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육아원의 제황-4
#1
“어딥니까!”
봉사자들 중 하나가 달려가서 이 사실을 국회의원들을 안내 중인 원장에게 알렸다.
봉사자가 조금만 더 경황이 있었다면 원장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겠지만 숨 가쁘게 달려와 한 말이 ‘조···. 조 선생님이 의원님들 경호원들이랑···.’ 까지었기에 깜짝 놀란 원장은 주변에 누가 있는가도 생각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온 것이고 그로 인해 함께 있던 다른 국회의원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모조리 몰려온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그들은 자신들의 동료인 홍의원을 한 청년이 겁박하고 있으며 그의 경호원들이나 보좌관이 모두 땅에 쓰러져 있자 초록은 동색이라고 사실관계 따위는 따지지 않은 채 제황을 적으로 판단해 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빌런입니다! 경호원! 저자를 제압해!”
“네!”
일제히 대답하며 각자의 무기를 빼 드는 경호원들의 숫자는 무려 사십이다.
국회의원들을 호위하는 이들이기에 어중이떠중이는 없다. 그리고 팀장급인 5성은 제한적인 면책권 또한 지니고 있었기에 손을 과하게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앞으로 용감히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원장과 선생들이었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원장 당신도 저 빌런과 한패입니까?!”
국회의원 중 하나가 외쳤다.
“조선생은 빌런이 아닙니다!”
원장이 해명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것은 국회의원들에게 기름을 끼얹은 것과 같은 짓이었다.
“지금 저 모습을 보고서도 그런 소리가 나오시오? 그리고 원장 당신!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아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해야 할 육아원에 빌런 따위가 숨어 있다니! 말이 된다고 보시오!”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곳은 궁신님의 영역입니다! 조금만 진정해 주십시오. 곧 진상을...”
어떻게든 국회의원들을 말리려 하는 원장이다.
설혹 조선생이 진짜 빌런이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흥!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어쩌면 이 사건에 궁신도 관련되어 있을지 모르지.”
그들중 하나가 의기양양하게 외치자 다른 이들도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운 좋게 하나 건졌다. 자칫 궁신의 위명에 치명적인 흠결이 될 수도 있는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상대가 지닌 치부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협상’을 하는 것은 그들의 영역이다.
한마디로 여론을 이용해 궁신을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들의 말에 원장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원장의 뒤를 따라온 두 선생 또한 얼굴에 갈등의 빛이 어렸다.
“비키시오!”
“안됩니다!”
원장은 고집스럽게 자리를 고집했다.
“워, 원장님...”
선생들은 원장을 말리려 했다.
일반인인 그들로서는 더이상 이런 위협을 감당하기 힘든 것이다.
“어허! 원장!”
일촉측발의 긴장감이 장내에 흘렀다.
그리고 그 군상들을 바라보는 제황의 표정은 묘하게 비틀려 있다.
그는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 하나를 날렸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바로 국회의원들을 향해서 말이다.
“멈춰!”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다.
홍의원의 경호원들이 모두 쓰러져 있다. 상대는 전투의 흔적 하나 보이지 않는다. 최소 6성의 빌런이거나 그에 준하는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뜻인데 무기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방심하지 않는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에 준하는 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는 경호원들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허어···.”
“흐윽···.”
“컥···.”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사십여 명이 자리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예외 따위는 없다. 아니 있기는 있다. 바로 국회의원들과 원장 그리고 선생님들이다.
“이게 무슨···.”
장내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말도 못 한 채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다.
헌터 사십여 명이면 정규공대급의 인원이다. 5성급의 팀장급 두 명이 섞여 있고 나머지는 모두 4성급 헌터들이다. 그런 그들이 신음 한 조각 내뱉고는 쓰러져 버렸다. 미동조차 없다.
“안 죽였습니다.”
제황이 원장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
“자, 자네, 정체가 뭔가?”
