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70화 (270/301)

# 270

해보자-1

#1

무련천가는 전혀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맞이했다.

그 사람의 지위와 위치를 생각한다면 이런 식의 성급한 움직임은 매우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가 찾아가는 사람도 보통은 아니다.

아니 이제 그는 사람으로 통하지 않는다.

인간의 잠재력이 이룩할 수 있는 가장 극한에 이른 자, 인간이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홀로 증명한 절대자다.

그렇기에 그를 맞이하는 이들도 그다지 놀라지 않은 채 그를 대했다.

“제황입니다.”

“사무엘 린입니다.”

인사를 나눈 사무엘 린은 맞은편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의 첫인상은 소탈하다는 것이었다. 가벼운 면바지와 셔츠를 입은 그와 대면한 응접실은 마치 평범한 가정집의 쇼파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 자신도 소유한 저택이 몇 채인지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돈이 썩어나는데, 궁신은 그가 알기로 아직 자신의 집이나 개인차량도 없다고 알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재력은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되지 못하는데 말이다.

“역시군요.”

뜬금없는 한마디...

씁쓸한 미소와 함께 테이블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들이킨 제황이 고개를 흔들었다.

“네?”

“왜 오셨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자신은 아직 입도 열지 않았는데 이미 알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믿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무엘 린을 향해 궁신은 쐐기를 박듯 한마디를 뱉었다.

“다크홀, 반대, 궁신 소환... 불응시 불이익이 있을 것을 경고할 것, 맞나요?”

“쿨럭...”

자신의 몫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려던 사무엘 린은 급하게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격한 기침을 했다. 순식간에 벌거벗겨진 느낌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속으로 그렇게 계속 강조하시면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거든요.”

제황이 자신의 귀를 톡톡 두들기자 사무엘 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 자신이 숨겨온 힘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8성 헌터시군요. 그리고 정신방어 아티펙트 세 개를 너무 믿으시면 안됩니다.”

“!!”

더 놀랄 것도 없다.

마치 그의 머릿속을 갈라 보는 것처럼 상대는 자신의 머릿속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의 머릿속을 비워버리는 것을 택했다. 세계 최강자인 궁신을 앞에 둔 채 어쩌면 인류의 존망을 걸어야 할 일과 관계된 이 시점이 이런 상상을 해야 한다는 것에 자괴감까지 든다.

“텔레토비 세대시군요. 그런데 대체 포비가 무슨 매력이 있는 겁니까?”

“끙.”

사무엘 린은 더이상 놀라는 것도 그만뒀다.

아무리 강력한 정신계열 각성자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상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가 이렇게 허황한 생각을 한 것은 궁신이 자신의 머릿속을 얼마나 들여다볼 수 있는가 시험하려는 목적도 섞여 있었다. 시험의 결과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재미있군요. 다크홀이라...”

“네. 그들은...”

서둘러 입을 떼던 사무엘 린은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봤다.

사실 그들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상황이 공교롭게 되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합니다. 궁신님을 못 믿는 것은 아닙니다.”

헛기침을 한 사무엘 린이 자신의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더니 품에서 다른 이어폰으로 바꿔 꼈다. 그리고는 손에 들린 이어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것에 얽힌 비밀을 아십니까?”

“아니요.”

제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무엘 린의 손에 들린 건 헌터용으로 제작된 삽입형 이어폰이다.

헌터들 사이에서 필수와도 같은 물건이었다. 번역기능이 있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헌터들도 반드시 귀에 착용해야 한다. 전투의 소음 속에서 리더의 오더를 명확히 알아듣는 데 필요하다. 레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그것 외에도 레이드를 지원하는 이들과의 전체통신을 비롯해 위치탐지기, 녹음기능에 음악까지 나온다.

“아주 편한 물건입니다. 헌터들의 필수품이죠.”

타탁..

사무엘 린이 손끝으로 이어폰을 반으로 쪼갰다.

