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드루와-3
#1
콰아아아...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섬광이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삼천교의 신도 몇몇은 자리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모았을 지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생각처럼 자비로운 신의 기운이 아니었다. 오직 멸살의 기운만 가득할 뿐이다. 삼천성궁 최상단에 찬란하게 빛나는 십자가... 가 녹아 사라지고 있다.
콰콰콰콰!!!
빛의 기둥은 성스러운 신의 은총의 발현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악마였다. 너무나도 잔인한 악마의 이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삼위일신을 모시는 삼천성궁의 꼭대기 삼분지일을 통째로 날려버릴 리가 없지 않은가.
우르르릉...
반토막난 십자가가 공중으로 날아 바닥에 떨어진다.
“아, 아아...”
그 광경은 엘서울의 시민들 모두가 목도할 수 있었다. 엘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던 십자가가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삼천교의 본단이... 그들 믿음의 중심지이자 삼위일신의 살아있는 아들 교주가 머무는 곳....
그곳이 공격당했다.
지금 이 순간은 엘서울을 위협하는 드래곤이든 내성에서 갑자기 출현한 붉은짐승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으아아아악!”
“삼위일신이여!”
도시 전체가 아비규환에 빠졌다.
드래곤을 견제하고 있을 3,4구역을 제외한 1, 2구역의 모든 신도들이 삼천성궁의 성벽으로 몰려들었다.
#2
박살 나버린 삼천성궁의 꼭대기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후드를 휘날리는 그는 오만한 눈으로 밑을 쓸어보았다. 수천 아니 수만의 눈이 그를 바라보지만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절반 정도 타버린 뭔가를 들어 올렸다. 금으로 장식된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성복을 입은 살이 뒤룩뒤룩 찐 돼지다. 피부는 햇빛 한 번 쬔 적 없는지 뽀얗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고통 때문인지 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었다.
“교, 교주님이다.”
“교주님.”
교주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두려움과 경외심에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오래된 세뇌교육으로 차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다. 신의 아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불경이라고 알고 있는 그들이다.
사이비 종교라도 그것이 수십 년이 되면 그것조차도 하나의 헤게모니를 가져버리게 된다.
제황은 손에 잡은 삼천교의 교주라는 놈의 면상을 노려봤다. 이름이 이시용이라고 했던가. 우습게도 가장 약한 놈인데 오직 이놈만 살아있었다. 온몸을 도배하듯이 걸치고 있는 온갖 아티펙트들이 제황의 공격에서 용케 몸을 보호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타버려 숯덩어리가 된 팔다리가 쑥쑥 재생되고 있었다.
“꾸륵, 사, 살려줘.”
“살고 싶은가?”
만약 그가 지금 제황의 생각을 알았다면 그냥 고통 없이 죽여 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걸 모르는 그는 한 가닥 삶의 희망이 보이자 제황에게 간절히 말했다.
“나, 나를 살려준다면 네가 이곳에서 저지른 죄를 모두 사해주고 천국에 내 오른편 자리를 약속하겠...우어어억”
뿌드득...
더 들을 생각이 없는 제황의 손이 놈의 입을 붙잡고 압착기로 즙을 짜내듯 비틀어 버렸다.
털려나온 피 섞인 옥수수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이건 뭐 말을 섞기도 싫다. 아니 이 이시용이라는 놈도 사이비에 물든 그렇고 그런 놈 중 하나일 뿐이리라.
꾹...
“네가 저지른 만큼 가져가주마.”
제황의 손이 놈의 오른손목을 그러쥐었다.
의아해하던 이시용의 얼굴이 엄청난 고통에 하얗게 질려간다.
팔이 비틀어지고 있다.
“뭐, 뭐...으...으아!”
제황은 그의 팔을 그대로 뽑아 버렸다.
생살을 비틀고 근육을 끊으며 뼈가 으스러지고 핏줄과 힘줄이 주우욱 뽑혀 나온다.
뿌드드득... 퍼어어억!
“으아아아악!”