떨리는 음성으로 원장이 물어왔지만, 제황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공허한 문답일 뿐일 테니까. 원장을 따라온 두 선생의 근처로 원장을 이끌었다. 그리고 원장이 먼저 쓰러졌다. 엉겁결에 원장을 받아든 두 선생들도 이내 정신을 잃었고 그들은 제황이 가볍게 받아 바닥에 뉘였다.
-기억 좀 살짝 조작해줘.
-네가 그냥 하지?
-난 아직 서투르잖아. 이들의 몸에 후유증을 남기고 싶지 않아.
-흠, 알았어. 그런데 저치들은?
궁기가 묻는 게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여섯 명의 국회의원이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만약 평상시라면 어떻게든 도망쳤을 테지만 제황의 의지가 그들의 심령을 강제하고 있는 상태다.
-저것들은 후유증이 좀 남아도 되겠지.
제황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다듬었다. 처음 느끼는 종류의 분노라서 처음에는 제어하기가 어려웠지만,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다. 흔히 구도자들이 도력을 쌓는 것을 닦는다고 표현한다. 제황은 이 말이 아주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닦는다.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거울을 닦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맞이하는 것이 첫 번째다. 세상의 때를 타면 거울은 흐려진다. 그리고 뿌옇게 변하거나 변형되어 자신의 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한다.
그렇기에 구도자들이 사람의 인적이 없는 곳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거울이 더럽혀지는 것을 늦추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그것도 정답은 아니다. 단지 세상의 때가 두려워 피한 것일 뿐이다. 임시방편일 뿐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히 닦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을 닦아낼 때마다 거울은 비로소 진정한 색을 가지게 된다.
세상에 수십 수백 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모든 오욕칠정을 모두 겪고 그것을 모두 닦아내야 한다. 닦고 닦아 마침내 그 모든 것을 거둬내야 본래의 색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제황은 조금 전 새로운 의미의 작은 시험하나를 이겨 냈다. 분노든 사랑이든 고통이든···. 그 종류는 깨알같이 많다. 모든 분노가 같지 않듯 그것들 하나하나를 모두 일깨워 이겨 내야 한다.
제황은 이 육아원에서 새로운 모습의 사랑을 체험했다.
일종의 부성애라고 할 수도 있다. 동정에서 오는 사랑일 수도 있다. 인간의 본능에 남아있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각인으로 인해 발생한 호르몬에 의한 사랑일 수도 있다. 혹은 미세하게 남은 죄책감도 있다.
그리고 지금 그것들을 닦아냄으로 온전한 신의 길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층 완성된 내면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 성과를 시험해 보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을 이곳에 전부 산채로 묻어버리고 싶지만,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에 너희같이 썩어빠진 것들을 묻는 것 자체가 죄스럽기에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을 고맙게 알아라.”
“허억...흐읍...”
제황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들은 벼락을 맞은 듯 온몸을 뻣뻣하게 굳었다.
시술 준비는 완료되었다. 제황이 지금 하려는 것은 주변의 기운을 조절하는 것의 확장판이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제황은 주위로 마음이 안정될 수 있도록 기운을 뿜어냈다. 단순한 의지로 한 것이지만 실상은 꽤 복잡한 매커니즘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마음을 안정되게 만드는 기운의 실체는 상대의 기억 속에서 안정되었던 때의 추억과 그 기분을 일깨워내는 것이다. 정신 조작 계열 헌터들의 수법이 단순히 상대의 머리에 ‘안정하라’라는 뇌파를 강제적으로 생성시키는 거라면 제황이 하는 것은 상대가 지닌 기억들을 일깨워 각각의 맞춤 형식으로 치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법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의사이듯 죽이는 법도 가장 잘 아는 것은 의사다.
인간의 정신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된 제황은 상대의 마음을 죽이는 방법도 능숙해졌다.
“크헉···. 끄으으으...”
