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드루와-2
#1
“뭐라고?”
브라운의 눈이 커졌다. 소식을 가져온 부하의 말을 믿을 수가 없다.
그는 그의 앞에 세레나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소리쳤다.
“드래곤이 왜!”
이 엘어스에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 존재. 먹이사슬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것이 바로 드래곤이었다.
그리고 삼천교는 과거 그 사실을 아주 뼈저리게 체험한 경험이 있었다. 수인족들을 납치해 노예로 쓰려 했다가 날아온 드래곤의 패악질에 수만 명이 죽어 나갔다.
만약 당시 교주가 드래곤에게 지구에서 가져온 것들을 내밀며 무릎을 꿇고 자비를 간청하지 않았다면 삼천교국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멸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드래곤이 다시 나타났다. 수만의 몬스터들을 이끌고 말이다.
“지구에서 들어온 최신정보에 의하면 궁신에 의해 드래곤이 패퇴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일로 같은 인간인 저희에게 화풀이하는 것이 아닌가 추정 중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야! 드래곤이 졌다고? 궁신에게?”
“예.”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기가 차는 소식이다.
고작 인간이 드래곤을 이긴다? 삼천교국에는 당시 드래곤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드래곤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고 있었다.
브레서 한 번에 수백이 녹아 사라졌다. 더욱 두려운 것은 드래곤이 몬스터들의 지배자라는 것이다. 드래곤이 한번 뜨면 수많은 몬스터들이 함께 나타난다. 그런데 그 드래곤이 졌다.
사실 이번에 계략을 펼쳐 세레나 로스차일드를 사로잡은 것도 드래곤의 움직임과 연관이 있었다.
그 강력한 드래곤이 지구로 넘어갔으니 지구에서의 삼천교국에 대한 관심도 약해질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한참 성장세를 보이는 마나석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 인질을 확보하고 더 나아가 세레나 로스차일드를 삼천교국의 사람으로 만들어 로스차일드 가문과 협상을 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드래곤이 지구에서 궁신에게 패퇴하고 온 것도 모자라 그 화풀이를 삼천교국에 하려 한다?
“다행히 드래곤이 엘서울에 침범하지는 않았습니다.”
“음?”
“몬스터들로 엘서울을 포위한 채입니다. 어쩌면 과거처럼 적당한 제물이면 물러갈 수도 있다는 판단입니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군. 그리고?”
“일단 완성된 천군천사들을 모두 가용해 성궁에 배치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본성은 성전체제로 전환될 거라 알려왔습니다. 그에 따라 외부 출입을 삼가고 지시를 기다리라 했습니다.”
성전체제라는 것은 삼천성궁과 엘서울을 분리하는 것이다.
모든 정예전투전력을 성궁에 집중시키고 성문을 폐쇄한다. 엘서울의 시민들에게는 지극히 잔인한 결정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남은 삼천교였다.
“천군천사들이라...”
최근 삼천교국에서 가장 집중하여 제작하고 있는 병기들이다.
그것들과 삼천교의 고위헌터들이 힘을 합치면 드래곤이라도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하리라.
“알겠다. 나가봐라.”
“예.”
부하를 내보낸 브라운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세레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입가에는 작은 조소가 걸려 있다.
“드래곤이 나타났다니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글쎄?”
사실 세레나가 지금 조소를 띈 것은 드래곤이 궁신에게 당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r
궁신이 누군지 알고 있는 그녀다. 최근에 확인한 궁신의 정체, 그는 과거 그녀가 가슴에 품고 있던 남자다. 그래서 웃음을 지은 것데 브라운이 그 웃음을 오해한 것이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삼천교를 따를 생각이 없습니까?”
“억류당한 내 부하들이라도 풀어준다면 생각해 보지.”
그의 말에 세레나는 다리를 꼬며 답했다. 어차피 저들은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확신이 있는 그녀였다. 게다가 드래곤이 나타나 삼천교국은 위기에 처했다. 자신으로서는 시간을 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브라운을 너무 교양인으로 봤다.
“아쉽군.”
그의 입에서 경칭이 사라졌다.
파지지직...
“꺅!”
그녀가 앉아 있던 의자로부터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세레나의 몸을 감전시켰다. 아무리 그녀가 6성의 헌터라지만 그런 고위헌터들을 제압하기 위해 고안된 특수의자였다. 세레나가 축 늘어지자 브라운은 벽에 걸려있던 구속도구를 가져다가 그녀를 의자에 고정하기 시작했다.
“억울해하지 마라. 어차피 이건 오늘 내일하던 것이었거든. 차일피일 미루던 것 지금 빨리 해치우는 게 낫겠지.”