팔을 몸에서 찢어져 나가는 고통이 어떨까? 고통으로 인해 입을 떡 벌린 이시용이다. 그러나 그는 그 고통을 마저 느낄 새도 없이 다시금 새로운 고통에 직면했다.
퍼어어억! 으지직
“깨에에엑!”
솟구쳐 오른 무릎이 이시용의 다리 사이를 무참히 파고 들어갔다.
남성의 그것이 으깨버린 것도 모자라 골반까지 치고 올라갔다.
온갖 오물이 흘러나온다.
“흐어...흐어..”
너무나 큰 고통에 순간 정신줄을 놓아버린 이시용은 입에 개거품을 문 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직 죽으면 안 돼.”
마음 같아서는 단숨에 목을 꺾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간절하지만, 그것은 이놈에게 너무 편한 죽음이다. 고통이라는 아주 편한 수단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제황은 그를 들어 올렸다. 두 다리가 허공중에 대롱거린다. 그대로 손을 놓기만 하면 수십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을 칠 것이다.
제황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천의 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 너희의 신이 있다. 구할 자는 나서라. 그리고 너희의 믿음을 증명하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수만 개의 눈이 제황의 손에 잡힌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침묵의 이유는 경악과 분노다. 곧이어 광기에 휩싸인 광신도들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우와아아! 교주님을 구하라!”
수천 명의 인파가 물밀 듯이 삼천성궁으로 몰려 들어갔다. 엘서울의 존폐보다도 더욱 중요한 교주가 잡혀있다. 사람들은 성난 병정개미마냥 성궁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선두에 서서 하늘을 날 듯 달려오는 삼천교의 고위 헌터들이 있었다. 삼천교국의 피라미드 최상단에 위치해 수십 년간 온갖 사치와 향락에 물들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그들이다.
그 수만 어림잡아 수백이다.
“좋아. 깔끔하게 구분하기 좋군.”
입꼬리를 말아 올린 제황은 교주를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나 교주는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허공중에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하는 듯 그를 움켜쥐고 있다.
제황은 무한고에서 비천궁을 꺼내 들었다. 아스트라페가 단일공격력에서 으뜸이라고 한다면 지금과 같은 난전 상황에서는 비천궁이 최고다.
학살을 일으킬 것이다.
애초에 제황은 선함을 지향하는 신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악신도 아니다. 모든 것을 징벌하는 신성으로 나아갈 뿐이다. 기울어진 저울추를 가운데로 맞추는 징벌의 신이다. 그리고 그런 제황의 눈에는 지금 개미떼처럼 밀려 올라오는 놈들의 지난 악행이 느껴지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의 원혼이 느껴진다. 추악하고 더럽고 음습하다.
이들에게는 갱생의 여지 따위는 없다.
‘어차피 너희는 세상으로 나가도 해악이 될 뿐... 너희의 업은 내가 가져가주마.’
시위에 화살을 건 제황이 화살의 방향을 날 듯이 뛰어 올라오는 삼천교의 헌터들이 아닌 공중을 가리켰다.
드드드득...
이윽고 시위를 한계치까지 잡아당긴 제황이 작게 중얼거렸다.
“춤추며 관통하는 소나기...”
파파파팟!!!
비천궁의 시위를 놓는 순간 쏘아져 나간 붉은 화살이 수십 개로 폭발하듯 갈라진다. 그리고 그것 하나하나가 마치 분수에서 뿜어진 그것처럼 사방을 향해 빛살같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아악!”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붉은 화살들에게는 자비라는 건 없었다.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마주쳐 올라오는 헌터들을 추적해 나가며 하나하나 꿰뚫고 있다.
피해도 소용없다. 숨어도 소용없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오직 그들이 저지른 죄과의 크기만이 있을 뿐이다. 제황의 시위가 한번 튕겨질 때마다 수십 수백개의 붉은 섬광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힌다.
“버텨라! 올라가!”
“으아악!”
파파파파파파파팍!!!
“대응해!”
벽 뒤에 숨어도 소용없다. 가로막는 것은 모두 관통하며 지나가는 악마의 화살이다.
견디지 못한 한명이 총기를 겨누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다른 헌터에 의해 무산되였다.
