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
육아원의 제황-3
#1
“하하하, 얘야. 웃어야지?”
“으아앙! 시져!”
두툼한 손이 아이의 두 어깨를 잡는다. 보기에는 마치 아이를 안아주는 듯 보이지만 억센 그의 손아귀 힘에 옷 속에 감춰진 아이의 피부에는 시커먼 멍이 들 지경이다.
“아파아!”
“아, 거참 성가시게···.”
아이를 앞에 세운 채 다정하게 앉아 사진을 찍으려던 노인은 카메라를 든 경호원이 고개를 젓자 문신처럼 짓고 있던 웃음을 지웠다.
“으아아앙!”
“조선생니이임!”
“으아아앙! 샌니임!”
아이들은 목 놓아 울고 있다. 봉사자들이 아이들을 달래려 했지만 울음은 멈출 줄을 모른다.
“어이, 그 봉사자님들 아이들 좀 다독여 봐요!”
보좌관이 고압적으로 소리쳤지만, 봉사자들로도 역부족이다. 애초에 조선생이 만들어놓은 평화로운 풍경에 배경처럼 서 있는 그들이었다.
“의원님 꼭 이 아이들과 찍으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울고 있는 아이를 귀찮다는 듯 옆으로 획 밀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국회의원을 향해 보좌관이 말했다. 평범한 고아원 시설이라면 원장이 자진해서 나와 사진찍기 적당한 아이를 미리 상황별로 준비해 놓았겠지만, 이곳에서 그런 편의를 바라기는 무리가 있었다.
“이봐. 변보좌관.”
홍의원의 말에 보좌관이라고 불린 중년사내의 허리가 90도로 굽혀진다.
“예. 홍의원님.”
“궁신과 관련된 삼천교국에서 온 이 아이들을 내가 이렇게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언론에 알리면 궁신이 똥을 싼다고만 해도 환호하는 대중들에게 내 표가 얼마나 늘어날지 알고 하는 소린가?”
“지당하십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궁신이 직접 투자하고 있는 곳입니다. 행여 아이들을 험하게 다룬다는 게 다른 사람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허허. 여기서 그렇게 함부로 입을 놀릴 사람이 어디 있나?”
홍의원은 주위를 둘러보며 마치 들으라는 듯 말했다.
그의 위압적인 눈빛에 아이들을 돌보던 봉사자들도 그와 눈이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인다. 아니 그가 두렵기보다는 주변에 서서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경호원들이 두려운 것이리라. 척 봐도 헌터라는 것을 광고하듯 냉병기가 들어있는 듯한 검은색 가죽 가방을 하나씩 등에 매고 있다.
게이트가 완전히 안정화 된 대한민국이기는 하지만 아직 간혹 몬스터들은 띄엄띄엄 출몰하기에 신분과 지위가 있는 이들은 헌터로 이루어진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편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홍의원은 현 여당의 중진급 의원으로 약 십여 명의 헌터들을 항시 자신의 곁에 두는 편이다.
굳이 몬스터들이 아니더라도 정책에 불만이 있는 빌런이라는 존재의 테러 위협도 있었고 그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있으면 여기저기 쓸모가 많다.
“쟤 괜찮네. 좀 데려와 봐.”
홍 의원이 다른 아이들을 다독이고 있는 조금 큰 여자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을 달래는 폼이 그래도 말귀는 알아들을 것 같은 눈치다.
“예. 의원님. 그럼 저 아이 사진만 찍고 가시죠.”
“허 참, 걱정은! 알겠네.”
그도 이곳에서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면 곤란하다는 것을 아는지 얼굴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보좌관이 근처에 경계하던 경호원에게 외쳤다.
“야. 걔 좀 데려와 봐.”
조금은 짜증 섞인 보좌관의 외침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경계하던 경호원 사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진다. 근래 일이 없어 위험도 없고 가오만 잡으면 되는 국회의원의 경호원으로 취직한 그였다. 그렇지만 마냥 편한 일만은 아니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다.
별 같잖은 인간이 지위를 믿고 자신에게 반말로 야!어이! 거리며 부를 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다. 이번 일만 끝나면 어떻게든 클랜쪽에 줄을 대서 해외로든 어디든 빠져나가야지 하고 마음먹으며 그는 보좌관이 말한 아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꼬마야. 너 이름이 뭐냐!”
기분이 좋지 않으니 나오는 말도 곱지 않다. 그의 말에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마치 보호하듯 가로막고 있던 아이가 말했다.
“현지예요.”
“그래. 현지야. 저기 저 할아버지랑 사진 한 번만 찍자.”
그 나름은 어르듯이 말했지만, 현지라는 아이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하다.
그래도 사진을 찍기만 하면 물러날 듯 싶기에 망설이고 있을 때다. 그새를 못 참은 남자가 현지의 팔을 꽉 붙잡았다.
“거참! 성가시게 구는군. 사진 하나만 찍으면 된다니까.”
“악! 아파요!”
아이의 목에서 비명이 터지자 그는 짜증에 인상을 굳혔다.
그가 아이에게 재차 목소리를 높이려 할 때였다. 순간 그의 안면을 밟아오는 운동화 하나가 있었다.
퍽! 퍼어어엉!
“꾸엑!”
그의 얼굴을 밟은 운동화가 잠시 후 땅에 발목까지 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 운동화에 밟힌 머리 또한 함께 땅속에 박혀있다.
장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워낙 얼토당토않은 광경을 목도했기 때문일까. 그 운동화의 주인 말고는 모두 사고가 정지된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다. 운동화 주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린다.
“봉사자님들은 아이들을 인솔해서 꾸러기동물농장으로 이동해 주세요. 동물농장을 관리하시는 차씨 어르신한테는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왔다고 하시면 될 겁니다.”
