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60화 (260/301)

# 260

드루와!-1

#1

쉬이이...

날씨는 꽤 쌀쌀했다.

대한민국 쪽의 게이트가 아열대지방의 기후라면 이곳은 춥고 바람도 꽤 매섭다. 바닥에 바짝 붙은 짧은 풀들과 황량한 바위가 그를 반긴다.

주위에는 제황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제황이 엘어스로 최대한 조용히 이동하고 싶다고 하자 로스차일드에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게이트로 그를 안내했다. 발견된 게이트를 신고하지 않는 건 꽤 중범죄로 속하는데 역시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그런지 이런 것도 버젓이 가지고 있다.

제황이 통과한 곳은 높이 20여 미터의 소형 게이트였는데 엘어스 쪽에서는 자연물로 만든 가림막으로 숨겨져 있었다.

태블릿을 통해 네비게이션으로 지형을 확인한 제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위치는 맞는 것 같네.”

제황은 이곳에 오기 전 로스차일드 가문으로부터 그동안 그들이 수집한 모든 정보를 넘겨받았다. 지금 그가 있는 장소로부터 목적지인 삼천교국까지는 대략 600km다. 지구에서야 빠르면 한나절이면 갈 거리지만 이곳 엘어스에서는 꽤나 머 거리다. 공중으로 이동할 수단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어차피 사용할 줄도 모르고 그것 때문에 조종사 하나를 더 데려갈 생각도 없는 제황이다.

게이트가 있는 바위산을 걸어 내려온 제황은 무한고에서 목걸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운데에 작은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였는데 엘과의 싸움이 끝난 후 약속의 증표로 받은 것이었다. 물론 증표로서의 역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손에 감아쥐고 목걸이 중심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보석으로부터 황금빛의 일어나기 시작했다.

번쩍...

빛을 내뿜던 보석은 이내 탁한 빛을 내뿜으며 돌멩이처럼 변해 버렸다.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 일종의 쿨타임인데 대략 열흘이면 다시 본래대로 돌아온다고 들었으니까.

제황이 고개를 들자 그의 시야에 한 인영이 보인다.

손가락에 담배를 든 여인이 공중에서부터 빙글빙글 돌며 떨어져 내리더니 제황의 앞에 착지했다.

제황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진다. 제황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고작 이틀만 아닌가?”

“그러게 나도 이걸 이렇게 빨리 쓸 줄은 몰랐다.”

어깨를 으쓱한 제황은 목걸이를 무한고에 집어넣었다. 담뱃재를 떨구며 제황의 띠꺼운 눈으로 제황의 위아래를 바라보던 엘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날 불렀지? 설마 시험 삼아 불렀다고 하지는 않겠지?”

“바쁜 일이라도 있나?”

제황이 물었다.

“그래. 네 여자친구가 알의 드래곤하트를 거의 망가뜨려 놓는 바람에 지금까지 치료하는 중이었어.”

그녀의 대답에 제황은 어깨를 으쓱했다.

궁기가 복부를 거의 헤집어놓기는 했지만, 어차피 적으로서 만나 벌어진 일 아닌가.

“내가 부른 이유는 엘어스에 삼천교국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살고 있는 인간들 때문이야.”

제황은 태블릿으로 지도를 활성화시켜 보여줬다. 그것을 확인한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나?”

“대수림 깊은 곳에 꽁꽁 박혀 사는 놈들 말하는 거구나.”

“대수림?”

“그래. 그쪽으로 꽤 티스 라는 커다란 산맥이 하나 있다. 워낙 오지여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곳이지.”

“가본 적이 있어?”

“그래. 나를 믿는 성전의 신녀가 인간이 나타나 동족들을 납치해 간다고 하도 짱알대길래 하루 가서 신나게 놀아준 적이 있지.”

신나게 놀아줬다는 게 어떤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엘이 삼천교국에 대해 잘 안다니 제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곳에 볼일이 있어.”