그 작은 기기 안에 얼마나 많이 쑤셔 박았는지 이것저것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레이드 중에 가장 많이 망가지는 물건이기도 하지만 기능보다 훨씬 값싸기에 일반인들도 많이 사용합니다.”

지직...

사무엘 린은 그것들 중 아주 작은 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렇지만 이것의 존재는 사람들이 잘 모르죠.”

“그게 뭡니까?”

“저장장치입니다. 이곳에는 헌터가 나누는 모든 대화가 저장됩니다.”

“본래 있던 기능 아닙니까?”

“그건 따로 있습니다. 이건 알려지지 않았죠. 워낙 자주 망가지는 물건이니 수리를 자주 맡기는 편이고 그때마다 일상적으로 교체됩니다. 그리고 이 칩들은 모두 본사로 수거되죠.”

“그런가요.”

도시괴담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다음에 나왔다.

“그리고 5성 이상의 헌터의 칩은 특별관리 됩니다.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들을 모조리 취합하여 빅데이터로 데이터마이닝을 한 후 정보들을 뽑아내죠.”

사무엘 린의 말이 사실이라면 꽤 충격적인 사실이다.

게다가 이 사실은 무련천가에서도 모른다. 감히 궁신의 물건에 이런 기능이 달렸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 지원팀 전부를 해고해도 할 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황은 담담히 말했다.

“흥미롭군요.”

“네. 이 물건을 생산하는 업체들도 잘 모르는 이야기죠. 이 칩을 공급하는 업체가 바로 다크홀의 주인들 중 하나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사무엘 린이 커피로 입을 축이고는 말했다.

“그렇지만 저들은 적이 아닙니다.”

“그 다크홀인가에 나서 달라는 말이군요.”

“네.”

제황의 말에 긍정의 뜻을 표한 사무엘 린은 말없이 커피를 들었다.

사무엘 린은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안다. 궁신의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허겁지겁 한국으로 온 것이다. 궁신을 직접 설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해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저들의 그 말은 수용할 수 없군요.”

제황의 말에 응접실의 분위기는 차갑게 굳어 버렸다.

사무엘 린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고해 주십시오. 만약 저들과 대립각을 세우신다면 저희 세계헌터사무국은 궁신님을 도울 수 없게 됩니다. 아니 오히려 세계헌터사무국과 적이 되실 겁니다.”

“저와 적이 되고 싶으십니까?”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계헌터사무국은 저쪽과는 애당초 적이 될 수 없는 입장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떤 생각을 가지던 세계헌터사무국은 제황님의 적이 될 겁니다. 아니 세계헌터사무국 뿐만이 아닙니다. 제황님이 지금껏 생각지 못한 모든 것들이 당신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는 제황을 설득하려 최대한 간절히 말했다.

궁신은 절대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 무력 때문이 아니다.

그가 가진 상징성이라는 것이 있다. 만약 궁신이 경고한 그 일이 벌어진다면 인간의 구심점이 될 존재는 오로지 궁신 밖에 없었다. 저들 또한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설득할 자신이 있었다.

“당신의 생각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게는 그들과 다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더 먼 길을 돌아가게 되실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궁신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상대는 인간의 역사에서 그 흐름을 조율하던 이들이었다. 저들의 궁극적인 목표도 인간 문명의 영원한 존속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재미있네요.”

그러나 궁신은 역시 요지부동이다.

“그들에게 말하세요. 하고 싶은 것 다 해 보라고...”

#2

사무엘 린이 돌아가고 저들의 대답은 꽤 빠르고 신속하게 돌아왔다.

[소말리아가 오랜 내전을 마치고 통합정부를 출범했습니다. 또한, 수십 년간 쪼개져 난립하던 소말리아의 군소 군벌들이 오늘 극적인 타결을 통해 하나 된 소말리아로···. 이에 UN과 각국은 소말리아 국민들을 위한 그들의 거국적인 행보에 긍정적 메시지와 함께 지원을 약속...]

[이에 따라 기존에 소말리아 내의 헌터 병력에 대한 대대적인 통합 및 재편이 거론되는 가운데 궁신을 통해 유지되던 ...]

