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63화 (263/301)

# 263

드루와-4

제황이 삼천교국을 멸망시켰다는 소식으로 다시금 세계가 들썩거렸다.

얌전히 한국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고 있던 궁신이 뜬금없이 엘어스로 날아가 삼천교국을 멸망시켰다. 그 모든 것이 삼천교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단 며칠 만에 삼천교국으로 알려진 엘어스 최대의 빌런 집단을 와해시켰다는 것에 세계가 경악했다.

미국을 위협하던 드래곤을 레이드 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곧바로 세계 최대의 빌런단체인 삼천교국을 도모한단 말인가. 그 규모로만 치면 세계 최대 규모의 빌런 집단이었다.

작은 소국이라고 표현해도 무리 없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제황은 단신으로 그들의 수도로 쳐들어가 수뇌부들을 모조리 척살했다.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드래곤이 뜬금없이 삼천교국을 압박하는 위치에서 나타나 일각에서는 궁신이 처음부터 드래곤의 주인이었고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를 점령한 것도 본래 궁신의 음모였다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만약 제황이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면 굳이 그런 음모 따위는 필요 없다는 중론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가 보인 신위는 무시무시했다.

실제 전투시간은 고작 3시간...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고용한 용병헌터들이 재빨리 들어와 혼란의 수습을 했지만 삼천교국의 피해는 집계조차 불가능하다.

아무리 삼천교국이 1급빌런단체로 등록되었고 원칙적으로 척살이라는 명분이 있기는 했지만, 제황은 솔직히 이번 일에 대해 사람들이 꽤 반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본능적으로 배척하는 법이다. 헌터들에 대해서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을 강제력 있는 법을 통해 제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아직도 팽팽한 상황이다. 생활 가까운 곳에 있는 헌터에 대해서도 그런데 완전히 탈인간급이 되어 버린 그리고 엘서울에서 거의 천여 명에 달하는 인간을 학살해버린 그를 사람들이 경계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게 세상사가 생각대로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인들은 제황에게 찬사를 보냈다.

물론 이번 삼천교국의 사후처리에 대해 일절 자신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그것을 세계헌터사무국과 대한민국에 맡겼다는 것, 그리고 무적성과 무련천가가 의도적으로 제황에 대한 이미지메이킹에 신경 쓴 것도 컸지만 그가 보이는 행보는 세상의 모든 죄악을 저 혼자 짊어지려는 고독한 구도자이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온 외로운 신과 같은 모습으로 비췄기 때문이다.

손 한번 까딱하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영화와 권세가 그의 것이었고 미녀들이 그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기 위해 줄을 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 따위에는 일절 관심 없다는 듯 자칫 오명을 쓸 수도 있는 그 일을 거침없이 실행했고 사람들은 기존의 예수,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인 4대 성인을 그를 포함해 5대 성인으로 바꾸자는 여론까지 일 정도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열광은 슬슬 도를 넘어서고 있었고 그것은 삼천교국을 멸망시킴으로 절정을 이뤘다. 제황이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 달이 흘렀다.

#2

“이제 궁신은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온 세계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향후 인류의 레이드는 곧 그가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고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가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만히 앉아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좀 더 대한민국에 애국심을 가지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아울러 하루라도 빨리 그가 이 대한민국에서 가족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호시탐탐 레이드 최강국 자리를 노리는 이들로부터 대한민국의 궁신을 보호하는 첫걸음입니다.”

꽤 장황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결론은 그거다. 궁신을 좀 대한민국의 사회시스템에 순응시켜 대한민국에서 떠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국회에서 낮잠이나 쳐 자던 국회의원들이 민생현안 챙기라고 할 때는 정파 싸움에 날이 새는 줄 모르다가 궁신에 대한 회의가 있다고 하자 뭐 주워먹을 게 있나 하고 참석한 것이다.

“제가 알기로는 무적성에 궁신의 여자가 있다라고 했는데 그 여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궁기에 대해서는 아직 세간에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최대한 빨리 그 여자에 대해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습니다. 그도 성인입니다. 저는 사실 이런 회의 자체를 왜 열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현 여당의 유정민 의원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테이블을 펜으로 탁탁 두들겼다.

본래 지금 회의는 삼천교국에서 발생한 유민들에 대한 처우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개최된 회의였다. 그런데 모여서 하는 말들이 전혀 쓸데없는 소리니 부아가 치미는 것이다.

그의 말에 현 야당의 의원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걸 몰라서 그럽니까? 그 여자가 혹 반사회적 사상을 지녔거나 혹은 타국으로의 이민을 궁신에게 조른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봐요.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궁신의 아랫도리 관리 부서라도 하나 만들자는 겁니까?”

“그게 아니라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아직 어리다는 겁니다. 특히 혈기왕성할 나이 아닙니까. 여자 때문에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말마따나 여자가 홀딱 벗고 덤비면 궁신이라고 별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같이 완성된 인격인들이 나서서 조율해 줘야 하는 겁니다. 아니 그리고 그 여자가 혹 타국에서 접근시킨 스파이일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는 야당 의원들을 바라보며 유정민 의원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특히 지금 완성된 인격이라고 떠들어댄 의원은 룸싸롱에서 여비서들을 홀딱 벗기고 놀다가 기자들에게 들켜 지금 윤리위에 회부된 이였다.

