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48화 (248/301)

# 248

드래곤레이드 준비-2

#1

땅에 내려서기만 하면 밟아버린다던 권제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문이 열리자마자 공항에 늘어선 수천의 사람들이 제황을 향해 일제히 환호를 터뜨렸으니까.

“환영합니다.”

전세기를 내려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빌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어설픈 한국어로 제황을 환영한다.

욕심으로 가득 찬 뱁새 같은 눈깔에 살집 좋은 두툼한 백인노인은 제황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아마 이번에 쇼 한 번 해서 그동안 갈아먹은 지지도를 좀 높여보고 싶은 모양이다.

내밀어진 빌 트럼프의 손... 그리고 제황은 그 손을 잠시 바라봤다.

-슬슬 시작해볼까?

-그래. 준비해 줘.

궁기와 모종의 신호를 나눈 제황이 머리카락을 슥 쓸어올린 후 전에 없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빌 트럼프의 손을 꽉 붙잡았다.

“환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오오오!!!”

기자들의 괴성과도 같은 환호와 함께 요란한 카메라 셔터음이 진동한다.

제황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차카카카카칵!

방송국 카메라까지 합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기자 숫자만 거의 천여명인 것 같다.

제황은 빌 트럼프 대통령이 친근하게 달라붙어도 얼굴색 하나 찌푸리지 않고 그의 장단에 놀아줬다.

“가시죠.”

“네.”

준비된 레드카펫을 걷는 중에도 카메라 셔터는 쉴 틈 없이 울렸다.

“와! 궁신이 저렇게 잘 생겼던가?”

“칙칙한 방어구를 벗어던지니 완전 미친 외모잖아?!”

“저게 사람이야?!”

“특종이야. 특종!”

제황이 미소와 함께 기자들을 향해 손을 슬쩍 들어주자 여기자들중 실신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함께 넋을 놓고 쓰러지는 남자 기자들은 일단 신경 끄자.

제황은 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를 무련천가와 이번 연합레이드에 참가하게 된 헌터들 중 미국 소속 헌터들이 뒤따랐다.

#2

전세기에 앉아 창밖으로 손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권제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삐딱하게 서서 함께 밖을 바라보던 동철이 말했다.

“뭐가.”

“본래 저 자리는 영감님이 섰을 수도 있잖습니까. 영감님도 강하잖아요. 아마 제황이가 아니라면 영감님이 세계 최강자라고 불렸을 텐데 말입니다.”

동철의 말에 권제가 피식 썩소를 흘렸다.

“그딴 것 몬스터들 아가리에 던져버린 지 오래다.”

대한민국을 아니 그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니꼬워도 허리를 숙이며 살았었다. 과거 천둥벌거숭이였다가 제황이의 할아버지에게 목숨의 구함을 받았다. 아니 목숨만을 구원받은 게 아니었다.

도망치라며 자신들의 등을 밀고 자신은 몬스터들의 웨이브를 홀로 가로막고 또 목숨을 바쳐 막아낸 그분은 권제의 가슴에 깊은 화인을 남겼다. 그때부터였다. 죽을 때까지 그분의 유지를 잇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이제 그분의 손자가 저렇게 자랑스러운 자리에 서 있다. 아니 이제는 자신의 손자이기도 하다.

“네놈이야말로 서운한 거 아니냐?”

“제가 뭐요?”

“저놈이 우리에게 해준 말이 실현된다면 곧 게이트는 사라진다. 그러면 네놈은 그냥 힘만 세고 성깔 더러운 놈팡이일 뿐이야.”

제황은 권제와 동철에게만은 사실을 밝혔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권제와 유일한 친구인 동철에게 말이다. 세 개의 차원을 다시금 안정화하겠다는 제황의 당찬 계획···. 권제의 말마따나 게이트가 사라진다면 많은 헌터들이 실업자가 될 것이다. 지구상에 몬스터들이 남아있기는 하겠지만 공급이 없으니 몇 년만 지나면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힘만 쓸데없이 쌘 헌터들은 사람들에게 배척받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동철은 권제의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재테크 준비 완료되었거든요? 저 농장 할 겁니다.”

“농장?”

“예. 몬스터 농장 할 겁니다. 아주 크으으게! 제가 마냥 쉬고 있었는지 아시죠? 그동안 발바닥에 땀이 나게 돌아다니면서 북쪽에 땅 사놨죠.”

“허···.”

동철의 야심만만한 재테크 계획에 권제의 입이 벌어졌다.

“곰 같은 네놈 머리에서 나온 계획일 리는 없고 네 마누라냐?”

