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58화 (258/301)

# 258

로스차일드의 요청-1

#1

츠팟...

정신을 잃은 알을 부축한 엘이 텔레포트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황은 맥이 풀린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금까지 겪었던 전투들 중 가장 어렵고 위험한 전투였다.

궁기가 새롭게 나타난 알을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제압한 건 둘째치고 엘이라는 드래곤이 좀 더 신중한 놈이었다면 이런 깔끔한 승리는 없었을 것이다.

“고생했어.”

“간만에 포식했지.”

궁기가 별것 아니라는 듯 의기양양하게 말했지만 실상을 아는 제황은 그냥 웃을 수 밖에 없다.

궁기가 알을 그렇게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제황이 엘을 상대로 드래곤의 능력을 최대한 분석할 수 있도록 선행전투를 했다는 것이다. 상대를 알고 싸우는 것과 모르고 싸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로는 제황이 알의 주의를 분산시킨 점이다. 제황이 먼저 돌격을 하며 주의를 끌었고 근접했을 때 궁기를 꺼내 순간적으로나마 알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세 번째는 엘이 최신 현대 병기에는 무지했다는 점이다. 만약 레이저 궤도 위성이 해당 지역을 지나칠 때만 공격할 수 있다는 것과 순수한 빛에너지 공격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제황과 궁기가 이쪽의 강점만을 살리는 전투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저들이 궁기와 제황과의 전투에서 자신들의 강점인 공중전과 마법으로만 상대했다면 꽤 더 피곤했으리라. 혹은 강력한 몬스터들을 휘하에 두고 합공을 시켰다면 꽤 큰 희생을 치를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저들도 자신들의 강점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이유는 있었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제황이 가장 우려하던 마법인 텔레포트를 전투하는 내내 저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나중에 넌지시 돌려 물어본 결과 그것은 제황이나 궁기 정도의 인물과 싸울 때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텔레포트가 꽤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두 마리의 드래곤을 복속시켰지만, 제황은 저들을 엘어스로 돌려보내 줬다.

물론 그냥 보낸 것은 아니었다. 다크어스의 정벌이 시작되면 언제든 소환한다는 단서를 맹약으로 달았다.

궁기가 왜 저들을 돌려보내냐고 툴툴거렸지만, 제황이 보기에 드래곤들은 지구에 있어서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엘어스에 악영향을 끼쳤듯 저들 또한 지구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아니 저들은 인간보다 더 위험한 존재들이다.

종족은 전혀 다르지만 드래곤들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이것이었다.

‘고삐가 없는 대책 없이 강한 사이코패스’

맹약이라는 게 있다지만 궁기의 저번에 설명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 맹약이라는 것도 꼭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마음먹고 어길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적은 패널티로 무마할 수 있는 수단이다. 게다가 저들이 제황이나 궁기의 약점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기에 제황은 저들을 엘어스로 놓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곁에 둬봐야 골치만 더 아플 것 같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제황이 헤드셋으로 손을 가져갔다.

“전투 끝났습니다.”

-네! 지, 지금 가고 있습니다.

헤드셋을 통해 환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황의 말에 대답하는 이의 목소리도 떨려온다. 하긴 또 다른 드래곤이 나타났을 때 꽤나 절망했으리라. 결론적으로 모두 레이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마 저들 모두 손에 땀을 쥔 채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각 기지로 향하던 몬스터 웨이브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 네. 드래곤이 사라지는 순간 몬스터들은 모두 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각 기지에서 몬스터 공략대를 구성하여 이참에 수를 줄이기 위해 출격을 준비 중입니다.

“잘됐군요.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된 것을 확인한 제황이 이제는 아리따운 미녀로 변신한 채 아직도 손을 핥고 있는(?) 궁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집으로 가자.”

“응.”

#2

세계는 축제에 휩싸였다.

모두가 궁신을 연호했고 그에게 환호했다. 그 감정이 격해져 거의 종교적인 수준에 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세계가 몬스터의 출현에 존망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도 얌전했던(?) 신들보다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그 활약에 환호할 수 있는 이 젊고 잘생긴 청년을 숭배하려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제황이 공식석상에 나서서 ‘엎드려 경배하라.’ 말하며 신계진출을 공식적으로 선포했더라도 모두가 수긍했으리라.

그렇지만 제황은 그런 인기를 딱 잘라 경계했다.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며 자신이 아직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밝혔다. 몇 몇 이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 말했지만, 제황은 삼천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대한민국 하나에 국한되어서도 해악을 끼쳤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대한민국에 국한되어서도 삼천교라는 사이비 종교가 해악을 끼쳤는데 그 인기가 세계적인 제황이 종교가 된다면 그것은 몬스터들의 위협보다 더 크게 다가왔을 수도 있었다.

각국에서는 제황의 그 공식발표를 무척이나 환영했다.

단 일인에 한 해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끼치는 제황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대중의 힘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황이 자신이 온당히 가져야 할 권리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함께 엘어스를 점령하자며 수많은 국가의 구린내 풍기는 제안을 해왔다.

물론 그런 이들은 제황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몇몇 이들은 제황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과격한 언행을 일삼았다가 응당한 대가를 치른 채 물러섰다.

그들을 항의하지 못했다.

그 누가 제황에게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아니 불만조차 표하지 못했다. 드래곤을 홀로 레이드 한  제황도 두렵지만 드래곤들과의 전투에서 꺼내 든 궁기라는 절대카드 때문이었다.

