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2
시체로돌아온남자-1
#1
퍼어엉
맹렬한 폭음과 함께 한 명의 남자가 공중을 날았다.
바닥을 수차례 구른 후에 비실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이 자식아 그 정도로 밀리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얼른 복귀해!”
그나마 날아가면서도 방패는 놓치지 않은 게 마음에 드는지 소리치는 고함에 노기는 보이지 않는다. 방패는 무려 6티어 몬스터의 정면 박치기를 당했음에도 흠집 하나 보이지 않는다. 요즘은 막말로 방패 세워놓고 라면도 먹는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아니 실제로 어떤 BJ 탱커는 방패로만 탱킹을 하면서 방송을 한다던가.
촤아아아아악!!
한 자루의 태도가 거대한 몬스터의 목을 연속으로 스치고 지나간다.
마나 조차 싣지 않았지만, 그 한 번의 교차에 지름 50센티가량의 목 두 개가 동시에 댕강 하고 날아가 버렸다.
“흥, 내 상대로는 너무 약하군.”
바람머리의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태도를 옆으로 떨치며 거만하게 말한다. 무려 5티어의 몬스터 목 두 개를 일도에 갈라버렸으니 6성의 최상급이나 되어야 가능한 신기다. 그가 진짜 6성 최상급이라면 이 정도의 거만함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내 그의 뒤통수를 야무지게 후리는 매운 손이 있다.
“9티어 몬스터 발톱 검으로 못 베는 게 이상하지! 딴짓하지 말고 빨리 지원 안가!”
“악! 누나! 머리는 왜 때려!”
“레이드 아직 안 끝났어! 자리 안지켜?”
“알았어. 알았다고!”
남자는 투덜거리면서도 빠르게 제 포지션을 찾아간다.
“으랴압!”
거대한 몬스터가 무게를 실어 짓밟으려 했지만, 장신의 탱커는 오히려 그 발을 버티고 서서 그대로 옆으로 패대기쳤다. 방패에 걸려있는 근력 50%라는 미친 옵션이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조져!”
“우아아아악!”
땅을 헛디딘 몬스터의 목이 드러나자 곧장 그 위로 태도가 수직으로 꽂혔다.
촤아악!
“크허어어엉!”
단 한방에 목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자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일어서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반항도 두 번째로 내리꽂힌 야무진 칼질에 이내 잦아들었다.
“끼이이...”
“헉헉... 레이드 종료...”
“와아...”
자신들이 이루고서도 믿지 못할 일이다.
아무리 최고의 장비로 무장한 상태라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기에 4티어에서 5티어 몬스터가 출몰하는 곳으로 레이드를 갔었다. 전에는 한 마리 레이드 하는데 20분에서 30분가량 걸렸는데 이건 뭐 레이드 하는 것 같지도 않다.
3분 컷, 4분컷 을 밥먹듯이 하게 된다.
무적성에서 구매한 8티어 몬스터 방어구는 물론이고 큰맘 먹고 스쿼드 비상자금을 탈탈 털어 장만한 9티어 몬스터의 발톱으로 만들어진 태도는 이건 뭐 레이드가 아니라 동네 뒷산 산보 나온 기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기분에 취해 본래의 계획보다 깊이 침투했고 운이 더럽게 없는지 6티어 몬스터가 조우했다. 평소 같았으면 몰살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6티어 몬스터를 아무런 상처도 없이 레이드 해버렸다. 고작 5성 헌터 넷이서 5티어 몬스터가 포함된 6티어 몬스터를 말이다.
“환장하겠네.”
스쿼드의 메인딜러인 남일은 그의 손에 들린 태도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었다.
가격만 200억이다. 그나마도 100억은 국가에서 융자를 얻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레이드를 할 수 있다면 200억 따위야 껌이다. 두 달? 아니 한 달만 이대로 레이드 한다면 그 정도는 금방 갚을 것이다.
“진짜 대단하다.”
조금 전 몬스터의 꼬리 공격에 날아갔던 그의 친구 선우도 흠집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방패를 이리저리 돌려보기 바쁘다. 도색이 벗겨지기는 했지만 자잘한 흠집 한점 보이지 않는다. 힐러의 꾸준한 치료만 있으면 7티어의 몬스터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말만 그렇지 7티어 몬스터에게 덤비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7티어 몬스터는 공격대가 건드리는 중대형 몬스터니까.
“야, 일단 쉬자.”
“예.”
무리하게 진행한 레이드였기에 메인탱커이자 리더인 동후가 휴식을 명했다.
“상아야. 우리 어디까지 들어온 거야?”
