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육아원의 제황-2
#1
제황이 무련육아원에서 봉사한 지 한 달이 흘렀다.
본래 봉사자라면 이미 돌아가야 했지만, 어느 틈에 제황의 호칭은 ‘조형빈 봉사자님’에서 ‘조선생님’으로 바뀌었고 제황이 맡은 3세에서 5세 아이들은 ‘씩씩이방’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중이다.
웃기는 건 본래 맡았던 20명의아이들 중 상태가 좋아진 10명이 일반 선생님들의 방으로 옮겼다는 것인데 여전히 맡은 아이 숫자는 그대로라는 것이다.
무련육아원 원칙상으로 한 교사에게 이렇게 많은 아이가 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하지만 현재 이곳에 삼천교국에서 온 고아들의 숫자가 200여명 가량이 된다는 것과 일반적인(?) 교사들 보다 이 조형빈이라는 봉사자 청년에게 맡기는 것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훨씬 좋다는 이유로 황에게는 그대로 20명이라는 아이들이 배정된 것이었다.
“참 신기해.”
오늘도 채 선생은 창문 밖 놀이터에 있는 조선생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읊었다.
제황을 가만히 서서 팔짱을 낀 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보육교사의 입장에서 볼 때 완벽히 빵점인 자세다.
교사는 항상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또한, 아이들 앞에서 팔짱을 끼는 것은 자칫 아이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안 좋은 행동이었다. 문제는 저 조선생 앞에서는 그런 상식들이 모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샌님! 샌님!”
“아부아!”
기본 지식이 부족한 그를 위해 봉사자 네 사람을 붙여줬지만, 그들도 그다지 할 일이 없다. 평범한 3세에서 5세 아이들은 잠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저 아이들은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포진하고서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놀고 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풍경이지만 저 아이들이 무련육아원에 있는 아이들 중 가장 까다로웠던 아이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거의 기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봉사자님들은 아이들 씻길 준비 해주세요.”
“예.”
새로 들어온 봉사자들은 그를 아예 선생님으로 알고 있다.
분명 아이를 다루는 것에 능숙하지는 않은데 그가 한마디 하면 아이들을 조금의 반항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곁에 서기 바쁘다.
오죽했으면 채 선생은 그가 헌터가 아닐까 생각까지 했다.
그가 일으키고 있는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명해 보기 위해 그녀는 자료를 검색했고 헌터들 중 정신계열에 특화된 이들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렇지만 가능하달 뿐인지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다.
정신계열 스킬을 지닌 헌터들은 희귀한 만큼 몸값이 비싸다.
설혹 그 등급이 노멀이고 전투에 활용할 수 없다고 해도 보통은 고소득 전문직으로 들어가지 이런 곳으로 오지는 않는다.
아무튼, 그의 존재 덕분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요즘이었다.
“채 선생님.”
“네. 원장님.”
원장이 들어오자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본래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있던 그는 궁신이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을 위해 세계최대규모의 복지단지를 건설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자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의 원장으로 취임했다.
“내일 무련 양로원으로 가는 방이 다섯 개 방인가요?”
“네. 햇살이, 달님이, 별님이, 구름이, 하늘이 방이요”
“준비는 이상 없겠죠?”
“예. 근래 선생님들이 많이 충원되서 손쉬웠어요. 그리고 거리가 가까우니만큼 아이들이 어리더라도 소풍 삼아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고요.”
“잘되었군요.”
이 무련복지단지는 단지라는 이름보다는 솔직히 하나의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사회 소외계층만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된 곳이 아니다. 두 개의 대학병원급의 병원시설뿐만 아니라 초중고의 학교시설, 그리고 스포츠경기장에서부터 온갖 위락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한 아이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곳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른들을 위한 대규모의 마을들도 조성되어 있고, 그 시설들도 모두 최고를 지향했다. 물론 고아들과는 다르게 그 입주조건은 매우 까다로웠다. 조건은 사회적 신분이나 돈의 유무가 아니다.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가에 따라서 입주의 가부가 결정되었다.
아무튼, 무련육아원의 원장인 그는 요즘 무련실버타운과 육아원을 연계해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시너지 효과를 바라고 있었다. 둘 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이들이니까.
“아. 그리고 나흘 뒤에 도지사와 국회의원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그렇게 알고 다른 선생님들에게 말씀 좀 해주세요.”