“흐흐흐, 사람은 결혼을 잘 해야 하는 법이죠.”

동철의 말에 권제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즐기는 애인이야 있지만 어쨌건 이날 이때까지 솔로인 권제 아닌가.

그런데 자신에게는 없는 마누라라는 존재가 이 곰탱이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부하가 치민 것이다.

“너, 새끼... 두고보자.”

“예?”

“아니다.”

권제는 속으로 동철에 대한 수련 계획을 한등급 상향하며 모른 척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 뉘집 손자새끼인지 아주 지리네.”

#3

“... 한발 더 나아가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수호자로서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오오···.”

찰칵! 찰칵! 차르르르르륵!

제황의 짧지만 강렬한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은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그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자제하며 비밀스럽게만 움직이던 궁신이었다. 세계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가졌음에도 매스컴에도 나타나지 않고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던 궁신은 오늘 작정이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칙칙한 방어구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고급스러운 정장을 차려입은 제황은 그냥 카메라를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화보였다. 그 옆에 흐뭇한 표정으로 서 있는 빌 트럼프 대통령 따위는 안중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경쟁하듯 제황을 찍어대는 기자들을 향해 빌 트럼프 대통령 또한지지 않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는 오늘 미합중국이 궁신과의 영원한 친구가 된 날을 기념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섰습니다. 이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우리 미합중국은 언제나 궁신을 지지할 것이며 그의 행보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빌트럼프의 말에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현 미국대통령인 빌 트럼프는 돌발적인 경향이 있는 대통령으로 유명했다.

좋게 말하면 쇼맨십이고 나쁘게 말하면 관심종자랄까. 뭔가 사고를 저지를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저의 큰 결단을 발표할까 합니다. 이번 드래곤레이드가 성공할 경우 향후 라스베이거스를 궁신에게 30년간 할양하겠습니다.”

“!!!”

빌트럼프의 폭탄선언에 회견장에 있던 모든 기자가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화끈하게 지를 거라고는 했는데 저런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할양이라는 것은 일국의 영토를 타국에 이전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 기가 차는 것은 미합중국의 영토를 일개 개인에게 이전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각하! 그 말은 지금 미합중국 시민들의 사유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이로써 미합중국과 궁신은 말뿐인 동맹이 아닌 실질적인 협력자 관계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 주정부와는 합의가 된 것입니까!”

“주정부 또한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으로...”

기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소리쳤지만, 워낙 그 질문의 숫자가 많아 따로 세부내용을 발표하기로 약속 후 넘어갔다. 그리고 빌 트럼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빌 트럼프 대통령의 폭탄선언에 대한 추가 질문만을 한가득 남긴 채 기자회견은 그렇게 끝났다.

이제는 슬슬 드래곤레이드를 위해 이동해야 할 때다.

테러를 대비한 수십 명의 각성자 보디가드들에 둘러싸여 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 차량을 향해 걸어가는 제황이다.

공항을 벗어나자 수만 명의 시민이 공항 밖을 가득 채운 채 제황과 빌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열광하고 있다.

개중에는 이번 드래곤의 공격으로 인해 터전을 잃은 이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제황을 향해 외치고 있다. 갖가지 플래카드들이 눈에 띤다.

‘우리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당신을 믿습니다.’

몇몇은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를 하는 모습도 보인다.

제황이 손 한번 슬쩍 흔들어주자 사람들이 열광하며 외쳤다.

“궁신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하길! 트럼프 만세!”

궁신의 뒤로 자신의 이름까지 환호에 섞이자 빌 트럼프 대통령은 물 만난 고기 마냥 두 손을 들어올린 채 환호에 답하기 바쁘다. 그때였다.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각성자 보디가드 중 하나가 공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모, 몬스터!!!”

“몬스터라니!”

“꺄아아아악!

“드래곤!!!”

그를 시작으로 모든 이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곳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몬스터 한 마리가 하늘에서 가득 채우며 내려오고 있었다. 몇몇은 드래곤이라고 소리쳤지만, 그것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드래곤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날씬하다. 골드 드래곤의 황금빛 비늘과 대비되는 푸른 비늘에 둘러싸인 그것,. 문제는 그 존재가 드래곤보다 길다는 것이다.

너울거리는 오러를 줄기줄기 뿜으며 내려오는 그것은 뱀과 같은 동체에 네 장의 날개를 지니고 있었다. 네 개의 팔이 달린 그것이 공중에서 한 번 꿈틀거릴 때마다 태양이 가려지고 구름이 쓸려나간다.

그 길이만으로도 근 500미터가량은 넘을 것 같은 압도적인 존재의 등장에 사람들은 도망조차 치지 못한 채 두려움에 휩싸인 눈으로 멍하니 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그르르르르르...”

