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다크어스 게이트-1
#1
남아메리카 중부에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몬스터 지대가 생성되어 있다. 브라질과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에 걸치고 있는 이곳은 게이트가 나타나기 전에도 아마존 강을 중심으로 한 대밀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엘어스의 식생까지 어우러져 그 거대한 밀림에는 수천 종류의 몬스터와 야생동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곳은 남아메리카의 국가 소속 헌터들 뿐만 아니라 미국 헌터들도 자주 찾는 헌터들의 천국이었다. 일반인도 레이드 할 수 있는 1티어 몬스터부터 공격대 전용의 7티어 몬스터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헌터기지도 위치해있어 아메리카 대륙 몬스터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해 있는 곳이다.
‘블루다이아몬드’
기지 이름으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곳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헌터들은 모두 그 이름만이 이곳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 것이다.
기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환락의 도시 블루다이아몬드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헌터관련 경매장과 요새 새롭게 떠오르는 신종 스포츠가 열리는 초대형 원형 경기장이 있었다.
헌터와 헌터, 헌터와 몬스터, 몬스터와 몬스터들의 혈투를 즐기는 이곳은 몬스터가 더 상 인간에게 위협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상징하는 도시의 좋은 랜드마크다.
십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원형 경기장에는 지금 침묵만이 가득했다.
경기가 그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아나운서의 숨 가쁜 외침도 없고 환호도 없다. 경기장에서 전투를 치르던 헌터들도 행동을 멈춘 채 멍하니 경기장 한 면에 차지하고 있는 초대형 멀티비전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꿈틀... 꿈틀...
멀티비전에는 붉은 색의 –위험- 이라는 글씨가 쉴 새 없이 교차하고 있었고 그 안에 중계되고 있는 화면에는 피분수를 일으키며 게이트를 빠져 나오려는 정체 불명의 거대한 몬스터가 보이고 있다.
“크라라락!!!크럭!”
그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지름 105미터의 게이트에 허리가 걸려 괴로운 듯 연신 비명을 지르는 다크어스의 초거대 몬스터다. 게이트의 주위는 몬스터의 몸부림만으로도 이미 초토화 지경이다. 문제는 이것이 이곳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 걸쳐 존재하던 몇몇 다크어스 게이트가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쿠우우우웅...
일본의 히로시마현 미하라 시내의 중심에는 약 30여 년 전 발생했다가 폐쇄된 다크어스 게이트가 하나 있었다. 헌터법상으로는 폐쇄된 게이트의 1킬로미터 반경으로는 일반인들이 거주할 수 없지만, 워낙 그 위치가 도시 중심지에 있어 30년이 지난 지금은 일반인들이 버젓이 걸어 다니는 곳이 되었다. 위험에 면역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게이트를 막고 있는 거대한 특수콘크리트 벽은 그냥 풍경의 일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모든 이들이 자리에 멈춰 폐쇄된 게이트에서 울리는 둔중한 울림을 듣고 있다. 처음에는 지진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지진이라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그 울림의 진원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바로 다크어스 게이트를 가로막고 있는 콘크리트벽이다.
쿠우우웅!
“뭐지?”
“뭐야??”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콘크리트벽 앞 바리케이트로 모여들었다.
당시 지구상 존재하는 게이트 중 가장 튼튼하게 폐쇄되었기에 절대 위험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한 일본 정부였다. 그런데 그 믿음이 지금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퍼어어엉!”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그 두텁다던 장벽을 뚫고 뿔로 추정되는 거대한 뭔가가 튀어나와 햇빛에 반짝거리고 있다. 도망칠 생각도 않은 채 주위에 몰려들어 핸드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던 이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꺄아아악!”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비명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쿵! 쿠쿠쿵!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바위들이 땅으로 떨어지고 그 밑으로 지나치던 차량들이 바위에 깔려 납작하게 변해 버렸다. 게이트의 바로 앞으로 도로가 뚫어버리는 미친 짓을 자행하고서도 만약 게이트가 뚫린다면 그 자리에서 할복하겠다던 당시 히로시마의 시장이 이 광경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피해!”
