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
제황의 반격-2
#1
“멈춰라.”
찰나 간 시간을 멈춘 엘이 붉은 화살들을 피해냄과 동시에 다시 한번 방어막을 치며 날개의 회복에 집중했다.
“역행”
황금빛 마나가 두 날개를 감싸고 이내 다치기 전의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지금 그녀가 사용한 용언은 회복의 마법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날개의 시간을 이전으로 돌린 것이다.
“죽어라. 카오스 드라이브”
준비된 마법은 깨지지 않았다.
무한한 정신력을 지닌 드래곤의 이름에 걸맞게 그 공격 속에서도 완성된 마법의 유지에 성공한 엘의 머리가 세차게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네 개의 뿔 사이에 있던 황금빛 에너지체가 조금 전 붉은 화살들이 날아온 곳을 목표로 뻗어 나갔다.
구우우우···. 지직···. 찌직···.
지면에 맞닿는 순간 잠시 움츠러드는가 싶더니 이내 뿜어진 검은 에너지가 땅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마치 만족을 모르는 것처럼 도넛 모양으로 뻗어 나가는 그것들은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나아갔다. 검은 에너지에 닿은 몬스터들의 사체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날린다. 모든 유기체를 원자단위로 분해해 버리는 그 에너지를 뚫고 하나의 인영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흥!”
그것을 발견한 엘의 가슴이 불룩하고 올라온다. 마치 뱃속에 뭔가를 토해내는 듯 그것은 목을 지나 빠르게 입 부근으로 올라오고 있다. 한껏 입에 머금은 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솟구친 제황의 이동 궤적을 빠르게 훑은 그녀의 머리가 제황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드래곤 브레스‘
꽈아아아아아!!
선홍색 광선이 제황이 피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잠식하며 방사형으로 뻗어 나갔다. 초고열의 에너지 집약체... 비록 브레스가 넓게 퍼졌다고는 하지만 브레스는 브레스다.
둘 사이의 거리는 무려 400미터가량 되었지만 마음먹고 발사한 드래곤 브레스에 거리 따위는 무의미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제황은 속절없이 브레스에 휩싸였다.
초고열로 건물마저 두동강내버리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닌 그녀의 브레스에 정통으로 직격당했으니 아마 뼈도 남기지 못하리라.
잔인한 미소를 짓는 엘... 그러나 그녀의 눈이 이내 부릅떠졌다.
화염에 둘러싸인 덩어리가 브레스를 뚫고 튀어나온 것이다. 불타고 있지만 화염 사이로 찬란하게 빛나는 붉은 서기가 빛을 내뿜는다. 그의 몸을 보호하듯 둥글게 감싸고 있던 그것이 펼쳐지자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날개가 되었다. 브레스를 완전히 피하지 못해 온몸에서 연기가 치솟지만 상관없다는 듯 제황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화살 한 방을 쏘아냈다.
파카캉!
쑤아아아아악!!!
‘위험하다.’
붉은 섬광이 그녀를 향해 빠르게 짓쳐 든다. 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엘은 방어막에 마나를 집중하며 버티는 길을 택했다.
퍼어어어어어엉!!!
“큿!”
방어막을 뚫지는 못했지만 엘 조차도 순간 긴장할 정도로 강렬한 타격이다.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잠시 주춤했지만, 빠르게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다시금 날개를 움직여 날아오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은 자신의 몸 위로 뭔가가 내려선 것을 감지했다.
“크르륵”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본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곳에는 화살의 잰 제황이 그녀의 등 위에 내려앉아 있다.
“떨어져!”
지이이이잉!
엘은 온몸으로 마나를 분출해냈다.
이런 식의 비효율적인 방법은 좋아하지 않는 그녀지만 워낙 돌발스러운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문제는 제황이 드래곤 스케일을 붙잡고 무식하게 버텨냈다는 것이다.
“떨어지라고!”
엘은 온몸을 비틀며 제황을 떨어뜨리려 했지만 입고 있던 갑옷이 찢기고 조각나 떨어져 나가도 제황은 버티고 버텼다. 엘이 고도를 높이기 위해 잠시 공격을 멈춘 순간 제황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퍼어엉!!! 펑! 펑! 퍼어어엉!!!
“큭! 이, 이게!”
두 다리를 드래곤 스케일 사이에 단단히 고정한 제황의 비천궁이 연속으로 퉁겨졌다
쾅! 쾅! 콰쾅!
제황은 드래곤 스케일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두들겼다.
그리고...
파아아앙!
강렬한 파열음과 함께 스케일 하나가 산산이 박살이 나며 내부의 속살이 드러났다.
“안돼!”
