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56화 (256/301)

# 256

비장의한수

#1

“크르르...”

엘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녀의 머리는 지금 엉망이었다. 보통 상처였다면 역행을 사용해 금세 복구했겠지만, 상대의 신위가 실린 공격이기에 용언이 잘 먹히지 않는다. 용언을 사용하는 것도 이제는 조절해야 한다.

눈 한쪽이 터져버려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네 개의 뿔 중 두 개가 부러졌다.

“후후···.”

엘은 실소가 나왔다.

그녀의 용생 중 이렇게 엉망으로 당한 적이 있던가.

하나 남은 눈을 돌려 적이 날아간 곳을 바라본다.

마지막 순간 꼬리로 카운터를 날렸고 바위를 박살 내며 나 뒹구는 것까지는 봤었다.

그것으로 승부가 났으면 참 좋았을 것을...

“지겨워.”

그는 바위를 치워내며 비틀비틀 일어나는 중이다.

엘은 날개를 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냉정히 따졌을 때 지상에서의 전투는 무승부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공중전이다.

상대가 원거리 공격이 장기라고 하지만 하늘 위라면 공격 수단을 한정시킬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조금 전 그가 날개를 뽑아내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운영에는 미숙해 보인다.

‘지구전이다’

엘은 인간을 경시하던 마음을 깨끗이 지웠다. 아니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대로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제황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다. 최대한 거리를 벌린 채 회복하며 야금야금 상대의 힘을 깎는다는 계획을 수립한 엘이 하늘을 향해 빠르게 솟구쳤다.

-거리를 벌리는군.

바스러지는 용살자갑옷을 몸에서 뜯어내며 제황이 말했다.

-지상에서 상대하지 않겠다는 거지. 그보다 괜찮아?

궁기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드래곤의 꼬리에 얻어맞고 꽤 심하게 날아갔다.

-견딜 만해.

용살자 갑옷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비록 완전히 부서졌기에 안타깝기는 하지만 어차피 무기나 방어구는 일회용품일 뿐이다.

반가운 것은 드래곤의 몸에 난 상처가 이전처럼 빠르게 복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지친 만큼 상대가 지쳤다. 마침 때가 되었다.

-그럼 이제부터 홈그라운드의 장점을 좀 살려볼까?

제황은 무한고에서 새로운 헤드셋을 꺼내 귀에 꼈다.

제황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공격을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금부터 가할 공격은 드래곤에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오리라. 마침 시간도 딱 맞췄다.

재수 없었으면 접전을 치르는 와중에 써야 했을 회심의 한 수다.

“페이즈2 시작하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져.

#2

공중으로 치솟던 엘은 제황이 깨알 같은 점으로 보일 높이까지 고도를 높였다.

이렇게 거리를 벌리면 제황이 화살을 쏘더라도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녀는 전신으로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

치유가 끝나는 순간부터 놈에게 지옥을 보여주리라.

그런데 그 때...

‘이게 뭐지?’

그녀의 민감한 감각기에 위험신호가 감지되었다.

딱히 감각으로 느껴지거나 걸리는 것은 없다. 그런데 위험에 대한 경고는 점점 커지는 중이다. 엘은 치유로 돌리던 마나를 회수해 부랴부랴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앱솔루트 베리어”

물리공격에 대해서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마법이다.

어떤 공격이 닥치든 막아내리라.

그러나 그 생각은 약 10초 후 완전히 깨져버렸다.

그녀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의 공격에 진심으로 당황해 버렸다.

삐이이이이...!!

“캬아아악!”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등이 후끈해진다 싶더니 그녀의 전신을 무지막지한 열에너지가 두들겨 댄다.

“이···. 이게 뭐···.”

삐니 이···!!

“큭!”

그녀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공격이 날아온 방향! 그런 믿을 수 없게도 공격이 날아온 곳은 까마득한 위에서다.

삐이이..!

“캬아악!”

공격의 주체를 명확히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던 엘의 머리로 마치 ‘뭘 봐. 새끼야.’라는 듯 예의 그 후끈한 열기가 집중되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베리어가 뚫렸어!’

모든 물리 공격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엡솔루트 베리어가 허망하리만치 뚫려 버렸다.

“저, 저건···.”

그녀는 무한에 가까운 드래곤의 시력으로도 거의 보이지 않는 그것을 어렵사리 포착했다. 문제는 그것이 떠 있는 위치가 너무 사기적이다. 그리고 그 사기적인 고도에 떠 있는 그것은 이제 예열은 끝났다는 듯 본격적으로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이...!

삐이잇...!!

“캬아악!”

“꺄악!”

-타격 성공입니다.

아트라스에 탑승해있는 정보요원의 기분 좋은 외침이 들려온다.

