 숙였다.

“여기는 이야기를 나누기 적당한 곳이 아니군요. 안으로 가죠.”

“네.”

살을 애는 듯한 추위는 둘째치고 산처럼 쌓인 살덩어리들로부터 풍겨오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낡은 픽업트럭 한 대가 거침없이 달려와 긴 타이어 자국을 새기며 멈춰섰다.

그러고는 두 여인이 서둘러 내리더니 제황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던 아이들을 보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신과 함께 걷는다는 현실에 넋이 빠져 있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만, 또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나타나자 딸꾹질을 시작했다. 이제 곧 엄청난 폭풍잔소리와 함께 엉덩이에 불벼락이 떨어질 것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다가온 두 여인은 아이들을 무작정 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녀들이라고 두렵지 않았겠는가.

아이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지로 차를 몰고 온 그녀들이다.

엄마가 울자 아이들도 함께 따라 운다.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했는가를 자각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가 울기 때문에 따라 우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울었을까.

드디어 진정된 여인들 중 하나가 아이의 엉덩이를 대차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못된 녀석! 나쁜 녀석!”

퍽! 퍽!

“너희 때문에 너희 때문에!”

그녀들의 눈에서 눈물이 휘날릴 때마다 손은 더욱 매섭게 휘둘러진다.

퍽퍽퍽!

“아앙! 잘못했어요!”

“으아앙!”

누군가가 말릴 법도 하지만 제황이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나서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 그녀들은 아이들을 한참을 두들겨 놓고는 그제야 주위를 살필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는 그녀들이다.

게다가...

“꺄아악!”

비행장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시커먼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거대하여 처음에는 그것이 몬스터라는 생각도 못한 그녀들이다. 이 층짜리 건물과 높이를 같이하는 몬스터의 머리와 쩍 벌려진 입안의 터널을 본 그녀들은 다리가 풀렸는지 끝내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덜덜 떨었다.

그때였다.

아이들 중 가장 큰 아이가 제황의 옷깃을 붙잡고 말했다.

“저, 신님 우리 아빠... 아빠 좀 살려주세요!”

#2

비행장에서 그나마 가장 아늑한 곳은 제황의 숙소였다. 본래 비행장 주인의 자택을 제황이 빌려쓰는 것이다.

조근조근한 아이의 말을 모두 들은 제황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의 아빠들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은 제황의 책임도 있었다.

아무리 차원 간의 벽이 옅어졌다고 해도 지구쪽으로 몬스터를 쏟아부은 것은 룰러였을 테니까. 물론 저 한심한 다크홀의 주인이라는 것들의 책임도 분명했다. 만약 제황의 말을 들었다면 다크어스 게이트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충분한 역량이 있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재다가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이루미.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군요.”

이루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제황에게 일부러 감춘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황의 말에 이루미가 변명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녀를 바라보며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의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제황이 저들의 구세주이기는 하지만 제황은 그보다 더 큰 일을 준비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저들은 아직도 제황에게만 매달리려고 하고 있다.

저들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세계를 움직이는 숨은 위정자들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 자신들이 가진 힘을 쓸 생각은 하지 않고 제황의 손만 빌리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불쌍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그 사정들을 다 봐주면서 이전처럼 온세계를 돌아다니다가는 정작 룰러에 대한 대비는 할 수 없게 된다. 차라리 지금처럼 방치하는 게 저들의 경각심을 올리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그럴 수 없다. 선량한 저들이 죗값을 받게 할 수는 없다. 제황은 입술을 깨물었다.

“어쩔 수 없지.”

제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한 말에 세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불안한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그러나 제황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아이의 머리를 슥 쓰다듬어 준 제황이 이루미에게 말했다.

“일단 비행계획은 세계를 일주한 후 태평양을 건너는 것으로 하죠.”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루미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것은 다크어스의 몬스터에게 고통받는 이들을 전부 구원하겠다는 뜻이다.

“날 믿으세요. 난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제황의 말에 이루미가 조금은 서글픈 표정으로 제황을 바라봤다.

그가 또다시 세계의 위기를 등에 짊어지려 하는 것이다.

