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심상치 않아. -1
#1
시간이 흘렀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이야. 역시 궁신···. 깔끔하네.”
벙커처럼 둥근 모양의 낡디낡은 벽돌 건물 한편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 속에서는 검은 음영 속에 쓰러지고 있는 사족보행의 거대한 몬스터가 비치고 있었다.
-우리 독일의 도시 헤센에 급작스럽게 나타난 9티어 몬스터 포워르5가 드디어 쓰러졌습니다. 이로써 이번에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서는 ...
독일은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몬스터들에 고유 네임드를 만들어 부르지 않았다. 모든 몬스터는 포워르로 통일하며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몬스터만이 넘버링을 하여 부를 뿐이다.
“우리 캐나다도 한 번에 싹 쓸어 주면 안되나.”
사람들은 이제 9티어 몬스터를 과거의 그 공포의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 어떤 몬스터라도 궁신이 한 번 뜨면 레이드는 시간문제일 뿐이기에 웨이브는 일종의 천재지변 정도로 인식이 바뀌는 중이다.
“에이, 정부 새끼들...”
자신이 말하고도 그것이 희망 사항일 뿐이라는 걸 알기에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꽤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으며 또 여러 프로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이제 세계는 궁신에 의한 9티어 몬스터 레이드를 적극적으로 바라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몬스터에 의해 가족과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몰매를 맡아도 싼 짓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궁신에 의해 몬스터들의 공포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각국의 언론들은 자국이 보유한 몬스터에 대한 국가 자산 혹은 자원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타국의 헌터에게 자국 몬스터 레이드를 맡겨서는 안 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궁신의 레이드 방침에 대해 조심스럽게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궁신의 레이드 조건은 작전권과 9티어 몬스터에 대한 소유권이었는데 이것을 개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일부 소수의 의견일 뿐이지만 그 목소리가 점차 커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가장 먼저 9티어 몬스터의 자국 내 처리 방침을 공식화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궁신이 나타나기 전에도 이미 몬스터레이드 최강국의 지위에 있던 그들은 군과 헌터의 조합을 통해 자국 내에 서식하던 9티어 몬스터 2개체를 성공적으로 레이드하는데 성공했다.
국력이 있는 국가들은 차츰 궁신에 대한 레이드 요청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자체적으로 9티어 몬스터를 처리하기 힘든 레이드 후진국들은 꾸준히 궁신의 도움으로 영토를 수복하고 있다.
-젠킨스! 어디야!
“아, 나 밖에 있어.”
동료의 부름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교대해야지!
“알았어. 화장실만 갔다가 바로 갈게.”
동료의 외침에 그는 혀를 차며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후 벙커로 들어간 그는 곧장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두터운 강철문을 지난 그가 안으로 들어가니 수십 개의 모니터와 레이더와 같은 시설이 가득 들어찬 방이 나타났다.
반쯤 벌거벗은 채 의자에 기대앉아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던 그의 동료가 말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지?”
“뭐긴 통조림이랑 스튜지.”
그의 말에 괜히 물었다는 듯 혀를 쭉 내민 동료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빌어먹을, 다음 보급 때는 제발 비타민이 들어간 과일 좀 보내라고 해. 이러다가 병 나겠다.”
동료의 불평에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알겠어. 과일 통조림이라도 부탁해보지.”
“그래. 그럼 이만 교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스트레칭을 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몬스터경계초소의 일정은 세 사람이 12시간씩 로테이션으로 근무를 한다. 산간오지에 배치되어 6개월에 한 번씩 교대하니 연애는커녕 여자구경도 힘들다. 국가직이라는 것과 높은 급여가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 할 짓이다.
그가 가볍게 걸음을 옮겨 관제실을 나서려 할 때였다.
위이잉! 삐빅! 삐비비빅!
갑자기 요란한 알람음과 함께 방안의 기기들이 요란한 소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화면이 붉게 점멸하며 ‘경계’라는 글씨가 곧바로 ‘비상’으로 전환된다.
“왜 이래?”
밖으로 나서려던 동료가 서둘러 자리로 돌아오며 외쳤다.
그가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경계초소에 설치된 기기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측정기기들이 마나농도의 변화를 알리고 있었는데 그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게 그들이 맡고 있는 지역이 거의 지름 100km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게 미쳤나? 왜 오작동이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결과이기에 기기의 오작동을 가장 먼저 의심하는 게 옳다.
“이거 전에도 이랬어?”
“아니, 석 달 전에 수리 한 다음에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수리를 한 거야.”
본래 매뉴얼 대로라면 당장 쉼터에서 쉬고 있을 동료를 부른 후 관제실을 폐쇄한 채 본부에 관측기록을 비롯한 모든 데이터를 전송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는 일단 기기의 오작동으로 단정했다. 그것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생각이 맞는지 잠시 후 모든 기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져 버렸다.
“제길, 수리하는 놈들 다시 불러야겠군.”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
“보고는 무슨 보고야. 네가 보낼래? 사방 100km 전역에 마나 상승 감지라고?”
그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다. 그가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수치는 얼마나 올랐어?”
“수치?”
동료의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모니터를 조작하더니 이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역시 오작동이야. 3mc에서 순식간에 200mc 까지 폭등했어. 전부다 균일하게...”
“200mc면 측정 한계잖아.”