“으아악!”
게이트에서 떨어질 때는 작은 부스러기로 보이지만 실상은 수 톤에 이르는 바위들이다.
“쿠어어어억!”
쏟아지는 파편도 두려운데 뚫려버린 구멍으로 크기를 측정할 수 없는 맹수의 울림이 들려온다.
퍼어엉! 퍼펑!
이전보다 더 큰 울림과 함께 조금 전 소리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의 주둥이가 들이밀어 졌다. 마치 톱날과도 같은 수백 개의 이빨이 가지런히 난 입이다. 입의 양옆으로는 멧돼지의 그것과 같은 긴 뿔이 두 개 자리해 있었는데 그것을 마구 비틀자 콘크리트 벽은 스펀지처럼 뜯겨 떨어져 나갔다.
위이잉! 위이잉!
-몬스터 경보 발령! 몬스터 경보 발령! 미하라 시민들께서는 인근의 지정된 대피소나 지하철로 질서를 지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몬스터 경보 발령...
차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거리를 울리지만 이미 그 목소리를 귀담아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게이트는 계속해서 부서져 나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발로 추정되는 거대한 것이 쑥하고 튀어나와 땅을 디뎠다.
우지지직...
얼마나 무거운지 발이 땅을 파고드는 깊이가 심상치 않다.
끼이익! 콰콰쾅!!
지나던 차들이 연쇄 추돌을 일으키며 도로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고 인도를 난입한 버스 한 대가 도망치는 행인들을 덮쳐 수십 명의 사람이 압사당해 버렸다.
몬스터의 몸이 게이트를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그 크기는 게이트를 꽉 채우고도 모자랄 지경, 잠시 후 완전히 빠져나온 몬스터가 본격적으로 거리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주곡에 불과했다. 몬스터가 뚫고 나온 거대한 구멍으로 수천 개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들은 본격적인 지옥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2
[폐쇄 조처된 다크어스 게이트 연쇄 폭발! 쏟아져 나온 몬스터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린 대참상의 현장!!!]
이 한 줄의 기사만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 대참사가 세계 곳곳에 벌어졌다.
-오늘 태평양 시각 기준 15시경 전세계에 존재하는 폐쇄된 다크어스 게이트 중 30여개에서 8티어에서 9티어로 추정되는 몬스터 웨이브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였습니다. 60년 전 발생했던 대융합의 초기에 비견되는 대혼란 속에 피해 규모는 측정할 수 없으며 이미 수십만에 달하는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피해국들은 몬스터 경보 최고 단계를 발령한 채 모든 헌터들을 강제소집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국가는 러시아, 미국, 일본, 중국, 한국, 이탈리아, 모로코, 인도, 캐나다 등이며 각국은 모든 몬스터방어체계를 가동한 채 게이트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중입니다.
-세계헌터사무국은 아직 피해를 입지 않은 국가에 피해국으로의 조속한 헌터병력 파병을 요청 중이지만 각국은 자국의 다크어스 게이트 관리를 이유로 세계헌터사무국의 요청을 거부하는 중입니다.
아울러 이번 웨이브의 피해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타국과는 다르게 모든 웨이브를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헌터사무국에서 국제헌터법에 의거하여 6성 이상 헌터 강제 동원령을 발동했습니다. 이 법령에 따르면 이 동원령은 모든 상업적 레이드 활동을 금지시키는 것을 골자로 모든 헌터들이 몬스터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지휘권을 양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헌터사무국에서는 궁신에게 조속한 피해국 지원을 요청했으나 궁신의 소속국가인 대한민국 또한 이번 피해국 중 가장 많은 숫자인 5개의 게이트가 폭발한 가운데 이에 대한 수습으로....
세계 헌터사무국은 강제 동원령을 들어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강제동원령에 강력히 반발했다.