“예.”
원장의 말에 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부터 한 번 방문하겠다고 사정하던 작자들이니 대충 안내만 잘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절대 쓸데없는 청소 같은 것으로 봉사자분들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연하죠.”
원장의 말에 채 선생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전에 있던 곳에서는 그런 이들이 방문한다고 하면 오히려 원장들은 방문 한 달 전부터 선생과 아이들을 닦달해 매일같이 청소를 시켜댔었다. 화단에 잡초 한 포기 놓쳤다고 고사리 같은 아이 손까지 동원하는 것에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 이유는 국가 지원금을 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서다.
아이들을 온종일 사진 들러리로 내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련육아원의 원장은 그런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정서 발달과 육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국가세금이 고아들을 위해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집행하는 이들이 그것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는 것 자체가 온당치 못하다.
고아들이 커서 한 명의 올바른 어른으로 자라난다.
그 어른은 국가의 구성원 중 하나가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것이고 국가가 투자한 자금의 찾아냄의 효과를 국가에 안겨줄 것이니 전혀 고마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원장이기에 고작 방문 나흘 전에야 별것 아니라는 듯 알리는 것이다.
물론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무련육아원 아니 이 무련복지단지 자체가 국가의 지원이 단 1도 받지 않기 때문이었다. 순수 궁신이 보유한 재력으로 유지되는 복지단지다. 물론 궁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는 제황이 이 복지단체에 쏟아붓는 모든 자금에 대해 세금감면 혜택과 자잘한 것으로 행정지원을 해주고 있지만 그런 것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건물시설 내부로는 허용치 않기로 미리 이야기되었으니 그렇게 아시고요.”
원장의 말에 채 선생이 조금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언짢아하지 않을까요?.”
“와서 사진 한 방 찍고 자신이 궁신이 만든 복지단지를 지원한다는 기사 한 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치들이에요.”
“네.”
#2
“아부아!”
“삼수야. 흙 먹으면 안돼. 현지야. 삼수랑도 잘 놀아줘야지.”
“그렇지만 삼수는 말을 못해서 재미없대요.”
“현지가 선생님이랑 약속한 것 있지?”
“네! 약속은 지켜라!”
“그래. 선생님은 현지를 믿어요.”
씩씩하게 대답한 현지가 코를 질질 흘리고 있는 삼수의 손을 잡고서 아이들 무리로 데려간다. 아무리 의지를 통해 아이들의 경계심을 풀어준다고 해도 아이들을 로봇처럼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씩씩이반.”
“네!”
제황의 나지막한 한마디에 아이들이 앞다투어 대답한다.
“모두 사이좋게 놀아요.”
“네!”
“아이들이 조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들어요.”
“아닙니다.”
제황이 고개를 저었지만,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만 입을 여는 그에게 한번 대화를 붙인 봉사자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계속해서 물어왔다.
“그런데 조 선생님 그거 진짜예요?”
“네? 뭐가요?”
“선생님이 그 뭐냐 무련천가에서 암행 감찰하러 내려오신 분이라는 말이 있어서요. 뭐 그냥 뜬소문일 뿐이겠고 저희 같은 봉사자들이야 별로 상관없지만 무련천가에서 내려오셨으면 혹시 그 궁신님도 보셨나요?”
“아뇨. 저는 그냥 평소에 육아원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했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시지만, 저도 사실 여러분과 같은 봉사자일 뿐이고요.”
그의 대답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후덕한 여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휴, 역시 그렇죠? 말 많은 여편네들이 모이기만 그 소리를 하니 내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호호호. 그런데 어느 학교 다녀요? 역시 아이들 다루는 거 보면 사회복지학과? 군대는 다녀 왔어요?”
궁금했던 것을 모두 풀어놓을 참인지 잠시도 입을 쉬지 않는다.
그때였다. 제황의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의 벨소리가 울린다.
“저 잠시만 다녀올 테니 아이들 좀 봐주시겠어요?”
“아. 네. 다녀와요.”