“그러니까. 이게 말이 돼?”
그들이 보유한 장비가 몇십 년 동안 사용한 유물이라고 해도 200mc 라는 마나 수치는 이론상 500m의 게이트 출몰을 이야기한다. 아니 측정 한계치까지 올랐으니 그것이 500m 일지 혹은 700m 일지 알 수도 없다. 당장 이 기록을 본부에 보냈다가는 졸다가 꿈이라도 꿨냐고 문책당할 것이다.
“그래. 오작동이겠지.”
혹시나 하는 불안을 떨군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관제실을 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휴식을 취할 때다. 물론 조금 전 있었던 기기 오작동에 대한 기억은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버린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이 겪은 현상은 찰나지만 세계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2
축구장 4개를 이어붙인 듯한 거대한 착륙장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착륙장을 비치는 조명판이 불어오는 광풍에 흔들린다.
위이이이이....
잠시 후 세찬 바람과 함께 한 대의 비행체가 내려앉았다. 사방에 달린 길이 네 개의 로터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비행체를 향해 장비들을 끌고 다가왔다.
“움직여!”
“예!”
궁신의 전용 전투기체인 아트라스다.
한 정비요원이 아트라스 하부에 달린 큼직한 레버를 조작하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거의 1톤 차량 크기에 버금가는 아트라스의 듀얼마나전지가 내려왔다.
“임마! 건드리지 말고 일단 식혀야지! 잠 안깨?!”
쩌렁쩌렁한 고함소리가 울린다.
“아! 네 죄송합니다!”
고참의 외침에 막 마나 전지로 손을 가져가던 정비요원이 옆에 놓인 긴 호스를 마나전지 옆에 부착된 파이프에 연결했다. 보통의 마나전지라면 이런 복잡한 절차가 필요 없겠지만 아트라스에 달린 듀얼마나전지는 두 개의 7티어 마나석을 사용해서 그런지 열이 심하게 발생했다.
워낙 고가의 전지이기에 기체를 운용하지 않을 때는 액체질소를 주입해 강제적으로 전지를 식힌 후 보관해야 한다.
그때 아트라스의 측면이 열리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주위를 잠시 돌아본 뒤 해치에서부터 솟아난 계단을 밟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비팀의 팀장으로 보이는 산적수염의 남자가 그를 향해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그를 향해 마주 고개를 숙인 남자가 역광으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체를 손짓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보다 제가 너무 늦게 온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오늘은 쉬고 내일 하시죠.”
그의 말에 정비팀의 팀장이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닙니다. 독일까지 날아가 몬스터를 레이드하고 오신 궁신님만 하시겠습니까.”
“하하, 예.”
독일에서의 레이드를 끝낸 후 곧장 돌아오니 하필 시간이 새벽이 되어 버렸다. 곤히 자고 있는 이들을 깨워버린 미안함에 아트라스의 주변에 개미떼처럼 붙어 기체를 정비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끝나시면 내일은 하루 푹 쉬게 해주세요. 정비도 중요하지만, 제게는 여러분들의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지켜지지 않을 것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지적할 생각도 없다. 그가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정비를 하기에 아트라스는 지금껏 한번도 자잘한 기기오작동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아트라스를 판매한 미국 쪽에서 보내온 정비요원들이 모두 지쳐 정비 노하우까지 하나둘 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싸늘한 가을바람과 새벽하늘의 별무리를 감상하며 무적성 내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정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인영이 제황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네.”
이루미가 제황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걸었다.
“러시아 쪽에 잡혀 있던 다음 주 레이드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런가요?”
이루미의 말에 제황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해외레이드를 가는 뛰는 클랜 같은 경우에는 일정이 취소되었을 경우 위약금을 걸어놓지만, 제황은 그런 것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상대하는 계약의 대상이 국가인 것도 있고 위약금 같은 것을 걸게 되면 개도국이나 국력이 떨어지는 국가들은 강대국들의 장난질에 놀아날 수 있었다.
그것의 부작용이 지금의 경우다.
“시베리아 날아갈 일은 사라졌으니 정비팀에서 좋아하겠네요.”
“...”
제황의 대답에 이루미는 뭔가 말을 하려고 우물쭈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화내지 마세요.”
이미 이루미가 무슨 마음인지 알고 있는 제황이다.
최근 들어 이런 식으로 취소되는 레이드가 많아지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레이드가 취소 되었다고 그녀가 이러는 것이 아니다. 이루미가 화를 내는 것은 저들의 이중적인 행태 때문이었다.
막상 취소한 것은 저들이면서 언론에 발표할 때는 마치 궁신쪽과의 협상이 틀어진 것처럼 보도하기 때문이다. 웃기는 것은 게이트가 발생하거나 혹 9티어 몬스터들이 서식지를 이동하며 난동을 부려 웨이브가 발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제황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황은 그 요청을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루미의 본래 성격 같아서는 차후 그들의 레이드 요청을 모조리 캔슬해 버리겠지만 제황은 모두 받아주도록 했다.
“그렇지만 저들에게도 응당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황이 지닌 바 영향력을 조금만 더 공격적으로 사용한다면 이런 식으로 간을 보는 짓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미국이나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래 들어서는 다른 국가들도 서서히 기존의 레이드 조건에 손을 대려 세계헌터사무국에 기웃거리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