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77화 (277/301)

# 277

함정-2

#1

궁기가 날아오름과 동시에 제황은 흑암보를 최대로 전개했다.

1차 목표는 다크어스의 탈출이다. 그렇지만 룰러는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겹겹이 둘러싼 포위가 녹록치 않다.

쿠구구구구...

쿵...쿵...쿵...쿠쿵...

크워어어억!

다시 봐도 어마어마한 크기다.

간편하게 크기를 비교하자면 초거대몬스터 하나하나가 항공모함 정도라고 해야 할까?

제황 정도의 작은 인간은 올라타도 느낌조차 없을 것 같은 초거대 몬스터 수십 마리가 그를 향해 포위를 좁히고 있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전체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하늘은 물론이고 지상, 지하까지 가득 메운 몬스터들은 하나라도 된 듯 모여 들었다.

몬스터 하나의 발등을 지나 무릎 부근으로 뛰어오르는데 종기처럼 불룩 튀어나온 곳으로부터 뿜어지는 초록 액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치이익...

옷에 작게 튀었는데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녹아 들어간다.

지구에는 없을 정도로 강력한 산성의 체액이다.

“크허어어엉!”

비만의 드래곤 같은 몬스터가 입을 벌렸다. 가뜩이나 덩치가 큰데 그 입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다. 마치 뱀의 턱과 같은 모양으로 밑도 끝도 없이 벌어진 그 입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궁기를 향해 돌진한다. 한 번에 삼켜 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궁기는 그 공격을 유유히 피해냈다.

하늘의 떠 있는 거대한 생명체도 그녀를 향해 연신 가스를 뿜어냈지만, 그녀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이윽고 궁기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대지를 바라본다.

-아주 완벽히 작정을 했는데?

궁기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그렇네.

궁기와 시선을 공유하는 제황의 눈에도 몬스터들의 숲이 보인다.

역시 이대로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궁기의 말에 한참을 초거대 몬스터들 사이로 몸을 날리고 있던 제황의 몸이 한 몬스터의 몸 위에 찰싹 달라붙었다. 다른 몬스터들의 시선을 교묘히 피하는 사각지대다. 빠르게 현재 상황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한정된 신위, 한정된 마나로는 상대하는 데 무리가 있다. 이곳에 오면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중과부적이야.

-맞아.

궁기의 눈을 통해 본 대지는 초거대몬스터만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예전에 겪었던 것은 말 그대로 제황의 능력을 측정하려는 도구들이었을 뿐이었다.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것은 날개를 지니고 있었고 어떤 것들은 수십, 수백 개의 촉수를 가지고 있다. 저것들 모두가 제황에게 강력한 살의를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몸집들만 큰 것이 아니었다.

전투지능 또한 뛰어난 존재들이다. 룰러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있었다.

이런 강력한 존재들을 부릴 수 있음에도 직접 나타나 제황을 속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 제황의 목적 또한 알았으니 그에 대해 최선의 대응책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인간들처럼 방심하지도 않는다. 수만 년 동안 이 세계를 지배자 답다.

그렇지만 틈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약점이 없는 존재라는 것은 없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고 장점을 극대화 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황은 한가지 가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무리가 따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투계획 변경 1차 목표 탈출 2차 목표 실험

-실험? 설마 싸울 생각이야?

제황의 말에 궁기가 반문했다.

전투 계획이 중도에 변경되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것들과 싸우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드높은 창공에 오르니 보이는 모든 것이 몬스터로 우글거린다. 이 속에서 실험이라니...

그렇지만 궁기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가장 믿는 남자다.

가장 계획적이고 효율적인 전투를 할 줄 안다. 가진 바 역량을 과신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냉정하게 판단한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순간조차도 모두 냉정한 판단에서 실행하는 전투를 위해서 태어난 신..

그리고...

그 신위의 본질마저도 ‘전투’ 에 특화된 신이다.

초거대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엉켜 들어왔다. 당연하다. 적은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발톱 하나 크기조차 되지 못한다. 그런 존재를 말살하라는 신의 명령이 있었으니 몸을 사리지 않고 뭉쳐 드는 것이다. 평소에 천적 관계였던 존재들도 이때만큼은 모두 합심하여 저 이계의 작은 신을 향해 달려든다.