“안 돼! 교주님이 계신다!”
“미친! 다 죽게 생겼어!”
감히 교주를 쳐다보는 것조차 불경하다 하여 화형당하는 것을 일상으로 알고 있는 그들에게는 교주를 향해 무기를 겨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세지옥에 떨어질 불신자에게 천벌을!”
“비겁한 놈! 교주님을 놔줘라!”
“교주님을 방패로 삼다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이 제황을 향해 손가락질 하기 바쁘다.
“하.”
제황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다. 방패막이라니...
오히려 지금 제황이 교주를 이렇게 앞세운 것은 그나마 삶에 대한 미련이 있는 이들을 골라내기 위한 것이었다. 교에 대한 충성보다 자신의 목숨이 중요한 이들이라면 살려주려는 의도다. 제황은 살인귀가 아니다. 그렇지만 인간도 아니다. 단죄하는 신 일 뿐이다.
“천군천사 출격!”
퍼어어엉! 두두두두두....
삼천성궁의 한 면이 터져나가며 한 떼의 검은 무리가 튀어 나왔다. 거무튀튀한 중장갑을 걸친 것들이다. 과거 동철이 프로토타입이었다면 저것들은 완성된 것들이다. 당시의 동철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강력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지닌 그것들...
물론 제황은 우습기만 할 뿐이다.
어느새 무기를 아스트라페로 바꾼 제황의 손이 시위를 놓는 순간...
위이이이... 퍼어엉...
돌격해 들어오던 천군천사들이 있던 자리에는 검게 타버린 잿더미만 휘날릴 뿐이다.
#3
-궁기? 너 존재감이 좀 얕은 것 같다? 나만 보잖아?
-잉? 이이잇! 이것들이 감히 나를 무시해!
제황의 말에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궁기가 분노했다.
조금 전까지는 장난처럼 날뛰었다면 제황의 도발을 들은 궁기가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다.
쾅! 쾅쾅쾅! 콰콰쾅!!!
“으아악! 무너진다!”
“피해!”
붉은 강기에 휩싸인 웬만한 아파트 크기의 거체가 뛰기 시작하자 건물들이 무너져 내린다.
파파파팟!
그때였다. 제황의 머리 위로 수십의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최상급의 은신능력과 더불어 지금껏 단 한순간을 위해 숨죽이고 있던 삼천교의 비밀병기들이다.
‘투천사’
천군천사가 새롭게 제작된 비밀병기라면 이들 투천사들은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삼천교의 진정한 비밀병기 들이었다. 그 숫자는 90명... 그들이 일제히 제황의 측면을 노리며 쏘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제황은 이미 그들의 존재를 눈치 채고 있었다.
감히 자신이 주위를 맴돌며 은신을 펼치고 있기에 가소로웠을 뿐이다.
그들의 무기가 제황이 서 있던 공간을 휩쓸었지만 제황의 몸은 이미 공중을 날고 있었다.
한계까지 당겨진 아스트라페가 비명을 지른다.
끼이이이!
“죽어라.”
빠우우우우!!! 콰콰쾅!!!
제황의 몸을 중심으로 맹렬히 회전하는 붉은 번개의 다발이 이내 화살 끝에 맺히고 그것이 지상을 향해 쏘아져 나아갔다.
그리고... 그 화살은 투천사들과 더불어 남아있는 삼천성궁의 대부분을 집어삼키며 모조리 박살내 버렸다.
우르르르...쾅! 콰콰쾅!
“무...무너진다!”
“피해! 으아악!”
뛰어올라오던 이들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인간의 몸에서 뿜어진 천재지변은 삼천성궁을 무차별적으로 잠식해 들어간다.
우르르르...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삼천성궁이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구...궁신이다.”
그를 알고 있는 몇몇이 조금 전 제황이 내뿜은 신위를 알아보았는지 손에 든 무기를 분분히 떨어뜨렸다. 하나 둘 무릎을 꿇는다.
“이길 수 없어.”
삼천신교를 징벌하기 위해 진짜 신이 강림했다. 경외심과 무력감이 사람들 사이로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 서서 오만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제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