“아무튼, 이대로는 안 됩니다. 궁신을 국가 자산으로 관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우리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도록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는 여당도 협조 좀 해주세요!”

“흥, 구치소에 갇혀 있는 전 대통령의 비리를 밝히기 위한 특별법 제정 때도 이렇게 적극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습니까?”

유의원이 비이냥거리며 답했다.

“거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요!”

“아니 내가 못할 말 했습니까?”

“거 박의원 좀 앉아요.”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아픈 곳 살짝 찔렀다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며 유정민 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나라의 지도층이라는 족속들은 세상이 뒤집혔어도 아직 제자리다.

“그럼 좀 더 건설적인 이야기를 해봅시다. 오늘 이 회의의 주제에 대해서는 한글을 아시는 분들이니만큼 알고 계시겠지요. 바로 삼천교국에서 발생한 유민들에 대한 수용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추경예산의 편성과 특별법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유민들의 숫자가 최소 십만은 넘을 거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수용할 장소도 문제입니다.”

삼천교국에는 많은 인종이 섞여 있었다. 그렇지만 그 원류가 대한민국이니만큼 한국인들이 가장 많았고 그들이 희망한 국가 또한 대한민국이 가장 많았다.

특히 최근 궁신으로 인해 세계적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몬스터로부터 가장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대한민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 그냥 모두 북쪽으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어차피 개발할 곳이 산적한 동네인데”

“수십 년간 사이비에 찌들어 살던 사람들을 무작정 북쪽으로 내몰자는 게 의원이 할 소리입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들일 수는 없잖소. 그들을 수용할 곳을 찾자면 분명 사회적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이봐요. 그걸 해결하는 게 우리 일 아닙니까. 당신들이 그렇게 관리 하고 싶어 하는 궁신의 일입니다.”

유의원의 말에 다른 의원들의 입이 한일자로 다문 채 고개를 돌렸다.

행여 자신들의 지역구가 있는 곳이 그들의 수용시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때 현 야당의 당대표인 홍계원이 유정민의원에게 훈계하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문제는 급하게 처리할 게 아니에요. 그리고 추경이라니 지금 한창 북쪽 개발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쏟아 부어지고 있는데 그럴 돈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궁신으로 인해 한창 경제가 호황기에 들어갔음에도 이렇게 국가예산이 부족하게 된 상황에서 현 집권여당은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어험 ”

현 야당 당대표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유의원은 순간 이성을 잃을 뻔 했다.

여당이 뭔가 하려고만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심보가 또 나왔다.

현 대한민국의 예산이 빡빡한 근본 원인은 현 야당 소속이었던 전임과 전전임 정권의 책임이 컸다.

지금은 구치소에 들어가 있는 이현우 대통령이 온갖 이권단체와의 야합을 통해 전횡한 국가예산도 천문학적이라고 추측되고 있지만, 그가 알기로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다.

잘못된 정책에 쏟아부어 허공에 날린 예산들만 다 합쳐도 그의 수십 배는 훌쩍 넘으리라.

그 정권들의 책임을 벗어날 수 없는 저들이 저런 소리를 하자 부하가 치밀었다. 이제 고작 1년이 넘은 정권에게 10년짜리 똥을 싸놓은 정권들의 잘못을 떠넘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유의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서류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같은 여당의원들이 그를 말렸지만, 유의원은 서류를 다 챙긴 후 회의장을 나서며 모두가 들으라는 듯 말했다.

“미리 사과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번 문제에 대해서는 현대통령께서 제게 특별히 부탁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회의장을 나서는 유의원에 대해 본채 만체하던 의원들이 그의 입에서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자 모두 그를 주목했다.

“무련천가에서는 대통령께 삼천교국의 유민들에 대한 특별한 당부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도움이 필요할 시 궁신이 직접 나서겠다는 약속도 받았지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이 그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군요.”

“유의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런 사실이 있었으면 응당 우리에게도 말을...!”

의원들의 고성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나섰다. 차마 부끄럽지만, 이 일은 더이상 저들에게 맡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들이 응당 해야 할 일에 궁신의 힘을 빌리는 것은 부끄럽지만 저들을 믿고 있다가는 궁신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제어하려고 하는 저 의원들과 동색으로 보일 것 같아 같은 자리에 있기도 싫다.

#3

며칠 후 많은 국회의원들이 이형우 대통령의 비리와 연루되어 금배지를 반납해야 했다. 현 야당 출신의 이형우 대통령과 관련된 비리였고 의원직을 내려놓은 이들이 대부분 야당에 적을 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었기에 초반에는 정권탄압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부르짖으며 국회 앞에 단식농성을 벌이거나 삭발 따위를 하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그들의 편에 서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자랑인 궁신에 대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나눌 만한 대화가 아닌 주제를 가지고 그를 모독한 것이 한 언론의 특종보도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은 외부로 드러난 단편적인 이유였을 뿐 시류에 민감한 각 언론이 이번 대형 비리사건의 뒤에 무련천가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매우 지양해야 할 문제해결 방법일 것이다. 어쨌건 패권을 지닌 단체에서 비밀리에 주도하여 국가 기강을 흔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먼 훗날 식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의외로 긍정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고 평가를 내렸다. 어쨌건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형우 대통령과 그 전정권이 비리와 잘못된 정책을 통해 잃었던 국가예산을 어느 정도 매꿀 수 있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징수함과 당시 제정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더욱 철저히 죄값을 치루게 만드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