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52화 (252/301)

# 252

대적하는 자-2

#1

쿠우우우우...

시속 420km 로 새벽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아트라스에는 제황을 보좌할 무련천가의 정보요원 셋이 탑승해 있었다. 그들이 오늘 할 일은 제황을 보조하는 것. 드래곤과의 전투의 승패를 가늠할 인류 최강의 헌터를 태운 그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실시간으로 사령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해석 종합하는데 바쁘다.

그러나 그 당사자인 제황의 가슴은 오히려 믿을 수 없을 만치 담담했다.

‘설계는 끝났다.’

제황은 레이드에 들어가기 전 설계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전투를 시작한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에 레이드 했던 것들과는 근본부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드래곤은 그 능력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수십 수백 가지의 변수가 발생할 수 있었다.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도 사냥꾼의 마인드 중 하나다.

제황이 각성 초기부터 솔로 댐딜러를 지향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여럿과 손을 맞추다 보면 돌발상황의 가짓수는 곱절로 늘어난다. 그것을 방지하려는 이유가 첫 번째고 그 모든 대부분 돌발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역시나 한방에 침묵시키는 것이다. 그 능력이 공격력에 치우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세 번째는 레이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함으로써 돌발상황이 발생할 시간 또한 줄여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정말 초반부터 최선을 다해 드래곤을 공격해야 한다.

드래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돌발상황은 이전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을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제황은 눈을 감고 천천히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수십 수백 개의 변수를 상정하여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한 시뮬레이션이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제황의 눈매가 파르르 떨리기를 반복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뜬 제황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승률이 어느 정도야?

-49 혹은 99

극단적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거잖아?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니야?

-변명 같지만 어쩔 수 없어. 변수가 너무 많아.

-넌 너무 비관적이야. 전투는 자신감 몰라?! 남자는 배짱!

-현실적이지. 전투는 설계야. 미친 척 부딪히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난 이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제황의 대답에 궁기가 투덜거렸다.

-쳇, 반박할 수 없어.

충동적이면서 기분파인 궁기와 철저히 계산적인 제황은 전투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궁기가 백기를 드는 이유는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제황은 지금껏 무패라는 것이다.

철저히 이길 전투만을 한다. 적을 고른다는 것이 아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설 때만 나선다는 뜻이다.

한편으로는 제황이 저리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번 드래곤과의 전투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이 못내 불안하다. 그것은 제황이 먼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 이번에는 조금 변칙적이면서 비열한 방법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뭐, 한 번은 먹힐 거야.

-그래. 치사해도 어쩔 수 없지.

#2

아트라스는 끝없이 펼쳐진 마른 황무지 사막 위를 조용히 날아갔다.

한참 모니터를 주시하던 정보요원 하나가 눈을 크게 뜨며 외쳤다.

“사령부로부터의 통신입니다. 현 시각 8시 50분 몬스터의 조직적 움직임 포착! 드래곤으로 보이는 인간여성 또한 확인되었습니다.”

“위성과 드론으로 파악한 몬스터의 숫자는 6만에서 8만입니다. 대부분 3티어 몬스터지만 5티어 이상의 고등급의 몬스터 또한 상당수 확인되고 있습니다.”

제황이 고개를 갸웃했다.

“2만이나 차이가 나는 겁니까?”

“지하의 몬스터 숫자가 유동적입니다.”

그의 설명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번 레이드를 막아내는 관건은 지하에 숨어있을 몬스터다. 그것들은 제황에게도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다. 땅속 깊이 숨어버리면 제황의 화살도 뚫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아니 뚫을 수 있다고 해도 효율은 극악을 달릴 것이다.

“몬스터들이 밀집하기 시작합니다!”

천장에 달린 거대한 스크린에 3차원 지형도가 떠올랐다. 붉은점... 아니 붉은 물결들이 한곳으로 계속해서 모여드는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새롭게 붉은 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하의 몬스터들이 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숫자가 늘어납니다! 예상 범위보다 많습니다! 8

“9티어 헬윔! 나타났습니다! 앗! 두 마리! 두 마리! 새롭게 나타난 헬윔에 코드 부여 요청한다!”

9티어몬스터 두 마리의 출현에 요원들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현재도 과거에도 9티어 몬스터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헬윔은 지금껏 레이드 된 역사가 없는 몬스터다. 같은 9티어 몬스터보다 더 거대한 몸을 지닌 주제에 수십 수백 미터 지하까지 잘도 파고 들어간다. 그러다가 땅 위의 미세한 진동을 느끼면 순식간에 올라와 꿀꺽하고 잡아 먹고 다시금 땅속으로 사라진다.

물론 헬윔의 레이드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이유가 헬윔의 서식조건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과 사막의 몬스터 숫자를 조율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수십 마리를 삼켜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사막의 공포 그 자체다.

“위력과시군.”

제황은 엘이 지금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녀에게는 장난이지만 인간에게는 재앙이다. 마치 개구리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저럴까. 더욱 두려운 것은 지금 모이고 몬스터 숫자가 그녀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무련천가에서 분석한 결과 드래곤은 지금보다 최대 네다섯 배의 몬스터를 부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곳에서 그녀를 막으려는 것이다. 그녀가 이곳을 벗어났을 경우 얼마나 많은 숫자의 몬스터가 더 그녀의 수중에 들어갈 것인가.

“모하비 사막에 들어섰습니다.”

제황이 보기에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별달리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이곳을 을 잘 아는 현지 정보요원의 눈빛은 갈수록 창백해지고 있다.

“몬스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군요.”

