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59화 (259/301)

# 259

로스차일드의요청-2

#1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람 중 디바우저가 나왔고 가문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했다.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게다가 보유한 재력은 측정조차 불가능한 가문이니 그 디바우저는 어린 나이에 꽤 이름을 알렸다.

이름은 세레나 로스차일드

나이 26살에 벌써 6성 헌터다.

그 외모가 워낙 빼어나 모델로도 활동하는 유명인사였다.

물론 제황은 그런 것에 일절 관심이 없었기에 그녀에 대해 몰랐다.

그렇지만 그녀의 사진을 본 제황의 눈이 굳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그 년이닷! 붉은머리 미친년!

-그러게.

꽤 시간이 지났기에 외모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특유의 붉은 머리카락과 뽀얀피부, 색기가 묻어나는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제황보다 한 살 더 많은 그녀는 아카데미에서 제황을 줄기차게 괴롭혔었다. 아니 괴롭혔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다.

주위에 널리고 널린 게 그녀의 추종자였지만 그녀는 운명의 장난처럼 제황에게 꽂혀 버렸다. 그것은 제황에게도 또 그녀에게도 비극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꽤 정상적인 사람처럼 다가오더니 제황이 그녀의 관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자 제황의 기숙사에 과감히 침투해 육탄돌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결국 제황이 나갈 때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제황에게 선포하듯이 외치던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환청처럼 들린다.

‘넌 내 것이야! 두고 봐!’

뭐 어차피 아카데미에서는 권제의 힘으로 모두 가명으로 처리해 버렸으니 그 후로는 연락이 끊어서 아예 잊고 살았다.

“세레나 레드쉴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한국에서 지냈나요?”

제황의 물음에 제임스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네. 한국 쪽의 국립아카데미에서 있었습니다. 한국이 체계 잡힌 헌터 교육으로는 유명하니까요. 혹시 세레나를 아시는지...”

“네.”

제임스의 대답에 제황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녀가 맞다.

제황이 입을 다물자 그가 간곡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험한 작전이라 말려야 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잡혀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무모하게 뛰어들었죠. 그리고 놈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제게 그녀의 구출을 부탁하시는 겁니까?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면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으실 텐데요.”

제황의 물음에 제임스가 고개를 저었다.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진작에 구출했을 겁니다. 그러나 놈들은 돈 따위보다 세레나를 인질로 세우는 것을 택했습니다.”

잠시 뜸을 들인 제임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세계 최강의 헌터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염치없는 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의 후견인이기에 앞서 제가 자식같이 아끼는 아이입니다.”

“흠...”

그의 말에 제황이 장고에 빠졌다.

과거의 인연이 있기에 될 수 있는 대로 도와주고는 싶지만, 사람을 구하는 일이다. 물론 삼천교국이 다음 타겟이었기에 함께 처리해도 되지만 제황의 본래 계획은 심장부에 침투 후 최상위 지도층을 일거에 전멸시킬 작정이었다.

제황이 선호하는 가장 빠르고 깔끔한 방법이다. 될 때까지 쓸어버리면 된다. 야만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사이비가 가장 골치 아픈 이유 중 하나다. 이성적인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세레나의 구출이라는 변수가 끼어들면 골치가 아파진다.

일이 어떻게 꼬일지는 알 수 없으니까.

게다가 중요한 것은 궁기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년 구해도 내가 슥삭해버릴 거야.

-...

농담같이 듣고 싶지만, 궁기는 그런 것으로 농담하지 않는다. 애써 구해놓고 송장 치르기는 싫다. 아직 힘이 부족할 때 아카데미 내내 미저리 같은 그녀의 관심 때문에 꽤 몸조심을 해야 했던 궁기는 세레나를 무척 싫어했다. 조용히 졸업하고 싶었던 제황이 아니라면 사달이 나도 진작에 났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제임스가 손짓하자 문이 열리며 집사 차림의 한 남자가 커다란 검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들어와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내가 말할 때까지 들어오지 말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그가 밖으로 나가자 제황이 말했다.