새롭게 나타난 드래곤을 단 5분 만에 잠재운 것은 둘째치고 그 폭력적인 강력함과 잔인함은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었다. 위성으로 촬영된 영상으로 전세계로 송출되었기에 CG나 감각적인 카메라 기법 따위는 애당초 들어가지도 않았다.

아니 필요하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설명이리라.

그 강력하다던 드래곤을 단숨에 한낱 개껌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두려운 존재를 소유하고 있는 제황에게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이의 초청도 있었다.

본래라면 만나지 않겠지만 엘어스의 삼천교와 관련된 문제로 상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제황은 초청에 응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제황이 특별히 묵고 있던 백악관의 한 호젓한 응접실이었다.

의자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던 남자는 제황이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제황에게 악수를 청했다. 제황이 그의 손을 잡아주자 그는 격하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신과 악수를 하다니 지금 감격을 이루 표현할 수 없군요.”

50대 중반의 금발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긴 백인 남자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제황에게 말했다.

“한국어가 능숙하군요.”

“아. 그런가요? 하하. 배운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지만 워낙에 쉽고 좋은 언어라 요즘은 한국의 음악이나 책을 읽으며 새로운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그런가요.”

첫 느낌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바에 따르면 거의 악의 축이나 세계의 막후를 지배하는 비밀결사의 주인공인 그들이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제임스 로스차일드라고 합니다.”

“무련천가의 가주 천제황입니다.”

과거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에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하던 가문.

워낙 그 영향력이 크고 또 베일에 싸여 여러 가지 음모론의 중심에 섰던 가문이었기에 제황이 배웠던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가문이었다.

과거에도 세계경제의 큰 축을 차지했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고 그 몬스터들의 부산물 특히 마나석이라는 신성장동력을 통한 새로운 경제 물결의 선두에 선 마나석 시장의 40%와 이계의 희귀금속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던 가문이다.

미국이 레이드 최강국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했으며 엘어스 공략이라는 국가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근본 원인이 바로 이들이라고 예전 들은 바 있었다.

간단한 차가 나오자 자신을 로스차일드 가문이라 소개했던 제임스는 제황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왔다.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입을 쉬지 않았다.

“제 친구와 제황님의 국적을 바꾸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 기분 나쁘시다면 죄송합니다. 당시 그 이야기를 나눌 때 제황님께서는 9티어 몬스터들을 추수하고 다니셨으니까요. 일 년에 두어 번도 성공하기 힘든 9티어몬스터를 길가에 떨어진 돌맹이 줍듯이 해대시니 당시 저희 가문은 난리가 났었습니다.”

“어째서죠?”

“아시겠지만 저희 가문은 몬스터와 공존하는 시대가 되면서 가문의 모든 역량을 몬스터 산업에 쏟아부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시장을 선점해 왔는데 난데없이 9티어 마나석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지 않습니까? 모두가 향후 미래를 예측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마나석을 풀지 않았습니다.”

“아,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율하는 이의 처지에서 보면 제황님이 가지고 계실 마나석들은 모두 잠재적인 폭탄이나 마찬가지죠.”

그의 너스레에 제황의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현재 절반 가량의 9티어 마나석이 한 아가씨의 뱃속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허접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라면 더 이상 앉아 있을 생각도 없다.

“그런데 제가 지금 이 자리를 허락한 건 삼천교에 대해 상의할 일이 있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삼천교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입니까?”

“예.”

고개를 끄덕인 그는 자세를 바로했다. 그리고 이전의 그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표정의 그가 말했다.

“전세계에 퍼진 음성적인 마나석 시장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제황이 벌였던 일들에도 몇 번 거론이 된 적이 있었다. 가장 가까운 건 소말리아의 군벌을 토벌했을 때다. 그들은 자국 내에 몬스터들을 방치하며 그곳에서 생산된 마나석들을 전세계에 음성적으로 공급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었다.

또한 마나석 거래 권한이 없는 빌런들을 통해 유통되는 마나석들도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다. 어쩌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바로 음성적인 마나석 시장이다.

“그럼 그 시장에 나오는 마나석 중 일부가 삼천교의 자금줄이라는 것도 알고 계신지...”

“그건 몰랐군요.”

제황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 무적성에서는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삼천교의 간세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고했었으니까.

그의 대답에 제임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은 그렇게 벌어들인 자금으로 현재 전세계적으로 비인륜적인 범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제황의 물었다.

“그건 바로 인신매매입니다.”

인신매매라는 건 사람을 납치하는 것을 말한다.

제임스의 설명은 이러했다.

과거에도 삼천교에서는 음성적인 마나석 시장에 꾸준히 마나석을 판매해 왔다고 한다.

제황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꽤 비밀이 잘 지켜졌으나 제황이 출현하여 삼천교를 뒤흔든 이후 그 전체 양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고 그들이 그 자금으로 어떤 짓을 하는지 서서히 밝혀지는 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마나석을 팔아 얻은 자금으로 사람을 사서 엘어스로 나르고 있었던 겁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 아닌 노예입니다.”

그와 함께 제임스는 제황에게 몇 개의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삼천교국에서 직접 촬영해 온 듯한 그 영상에는 잔인하게 화형당하는 수 십명의 사람들이 찍혀 있었다.

“6개월 전 납치된 이들을 구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저희 가문의 공격대가 실패했고 구하려던 이들은 모두 이렇게 화형당했습니다. 공격대는 현재 위치를 찾기 힘듭니다.”

잠시 뜸을 들인 제임스가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저희 가문의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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