깊은 목울음이 귀청을 찢을 듯 울려 퍼지자 다리가 풀려 자리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으어...어어.”

바닥에 주저앉아 바지를 적신 빌 트럼프 대통령은 패닉에 빠지려는 정신을 붙잡기도 바쁘다. 그것은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몇몇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항거할 수 없는 절대적인 공포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오연한 표정으로 달리고 있는 한 인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제황이었다.

타닥...탁...

건물을 가볍게 밟은 제황이 엄청난 속도로 수직 상승을 하기 시작했다. 수직으로 치솟은 건물을 맨땅을 밟듯 뛰어오르는 그의 손에는 어느새 비천궁이 들려 있다. 몬스터도 제황을 무시할 수 없는지 그를 향해 그 거대한 머리를 돌린다. 그리고...

파아앙!

몬스터를 향해 화살을 겨눈 제황이 날아올랐다.

잠시 후 한계점까지 치솟은 순간 제황의 손이 화살을 놓는다.

콰콰쾅!!! 촤차차차차창!!!!

제황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가며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유리들이 일제히 박살났다.

씨아아아앙!

제황을 손을 떠난 화살은 이미 화살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 되어있었다.

오색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빛과 같은 속도로 몬스터의 머리를 향해 날아간다.

“크라라라락!”

몬스터 또한 제황의 공격을 경시할 수 없는지 두 개의 뿔 사이로 푸른 마나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맹렬히 빨아들이는 바람 속 두 개의 뿔 사이로 뭉친 푸른 빛의 구체가 제황의 화살을 향해 마주 쏘아져 나갔다.

콰아아아아아앙!!!

둘의 폭발과 함께 생성된 충격파가 천지를 진동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지금 하늘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간의 껍질을 쓴 신과 드래곤에 버금가는 거체를 자랑하는 거대한 몬스터의 싸움을 겁에 질려 쳐다보고만 있다. 지금 이 자리에는 6성과 7성의 각성자도 있었지만, 그들은 감히 저 신들의 싸움에 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자신들의 신이 승리하기만을 기원하는 것 뿐이다.

파팡! 콰콰콰쾅!!! 쾅쾅!!!

밑에 있는 이들 중 제황의 움직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제황이 건물에 한 번 발을 디딜 때마다 희끗희끗 나타나는 잔상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발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음과 음속을 돌파할 때마다 터지는 충격파는 덤이다.

인간의 신을 상대하는 몬스터 또한 제황을 우습게 볼 수 없다고 느꼈는지 큰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거대한 입을 벌리기 시작하자 이빨 사이로 푸른 빛의 구슬이 맹렬히 요동치기 시작한다.

제황 또한 그 공격에 대비하듯 자리에 멈춰 서서 비천궁에 마나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츠츳···. 츠츠츳... 파파팍

그의 몸을 중심으로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잠시 후 그것들은 모두 제황의 손끝에 모여들었다.

콰아아아!

몬스터의 입으로부터 붉은빛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제황의 몸으로부터 빛의 기둥이 마주 쏘아져 나갔다.

퍼어어어어엉!

“으아아아악!”

“으아아!”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츠츠츠츠츠츳! 파아아앙!

몬스터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브레스를 가르며 날아간 빛의 기둥이 몬스터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몬스터는 온몸을 요동쳤다. 그러나 제황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쫘라라라라라락!!!

그의 활 끝으로부터 시작된 화살의 비가 몬스터의 온몸을 무자비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몬스터가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 거대한 동체가 일으킨 돌풍이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휘날리게 만든다.

“와아아아아!!! 궁신! 궁신!!!”

패닉에 빠져있던 사람들은 이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의 신을 향해 환호하기 시작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제황을 향해 광신도처럼 소리친다. 그리고...

“크아아아악!”

묵직한 빛의 화살이 다시 한번 몬스터의 머리를 두들기자 몬스터는 머리가 그대로 펑 하고 터져 나갔다.

지직...지지직...

“이...이겼다.”

“궁신이 이겼다.”

머리를 꿰뚫려 몸을 마구 비틀던 몬스터의 몸이 어느 순간 푸른 구름이 되어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터져 나간 머리를 시작으로 몬스터는 푸른 먼지처럼 흩어지고, 잠시 후 찬란한 태양이 나타났다.

타탁...

땅에 가볍게 내려선 제황이 짧은 심호흡과 함께 비천궁을 무한고로 돌려보냈다.

그와 함께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함성...

“궁신! 궁신! 궁신!!”

“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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