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3
무극무련천궁멸진! 발진! -1
#1
손으로부터 솟구친 화살을 비천궁의 시위에 가져다 대는 순간이다.
“꺾여라.”
우지직...
마른나무가 꺾이는 기음과 함께 제황의 오른손이 제멋대로 돌아갔다.
“큭!”
투우웅...
비천궁의 시위가 끊겨버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어진 적이 없는 비천궁의 시위였다. 장력을 유지하던 시위가 끊어지자 비천궁이 역으로 휘어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다. 제황의 몸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지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파바바바바박!!!
동시에 맹렬히 날아든 반투명한 빛줄기가 그의 온몸을 두들겼다.
빛줄기는 제황의 몸을 계속해서 공중으로 날아 올렸다. 제황을 향해 손을 뻗은 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았다.
그녀의 손이 빠르게 휘저어졌다.
“무한한 죽음의 광선이여.”
제황의 몸을 감싸는 투명한 24면체가 생성되었다.
그 안에 갇힌 제황은 마치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것 같다.
엘의 손바닥에서 손바닥만 한 빛의 광선이 만들어졌다. 번쩍하는 순간 사라진 그것은 이미 제황의 몸을 두들기고 있다. 한 번이 아니다. 다면체 안에서 초당 수십 번을 튕기며 그의 몸을 연속으로 타격해댄다.
퍽...퍽...퍼버버버버버벅!!!
“크으으윽!”
광선에 두들겨 맞을 때마다 제황의 몸은 다면체 안에서 맹렬히 굴러다녔다. 수백 번을 두들겨 맞은 후에야 다면체가 사라지고 제황의 몸이 자유낙하 한다. 그렇지만 엘의 본격적인 공격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중력 집중”
투우우우웅!
자유 낙하하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땅으로 내리꽂힌다.
콰아앙!!!
제황이 꽂혀버린 곳에는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 버렸다. 아니 그것도 끝이 아니다.
우드드드득!
“크흡...”
팔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움직일 수 없다. 온몸에 거의 100배에 달하는 중력이 걸리자 혈액이 역류하며 칠공 뿐만 아니라 땀구멍에서조차 피가 뿜어져 나왔다.
“천둥의 발길질”
쾅! 쾅!! 쾅! 쾅쾅!!!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하던가.
화창한 하늘로부터 굵은 벼락 줄기가 제황이 누워 있는 곳을 연속으로 때려댔다.
벼락에 두들겨 맞을 때마다 제황의 몸은 땅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잔인하디 잔인한 공격이다.
“반중력”
걸레처럼 늘어진 제황의 몸이 공중으로 다시금 치솟았다.
엘의 손이 뻗어진다. 허공에 있는 뭔가를 붙잡듯 손을 꽉 쥐었다.
동시에 제황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보이지 않는 손에 잡혀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호호호호호!”
쾅! 쾅! 쾅!
엘의 주먹이 허공을 내려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에 휘둘려진 제황의 몸이 바닥에 내리쳐졌다.
한번...두번...세번...네번...
제황의 몸을 보호해야 할 비늘 갑옷은 찌그러지고 터지며 오히려 제황이 몸으로 파고 들어갔다. 몸 곳곳으로 피가 줄줄 흐른다.
“흐으응.”
엘이 손을 휘저었다. 그에 따라 힘을 잃은 제황의 팔다리가 휘적휘적 흔들린다.
마치 인형을 망가뜨린 아이처럼 이리저리 돌려보던 엘은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폈다.
바닥에 떨어진 제황은 고통으로 인해 꿈틀거렸다. 살아있는 게 용하다.
흉하게 꺾인 그의 오른팔이 허리 뒤로 돌아가 있고 흘러내린 피가 땅을 적셨다.
“싱겁군.”
엘이 손을 털며 말했다.
놀라워하거나 기뻐하지도 않는다.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고저없는 목소리다.
그녀는 헬윔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은 고작 1분 내외다.
“너희 인간들은 참 재미있더구나.”
“...”
제황이 그녀의 말을 들을 수나 있을까.
지금 그의 곁에 누군가가 있다면 당장 끊어지려는 그의 숨을 다시 붙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으리라.
그녀는 제황이 듣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독백처럼 말했다.
“온종일 너와 나를 비교하며 너의 약점을 떠들어대니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어. 어떤 녀석은 나에게 너를 공략할 방법까지 친절하게 방송해 주더구나. 원거리의 강점이 없어졌으니 근거리에서 속도와 은신 위주로 공략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레일건이나 위성무기 같은 것으로 변칙적으로 초장거리 타격을 노린다.
혹은 게릴라성의 소모전을 택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 미국이 지닌 항공전력이면 가능하다고 하던가.”
우지직...
“크헉...”
제황의 오른쪽 다리가 장난감처럼 꺾여버렸다.