[세계헌터사무국은 기존에 궁신에 의존하던 9티어 몬스터 레이드 체계를 타파할 범세계적인 초 엘리트 헌터 집단의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발표에는 미국의...]

[오늘 OECD 20개국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기존 마나석 시장의 노후화된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일본정부대표인 일경제부장관 오카다 다케시의 발표에 대하여...]

단 하나로도 언론의 1면을 장식할 소식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꽤 빠르네요.”

일주일 정도는 시간이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마치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듯 단 삼일만에  제황이 가지고 있던 근간들에 대한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장 소말리아만 하더라도 무적성과 계약되어 있던 정확히 말하면 무련천가가 자본을 쏟아부은 헌터들은 일제히 해산 후 소말리아 헌터사무국 소속으로 편입될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떠돌고 있었다.

소말리아 정부에서는 하나된 소말리아를 위해 제황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중이었다. 외세가 개입된 헌터 세력을 자국에 두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힘의 효율적인 사용과 소말리아의 힘을 강화하는데 그들을 놓아달라는 유화된 표현이 포함된 날강도 같은 소리를 점잖은 단어를 사용한 공식서신을 보내왔다.

국민의 애국심이니 어쩌니 하고 포장했지만 실상 까보면 소말리아 인들에게 애국심 따위는 그다지 없었다. 찢어져 산 지 백 년이 넘은 그들에게 무슨 애국심을 바라겠는가. 물론 몇몇 이들은 동요했지만, 그것은 애국심 때문이 아닌 가족들과 경제기반이 소말리아에 있기에 갈등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할 범세계적인 초 엘리트 헌터 집단이나 마나석 시장의 시스템 개편 따위야 당장에는 큰 영향이 없겠지만 일단은 그것들도 제황의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제황이나 말하는 이루미는 그다지 감흥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이루미의 표정은 오히려 밝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제황이 더는 고삐를 쥐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들은 제황이 자신들의 힘을 모르기에 대항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제황이 지닌 무력을 인정하기에 저런 짓이나 하는 것이리라. 무력조차도 오판했다면 아예 말려 죽이려 했을 테니까. 그렇지만 오히려 저들은 모르고 있다. 제황이 어떤 힘을 숨기고 있는지... 그리고 그가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말이다. 그가 고삐를 놓는 순간 벌어질 일에 대해 무지하다.

“이루미 사무장”

“네.”

“그동안 미뤄왔던 것 허락합니다.”

“감사합니다.”

제황의 말에 이루미는 감사하다는 말로 답했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이루미였다. 그리고 제황이 공격당하는 것은 그녀가 섬기는 신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있어서도 안 되며 시도되어서도 안 되는 불경한 짓이었다. 그리고 이제 신의 허락이 떨어졌다. 저들에게 철퇴를 내릴 허락 말이다.

“잠시 쉬셔도 되겠습니까?”

이루미의 말에 제황이 빙그레 미소지었다.

사실 그동안 제황은 꽤 빡빡한 일정으로 살아왔다.

평범한 9티어몬스터 레이드를 포함해 세계 전역에서 발생하는 몬스터 웨이브를 비롯하여 새롭게 발생하는 게이트의 안정화까지 제황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별로 없었다.

휴가를 준다니 고마울 지경이다.

“바라 마지않던 시간이네요.”

“어쩌면 제황님에 대한 공격이 더 거세질 수도 있습니다. 제황님의 신성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합니다.”

신적인 존재가 된 제황이 가진 힘의 근간을 알기에 이것을 묻는 건 조금 조심스러운 이루미였다. 그렇지만 이루미의 물음에 제황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전혀 흔들리지 않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제황이 지닌 신성은 이미 포화상태였다.

아직 인간의 영역에 한걸음 걸치고 있기에 허용할 수 있는 한계치라는 건 명확히 존재했고 그 한계치는 이미 오래전에 충족한 상태다. 막말로 신성 중 절반이 떨어져 나가도 지금의 제황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네.”

이루미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주인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이제 거리낄 것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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