“D3 지역, 너무 깊이 들어왔어. 수거 비용 20% 들어가겠다.”
“어쩔 수 없지. 여기서 이딴 걸 만날 줄 알았나.”
대략 무게 20여톤으로 보이는 거대한 파충류가 혀를 길게 빼문 채 누워 있었다. 그 주위로 누워있는 4~4톤 짜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들이 조금 전 레이드한 이 몬스터는 블루기가스라고 불리는 파충류 몬스터였다.
6티어에 어울리는 마나 방어력도 모자라 극독을 품고 있어 이빨에 스치기만 해도 그 자리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게 만드는 몬스터다. 그러나 9티어 몬스터의 발톱으로 만든 이 태도는 마나 방어력이고 뭐고 죄다 씹어먹는지 두 동강 내버렸다.
“무적성 만세”
“만세는 무슨 만세야. 야. 이런 거 우리만 가지고 있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요즘 높은 티어 몬스터들 사체 가격이 똥값 되고 있다.”
“중국이 관세 정책에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걔들 똥고집 부리면 아무도 못말리잖아요.”
“아무리 세계의 공장이라도 그게 그렇게 빨리 되겠냐.”
“에휴, 그럼 이거 값 다 갚으려면 일년은 죽을 똥을 싸야 한다는 소리네요.”
200억짜리 무기를 휘두를 때야 기분 끝내주지만 워낙에 많이 팔린 까닭에 부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있다니 좋은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다.
“뭐래. 임마. 죽을 자리에서 이렇게 살아왔으면 그걸로 만족해야지.”
“하긴 그건 맞습니다.”
리더 형의 말에 그가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였다면 분명 사상자가 생겼을 것이다. 그게 자신이 될 수도 있었고 상아누나가 되거나 리더형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불상사 없이 살아남았다는 건 역시나 이런 무기들을 시장가격 무시하고 풀어버린 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내일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을까요?”
“그래야겠지. 이쪽도 거의 털렸네. 대신 경계는 절대 넘지 마라. 근방 순찰대에서 들어온 정보로는 무기를 노린 외국 놈들이 빌런인척하고 나타날 수 있다더라.”
“음, 빌런놈들...”
삼천교국이 와해된 뒤로 대한민국의 거대 빌런 세력은 이제 붉은전사단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부터 매우 온건적 성향의 빌런들이기에 크게 걱정되는 놈들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나 엘어스 쪽에 활동하는 빌런들은 말 그대로 타국의 헌터들이 신분을 속이고 침투한 놈들이다.
“자, 슬슬 돌아가요. 늦어도 저녁은 게이트에서 먹어야겠어요. 목욕도 하고”
상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들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엘어스로 건너와 레이드를 하는 것이기에 위험도는 높지만 오늘 사냥한 것만 다 정산해도 수억은 넘을 것이다.
#2
“후욱!!! 무적진천세!”
파지지지지직!!!
동심원으로 터져나가는 번개에 걸린 모든 것들이 박살이 나며 튀어 오른다.
연속으로 뿜어져 나가는 그것들은 튀어오른 모든 것들을 폭발시키며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중이다.
쿵...쿵쿵쿵쿵....
츠츠츠츠츠츳
퍼져나가던 번개가 다시금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하며 뭉치기 시작한다.
한계까지 뭉쳐진 번개들이 비명을 지른다. 이윽고 묵직한 울림과 함께 지각이 갈라지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투툭...투투툭...
공중으로 날아오른 것들이 하나둘 떨어지고 그 사이로 긴 수염을 늘어뜨린 거한이 호흡을 정리하고 있다.
“후욱...후욱... 후...”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 한 권제가 천천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대단하시네요.”
권제의 곁으로 제황이 내려앉았다. 본래 아침이면 조깅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지만 요즘은 권제와 함께 아침 체조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물론 그 아침 체조가 타인이 생각하는 그런 얌전한 아침체조가 아닌 강기가 난무하고 주변지형을 통째로 들어엎는 짓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9티어 몬스터 정도는 한 방에 보내겠지.”
깊이 20m는 될 법한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고 내부에는 아직 발산되지 않는 스파크가 튀어 오르고 있다. 거의 5층 건물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 그러나 그 구덩이를 만든 당사자의 얼굴에는 조금의 기쁨도 묻어있지 않다.