폐쇄했기에 안심했던 다크어스의 게이트들이 폭탄이 되어 버린 상황이기에 행여나 자국의 게이트들이 같은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고 그런 이유로 헌터들을 자국법으로 어떻게든 국내에 잡아둬야 했다.
대한민국 또한 다르지 않았다.
아니 대한민국은 오히려 강제동원령에 자유로웠다.
타국이 1개에서 2개의 게이트가 사고가 터진데 비해 대한민국은 무려 다섯 개의 다크어스 게이트가 폭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은 다크어스 게이트의 대한 준비가 철저했기에 민간인에 대한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피해당사자에게 병력을 내놓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때만큼은 국내 여론이나 정치권 모두가 궁신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한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단 하루면 충분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다크어스 게이트 216개 중 30개가 터졌다.
단 하루 동안 죽은 이들의 숫자는 실종자를 포함하여 80 만명이었고 피해규모는
추산조차 되지 않는다. 더욱 큰일은 그것이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가 궁신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 해야한다.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헌터들의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헌터와 군이 함께 합동 작전을 펼쳐야 한다.
레이드에 참여하는 공격대는 최소 5개이며 3개 공격대가 레이드에 들어가고 2개 공격대는 예비대로써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9티어몬스터를 탱킹할 탱커가 최소 3명 이상 모여야 하는 건 둘째치고 대기해야 하는 딜러들도 최소 6성 이상은 되어야 딜이 박힌다.
게다가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9티어 몬스터들만이 아니었다.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의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궁신의 해외 출격은 언제?
-대한민국헌터사무국 ‘대한민국 혼란 수습이 먼저’ 궁신의 출격 막아.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궁신의 대한 비판적 기사로 일관하던 각국의 언론들이 자신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궁신만이 이번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묵무부답이었다.
#3
“크르르르륵!”
긴 갈고리 발톱이 달린 거대한 손이 길가에 정차되어 있는 버스를 집어들어 던진다.
씨아아앙! 콰아아앙!!!
버스가 두동강이 나며 그 속으로 한남자가 돌진하고 있다. 파편들이 날아들었지만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뇌전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있다. 버스를 집어던진 몬스터는 남자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쫘아아악!!!
녹색의 액체가 길게 뿜어지고 적중된 모든 것들이 부글거리며 녹아들어갔다.
바위까지도 녹여버리는 무시무시한 산성이다. 짓쳐드는 산성 브레스를 바라보며 남자가 주먹을 뒤로 당겼다.
파팍! 파파팍!!!
스파크가 작게 뭉쳐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먹만한 크기가 되었을 때 그는 공중을 향해 날아오르며 그 뇌전의 구를 몬스터를 향해 쏘아냈다.
투우우웅!!!
포탄과 같이 날아간 그것은 몬스터의 정수리에 적중했다.
그러나 몬스터의 크기에 비해 그것은 너무나 작았다. 기껏해야 몬스터를 덮고 있는 비늘의 절반 정도 크기일까?
“꾸에에에엑!!!”
몬스터의 정수리로부터 피분수가 뿜어져 올랐다.
사내가 쏘아낸 광탄이 몬스터의 정수리를 뚫고 들어가 버린 것이다.
몬스터의 거체가 천천히 쓰러졌다.
쿠우웅!!
요란한 충돌음과 함께 몬스터가 쓰러졌다. 광탄이 파고 들어간 곳으로부터는 피와 함께 뜨끈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단순히 관통한 것이 아니라 내부를 완전히 익혀버린 것이다.
타탁...
그런 몬스터의 몸 위에 가볍게 착지한 사내가 뒷짐을 진 채 수염을 쓸었지만 막상 손에 잡히는 수염은 없다.
“와아아아!”
주위에서 환성이 들려왔지만 사내는 자신의 수염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턱을 쓸며 고개를 흔들었다. 손자 덕분에 깨달음을 얻어 벽을 뛰어넘은 건 기쁜 일이지만 환골탈태를 하며 그가 자랑하던 백염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