“네 약점으로는 이것을 들더구나. 공격 방법이 활 하나에 편중되었기 팔만 봉쇄하면 전투력의 절반을 깎아버릴 수 있다고···. 속도와 은신을 파훼하는 방법은 공중으로 날아 올리면 쉽다고 하던가. 궁신은 내구력을 높이는 능력이 없는 물 몸이라고···. 아주 침을 튀기며 외치더구나. 만약 자신이 나 정도의 힘이 있다면 당장에 네 목을 비틀어 버릴 수 있다고... 널 단지 운 좋은 인간이라고 깎아내리더군. 후···. 인간이라는 건...”
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두 달의 시간 동안 인간에 대해 학습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인간은 역시 구제 불능이라는 것이다.
“쿨럭···. 쿨럭···. 웩···. 헉헉···.”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뻐끔거리던 제황이 입에서 살점이 점점이 섞인 피를 토해냈다. 내장에 심각한 충격을 입은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간신이 상체를 일으킨 제황이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투구는 이미 절반 이상이 박살 나 너덜거리고 있다.
시위가 끊어진 비천궁 만은 용케 놓치지 않고 왼손에 쥐어져 있다.
타탁...
엘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땅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제황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처연한 눈빛으로 제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난 그 누구에게도 두 번의 기회를 준 적이 없다.”
“...”
“그렇지만, 넌 다르지. 넌 특별하다. 저런 인간들 따위 굳이 지킬 필요 없잖느냐.”
그녀의 손이 제황의 볼을 쓰다듬었다.
“네 숭고할 희생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단다. 용사여. 너같이 순수하고 맑은 전사의 영혼이 더럽혀지는 것은 나도 원치 않아.”
엘은 제황의 귀에 걸린 헤드셋을 떼어내 구겨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그 귀에 속삭였다.
“네가 지금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면 너를 원상태로 복구해주겠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약속했던 것도 그대로 이행해주지. 정 네가 원한다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엘로 데려갈 수도 있게 해주마. 인터넷이야. 뭐 나도 마음에 들었으니까 백 년이 걸리든 천년이 걸리든 산업 혁명 한 번 일으켜 보지 뭐. 어때?”
그녀로서는 정말 초룡적인 아량을 보인 것이다.
그녀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녀에게 두 번의 기회라는 건 없었다. 엘에서는 선신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녀가 내리는 신벌은 엘의 모든 종족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제황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
제황에게만 특별히 허락한 기회이다. 엘은 정말 제황을 소유하고 싶었다.
제황은 그 옛날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 고대에 존재했다던 인간들의 용사였다. 용사는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그 초월적 의지가 육신의 껍데기를 깬 존재들이다.
그 하나로 숭고한 존재들...
“헉헉...”
“말하기 힘든가?”
그녀의 물음에 제황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꽤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의 연인이 좀 심한 소유욕의 화신만 아니라면 정말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제안은···. 마음에 드는데···.”
“드는데?”
“어떤 질투심 많은 아가씨가... 헉헉... 허락하지 않을 것 같군요.”
“?”
제황의 대답에 엘의 이맛살이 구겨졌다. 이것은 그녀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다. 고작 자기 뜻을 고작 인간의 생물학적인 사랑에 비교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기 전 제황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그리고...”
“그리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제황이 왼손에 든 비천궁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무련천궁단 소환’
쿠쿠쿵
비천궁으로부터 눈부시게 하얀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에 호응하듯 하늘로부터 웅혼한 울림이 있다.
비천궁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노도와 같은 에너지를 느끼며 제황은 자신의 신화를 깨워냈다.
‘신화 무련천가의 주인’
슈슈슈슉...
하늘을 찢고 빛줄기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니다. 아니 일이십도 아니다.
하나... 둘... 열.... 백......이백....
수백 개의 빛줄기가 떨어져 내린다. 땅에 닿은 그것들이 이내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검은 가죽갑옷, 검은 투구, 검은 피풍의... 손에 든 거대한 태궁... 그리고 그 숫자는 무려 300에 달했다.
그들 중에는 좀 특이한 이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무련천궁단의 복식이 아니었다. 금빛 구름무늬가 수놓아진 감청색의 화려한 무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에는 활과 화살 문양이 음각된 옥대를 차고 있고 머리에는 천(天)이 수놓아진 영웅건이 매여져 있다. 나이대는 50대 초반에서 60대 후반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모두 하나같이 제황의 것과 같은 비천궁을 들고 있다.
“시작해야 겠군.”
시공을 격해 만나 반갑기는 하지만 지금 그들은 인사나 하러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바로 무련천가의 주인의 명을 받들고 소환된 것이다. 지금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뿐이다.
‘적을 격멸한다.’
파파팟! 파팟! 파파팟!
그들은 이미 제황과 엘을 중심으로 둥근 원을 이루고 있다. 창노한 노인의 우렁찬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극무련천궁멸진! 발진!”
#2
콰아아아아아!!
파파파파파팟!
캬가가가각!!!