“이게 뭡니까?”

“저희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아티펙트입니다. 혹 의뢰를 거부하시더라도 제황님께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의 말에 제황은 눈살을 찌푸렸다.

반신의 반열에 들어가면서 물욕은 거의 사라졌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비천궁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제 그 자신은 그런 귀물보다는 신격을 갈고 닦는데 더 신경 써야 할 때다. 이런 것에 신경을 팔리는 것은 오히려 독이나 마찬가지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것은 저주받은 아티펙트나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헌터들이 도전했지만, 감정조차 하지 못했고 섣불리 이 물건을 만진 몇몇 헌터들은 며칠씩이나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제황님이 아니라면 주인 될 이도 없는 물건입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제황의 안색을 살피며 제임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호기심이 일은 제황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상자는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내부에 들어있는 고풍스러운 상자를 열자 붉은 빌로도에 둘러싸인 하나의 활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전체가 은은한 은빛이었는데, 비천궁과 같이 전체가 금속으로 되어 있는 활이다.

실제로 전투에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온갖 화려한 장식들이 수놓아져 있다. 일단은 평범한 짧은활 형태이다..

제황은 그 활 위에 손을 올려 감정을 시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타난 창을 읽은 제황은 눈을 크게 떴다.

아스트라페-레전드 등급 아티펙트

사용제한:시험을 통과한 자

활세기: -알수없음

최대사거리:-알수없음

유효사거리:-알수없음

제질:-알수없음

특수능력

-알수없음

-알수없음

-알수없음

-알수없음

“아스트라페라...”

이름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려져 있다.

제황의 아이템창에 떠오른 무기의 이름을 읊자 제임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스트라페라면 주신 제우스의 무기인 번개의 이름입니다.”

“그런가요?”

물욕을 경계해야 하지만 태생이 활쟁이인 그이기에 레전드급 활의 이름이 제우스라는 서양신의 무기라고 하자 더욱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주인 될 이를 시험하는 무기라는 건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제황은 아스트라페의 그립을 집어 들었다.

“음?”

활의 그립을 붙잡는 순간 손바닥에서부터 짜릿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제황의 몸 내부로 침투하려 한다. 물론 제황의 손에 잡힌 이상 그 기운은 더이상 침범하지 못하고 있다.

“재미있네.”

게다가 꽤 발칙한 무기다.

“괜찮으십니까?”

제임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스트라페의 그립을 붙잡자마자 그대로 혼절한 이들을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제황이 손바닥을 펴 그를 막았다. 건드리지 말라는 것.

제임스를 안정시킨 제황이 손에 잡힌 아스트라페를 노려본다.

“시험을 한다라...”

감히 무기 따위가 사람을 시험한다니 가소롭기 그지없다.

“어디 네가 내 시험을 먼저 통과해봐라.”

제황은 여의용혈신공을 일으켜 아스트라페를 쥔 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서 피어오른 붉은 기운이 아스트라페를 감싸기 시작하고 잠시 후 아스트라페가 부르르 떨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이!!!”

“으윽!”

철판을 긁는 듯한 고음이 터지자 제임스가 귀를 막았다.

그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답게 그의 몸에는 갖가지 몸을 보호하는 아티펙트로 무장이 되어 있는지 곧 안정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본다.

“꽤 버티네. 어디 이것도 버티나 보자.”

레전드급 아티펙트 답게 상당히 버티고 있다. 심층부에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약한 신격이 남아 그것을 밑천 삼아 버티는 중이다. 나름 신격을 지닌 무기이기에 그래도 살살 구슬려서 항복을 받아내 보려 했는데 봐주는 것도 모르고 꿋꿋이 버티고 소리까지 지른다.

츠츠츳...