용암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자신의 비늘이 박살 나자 엘은 마음이 급해졌다. 지금껏 이런 존재와 싸워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엘에서 그녀의 위치는 절대자이며 먹이사슬 최상위의 존재였기에 그 누구도 그녀의 비늘에 상처하나 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 비늘이 박살이 났다.
난생처음 겪은 일로 인해 그녀는 공황에 빠졌지만, 그따위 사정 봐줄 생각 없는 제황의 공격이 그녀의 속살을 잔인하게 헤집기 시작했다.
‘폭발하며 관통하는 강기의 화살’
퍼어어엉!
붉은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엘의 입에서 처음으로 정말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퍼졌다.
“캬아아아악!!”
#2
‘속았어! 속았어!’
이를 갈며 엘은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모든 게 거짓이었다.
영상을 통해 나왔던 그에 대한 모든 것도 거짓이었고 기지에서 마주쳤을 때 그와 나눈 힘겨루기 조차도 기만이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을 사냥하기 위한 제황의 계략이라는 것을 깨달은 엘은 소름이 끼쳐오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노련한 사냥꾼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솟구치는 것은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과 오기였다.
“해보자!”
엘의 두 날개가 접혔다. 드래곤의 거대한 동체가 중력의 영향을 받아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엘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빠르게 한다. 그리고...
씨우우우우우웅!!
지면으로 거의 45도 각도로 내리꽂히며 엘은 마나를 집중해 몸을 단단히 만들었다.
콰아아앙!!! 우당탕! 탕! 콰콰콰콰콱!!!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 엘이 몸을 둥글게 말아 등 부위부터 땅을 마구 굴렀다. 해츨링 시절해나 했을 법한 무식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만점이다. 성가신 진드기를 떨어냈다. 폭발하듯 비산하는 모래 속에서 몸을 일으킨 엘은 네 개의 다리로 지면을 단단히 붙잡으며 주위에 떨어졌을 제황을 찾아 살기어린 눈을 희번덕거렸다.
부딪히기 직전 공중을 날아 엘에게서 떨어진 제황의 몸도 그다지 상태가 좋지는 않았다.
파편에 맞아 왼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다.
그러나 이를 질끈 깨문 그는 오른손으로 왼팔을 억척스럽게 꺾어 제자리로 맞췄다.
얌전히 회복할 새도 없다. 제황이 몸을 날림과 동시에 그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으로 섬광이 꽂혔다.
숨쉴 틈도 없이 빛의 구체가 사방에서 조여 들어온다.
이전에 한 번 당했던 그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속절없이 당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도 신성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고 그에 따라 그의 힘은 이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이 고양되는 중이다.
쫘아아악!!!
그새 회복을 끝마친 그는 비천궁의 시위를 최대치로 끌어당겼다.
‘관통하는 신벌의 화살’
파아아앙!!!
여의보주를 완전히 녹여내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던진 제황은 이제 신벌의화살을 횟수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무련천궁단으로 인해 절반가량을 소모한 상태지만 이미 다시금 채워낸 상태.
파칭!!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구체의 한 면이 박살이 났고 그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며 제황은 빠른 속도로 사방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마구잡이로 날린 것 같지만 그것들은 마치 생명이라도 가진 듯 공중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이내 드래곤을 목표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나에로우’
엘의 뿔 사이로 하얀빛의 구체가 생성됨과 동시에 그 속으로부터 수백 발의 마나에로우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인간들이 사용하는 중화기 중 미니건과 같은 속도다. 게다가 그것들 하나하나 유도기능이 있는지 날아오는 화살들을 향해 마주해 갔다.
퍼퍼퍼퍼퍼펑!
화살들을 요격한 마나에로우들이 이제는 그 화살의 주인을 향해 돌진해 들어간다.
끼끽...
두 다리를 땅에 박은 제황의 왼손이 잔상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비천궁도 쉴 틈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황의 연속사격이 시작되었다. 드래곤과 인간의 화력대결... 제황이 밀릴 듯 보이지만 믿을 수 없게도 제황은 마나에로우들을 하나하나 요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엘은 기함했다.
자신의 마나에로우가 오히려 밀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법의 조종 드래곤으로서의 자존심! 오히려 뿔 사이로 마나를 집중하며 더욱 많은 마나에로우를 쏘아냈다.
콰콰콰콰콰쾅!!! 쾅쾅쾅!!! 콰쾅!
드래곤쪽으로 밀리던 공방에 제황을 향해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제황의 코앞까지 밀어붙이고 그녀의 눈이 잔인하게 빛나는 순간...
퍼엉...
엘의 바로 아래 모래가 터지는가 싶더니 그 속에서 한 발의 붉은 화살이 솟구쳐 올라 엘의 턱에 꽂혔다.
쾅!!!