국회의원들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거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제황은 지금 그들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의 흔적을 찾아 당시의 고통을 그들의 정신에 가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것뿐이라면 저들에 대한 징벌이 아니다. 신의 의지는 좀 더 다채로운 옵션으로 그것을 펼칠 수 있었다.
“강도 10배”
“으커커컥...”
작은 신음성과 함께 그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강도 20배”
“커어억”
제황은 조금씩 고통의 크기를 늘려갔다.
굳이 빠르게 진행하지 않았다. 그것이 제황이 저들에게 가하는 징벌이다.
제황 또한 그것을 미미하게나마 체험하고 있었다. 저들에게 가할 징벌의 수위를 결정하기 위해 그들의 기억 속에 묻어 있는 죄악의 흔적을 엿보는 중이다. 물론 저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제황의 공고한 정신력은 그런 고통 따위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지켜본 결과...
“강도 100배”
“쿨럭...”
코와 두 귀에서 서서히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인간으로서의 존중심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100배는 그야말로 치사량의 기운이다.
더 이상 지속하면 저들의 뇌가 버티지 못한다.
“그만..”
“허어...”
제황이 기운의 주입을 멈추자 가벼운 신음과 함께 그들의 고개가 떨어졌다.
고통에서 벗어나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제황은 저들이 얼마나 고통 따위 알아주고 싶지 않다.
저들 또한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남을 짓밟고 오르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인간들이다. 학교에서는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고 배웠다. 그러나 저들의 기억 속에서 봉사라는 글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남을 찍어 누르고 올라 더 큰 권력만을 쟁취한 기억뿐이다. 권력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소시오패스라는 표현이 가장 적당하리라.
“너희는 부디 인간부터 되라.”
제황의 눈이 잔인하게 빛났다.
뇌를 포맷했으니 이제 새로운 것으로 채워 넣을 차례다.
“좀 서툴지만 이해해라.”
“으···. 으아아악!”
#2
“샌님!”
“선생니이임!”
“으아앙!”
동물농장에 도착하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쪽 구석에 모여 웅크리고 있던 아이들이 마치 어미 오리를 본 새끼들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어 온다. 굳이 일부러 안정과 평화의 기운을 뿌릴 필요는 없다.
“으아아앙!”
“선생니임...”
울음을 일부러 그치게 할 필요도 없다. 운다는 것은 일종의 자연스러운 스트레스의 발산과도 같다. 머리를 문지르고 등을 토닥여주자 언제 울었냐는 듯 눈가를 슥슥 문지르며 ‘헤’ 하고 웃는다.
‘아.’
제황은 이 작은 아이들의 애틋한 배려심에 가슴에 작은 파문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자신이 불안해하거나 울면 선생님이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이렇게 밝게 웃고 있다. 이런 작은 아이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려 한다.
“조 선생님 괜찮으세요?”
걱정스러운 표정의 봉사자가 제황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이들이 가시를 세우고 있으니 지금까지 한편에 서서 아이들을 돌보고만 있었다.
“네. 괜찮습니다.”
“아휴, 다행이네요. 그래도 그 사람들이 완전히 막돼먹지는 않···.”
말을 하던 봉사자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아주 찰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자 봉사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 왜 여기 와 있지?”
잠시 간 기억의 혼선을 일으킨 듯 주위를 둘러봤지만 이내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따스함이 스며든다.
-어때 내 솜씨가?
-최고야.
궁기가 우쭐거리며 말하지만, 충분히 의기양양할 만하다. 제황의 그것이 원시인 수준이라면 궁기의 기억조작은 그냥 현미경 수준이다. 게다가 그녀의 기억조작은 현장에 있었던 이들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육아원에 있는 모든 이들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것을 제황은 알고 있다.
외적인 자잘한 사후 관리에 대해서는 이루미에게 문자로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이니 이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뭐 문제가 생겨도 상관없다. 더 귀찮게 한다면 진짜 이 대한민국을 뒤집어엎어 버릴 작정이다.
“자아, 우리 토끼 쪽으로 한번 가볼까?”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