“고작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른 건가? 인간들은 쉽게 갈 수 있잖아.”

인간들이 엘어스에서 비행체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공중 몬스터들 때문일 뿐이지 사용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거기에 원거리 공격에 스페셜리스트인 제황이 타고 있다면 공중몬스터의 위협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잘한 부탁도 몇 가지 있고...”

“끙...”

제황의 말에 엘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무슨 문제가 있나?”

“알의 치료가 끝나지 않았다. 강제로 수면에 들기는 했지만 오래는 자리를 못 비운다.”

“별거 없어. 내가 원하는 곳 근처에 내려다 준 후 간단한 거 하나만 해주면 끝이야. 빠르면 하루 안에 끝날 일이야.”

제황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부탁할 것은 정말 별거 아니다. 물론 이쪽에서는 별 게 아니지만, 그쪽에서는 재앙과 마찬가지리라.

#1

지구에서 밀려나 엘어스에 정착한 삼천교는 티스 산맥의 대수림 중앙에 거대한 호수를 중심으로 터전을 잡았다. 초대교주인 이명복은 이곳을 삼천교의 성도로 정하고 20년 후 엘서울이라는 도시를 완성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이 과정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몸뚱이만 가지고 엘어스로 건너온 인간들에게는 엘어스의 모든 것이 그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그뿐만 아니라 삼천교는 성도를 세우는데 신도들의 목숨을 전혀 아끼지 않았다.

당시 엘어스로 건너갔던 건 삼천교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속은 이들도 많이 끌려갔고 그 숫자는 무려 50만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10만이 이 엘서울을 완성하는데 희생되었다.

엘서울의 중심인 호수를 끼고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성이 우뚝 솟아 있었다. 삼천교의 교주가 머무는 삼천성궁이다. 햇빛을 받은 궁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났는데 그 이유는 성 전체를 금으로 입혔기 때문이다. 투입된 금의 양만도 수 톤에 이르고 그것을 제외하고라도 갖가지 화려한 귀금속들이 성을 장식하고 있었다.

엘서울은 삼천성궁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의 원형도시다. 그 부분을 보자면 크게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삼천성궁이 있는 중심구역에는 교주와 교주의 자식들 그리고 삼천교의 핵심권력층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삼천성궁을 둘러싼 두 번째 구역에는 고위헌터들과 삼천교의 고위요직에 있는 이들이 거주해 있고 그들을 둘러싼 세 번째 구역에는 상위신도들이 마지막으로 가장 외곽에는 일반신도들과 노예들의 거주구역을 나눈 채 살아가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세 번째 구역과 네 번째 구역은 높은 성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고위 몬스터들이 도시에 나타나면 네 번째 구역은 그대로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였다.

대수림에 인접하여 있기에 항상 몬스터들의 위험에 노출된 일반신도들은 오늘도 확장을 멈추지 않은 엘서울의 대수림 개발과 같은 갖가지 부역에 동원되며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땡...땡...땡...”

멀리서 정오를 알리는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한참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삼천성궁이 있는 곳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삼위일신의 광명아래 우리 아버지 그 아들 우리 교주...”

멀리 삼천성궁의 금빛 십자가를 바라보며 삼천교의 삼천기도문을 올리고 곧이어 삼천찬가를 부른다. 사람들은 주린 배를 붙잡고 목이 터지도록 삼천찬가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신도들 서로가 그들의 믿음을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 믿음을 의심받아 교구 재판이라도 벌어지고 관심신도가 되면 대수림을 레이드 하는 공격대에 몬스터들을 몰이하는 ‘성전대’ 로 투입된다. 그리고 그들의 절반은 몬스터들의 먹이가 된다.

부모와 함께 무릎 꿇고 앉아 삼천찬가를 부르고 있던 아이는 실눈을 뜬 채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해선 안 될 행동이지만 아이는 이 시간의 지루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눈을 뒤룩뒤룩 굴리던 아이가 갑자기 노래를 멈췄다.