머리가 위로 꺾임과 동시에 줄기차게 쏟아져 나가던 마나에로우들도 흩어져 버렸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적인 약점은 역시 머리다. 그리고 드래곤 또한 그 사실은 다르지 않다. 아무리 그 내구성이 타 생명체와 차원을 달리한다고 해도 때리면 아픈 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금 제황이 사용한 공격은 서툴지만, 신벌의 기운에 유도기능이 있는 ‘춤추는’과 더불어 관통과 폭발의 기운까지 섞었다. 신력과 마나를 함께 사용하는 것은 궁기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고난이도의 수법이지만 제황은 짧은 시간 동안 그것을 실전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갈고 닦았다.
“캬아아아!!!”
엘이 괴로운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화살은 그녀의 아래턱을 관통해 버렸다. 그녀가 용언을 이용해 중간에 차단하지 않았다면 아마 위턱 혹은 뇌 부분까지도 화살이 침범당했을 것이다.
“쳇.”
제황도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이번 공격은 꽤 회심의 한 수로 준비한 것이었는데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아직은 엘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이것은 금세 역전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마찬가지였다.
드래곤과 같은 우월한 존재에게 같은 기만술을 다시 한번 사용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 그리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자신을 노려보는 드래곤의 눈에는 더 이전에 보이던 그 오만함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진짜군.’
온몸이 따갑다.
공격은 이미 시작되었다.
‘신화 심판하는 자’
‘절대권역’
신화의 신위 그리고 여의용혈신공이 하나가 되어 절대권역이 확장되어 엘의 몸에서 뿜어지고 있는 신력과 맞서기 시작했다.
“크라라락!”
엘의 앞발이 한걸음 나서는 순간 이미 그녀의 몸은 제황의 지척에 다다랐다.
200여 미터에 달하는 거구다. 드래곤의 단 한걸음이 인간이 제황에게는 거의 순간이동급의 속도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제황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파아앙!!
모래 먼지가 피어오름과 동시에 제황의 몸도 마주해 나아갔다.
리치가 길면 근접전은 거구 입장에서도 패널티다.
텁!
드래곤의 거대한 입이 그가 있던 공간을 물어온다.
‘용혈무’
‘암혼보’
잔상을 일으키며 그 입을 피해낸 제황의 손에는 무한고에서 꺼낸 거무튀튀하고 둥근 물체 다발이 들려 있다.
팅! 티티티팅!
안전핀을 제거한 그것이 드래곤이 무는 것을 확인한 제황이 피식 웃으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특제 수류탄이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드래곤에게 상처입힐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애초에 살상보다는 상대를 짜증 나게 만들 방법을 고안해 주문한 특제품이다.
콰콰콰쾅!!!
“쿠르르륵!”
입안에서 터진 수류탄에 엘의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렇지만 이내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지 입안에는 상처하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제황이 그녀의 입에 물려준 건 단순한 폭발물이 아니었다.
“캬아악!! 크아아아악!!!”
“독각룡의 독샘을 정제해서 100배로 농축한 거다.”
북한쪽의 특산물인 7티어 몬스터 독각룡의 독샘은 지독하기로 유명했다.
그 독기가 워낙 지독해서 국가에서도 거래제한품목으로 삼을 지경이다.
바위조차도 녹이는 독기를 최신정제기술을 통해 100배로 농축했다.
그러나 드래곤에게는 그조차도 잠시였다.
용언을 통해 입안으로 들어온 독수류탄을 복구시켜버린 엘은 그것을 도로 뱉어내 버렸다.
가히 사기라고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어차피 제황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제황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잠시간의 찰나일 뿐이다.
‘신화 활의 주인’
‘비상하며 춤춰라. 폭발하는 강기의 소나기가 폭풍우가 될지니...’
퍼어어어엉!!!
황금빛 드래곤 스케일이 박살나며 엘의 머리가 지면에 처박혔다.
다시금 머리를 곧장 들어올리려 했지만 제황의 공격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퍼어엉!
퍼어어엉!
파아앙!
승기를 잡은 제황은 전력을 끌어모아 엘의 머리를 공격했다.
‘폭발하며 관통하는 강기의 화살!’
‘춤추며 관통하는 강기의 소나기!’
‘폭발하는...’
폭발의 반동으로 공중으로 치솟은 제황이 작게 심호흡을 했다.
승부를 걸어야 할 때다.
‘강기의 소나기여 신벌의 화살과 함께 춤쳐라!’
퍼어어어어엉!
거대한 울림과 함께 비천궁으로부터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빛줄기가 땅 속으로 박혀버린 엘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오오가무시 레이드 당시에 날렸던 것보다 최소 10배 이상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제황의 전심전력이 담긴 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