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
한미조약-2
#1
눈 밑이 퀭한 몬스터자원부 팀장이 두툼한 문서 뭉치를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쿵...
“1차분입니다.”
정적이 흐른다.
쿵...
“2차분...”
쿵...
“3차분... 일단 이게 끝입니다.”
“많군요.”
며칠째 집에 들에 들어가지 못해 머리가 떡이 된 각 팀의 팀장들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그것들을 내려다봤다.
“제 주관적 오류를 없애기 위해 최대한 날 것 데이터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가장 고생을 한 것이 몬스터자원부팀장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도 불평하지 못한다.
“하나의 몬스터에게 이 정도의 데이터가 필요합니까?”
“제 주관적 생각으로는 몬스터가 아니라 우리보다 월등한 상위종의 생명체로 인식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제 주관적인 관점이니 이 데이터를 분석하시는데는 제외하시기 바랍니다..”
“잘하셨습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이루미는 조금의 동요도 일으키지 않은 채 자신의 앞에 놓인 같은 문서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골드 드래곤: 엘
전장:277미터 무게:170톤
종류: 초대형 비행몬스터
특징
비정상적 비행능력: 170톤의 무게를 순간 속도 20m/s 속도로 상승함. 추력 계산 불가
비정상적 마법능력: 보유마법 메커니즘 해석 불가
-기존의 인간이 사용하는 마법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이능력으로도 추정
비정상적 지능...
비정상적 파워...
비정상적...
사라락...사라락...
빼곡한 글씨들이 페이지를 넘기는 이루미를 환영한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제황님의 강점이 모두 무효화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오히려 강점이 약점으로 분류되는 형편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은 현재 논의 중입니다. 이전까지 제황님은 사거리의 미스매칭과 일발 공격력의 집중을 통해 몬스터를 레이드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드래곤이 현재까지 보여준 공간계 능력을 분석했을 때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후우, 생방송을 보던 사람들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그 능력은요?”
“당시 녹화된 영상을 정밀 분석한 결과 마나수치가 급등한 것으로 볼 때 마법적 능력이 간섭한 것으로 예상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메커니즘은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장내에는 한숨만이 가득하다. 들으면 들을수록 드래곤의 강력함만이 느껴질 뿐이다. 마치 pc게임을 시작하는데 초보존에 최종보스가 풀려있는 것을 목격한 기분이랄까?
드러난 신체 능력은 이전의 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제황이 아무리 탈피를 마친 오오가무시를 일격에 침묵시킨 전례가 있다고 하지만 이번 상대는 오오가무시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저 지능적인 무자비함입니다.”
몬스터자원부팀장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초월적 존재라는 것은 이미 인정한 상태다. 사용하는 마법들 또한 아직 그 메커니즘을 제대로 규명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마나와 마법에 대한 수만 개의 논문이 나와 있는 상태지만 드래곤이 사용하는 힘은 가설조차 세우지 못하는 중이다.
순수신체 능력만으로도 10티어 급이라고 말할 수 있건만 그건 아주 작은 장점일 뿐이다. 실제 모두가 우려하는 것은 드래곤이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들이 진짜 힘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차라리 드래곤의 난동이 미국 하나에서 끝나길 비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이 바라는 바입니다. 또한, 그녀의 존재가 꼭 해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해악이 아니라니요? 몬스터 아닙니까.”
경호팀장이 말했다.
“몬스터이기 이전에 상위의 초월 종이지요. 많은 국가가 현재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공간계열 마법입니다. 만약 그녀와 평화적인 방법으로 교류를 할수 있다면 인간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물류 혁명이지요. 또한, 공간을 이동시키는 것만으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군사기술도 있을 수 있고요.”
“인간을 개와 동급으로 생각하는 상대와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개라고 쓸모 있는 개라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엘은 인간의 신문물에 아주 큰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일단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거군요.”
대외업무팀장의 말에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이라는 초월체에게 인간이 약함을 인정한다는 가정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외업무팀장은 오히려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건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지요. 우리는 다릅니다. 저는 제황님이 드래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까놓고 말해서 제황님 또한 본래 전력이 아니시지 않습니까.”
“네? 그게 무슨...”