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한 제황이 그녀에게 부탁하자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이들이 조금 불안해하기는 하지만 요 며칠 함께 생활했기에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제황이 폰을 들고 자리를 옮기려 할 때였다. 그의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온 아이가 그의 다리를 턱 붙잡고 머리를 비빈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주빈이라는 아이였는데 들어온 인적사항을 보면 삼천교국이 와해되기 한달 전 부모 둘 모두가 몬스터의 먹이가 되는 바람에 다른이들의 집에 맡겨졌던 아이라고 되어 있었다.
맡겨졌던 가정에서도 순탄치는 않았는지 유독 눈치를 많이 보고 용변도 제대로 가리지 못한다. 안쓰럽게도 밤에 잘 때는 제황의 품이 아니면 아예 잠도 못 드는 불쌍한 아이였다.
제황은 무릎을 꿇은 채 푸근한 표정으로 아이를 꼭 감싸 안았다.
처음 목적은 신의 길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제황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반만 맞는 말이었다. 오히려 이 아이들 덕분에 제황은 근래 들어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이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그냥 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안해진다.
근래 들어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제황은 앞으로는 이곳에 꾸준히 찾아올 생각이다.
수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자신이 한 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이곳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는 제황이었다.
“주빈아. 선생님 쉬아 하고 올게.”
제황의 말에 아이가 제황에게 조물조물한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 건만 이것의 의미만은 아는지 손가락을 내미는 아이의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하다.
“그래. 약속...”
손가락이 워낙 작아 간신히 걸치는 수준이지만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제황은 곧 폰을 들고 한쪽의 한적한 공터로 향했다.
아이들에게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진 제황이 이윽고 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이루미씨. 말하세요.”
-네. 제황님. 약 세 시간 전 파라과이에서 게이트 출현으로 예상되는 마나변동이 감지되었습니다. 현지 조사에 의하면 최하 중상급의 게이트가 생성될 예정이며 게이트의 종류는 다크어스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게이트가 가장 위험할 때가 언제일까? 그것은 바로 갓 생성되었을 때다. 물론 게이트가 열린다고 무조건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십중팔구는 크든 작든 웨이브가 일어난다. 특히나 다크어스 게이트는 뚫린 곳의 특성상 골치 아픈 몬스터들이 몰려나오기에 그것을 막으려면 많은 희생이 불가피했다.
게이트를 영구봉인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최하 중상급의 마나파동이면 그 크기는 최대 도쿄에서 발생했던 게이트 크기가 생성될 수 있었다. 당시의 사례로 볼 때 봉인의 실패할 확률도 크기에 안전확보 차원에서 세계헌터사무국에서 제황에게 지원요청을 보낸 것이다.
“게이트 활성화까지는 어느 정도 남았습니까?”
-빠르면 열흘 안입니다.
열흘이라는 말에 날짜를 꼽던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략 일주일 정도로 일정을 잡으면 아이들과 가기로 한 소풍 약속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나겠군요. 일정 조정해서 최대한 빠르게 끝나도록 조율해 주세요.”
-일주일이시라니 혹 다른 일이 있으십니까? 만약 중요한 일이시라면 거부하셔도 됩니다.
그녀가 알기로 근래에는 일이 없는 제황이 이렇게 시간제한을 건다는 것은 뭔가 큰일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비쳤다. 물론 그것이 단순히 아이들과의 소풍 약속일 뿐이지만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으리라.
“아닙니다. 그보다 복지단지의 주변의 땅들에 대한 매입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요?”
-그 일은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몇몇 웃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땅값 상승을 노리고 들어온 외지인들이었고 정부에서 투기억제지구로 지정하는 바람에 모두 적당한 가격으로 협상이 들어간 상태입니다.
“좋습니다. 차후 그 일과 관련해서는 관련 부서를 신설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으세요. 언제까지 이루미 사무장이 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지금은 제황의 자잘한 수발을 도맡아 하고 있는 그녀지만 그녀의 본질은 헌터였다. 그것도 최근에는 신덕의 도움을 받아 권제에 거의 근접한 9성급의 실력을 지닌 헌터다.
-아닙니다. 제황님의 일에 도움이 된다면...
“잠시만요.”
제황은 이루미의 말을 끊고 고개를 돌렸다.
비록 아이들과 거리를 떨어져 있지만, 그의 영향권 안에 있기에 그는 눈감고도 아이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영향권 내에 낯선 기파들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기파가 불안함으로 마구 요동치는 게 느껴진다.
“어떤 놈이...”
그 말과 함께 그의 신형이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