항시 몬스터 한두 무리는 떼 지어 돌아다니던 곳이었다. 그 몬스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모두 그녀의 권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지평선 끝으로 라스베이거스의 가장 높은 건물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상당한 고지대에 형성된 도시이기에 아직 거리는 상당히 멀다. 그렇지만 아트라스는 잠시 후 제자리 비행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래땅이 보이지도 않는다.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몬스터들이 대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5티어의 공중몬스터들이 사막 위 바위 위까지 빡빡하게 점령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일제히 덮친다면 아무리 아트라스라도 단숨에 고철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내리죠.”

“예. 죄...죄송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기장의 표정이 제황의 말에 안도와 미안함이 공존한다.

부우우...

아트라스가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대략 지상으로부터 20여 미터가량 위에 아트라스가 멈춰서자 제황은 헬기의 문을 열고 밖으로 가볍게 뛰어내렸다.

타탁...

제황이 안전하게 착륙한 것을 확인한 아트라스가 공중으로 다시금 치솟자 로터로부터 생성된 하강기류로 인해 생성된 먼지 돌풍이 눈을 어지럽힌다. 잠시 후 아트라스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제황은 혼자가 되었다.

휘이이이...

바람이 몰고온 후덥지근한 열기가 갑옷의 틈새를 파고 들어왔다.

속성방어라는 것은 마법적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것들만 막아주기에 풀페이스 형태의 투구에 입까지 가로막는 제황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철컥... 철컥

투구를 벗어든 제황은 한 손에 투구를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곳 앞까지 도착했다.

“크르르르...”

“캬르르르...”

몬스터들은 제황을 향해 맹렬한 적의가 섞인 야생의 살기를 내뿜었다. 그가 자신들과 같은 드래곤의 권속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으로 느낀 것이다. 그렇지만 몬스터들은 제황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길을 열어주는 듯 좌우로 갈라진다.

제황은 그 길을 묵묵히 걸었다. 몬스터들의 더운 콧김이 생생히 느껴진다. 개중 몇몇은 그 흉성을 주체하지 못하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드래곤의 명령만 아니라면 당장에라도 제황에게 달려들어 그를 찢어발길 것 같은 분위기다.

“악취미군.”

드래곤에게 가는 길은 상당히 멀었다. 마치 전쟁에서 패한 장수가 상대편 진영에 항복하러 가는 모양새다. 아마 지금 위성을 통해 이 모습을 시청하는 모든 이들도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으리라. 드래곤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알고 당하니 기분이 더 더럽다.

그렇지만 제황은 말없이 길을 걸었다.

#3

헬윔의 머리 위에 도도하게 앉아있는 엘이 보인다.

헬윔에 비해서 작을 뿐이지 절대 작지 않은 몬스터들이 모두 제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부 7티어에서 8티어급이다. 그 숫자도 기백은 넘을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당장이라도 심장마비로 죽거나 혹은 엘의 자비를 빌며 목숨을 구걸했을 것이다.

제황은 고개를 들어 엘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의 눈빛이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제황이 그녀의 제안에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다. 만약 제황이 그녀의 말대로 엘의 신이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굳이 이런 길을 걸어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신격을 지닌 이들에게는 좀 더 편한 방법이 있으니까.

엘이 먼저 입을 떼었다.

“왜지?”

앞뒤를 잘라먹은 물음이지만 의미는 대충 이해한다.

제황은 이미 대답을 준비해 왔다.

“그 동네는 인터넷이 안됩니다.”

“...”

너무나 웃기는 대답... 만약 다른 사람이 제황의 이런 대답을 들었다면 미쳤냐고 되물을 것이다. 무려 반신들이다.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이미 그 신성은 하늘에 닿은 존재들... 그런데 그런 존재가 인터넷을 이유로 들고 있다. 초등학교 발표회의 연극 소재로도 사용하지 않을 저렴한 유머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제황의 그 대답에 엘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는 것이다.

그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웃는지 화내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제황도 기분 내키는 대로 대답한 것이 아니었다.

엘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한량 같은 처자에게 심각하게 물어서 얻은 최선의 대답이다.

수천 년의 수명을 지니게 되면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심심함이다. 다른 말로는 권태라고 부른다.

어떤 기술을 익히거나 책을 통해 호기심을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엘은 지구의 중세와 같이 정보의 이동이 매우 폐쇄적이다.

그런 불멸자들에게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는 신천지와 마찬가지다. 그곳에 떠도는 정보들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다. 수천수만 명과 거리의 제한 없이 정보를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녀에게도 크나큰 유혹이었다.

마법으로도 재현할 수 없는 인간만의 것...

역시나 예상이 맞았는지 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끙, 그건 맞군.”

게이트로 연결되어 있으니 유선이라도 끌어다가 쓸 수 있다지만 제황의 목적이 달성되면 게이트도 사라져 버린다.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엘에서 실현하기 위해 인간을 강제로 데려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터넷이 왜 사랑받는가. 수천만 명이 만들어내는 그 끝도 없는 정보의 다양성 때문이다.

한마디로 지구가 아니면 인터넷은 인터넷이 아니게 된다.

“놀라울 만치 우습지만 안타깝게도 반박할 수는 없구나.”

한창 문명의 이기에 맛을 들이며 최근에는 SNS 계정까지 만들고 노는 엘로서는 제황의 대답을 부정할 수 없었다.

제황은 단 한마디로 드래곤을 이해시켜 버렸다.

“인간으로서 바랍니다. 물러나 주시죠. 다시는 엘의 역사에 지구가 참견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모든 인간은 당신을 환영할 겁니다.”

제황이 말했다. 제황이 드래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다.

그러나 엘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쩔 수 없다.”

그녀의 심경 변화를 느끼는지 몬스터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군요.”

제황 또한 오른손에 비천궁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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