대외업무팀장의 말에 경호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황님의 전투스타일과 성격 그리고 그분의 평소 행적과 이루신 업적 등을 분석해 봤을 때 제황님께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력을 다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루미님?”
그의 물음에 전혀 동요 없이 서류를 훑던 이루미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제가 아는 믿을 수 있는 분의 말에 의하면 제황님이 지금까지 보이신 능력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음... 그런...”
이루미의 말에 회의실 내 모든 이들이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아니···.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가장 놀란 것은 몬스터자원부팀장이었다. 분석이 주요 업무인 그인 만큼 레이드의 주체인 제황에 대한 스펙은 그에게 아주 중요한 자료였다. 이제 제황의 능력에 대해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때 이루미의 말은 그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분도 확실한 근거는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단언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제황님께서 드래곤에 대한 레이드에 들어가셨을 때 가장 정확한 드래곤의...”
그녀의 말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요원 한 명이 황급히 걸어들어온다.
“큰일났습니다.”
요원의 등장에 회의실에 있는 이들 모두가 그를 주목한다.
조금 신경질적인 시선이기는 하지만 중역 회의 중 불쑥 튀어 들어온 그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그만한 이유가 아니라면 절대 이런 간 큰 짓을 할 리 없으니까.
“무슨 일입니까.”
“미헌터사무총장이 한미헌터조약을 들어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천제황님의 드래곤 레이드의 일원으로 요청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2
“미헌터사무총장이 미쳤구만.”
헌터일보 이철중은 노트북을 탁 덮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미국 쪽은 반응이 어때? 거기도 난리 났을 텐데”
“거긴 아직도 마비 상태입니다. 주가까지 대폭락하는 와중인데 결정권자들이 전부 드러누웠잖아요.”
“아니, 마나를 지닌 헌터들은 식물인간까지는 피했다고 하지 않았어?”
“피하기야 했죠. 문제는 가장 우두머리가 누웠다는 겁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냥 두기로 한 모양입니다. 진테프먼이 들고 나온 한미헌터조약에 궁신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지켜보는 거겠죠.”
“버리는 패 재활용인가?”
“네. 그리고 버리는 패라고 하기에는 진테프먼이 미국 내에 가지고 있는 헌터 인맥도 무시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렇기야 하지.”
이철중이 테이블을 탁탁 두들길 때다. 사무실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새끼 기자가 외쳤다.
“선배님! 대박 뉴스입니다!”
“음? 뭐가?”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서 진테프먼의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임마.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호들갑이야. 지금 사무총장이 권제 따까린데. 거부권 행사 했으니 진테프먼이 강제권 발동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 한 달인가?”
“한 달은 아니겠죠. 드래곤이 한 달 기한을 줬는데... 하마 이주는 걸리지 않겠습니까?”
둘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새끼기자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진테프먼이 강제권 발동을 시작하려는 눈치 같습니다. 국내에 있는 미국 측 헌터들 긴급소집권을 발동했습니다.”
“뭐야?!”
그의 대답에 이철중이 벌떡 일어났다.
본래 그의 예상 속에 무력행사는 없었다.
“한국 정부는?”
“방금 들어온 정보라서...아직 그건...”
“대한민국헌터사무국 쪽에 전화 넣어서 다시 확인해봐! ”
“그걸 말해 주겠습니까.”
“미친 새끼야. 누가 그걸 아무한테나 물어보래?”
“아, 알겠습니다.”
“이거야. 원... 한미헌터조약 잘 아는 놈이 누구더라.”
이철중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미국에서 발생한 드래곤의 침략선언도 빅뉴스인데 이것도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이번 일의 내막을 알만한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반 시간 뒤 그는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든 채 뛰기 시작했다.
“야야!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서 특작부 소집한단다! 빨리 움직여!”
“예?”
“특작부라고! 무한탱커 김주한이랑 헤드헌터 살라딘이랑 밑에 공격대 전부 소집명령 떨어졌다고!”
“히익!”
선배기자의 외침에 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그가 말한 둘은 헌터특종을 다루는 기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고 있는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숨겨진 힘이였다. 등급조차 밝혀지지 않은 그들을 양지로 노출시키면서까지 전면에 동원했다는 건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이 미국과 완전히 척을 질 작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가겠습니다!”