스킬의 숙련도가 오를 레벨은 애초에 지난 권제지만 조금 전 작은 깨달음이 있어 다시금 아스트라페에 강기를 실었다. 그리고 나타난 결과가 이것이었다. 이전의 무적진천세가 방사형으로 퍼지는 강기의 폭풍이었다면 지금의 것은 수직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 정도면 10티어 몬스터도 꽤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겁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권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아직 멀었다. 무적진천세에서 완전히 분리해 내야 완성되는 거다.”
권제의 무적진천세는 무려 유니크급의 스킬이었다.
첫 시작은 스페셜등급이었고 끊임없는 깨달음과 스킬 업그레이드권을 이용해 유니크급으로 만든 궁극의 스킬... 거기서 파생된 것이니 같은등급의 유니크급 스킬일 것이다. 그런 것을 뚝딱하고 만들어 낸다고 하면 그것이야말로 먼치킨이고 설정파괴다.
“너무 급하신 것 같습니다.”
“수련에 조바심은 독이지만 네가 보여준 다크어스의 몬스터를 생각하면 어쩔 수가 없구나. 최소한 그전에 벽 하나 정도는 뛰어넘으면 좋을 것을...”
권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이었다면 뚜렷한 목표가 없었지만, 지금은 바로 옆에 떡하니 서있다.
천연덕스럽게 자신을 반신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놈, 그의 끝없는 투지를 처음으로 마른 나뭇가지처럼 분질러버린 미우면서 미워할 수 없는 손자 놈이다.
“어느 세월에 완성할꼬...”
권제가 푸념처럼 말했다.
도저히 감히 안잡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곁에 있는 제황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음, 무적진천세를 보완할 무공이라...”
제황이야말로 먼치킨이며 설정파괴의 장본인 아닌가. 제황이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그리고 얼마 전 간신히 발견한 쪽문 하나를 비집고 들어갔다.
“흐음”
제황은 작게 신음을 내질렀다.
광대한 지식의 강에 손가락 하나를 담그는 것만으로도 반신인 그조차도 조심해야 한다.
그 강에는 사나운 물고기들도 산다. 아직 정체는 알 수 없다. 일단 지각을 지닌 존재라는 것만 알 뿐이다. 그것들은 그 광대한 지식의 강을 지키는 파수꾼들이었다.
그것들이 만약 철저히 방어적인 자세가 아니었다면 허락받지 않은 의문의 침입자는 꽤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물론 제황은 그들이 몰려들기 전에 빠르게 손가락을 뺐다. 그리고 운좋게도 원하던 정보도 손가락에 묻히는 데 성공했다.
“할아버지...”
“음?”
제황의 부름에 참오에 빠져 있던 권제가 의문 섞인 눈으로 제황을 돌아봤다.
보통 이럴 때는 절대 말을 걸지 않는 손자가 말을 걸어왔으니 쓸데없이 부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이브 시스템의 방호벽은 상당히 높습니다. 찰나에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빠르게 읽으셔야 합니다.”
“응?”
권제가 의문을 표했지만, 제황은 가타부타 말없이 손을 내밀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다.
“헉?”
제황은 조금 전 건져온 한 줌의 정보를 권제의 상태창에 밀어 넣었고 권제는 자신의 상태창에 끼어든 그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 어떤 스킬에 대한 내용이었다.
세이브가 머릿속에 주입시켜 주는 형식은 아니다. 단지 꽤 두꺼운 책이 한번 머릿속에 스르륵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나마도 한번 넘어간 책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손자의 말대로 단 한 번의 기회다.
권제는 모든 심력을 집중해 그것을 해독하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사라졌을 때 권제는 낮은 한숨이 섞인 너털웃음으로 그것의 이름을 작게 읊조렸다.
“무극파천무라...”
“도움이 되시겠습니까?”
제황이 물었다.
그가 건져온 것은 아주 오랜 과거 상고시대의 무공 한 가닥이었다.
전체도 아닌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도 권제에게는 크나큰 기연이나 마찬가지였다.
“허허허...”
권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무적진천세와는 완전히 다른 무공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무공이라는 것은 만류귀일이다. 이것을 화두로 삼아 참오한다면 분명 얻는 것이 있으리라.
그때였다. 멀리서 이루미가 날 듯이 달려왔다.
상당한 거리기는 하지만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제황은 행여 권제의 깨달음에 방해가 될까 이루미에게 다가갔다.
멈춰선 이루미가 호흡을 정돈한다.
“무슨 일입니까?”
“제황님이 말씀하신 백린이 돌아왔습니다.”
“!!”
이루미의 말에 제황의 눈이 커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가 돌아온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쥔 이가 말이다. 그렇지만 후에 이어진 이루미의 말에 제황은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합니다. 마치 시체와도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