제황이 다시 한번 손에 힘을 줬다. 이전까지는 봐줬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만약 이것도 꾸역꾸역 버틴다면 포기할 것이다. 아니 어차피 끝까지 버티면 완전히 망가질 테니 미련도 없다.

“끽...끼긱...”

아스트라페가 덜컥거리며 더욱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제황의 손길을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지만 제황은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일 분여가 지났을까? 제황이 붙잡고 있던 그립으로부터 하얀 스파크가 일기 시작하더니 이내 아스트라페의 전체가 스파크에 둘러싸인다.

그리고... 스파크가 걷히자 아스트라페는 완전히 새로운 모양으로 탈바꿈해있었다.

제황의 주무기인 비천격과 비슷한 커브스 보우의 형태다. 화려한 장식품들은 모두 사라지고 매끈한 곡선이 드러났다.  재미있는 건 그립 부분과 활의 상단과 하단에 번개 모양의 장식물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물론 모양만 바뀐 것이 아니었다.

제황에게 굴복했는지 아이템창의 가려져 있던 부분이 사라졌다.

시험 내용이 뭔지는 모르지만 제황은 그것을 힘으로 뚫어버렸다.

아스트라페-레전드 등급 아티펙트

사용제한:시험을 통과한 자

활세기:가변적

최대사거리:가변적

유효사거리:-가변적

제질:-썬더리움

특수능력

-신살

-번개 화살

-증폭

-전이

-자체수복

“재미있네.”

제황은 아스트라페의 빈 시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번개모양의 장식물과 그의 손 사이로부터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이내 하나의 기다란 빛줄기가 시위에 걸렸다.

파팍! 파파팍!

번개의 형상을 띈 빛의 화살로부터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생성된 그것의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야수가 느껴진다. 활세기나 최대사거리 따위가 ‘가변적’으로 표시되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무기이면서 하나의 신격을 지닌 존재였다. 그리고 그 사용자의 능력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로 변하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번개의 형상을 한 화살이었다.

화살이 필요 없는 것은 둘째치고 아스트라페의 모든 특수능력은 이 번개화살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그 힘을 전부 꺼내 시험해보고 싶지만, 제황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아스트라페를 훑으며 파악한 이 무구의 진정한 힘을 이곳에서 펼친다면 제황은 단숨에 미국의 테러리스트 명단에 오를 수도 있었다.

자칫 백악관이 무너질 수도 있었으니까.

“흠.”

아스트라페를 한번 훑은 제황은 그것을 무한고에 넣어버렸다.

물욕을 경계하려고 했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아직 반은 인간이다. 욕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너무 빠르게 포기하는 거 아니야?

-할아버지가 사람은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

-늙은이가 쓸데없는 짓을...

툴툴거리는 궁기의 모습이 연상되어 피식 웃는 제황이다.

“좋습니다.”

제황이 제임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쨌건 받았으니 입을 닦을 생각은 없다.

제임스의 표정이 환해진다. 그러나 제황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저는 세레나양의 구조보다는 삼천교 자체를 무너뜨리는 것에 초점을 둘 겁니다. 또한, 삼천교가 무너지면 로스차일드가 얻을 반사이익은 사회에 전부 환원해야 할 겁니다. 그게 제 조건입니다.”

“다,당연합니다.”

제황의 말에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가 다시금 원래의 신색을 되찾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성적인 마나석 시장의 큰 축인 삼천교국이 무너진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반대급부를 얻게 될 것이다. 제황은 그 점을 지목한 것이다.

제임스와의 만남을 마친 제황은 곧바로 이루미를 호출했다.

인질이 잡혔으니 최대한 빨리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본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지금이 삼천교국을 무너뜨릴 적기라고 제황은 생각했다. 드래곤 레이드를 끝마친 궁신이 곧장 자신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는 삼천교국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드래곤들을 좀 더 빨리 써먹을 수 있겠군.”

#2

다음날 제황은 수많은 이들의 환대와 축복을 받으며 전용기에 올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태블릿을 통해 지켜보던 제황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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