#3
대한민국 언론의 특징은 무엇일까.
일단 언론의 신뢰도가 세계적으로 볼 때 바닥을 긴다는 것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니 고질적 병폐라며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기는 하지만 뉴스가 어그로성이든 뇌피셜이 듬뿍 든 내용이든 싸지르고 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어떤 특종 기사가 뜨면 엄청난 양의 어뷰징기사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D-1 미헌터사무국vs대한민국헌터사무국]
[한미헌터조약을 들고나온 미헌터사무국, 대한민국 정부 헌터부장관 파견]
[30년 전 맺어진 한미헌터조약에 고심하는 한국정부.]
[한미헌터조약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적성... 자신감인가? 내부의견출돌?]
[대한민국과 미국이 충돌한다!]
하루 사이에 수십 개의 어뷰징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강의 헌터 보유국인 대한민국인 만큼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 또한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알고 진테프먼을 긴급하게 소환하려 했지만 진테프먼은 이 또한 거부해 버려 논란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믿을 수 없지만, 모두가 우려하는 그 일은 다음 날 그대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에 주둔 중인 미군의 헌터들과 미헌터사무국지부의 헌터들이 무적성 앞마당으로 총동원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터사무국에서 파견한 병력 또한 그에 대치하듯 무적성 앞을 지키고 섰다.
대한민국 헌터사무국은 특작부를 선두로 하여 약 200명의 헌터들을 동원했다. 가장 선두에 선 두 남자가 이목을 끈다. 거의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덩치에 중장갑을 걸치고 있는 20대 후반의 훈남과 온통 검은색의 경장갑으로 몸을 꽁꽁 싸맨 자신의 몸보다 훨씬 거대한 특수제작된 대물저격총을 비켜 맨 남자다.
그들의 맞은편에 도열해 있는 미국측 헌터들의 숫자는 무려 1300명!
진테프먼이 거의 어거지로 끌어모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일단 숫자로는 몇 배를 상회했다. 그렇지만 기세는 오히려 대한민국 측에 밀리는 분위기다. 맨 선두에 서 있는 둘의 몸에서 뿜어지는 위압감이 대치한 미국 측을 그대로 옭매는 형국이다.
“출입도 힘들 것 같은데요.”
“끙...”
비서실장의 말에 진터프먼의 얼굴에 깊은 고랑이 패였다.
대한민국과 미국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말았기에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게 되었다.
미국 측의 손을 들어줄 거로 생각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곳의 상황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으리라. 자존심을 지키고 내려오느냐 똥물을 뒤집어쓰고 내려오느냐의 차이다.
“사무총장님 시간이...”
“알아!”
신경질적으로 답한 진테프먼이 자신의 무장을 점검했다.
무력을 동원하려는 움직임만 보여도 벌벌 떨거라 생각했던 노란원숭이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날 줄은 그도 몰랐다.
“노란원숭이 따위...”
진테프먼이 한걸음 나섰다. 그 또한 무적성의 지배자인 권제와 같은 7성의 헌터다. 맞은 편 선두에 선 두 남자가 그 못지않은 기세를 뿜어내기는 하지만 진테프먼은 용기 있게 한발 나섰다.
자신이 저 둘을 압도적으로 꺾어 분위기를 가져온다면 200명 따위야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다.
진테프먼은 의도적으로 마나를 줄줄 흘리며 걷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은 스치기만 해도 쓰러질 기세 줄줄 흘리며 다가가는 진테프먼을 보며 선두에 선 두 남자가 피식 웃었다.
“사무총장님이 뒷일은 다 책임진다고 했지?”
“그래. 죽이지만 말라더군.”
그 대답에 거한의 입에 상쾌한 미소가 걸린다.
“그럼 내가 나서지. 넌 할 줄 아는 게 죽이는 것밖에 없잖아?”
“흠, 부인하고 싶지만 사실이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헤드헌터 살라딘이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김주한이 그 거대한 주먹을 그러쥐고 우드득거리며 한걸음 나선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였다. 그들의 뒤로 육중하게 버티고 있던 무적성의 정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며 보이는 광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