지금 드래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가진 우주전술병기인 레이저탑재 궤도위성이었다.

아주 오랜 과거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천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던 미국은 우주로 위성 한 대를 쏘아 올렸다. 야심 차게 발사한 이 군사위성은 까마득한 우주에서 레이저를 발사하여 적의 ICBM을 방어하는 SDI 체계의 일환이었다.

그렇지만 위성레이저는 곧 그 파괴력의 한계와 대융합으로 인한 미국 내의 혼란으로 인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졌다. 그런데 최근 그 위성이 개조를 끝냈다. 미국의 현 정부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출현으로 인해 레이저의 파괴력을 획기적으로 높일만한 방법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마나석의 존재였다.

기껏해야 수소와 플루오르를 기상(氣相)으로 혼합하여 발진시키는 플루오르화 수소 화학 레이저 따위가 아닌 마나석을 이용한 수백킬로와트의 초고출력 레이저를 장착된 궤도 위성이 완성되었다.

-저게 너 때문에 완성된 거라며?

-응.

아이러니하게도 이 궤도 위성이 빠르게 완성된 이유 중 하나가 궁신의 출현 때문이다.

레이드최강국이라는 명예를 대한민국에 빼앗기기 싫었던 미국은 그것을 같은 헌터가 아닌 최첨단 무기를 통해 해결하려고 했다.

진테프먼이 들고 나왔다가 전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았던 그 생물병기들도 그 일환이다.

물론 다행히(?)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이 이 레이저탑재 궤도 위성이었다.

비록 해당 지역 상공을 지날 때만 사용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드래곤이라도 무시 못 할 인간의 병기 중 하나다.

“캬아아악!”

구름을 뚫고 드래곤이 날개를 접은 채 지상으로 내리꽂힌다.

떨어지는 와중에 회피기동을 하며 레이저를 피하려 하지만 이쪽이 사용하는 무기의 본질은 빛이었다. 애초에 피할 수 없는 속도다. 초고속으로 연산되어 발사되는 레이저는 빗나갈 수 없다. 게다가 레이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만약 엘이 이 무기의 본질을 알았다면 이렇게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으리라. 빛 따위 굴절시키면 그만이니까. 그렇지만 드래곤이라도 수 백년간 발전시킨 인간의 과학기술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삐이이!!

“캬악!”

궤도 위성에 장착된 마나석은 무려 9티어 마나석이었다.

마나 자체 회복 기능을 이유로 9티어 마나석이 투입된 것이지만

그런 비장의 무기를 미국은 위력시범과 함께 궁신의 드래곤 레이드에 한 파를 거들었다는 명예를 위해 이번 작전에 아낌없이 투입했다.

그리고 이제 제황도 마지막을 준비한다.

비천궁에 비천격을 낀 제황이 천천히 몸을 낮춘다.

으드드드득...

천천히 시위를 당기며 제황의 눈은 떨어지는 엘을 놓치지 않았다.

위이이이...

제황의 몸으로부터 아지랑이와 같은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모두 모여 애기살의 끝에 모였을 때...

파아아아아앙!!!

무지막지한 소닉붐과 함께 비천궁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품은 애기살 한 대가 떨어지는 드래곤을 향해 쏘아져 나아갔다.

씨이이이잉!!

불행하게도 엘은 자신을 향해 치솟아오는 심상찮은 에너지체는 파악하지 못했다. 까마득한 하늘에서 쏟아지고 있는 대책 없는 공격이 그녀의 감각기를 비롯해 비행마저도 방해했다.

물리적 타격은 없지만 엘의 스케일들을 순간적으로 수천도에 이르도록 가열시키니 정신이 없다.

그리고 이 단 한 번의 실수가 그녀에게 치명적인 타격으로 다가왔다.

꽈아아아아앙!!!

“캬아악!”

정신없이 하강하던 엘은 전신을 울리는 굉음과 가슴에서 느껴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적중당한 곳은 드래곤이 지닌 신위의 집약체인 드래곤 하트가 있는 부위였다. 이곳은 드래곤이 지닌 가장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다.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드래곤 스케일을 뚫고 들어온 그 공격은 드래곤 하트에 직접적 타격을 입혔고 엘은 그대로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까마득한 하늘에서부터 일체의 낙법도 없이 수직으로 내리꽂힌 엘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날개는 형편없이 구겨졌고 팔다리도 부러졌다. 허리도 비정상적으로 꺾인 상태다. 수백 톤에 달하는 몸이 아무런 보호 수단 없이 내리꽂혔으니 그 충격량은 어마어마했다. 아무리 강력한 드래곤이라도 무거울수록 충격량이 커지는 것에는 벗어날 수 없다.