보이는 것은 오로지 희끗희끗 움직이는 잔상뿐이고 들려오는 건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파열음의 잔형뿐이다. 무려 340이 움직이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푸르고 둥근 원으로만 보일 뿐이다. 엘을 둘러싼 무려 지름 100m의 거대한 바람의 구가 맹렬히 회전할 때마다 소름 끼치는 파열음이 터져 나온다.
“꾸어어억!”
엘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던 몬스터들이 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원구를 향해 미친 듯이 뛰어들었다. 그러나...
“크라라락!”
푸른 원에 부딪히는 순간 분쇄되듯 갈려 나가 그대로 핏물로 화해버린다.
7티어급 이하 몬스터들은 살점 한 조각 남기지 못했고 7티어나 8티어 몬스터들 또한 고작 몇 초간밖에 버티지 못한 채 박살 나 사라졌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 본다면 푸른 원을 향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쓰나미가 연달아 들이치는 중이다.
카가각! 카칵!
“무극무련천궁멸진! 혈풍!”
원을 중심으로 거력을 품은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하나의 거대한 용권풍으로 화했다. 아니 그것은 태풍이었다. 모든 것을 빨아 삼킨다. 달려들던 몬스터들이 바람에 저항하듯 버티지만 오히려 더욱 빠르게 집어삼키켜지고 있다. 몬스터들의 피로 범벅이 된 모래들이 하늘을 꿰뚫는 태풍이 되어 솟구쳐 오른다. 그리고 맹렬히 회전하는 푸른빛의 반구에 내부에는 그에 맞서는 황금빛 구체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다.
마치 힘겨루기를 하는 듯 황금빛 구체는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중이다. 푸른 반구는 당장에라도 황금빛 구체를 잡아먹을 듯 두들겨 댔지만, 황금빛 반구는 그 모든 공격을 너끈히 받아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쿠르르르르...
지반이 부르르 떨리더니 반경 50미터가 풀썩하고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꾸어어어어억!”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던 헬윔이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며 푸른 반구의 안을 파고들었다.
목적은 황금빛 구체를 삼키려는 것. 그 자신의 몸으로 주인을 보호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푸른 구체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300명의 무련천궁단이 동시에 외쳤다.
“무극무련천궁멸진 폭발하는 강기의 화살!”
푸른 구체 내부로 또 하나의 푸른 구체가 생성되더니 반대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금빛 구체를 삼키려던 헬윔의 입이 시간이라도 멈춘 듯 정지해 버렸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곽!!!!
수백 발의 화살이 헬윔의 머리 위를 고슴도치처럼 꽂혀 들어가고 잠시 후 일제히 폭발해 버렸다.
콰과과광!..
“구우우...”
폭발로 인해 반쯤 파헤쳐진 머리를 흔들던 헬윔이 그대로 나자빠진다. 9티어 최상급의 등장 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다.
위이이잉...
그러나 헬윔의 죽음이 영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나마 잠시 공격이 약해지자 황금빛 구체가 빠르게 확장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푸른 구체가 다시금 전력을 다해 밀어붙이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황금빛 구체가 야금야금 푸른 반구를 잠식해 가며 크기를 불려간다. 그 모습은 마치 포효하는 드래곤을 닮았다.
“허어, 요선의 힘이 상상 이상이로다.”
푸른 반구의 위로 40개의 신형이 떠올랐다.
“7대 가주시여. 이거 재수 없으면 후손에게 면이 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23대 가주인가. 그래. 생각지 못했던 천명을 받아 이렇게 현신을 했거늘 이거 체면도 못 차리겠구만. 쯧”
노인은 낭패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때였다.
기골이 장대한 노인이 그들 사이에 섰다.
“그럴 수는 없지.”
다른 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가 황금빛 구체를 향해 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뿜어진 하얀 기운이 황금빛 구체를 옭아매 버렸다.
그들 모두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시조님을 뵈옵니다.”
그는 바로 무련천가의 제1대 가주 천휘였다.
성산의 시작과 함께하며 백두산에 무련천가 연 거인 중에 거인...
“예를 차릴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다 되어 감이니...”
“예!”
파팟...파파팟!
그의 손에 들린 비천궁으로부터 푸른 번개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40인의 가주들의 손에 들린 비천궁에서도 그와 같은 푸른 번개가 일어났다. 한 대의 화살을 시위에 올린 비천궁이 만월을 되었다.
꿈틀거리던 황금빛 구체도 이번 공격만은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수백 줄기의 황금빛 촉수를 내뿜어 그들을 공격해 갔다. 황금빛 구체가 푸른 반구를 찢으며 그들을 공격하려던 순간...
무련천가의 제 1대 가주 천휘의 입이 열렸다.
“신벌의 화살!”
“신벌의 화살!!”
동시에 40명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고 비천궁으로부터 쏘아진 푸른 번개 다발이 일제히 황금빛 구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쾅!!!!
눈이 멀어버릴 듯한 강렬한 빛의 충돌과 함께 발생한 폭발....그리고 폭발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몬스터들을 찢어발기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