“무...무슨...”
간신이 몸의 경직이 풀리는 중이지만 이미 결속된 구속장치로 인해 움직일 수 없다.
“어차피 고고하고 콧대 높은 네년이 순순히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큭...”
브라운의 음흉한 눈빛을 본 세레나가 팔다리를 꿈틀거리며 반항했다.
“후후, 어차피 세뇌작업에 들어가면 이런 맛깔스러운 반항은 없을 테니 미리 맛을 봐야지.”
브라운은 세레나의 앞섶을 두 손으로 붙잡고 좌우로 거칠게 찢어버렸다. 브래지어에 감싸인 그녀의 탐스러운 뽀얀 가슴이 튀어나왔다. 욕정 어린 눈으로 그 가슴을 바라보던 브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버클을 풀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더럽게 고고한 네년에게 삼위일신의 성은을 내리려는 거지.”
“꺼져! 더러운 새끼!”
“후후, 아직도 입이 살았군. 그 입에서 즐거운 비명이 나오게 해주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브라운의 손이 세레나의 하복부로 향했다.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기는 하지만 브라운 또한 헌터였다.
찌이이익!
바지가 찢어지자 매끈한 둔부와 속옷이 드러났다. 브라운은 탐욕에 가득 찬 눈길로 그녀의 다리 사이를 바라봤고 세레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다리가 구속되어 있어 반항할 수 없다. 브라운의 더러운 손가락이 그녀의 그곳으로 슬슬 다가갈 때다.
퍽...
짧은 타격음과 함께 브라운의 몸이 옆으로 허물어져 버렸다.
“아, 아아...”
이를 질끈 깨물고 있던 세레나의 눈이 커졌다.
허물어지는 브라운의 뒤에는 한 남자가 가만히 서 있다. 검은 후드로 온몸을 가린 정체불명의 남자다.
내밀었던 주먹을 가볍게 거둬들인 남자가 시선을 돌려 세레나의 몸을 바라본다.
“누구?”
세레나가 물었지만, 상대는 말없이 그녀의 구속된 몸을 풀어줬다.
의자에서 풀린 그녀는 재빨리 쓰러진 브라운의 상의를 벗겨내 몸을 가렸다.
옷을 입는 그녀의 귀로 변조된 듯한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부하들은 바로 밑 지하층에 갇혀 있다. 그들을 구한 다음 기다려라.”
“날 구하러 온 것이 아닌가요?”
세레나가 물었다. 그러나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짬짬히다.”
감히 자신을 짬짬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화를 낼 만도 하지만 세레나는 그런 것에 자존심을 내세우는 여자가 아니다.
“나 혼자서는 힘들어요.”
세레나가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곳은 삼천교국의 정예헌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었다.
이곳에 억류되어있는 동안 본 이들만 수십 명에 두터운갑주로 무장한 인간 같지 않은 마나를 풍기는 괴물들도 한가득이다.
“가는 길은 이미 청소했다. 그럼 난 이만...”
“아, 아니...그래도”
그녀가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남자는 스르륵 하고 사라져 버렸다.
세레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소한 구했으면 책임 정도는 져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는 귀찮다는 듯 한마디 툭 던지고서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흥! 좋아. 난 왕자의 구출을 바라는 공주 따위가 아니야.”
우직...
쓰러져 있는 브라운의 목을 밟아버린 세레나는 곧 복도로 나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빈말은 아닌지 그녀를 감시하고 있던 헌터들은 모두 쓰러져 있었다. 굳이 살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머리가 반대로 돌아가 있으니까. 그리고 비상구를 통해 밑에 층으로 내려선 세레나는 남자가 말한 청소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휴우. 일은 확실하게 했네.”
복도의 바닥이 쓰러진 이들로 인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몸에 특별한 자상 따위는 보이지 않지만, 그녀는 그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수단을 썼는지 그들의 몸에서는 탄내가 가득하다. 시체를 지나쳐 나아간 세레나는 곧 그녀의 부하들이 억류되어있는 가장 끝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간수로 보이는 이들이 쓰러져 있고 어른의 팔뚝만한 굵기의 철창이 달린 감방이 보인다. 그 안에는 그녀의 부하들이 낯빛이 창백하게 변한 채 감방 한구석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간수들의 품을 뒤져 열쇠를 찾아낸 세레나가 모든 철창을 열었고 잡혀있던 공대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구출에 대한 기쁨에 몸을 떨었다.
“감시하던 놈들이 한순간에 땅에 쓰러져 버렸어요.”
“수십 명이 한 번에 쓰러져서 독이라도 터졌나 싶더라고요.”