츠츠츠츳...

드래곤의 몸이 작아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인간의 형상이 되었다.

회복에 사용할 용언을 사용할 신위가 남아 있지 않다. 엘어스로부터 건너오며 가지고 온 건 제황과의 싸움에서 바닥이 나버렸고 어쩔 수 없이 회복을 위해서 작은 존재로 변신했다.

자체 회복을 사용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멈춰.”

타탁...

옆에 내려선 제황이 그녀의 머리를 향해 화살을 쐈다.

“꺄아악!”

엘은 젖먹던 힘을 다해 몸을 피했지만, 화살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제황의 긴 화살이 꽂힌 채 대롱거리고 있다.

“아으윽...”

아름다운 미녀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지만, 제황은 가차 없이 두 번째 화살을 쟀다.

신음성을 지르던 엘이 제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차 없네.”

엘의 말에 제황은 당기고 있던 시위를 놓지 않은 채 말했다.

“유언이냐?”

제황의 대답에 엘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공격당한 화살에 담긴 그의 신위로 인해 회복까지 방해받았으니 그의 말대로 유언이라면 유언이다.

그러나 아직 그녀는 아직 사용하지 않은 한가지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뭐, 유언이라면 유언인데... 해도 돼?”

엘이 장난스럽게 말했고 제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 도와줘!”

그녀가 소리 높여 외쳤다.

휘이이이...

그녀의 커다란 목소리가 사막의 바람 속을 메아리쳤지만, 그녀가 애타게 부른 알이라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둘러보던 제황이 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끝났냐?”

“아, 아니... 조금만 기다려 봐. 알!!!”

휘이이...

목놓아 불러도 응답은 없다.

“그만 끝내자.”

“으윽! 이 자식! 왜 이렇게 느린 거야!”

“잘가.”

“아, 안돼!”

파아앙!

제황은 엘의 머리에 화살의 끝을 맞춘 채 시위를 당겼다.

퍼어엉!

파사삭!

마지막 온 힘을 짜내 만들어낸 방어막이 화살에 박살이 나며 엘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질기네.”

제황은 다시 하나의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이제 진짜 마무리다.

그때였다. 하늘 위로부터 이상현상이 일어난 것은...

지지지직...지직!

저녁도 되지 않았건만 하늘에는 붉은 노을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색 점차 진해지더니 이윽고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드래곤이었다. 붉디붉은 드래곤스케일을 지닌... 골드 드래곤보다 조금 더 큼직한 몸체를 지닌 레드드래곤이 하늘 위에 떠있다.

“크르르르...”

레드드래곤의 등장과 동시에 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아앙!

제황이 빠르게 시위를 놓았지만 엘의 몸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어느새 레드드래곤의 머리 위로 이동한 것. 그녀의 상세를 확인한 알이라는 래드드래곤의 눈이 흉험하게 빛난다.

“쯧...”

혀를 찬 제황이 고개를 들어 새롭게 나타난 적을 바라봤다.

현재 제황의 몸도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엘에게 쐈던 마지막 공격에 모든 것을 담았던 후유증이다. 문제는 새로운 강타자가 나타났다는 것.

가급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던 최악의 상황이다. 과거 백린이 말했다.

엘어스의 드래곤은 두 마리라는 것을 말이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래드드래곤의 배 부위가 불룩하고 솟아오른다.

말할 것도 없이 드래곤의 최종 무기인 브레스를 준비하는 것이다.

“피곤하군.”

제황은 이제는 넝마가 되어버린 용살자의 장갑도 뜯어내 버렸다.

지금부터 하려는 짓은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

파아앙!

제황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잠시 후 그의 등으로부터 붉은빛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돋아났다. 그는 빠른 속도로 레드 드래곤을 향해 다가갔다. 너무나 무모한 접근이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제황을 바라보며 래드 드래곤의 눈에 조소의 빛이 감돈다.

화르르륵...

화염브레스의 준비는 끝났지만, 알은 조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보다는 약하지만 엘에게 빈사에 가까운 상처를 입힌 상대다. 최대한 접근시킨 후 브레스를 먹이려는 것. 만약 엘이 정신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브레스를 쏘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여유를 부렸다가 그녀도 당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알의 입이 벌어지려는 순간...

제황의 그동안 숨기고 숨겼던 그의 진짜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엘이 알이라는 레드드래곤을 부를 수 있다면 제황도 부를 수 있는 비장의 한수가 있었다.

최후에 최후까지 감췄던 비장의 수다.

“가라! 궁기!”

“크허어어어엉!!!”

제황의 몸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레드드래곤에 필적하는 거대한 뭔가가 알의 목줄기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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