잠시 후 두 모자를 돌려보내고 방에는 제황과 이루미만 남았다.

이후의 말들은 저들이 들어서 좋을 게 없는 이야기다.

제황의 명이 이어졌다.

“무적성의 밀령대를 전원 소집합니다.”

“알겠습니다.”

“다크홀이라는 것들의 정보를 최대한 끌어모으는 한편 백린을 호출하세요.”

제황의 명에 이루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어쩐 연유로..”

“이런 겁니다.”

제황은 이루미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잠시 후 그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루미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명대로 이행하겠습니다.”

“다크홀의 주인이라는 것들에게 제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가르쳐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대응하기 싫다면 억지로라도 강요해 줘야죠. 이루미씨가 고생 좀 해주세요.”

#3

그날 새벽 제황의 아트라스가 낡은 비행장을 날아올랐다.

초거대몬스터들의 사체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무적성이 함께 처리하기로 했다. 물론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낙후된 아르헨티나에서 고통받는 민간인들을 위한 것이다. 저 정도 양이면 아르헨티나의 빈민들도 충분히 구제 가능하리라. 제황을 태운 아트라스는 그대로 남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했다.

단순한 횡단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보이는 족족 모든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나아가 하루 만에 초거대 몬스터로 인해 고립된 블루다이아몬드를 해방해줬다. 블루다이아몬드에 내려서지도 않은 채 곧장 북미로 향한 제황은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을 우선적으로 척살한 후 계속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레이드를 펼쳤다.

[신의 은총을 찬양하라.]

세계인들은 제황을 향해 무한한 경의와 감사를 보냈다.

이번 일로 그에 대한 신앙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를 믿고 숭배하는 이들이 마치 성지라도 되는 듯 대한민국으로 향했고 그의 자취를 밟으며 그를 찬양하기 바빴다. 무려 2주 아니 고작 2주만에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을 모조리 처치한 제황이다.

세계헌터사무국의 사무엘린은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고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크홀의 주인들이 그에게 보내는 친서와 조건 없는 지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내밀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받아 읽은 제황은 피식 웃고 말았다.

사탕발림 가득한 찬양 일색의 친서 따위는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서약서... 그렇지만 그 서약서에 있는 내용들은 역시나 같았다. 저들의 힘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제황에게 의지하겠다는 뜻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었다. 그 이유로는 효율과 효과, 희생을 강조했지만 그 근간에는 지구가 다크어스의 위협에서 벗어난 후 다시금 지구를 지배할 궁리만 하고 있다.

“이건 아니지.”

찌이익...찌익...

“아앗...”

사무엘린의 눈앞에서 그 서약서를 찢어버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군. 이 위기가 끝난 후에도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 뒷구멍을 파다니... 참 대단해. 다크홀의 주인이라는 것들은...”

제황의 말에 사무엘린은 이를 깨물었다.

그라고 몰랐을까. 저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가진 바 힘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궁신은 그것을 용인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왜 그런 무료봉사를 해야 하지? 어디 그 잘난 인본주의를 가지고 설명해 보시지.”

“...”

사무엘린은 질끈 눈을 감았다. 입을 열면 추악한 사실이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제황에게서 뿜어지는 신의 의지는 그에게 거짓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귀로 제황의 나지막하지만, 천둥과 같은 말이 울린다.

“꺼져라. 그리고 저들과 함께 몰려올 위기를 몸소 체험해라.”

“그게 무슨...”

사무엘린이 물었지만, 제황은 굳이 입아프게 그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 어차피 얼마 있지 않으면 저들은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무엘린이 자국으로 돌아간 후 제황은 곧장 엘어스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그 목적은 드래곤들을 데려오기 위한 것

던전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헌터들을 필요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거치적거릴 가능성이 더 컸다. 룰러의 권능에 저항할 수 없는 인간들을 곧바로 그의 적으로 돌변하게 할 수 있었다.

룰러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은 드래곤들 뿐이다. 저들도 차원을 틀어막으면 더 이상 제황의 명을 들을 필요가 없어질 테니 최선을 다해 노력하리라. 그렇게 제황이 엘어스로 간 사이... 지구에는 새로운 다크어스의 게이트가 마구잡이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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