얼굴이 가장 창백하게 변해 있던 공격대 힐러의 말이다.
“아, 구출팀이야. 좀 성의는 없어 보이지만...”
세레나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밝아진다. 구출팀이 왔다면 이 지긋지긋한 곳도 이제 끝이다.
“구출팀은 어디 있습니까?”
부공대장이 물었다. 그러자 세레나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우리보다 좀더 중요한 다른 임무가 더 있는 모양이야.”
“네?”
#2
세레나의 구출을 마친 제황은 암혼보를 푼 채 뚜벅뚜벅 걷고 있다.
돌발변수가 제거되었으니 이제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복도를 돌자 맞은편에서 뛰어오던 십여 명의 삼천교 헌터들이 제황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누구냐!”
그러나 제황이 그들의 물음에 답해줄 이유는 없다.
투웅... 파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악!”
털썩..털썩...
제황의 손에 들려있던 아스트라페를 한 번 튕기는 것만으로 모두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복도에는 시체 타는 듯한 냄새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좋네. 화살도 아끼고...”
제황은 이 아스트라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번개화살이 적에게 적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주변에 있는 금속질의 물건을 지닌 이들은 모두 전이된 전류로 인해 감전사를 당해 버리는 것이다. 화살에 주입하는 마나의 강도를 달리해서 시험 하고 있는데 쓰면 쓸수록 마음에 든다.
능력하나하나를 검증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비천궁과 스윕해서 쓸만하다.
-나 아직도 기다려야 돼?
그때 제황의 머릿속으로 궁기의 불만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 미안...
아스트라페의 실전능력 검증이 워낙 재미있어 모종의 장소에 대기시켜 놓았던 궁기를 깜빡했다.
-슬슬 뛰어놀아도 될 것 같아.
-그래? 호호...
제황의 말에 궁기가 쾌활하게 답했다.
그리고...
우르르르...
성궁 전체가 얕은 진동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궁기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전조다.
“으아아악!”
“무너진다!”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온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주저앉으며 그 안으로부터 붉은 털을 지닌 거대한 뭔가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쑥쑥 커지던 그것은 이내 건물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내는 것도 모자라 그 옆에 있던 꽤 커다란 이 층 건물을 마치 비스킷처럼 밟아서 으깨버렸다. 안에 있던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크허어어엉!”
붉은 짐승이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를 하는 순간 그 주위에 몸이 굳어 바닥에 못박히듯 서 있던 이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도, 도망쳐!”
“괴물이다!”
포효의 영향권 밖에 있던 이들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몇몇이 궁기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허접한 공격에 피해를 받을 궁기가 아니다.
콰아아아...
번쩍...
그녀의 몸으로부터 뿜어진 붉은 강기가 사방을 찢어발기고 그 영향권에 노출된 이들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 녹아버렸다.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신위다.
“잘하고 있네. 그럼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궁기의 폭력에 가까운 패악질을 감상하던 제황이 눈을 감고 마나를 퍼뜨렸다.
드래곤으로 도시를 포위하고 궁기는 삼천성궁의 성벽안에 있는 이들을 공격한다. 그리고 그 소요를 틈타 자신은 드래곤 출현으로 한곳에 모여있을 수뇌부들을 쓸어버린다는 기본 작전이다. 뭐 궁기 하나만 풀어놔도 혼자 다 할 것 같지만 말이다.
“거기군.”
목표들이 모여있는 곳을 확인한 제황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걸렸다.
목표물의 위치를 알았으니 굳이 정해진 길로 갈 필요는 없다. 활을 가진 이의 장점이 무었인가. 원거리에서 적을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스트라페가 천장을 향해 겨누어졌다. 목표는 삼천성궁의 핵심 지도층들이다.
드드드득... 파칙! 파치칙!
시위를 당기자 아스트라페 위에 한 대의 번개화살이 생성되었다. 이전의 것과 다른 점이라면 좀 더 굵고 길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황은 시위를 놓지 않았다. 제황을 중심으로 바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주변의 마나들이 아스트라페로 뭉치며 발생하는 현상이다.
“어디 한번 네가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봐라.”
아스트라페의 능력 확인의 마지막은 역시나 얼마나 그의 힘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끼이이이...
잠시 후 더이상 그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는 듯 아스트라페가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위에 걸려 있는 것은 이제 화살 따위가 아니었다. 기형적으로 기다란 빛의 창이 마구 회전하면서 사방으로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다.
“뭐 이 정도면 쓸만 하네.”
제황의 손이 시위를 놨다.
그리고 잠시 후 제황이 있던 층을 시작으로 최상층까지의 모든 곳이 말 공중분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