숨막히는 시간이 흐른다. 아슬아슬 피해내는 것 같은 움직임

초거대몬스터들이 저들끼리 엉겨 붙을 정도로 쌓였을 무렵 제황의 몸이 그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시작한다.

전력을 다해 전개하는 흑암보는 10티어 11티어 몬스터들의 탐지마저도 뚫어냈다. 제황은 꿈틀거리는 촉수 하나를 타고 달렸다.

그리고 무한고에서 준비한 것 중 하나를 꺼내 손에 들었다.

활촉에서부터 몸체 깃까지 모두 새하얀 순백의 화살이다.

9티어에서 11티어 몬스터들의 발톱만을 가공하여 통짜로 만든 화살이다.

굳이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는 보물들이다. 이것들을 위해 무적성의 모든 장인들이 달려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장인들을 비밀리에 초빙하여 화살 제작에 매달렸다. 아무리 활이 강하다고 해도 실질적 투사체는 화살이었다. 그리고 활이라는 무기 자체가 화살을 쏘아 보내는 무기다. 그만큼 화살이라는 것은 중요했다.

그렇게 무한고에 쌓인 화살들의 숫자만 수만 발이었다.

출렁거리는 촉수 위에 발을 딱 붙인 제황이 활을 공중을 향해 들어 올렸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몬스터들 사이로 태양이 보인다. 마치 고대의 태양을 사냥하기 위해 날렸던 신화를 제현하려는 듯 그의 두 팔은 굳건히 시위를 당기고 있다.

모든 목표물은 이미 궁기를 통해 조준을 끝마친 상태다.

“가라.”

파아아앙!

맹렬한 소닉붐을 시작으로 그의 활로부터 새하얀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음속을 가뿐히 뛰어넘어 솟구친 화살이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지상의 목표물들을 꺾이기 시작했다.

씨아아앙!!!

소리조차 따르지 못한 그 화살이 제황을 둘러싼 초거대몬스터들 중 하나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나도 작아 막을 생각도 들지 않는다. 꽂혀 봤자 우습지도 않을 크기다. 아니 생채기조차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크기... 목적지로 삼은 곳이 각종 감각기가 모여 있는 머리 부분도 아니었다. 목표는 가슴 부근... 장갑과도 같은 외피와 강력한 근육, 뼈로 둘러싸인 곳이다.

푸슉...

부딪히는 충격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미하다.

간지럽지도 않다. 화살에 적중당한 몬스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방금 자신에게 공격을 가한 존재를 찾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의지 뿐이다.

신화: 활의 주인(S), 심판하는 자(S)

움직임이 순간 우뚝 멈췄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심장 가장 깊숙한 곳 은밀이 숨겨져 있어야 할 무언가가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과 동시에 온몸을 힘차게 흐르던 마나가 조각조각 끊어지기 시작했다.

힘차게 움직이던 모터가 멈춘 기계는 어떻게 될까.

울룩...꿀룩..

가슴 부근이 출렁거린다.

작동을 멈추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크어어어...”

비명과 함께 초거대몬스터 하나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늘로 솟구친 수십 대의 화살이 저마다 각기 지정된 목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푹... 푸슉! 푸슈슉! 푹푹!

“크워어어억!”

“크어어억!”

화살에 적중당한 그것들은 모두 일제히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대지에 천천히 몸을 뉘였다.

쿠쿠쿵...쿠쿵...쿵쿵...

거체의 중량들이 땅에 쓰러지자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지반이 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났다.

믿을 수 없게도 수십 마리의 초거대 몬스터들이 일시에 죽어버렸다.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다. 작은 인영이 그 참상의 위 가장 높은 곳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오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접근하던 초거대몬스터들의 행동 또한 모조리 우뚝 멈췄다.

그들도 이성과 지능을 지닌 존재들이다.

강자를 알아볼 줄 알며 두려워할 줄도 안다. 적과 자신 간의 역량을 가늠할 줄 알고 그에 맞춰 전투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지금 저기 가만히 서 있는 존재를 보라. 자신들의 발끝만도 못한 작은 크기임에도 그 시선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다.

가히 궁신이라는 이름이 모자라지 않은 존재

쿠쿵...쿵...

그렇지만 그들은 다시금 전진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지배자인 룰러의 명은 절대적이다. 그들의 심령으로 재차 공격명령이 떨어졌다.