“예. 예예.”
그의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차분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봉사자들이 마치 로봇이라도 된 듯 기계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울던 아이들은 모두 울음을 멈춘 채 운동화의 주인을 바라보고 있다.
제황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씩씩이방! 선생님은 이 나쁜 아저씨들이랑 이야기 좀 하고 뒤따라 갈 테니 먼저 가서 동물농장에 있어요. 알겠죠?”
평범한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에는 신의 의지가 담겼다.
그 의지는 방금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조 선생님의 벌인 꽤 충격적인 장면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감싸 안아준다.
“네.”
아이들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봉사자들을 따라 이동할 준비를 한다.
봉사자들과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마법에라도 걸린 듯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제황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장내의 분위기가 단숨에 일변했다. 천국의 꽃밭에서 단숨에 구층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져 내린 것 같다.
“감히 내 아이들을...”
드드드드....
대지가 천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제황 조차도 지금 끓어오르고 있는 생소한 느낌의 분노는 제어가 되지 않고 있다.
마치 DNA 깊숙한 곳에 각인되어 있었던 그것이 조금 전 광경을 방아쇠로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그가 참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은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분노를 제어하지 않고 그대로 표출했다면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뒈지기 싫으면 꺼져라.”
제황은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60대의 노인에게 말했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노인의 입이 한일자로 다물어졌다.
“자네. 내가 누군지 아나?”
핏덩이가 나타나 자신에게 막말을 내뱉는다.
“네가 누군지는 차차 알아갈 거고 일단은 꺼져라.”
“허허, 당돌한 놈이군.”
의연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그는 정치인이다. 웃음속에 분노를 숨길 줄 안다.
반쯤 벗어진 머리를 빗어넘기고 무테안경을 낀 그의 얄팍한 눈이 가늘어진다.
자신이 누구던가. 현 야당의 대표최고의원이며 삼선의원이다. 그리고 이전 정권의 대통령을 세웠던 킹메이커로써 차기 대권주자로 다시금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 요즘이었다.
가뜩이나 이곳에 도착해서 자신을 맞이하는 원장의 반응 같은 것으로 기분이 상해 있었는데 웬 어수룩한 핏덩어리가 감히 자신의 경호원을 밟았다. 아니 하는 꼴을 보니 분명 빌런이다. 기껏 로또 같이 얻은 힘을 믿고 천지분간 못하고 나대는 애송이가 감히 자신의 사람을 밟은 것이다.
현실의 무서움을 가르쳐줘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이곳에는 자신의 사람 밖에 없으니.
“경호원”
처처처척...
경호원들이 그의 앞을 신속히 가로막으며 들고 있던 가죽케이스에서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날이 번들거리는 각종 냉병기와 살벌한 자동소총 등이 튀어나온다.
철컥...철컥...
총알이 장전되고 안전핀이 풀린다.
육아원에 총성이 난무하기 직전이다.
그들의 손을 바라보며 제황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곳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써 그런 위험한 물건들은 소지하고 계시면...”
휙...
손을 좌에서 우로 슥 쓸어버리자 그들의 손에 들려있던 무기들이 마치 누군가가 두들긴 듯 획하니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안됩니다. 또한 아이들의 정서발달을 위해 그런 위협적인 모습은 ...”
꾸욱...
앞으로 뻗은 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튀기자 그의 손으로부터 시작된 기파가 동심원을 일으키며 터져 나갔고 그것에 노출된 헌터들은 너나할 것 없이 심장 부위를 붙잡으며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피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적대적인 마나를 섞어 가볍게 방출하자 그것에 노출된 헌터들의 마나엔진들은 휘발유 엔진에 경유를 쏟아 부은 것과 같다. 즉각 오작동을 일으키며 그 주인들의 마나로드를 좀먹어가기 시작했다.
제황이 직접 해소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헌터질은 그만둬야 하고 만약 무리해서 그것에 저항하려 하면 그대로 폐인이 되어 버린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상대를 속을 반병신을 만들어버리는 잔인한 수법이다. 그렇지만 제황 입장에서도 나름 아량을 베푼 것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에 피를 뿌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네! 네놈은 누구야!”
믿고 있던 경호원들이 모두 자리에 쓰러지자 그제야 상대가 만만치 않은 상위 빌런이라는 것을 깨달은 홍의원의 보좌관이 발작적으로 외쳤다. 물론 제황은 그 물음에 답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니 답해줄 필요가 없다.
마주친 눈으로 분노의 의념을 담아 날리자 그것에 노출된 보좌관의 양복바지가 축축하게 젖어가기 시작한다. 망막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 그의 심령을 직접 두들기는 신의 힘이다. 평범한 그가 저항하는 것은 어불성설과도 같다.
“흐극...”
그는 그대로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해버렸다.
이제 홀로 서 있는 것은 홍의원 뿐이다.
그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외쳤다.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대명천지에 빌런 놈이 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겁박해!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어! 자식아! 내가 검사 하던 시절에는 너 같은 놈은 아예 사돈에 팔촌을 족쳤어!”
처음에는 가늘게 떨리던 그의 목소리가 이내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빌런과의 전쟁에서 검사로 활약하다가 운 좋게 방송에서 그를 바른말 잘하는 주인공으로 드라마가 방영되어 히트를 치고 그것을 잘 이용해 정치판에 입문한 그였다. 어차피 방송이 만들어준 이미지일 뿐이지만 그것을 마치 진실인 양 선거 때마다 막말을 서슴지 않기로 유명한 그였다.
“...”
“어서 썩 꺼지지 못해!”
눈을 부릅 뜬 채 입에 거품을 문다.
나름대로 거친 정치판에서 이십여 년 버틴 정치인의 패기다. 문제는 지금 그가 정말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멀리서 달려오는 한 떼의 사람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