“제호야! 뭐하니!”

아이의 노랫소리가 끊기자 아이의 엄마는 행여 남이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아이를 다그쳤다. 교구 재판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아니 아이의 믿음이 의심받으면 그 아이의 부모가 끌려간다.

그러나 아이는 넋을 놓은 채 한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자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이와 마찬가지로 삼천찬가를 멈춘 채 입을 떡하니 벌렸다.

엘서울을 둘러싼 대수림이 요동치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린다.

대수림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살의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아, 안돼.”

그녀는 그것이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몬스터 웨이브...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매년 세 네 번은 웨이브가 일어나 수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니까. 그렇지만 지금 그녀가 보고있는 그것은 평소의 그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규모다. 그러나 그보다 그녀를 더욱 두렵게 하는 것은 엘시티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그것은...

“드, 드래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드래곤에 대해 전해 들은 바는 있었다.

아주 오래전 단 한 번 나타났던 드래곤으로 인해 하루 동안 지옥이 펼쳐졌고 무려 3만에 달아는 이들이 드래곤이 이끌고 온 몬스터에 의해 잔인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야기로만 듣던 그 드래곤이 나타났다.

과거의 그 악몽과도 같은 날을 재현하며 말이다.

#1

삼천성궁의 가장 깊은 곳 요처에는 감옥이라 하기에는 꽤 크고 고급스러운 방들이 있었다.

두툼한 특수재질의 철문이 달린 것을 제외하고는 고급스러운 카펫과 침대 그리고 주거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그런 곳이다.

외부로부터 포섭 혹은 납치해 온 고위 헌터를 가둬두는 용도로 활용하는 이곳에는 붉은머리카락의 미녀가 살의에 찬 눈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백인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세레나양, 더 버티는 건 세레나양에게 좋지 못합니다.”

“브라운 이제는 협박인가?”

“협박이 아닙니다. 세레나양. 저는 세레나양이 지은 죄로 인해 회개의 제물로 끌려가는 것을 막고 싶을 뿐입니다.”

“내 죄?”

“그렇습니다. 세레나양께서는 우리 삼천교국의 치세에 있는 순진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탈출시키려 했습니다. 설마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요?”

“흥...”

그의 말에 세레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은 채 콧방귀를 뀌었다.

어차피 반박을 해봤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이야기일 뿐이기에 이제는 입을 열기도 귀찮을 지경이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신다면 제가 직접 교주님께 아뢰어 세레나양을 삼천신녀로 추천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좋은 기회입니다.”

“삼천신녀라... 호호, 감히 나 세레나 로스차일드를 교주의 정액받이가 되라는 거군.”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교주께서는 삼위일신의 화신이십니다. 신의 여인이 되는 겁니다!”

탁!

“미쳤군!”

세레나는 의자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외쳤다.

“후후, 세레나양께서도 지금은 이렇게 거부하시지만, 곧 삼위일신의 성령의 축복을 받아 새롭게 태어나시게 될 겁니다.”

세레나는 당장에라도 눈앞의 사내를 당장에라도 죽여버리고 싶었다.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 헛소리를 해대는 것은 둘째치고 그녀의 공격대가 실패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운영하는 클랜의 지부장이었던 그는 이번 세레나가 이끄는 공격대가 포함된 원정대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이였다. 그만 아니었다면 그녀를 믿고 따르던 수많은 헌터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노예로 잡혀왔던 이들이 산채로 화형당하는 꼴을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에게 교주의 여자가 되라고 한다.

그러나 세레나는 그 화를 눌러 참았다. 어차피 그를 죽여 봤자 문밖에는 6성의 헌터 넷이 지키고 있다. 이들의 의도를 뻔하다. 자신을 삼천교의 신도로 만드는 것. 이제는 말만 나눠도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지만, 가문이 구조대를 파견하기 전까지 버텨야 한다.

그때였다. 문밖으로 한 남자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브라운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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