-역시 한 번으로는 안되는군.

제황이 쓰게 웃었다.

-괜찮겠어?

궁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조금 전 제황이 조금 무리한 것을 알고 있다. 그 화살 한 발 한 발이 지닌 위력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제황이 지닌 신위의 결정체들이다. 그것을 사용하는 만큼 신위가 소모되기 마련이다. 이곳은 보충이 되지 않는 땅이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제황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한번 더 해야겠어.

-믿어!

제황의 말에 궁기가 다시금 제황을 둘러싸고 거리를 좁혀들고 있는 몬스터들의 몸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단순히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화: 진실을 가리는 힘 (SS급)

그녀의 신화는 지금 모든 몬스터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찾아내고 있다. 아무리 두꺼운 가죽과 근육 그리고 마나의 힘으로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고 있다 해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는 못한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신화다. 수많은 약점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을 구분해내는 것을 뛰어넘어 그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만들어 준다.

그러나 약점을 알았다고 해도 공격을 하는 주체는 제황이다.

제황은 다시 한번 자신의 신화를 화살에 실었다.

파파파파파팡!!!

다시금 화살이 날아올랐다.

이번에는 몬스터들도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쩌저저저적...쩍쩍... 쿠쿠쿠쿵...

각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시작했다. 어떤 것들은 장갑들을 더욱 두껍게 만들었고 방어막을 끌어올렸다. 어떤 것들은 마나를 이용해 바람을 일으키거나 화염을 일으켰다. 일전의 대참상은 저들의 방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최선의 방어를 갖춘 상태에서 상대의 공격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나...

퓨슉...퓻...퓨퓨퓻...

상대가 너무 좋지 못했다.

애초에 공격은 전혀 다른 차원의 종류다.

아무리 뛰어난 방어력을 지녔다고 해도 상대의 공격은 신의 공격이었다.

피륙과 마나의 힘으로 완성한 방어막은 신의 공격 자체를 막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이 공격을 막을 존재는 그들의 군주들 정도거나 혹은 자신들의 절대적인 신 룰러 만이 가능하다.

그렇게 다시금 2차 공격이 사방을 휩쓸었을 때 드러난 참상은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니 달라진 것은 대지에 몸을 뉜 존재들의 숫자가 배를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이제 초거대 몬스터들의 눈에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제야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은 것이다.

상대는 자신들의 절대적인 존재와 같은 차원의 존재인 것이다.

“크르르르...”

“크으으으...”

쉬이 접근하지 못한다.

저들도 생명체이기에 생존 의지가 존재한다.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그 의지는 강력하다. 아무리 신의 절대적인 명령이라 하더라도 사지임일 뻔한 곳이기에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그것을 방해한다.

-위험해.

-알아.

-본체를 꺼내겠어.

궁기가 말했다. 이제 위험한 지경이다.

-아니, 절대 안돼.

그러나 제황은 그녀의 말을 거부했다.

지금은 궁기가 나서서는 절대 안 된다.

제황은 조금씩 잠식해오는 피곤함을 애써 눌러 참은 채 오연히 서서 몬스터들을 노려 보았다. 앞으로 지금과 같은 공격은 두 번 이상이 한계였다. 두 번을 넘어서면 그때는 실험은 실패하는 것이고 궁기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탈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지만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거대몬스터들에게서 한층 짙어진 두려움의 마나가 느껴진다.

그러나 룰러의 의지가 다크어스의 대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하자 초거대몬스터들은 마치 뭔가에 취한 듯 제황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이것이 룰러의 힘이다.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다크어스의 몬스터도 룰러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다.

제황이 이를 질끈 깨물었다.

-이번 한 번에 모든 것을 걸겠어. 만약 실패하면 탈출을 부탁해.

-... 알았어.

제황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린 궁기가 준비를 시작하자 제황의 전신으로 붉은 오오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여의용혈신공을 전력으로 가동하며 가진바 모든 신위를 모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붉은 오러가 뭉치고 뭉쳐 피와 같이 붉게 흐르기 시작했다.

모든 신성을 끌어모아 단 한발에 담아낸다.

신이건 뭐건 그의 본질은 활잡이였다. 단 한발의 화살에 모든 승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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