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한미조약-1
[미국의 오판으로 벌어진 전쟁 세계가 나설 필요가 있는가]
[UN사무총장 미국의 엘어스 개발계획에 대한 UN 차원에서의 청문회 필요성 역설]
[미국의 핵 오용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재앙이 될 것이다.]
[생물학 무기에 손을 댄 미국의 대한 드래곤의 단죄]
우습게도 피해자인 미국이 성토를 당하기에 이르렀다.
하나 둘 미국에 대한 드래곤의 침략선언을 권선징악이라는 이분법적 사상을 통해 해석하는 국가들도 생겨났다. UN에서는 미헌터사무국 사무총장의 직권 중 ‘핵’ 권한을 걸고 넘어갔는데 소형이기는 하지만 일개 기관이 핵을 사용할 권한을 가졌다는 것에 많은 국가들이 현 사무총장인 진테프먼의 경솔함을 말했다.
물론 이것은 이전부터 말이 많았던 부분이었다.
엘이 노린 건지는 모르지만 당장에 유럽권의 국가들이 일제히 관망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썩을 것들...지금껏 잘도 굽실대던 주제에...”
진테프먼은 세계헌터사무국의 긴급총회 명단에서 자신이 빠진 것에 대해 이를 갈았다.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는 미국을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대통령이 식물인간이 된 덕분에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조금은 시간을 얻은 진테프먼은 어떻게든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세계헌터사무국 긴급총회를 열어 드래곤의 레이드를 조속히 가결하려 했었지만, 그의 의도는 초장부터 가로막혔다.
그들의 관점에서야 진테프먼을 제외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진테프먼은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서 전혀 엄한 곳에 분노를 쏟아냈다.
“이 모든 원인은 궁신 때문이야.”
만약 그가 과거 엘어스의 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함께했다면 미국방부의 파웰중령을 사절단에 무리하게 합류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파웰 중령이 벌였다는 그 경솔한 행동 또한 없었으리라.
수인족들과의 수교를 통한 과실을 대한민국과 나누기 싫어하는 미정부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 은근슬쩍 조기승인한 주제에 궁신을 탓하는 그다.
그곳에서도 9티어 몬스터를 추수하고 다닐 그 미친 능력을 보였을지는 미지수지만, 잘만 구워 삶았다면 그가 이룬 업적은 모두 미헌터사무국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놈만 아니었다면.”
전혀 얼토당토않은 핑계였지만 벼랑에 다다른 그는 그런 식으로라도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부닥쳤다. 당장 다음 달이면 골드드래곤이 네바다 사막에서 끌어모은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을 이용해 인간을 공격한다고 선전포고를 한 상태다. 4티어 5티어의 자잘한 몬스터들은 아예 카운터에 넣지도 않았다. 수천의 7티어 8티어는 물론 무려 9티어의 몬스터 조차 그 빌어먹을 드래곤의 수중에 있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핵이 있으니까’ 하고 안심했겠지만 드래곤에게 사용된 두 개의 핵은 드래곤의 공간계열 마법으로 미국의 주요 핵시설과 항모전단을 지워버렸다.
“사무총장님. 도착했습니다.”
“빌어먹을···.”
수행하는 비서실장의 말에 그는 상념에서 벗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몬스터의 위협에서 가장 빠르게 벗어난 나라답게 공항은 너무나 세련됐다.
천제황 하나가 벌어들이는 돈이 한 국가의 예산의 절반과 맞먹을 지경이다. 그뿐인가. 몬스터가 사라지자 헌터자원이 해외로 빠져나가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진테프먼의 눈에는 고깝기 그지없다.
궁신이 미우니 그가 사는 나라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보라. 과거에는 그가 한번 뜨면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서는 공항에서부터 국빈의 자격으로 그를 대했었다. 으리으리한 의전으로 그를 기쁘게 했다. 지금은 탄핵당하였다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어떻게든 우호의 제스쳐를 취해주기를 허리를 조아려 간청한 적도 있었다.
뭐 입국장에 들어섰을 때 수십 명의 기자가 앞다투어 플래시를 터뜨리는 것으로 조금 기분이 풀리는 듯했지만, 그들이 기자회견장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그를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이번 대한민국을 방문하신 목적은 뭡니까?”
“드래곤의 대한 레이드를 요청하기 위해 방문하셨다는데 사전에 무적성과 이야기된 것입니까?”
“비인도적 생물학 무기의 사용을 미대통령에게 직접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 궁신님에 대한...”
전에는 눈치만 보던 것들이 이제는 대놓고 막 물어본다.
물론 궁신과 드래곤의 레이드를 논의하기 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저들의 말은 마치 자신이 궁신에게 목을 매는 듯한 어감이다. 마음 같아서는 궁신 따위는 필요 없다고 일갈한 뒤 돌아서고 싶지만, 그것은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어렵사리 기자회견을 마친 그는 대한민국 헌터사무국에서 내어 준 의전차량에 올라탔다. 그나마 의전이라도 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빌어먹을 두고 보자. 내가 일개 헌터에게 허리를 조아린다고? 내가? 이 미헌터사무국 사무총장이?!”
“사무총장님. 참으셔야 합니다.”
“뭐라고? 자네도 잠깐 반짝하는 유색원숭이 따위에게 내가 허리를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나?”
운전기사가 있음에도 막말을 쏟아내는 진 테프먼이었다.
“현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지금 사무총장님은 사전협의도 없이 오신 겁니다. 만약 무적성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전박대를 당하신다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흥, 놈들이 그럴 배짱이 있을까.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은... 끙”
뭔가 대한민국을 압박할 거리를 떠올리려던 그는 신음성을 내지르며 눈을 감았다.
전혀 없다. 저스틴포인트는 이제 완전히 대한민국의 소유가 되었다. 세계헌터사무국이 나서서 대한민국의 불법점유에 대해 미국의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지만 세계헌터사무국도 궁신의 이름 앞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9티어몬스터레이드를 제황이 결정하기에 그 중간에 서서 콩고물을 주워 먹어야 하는 세계헌터사무국은 제황의 종을 자처한 지 오래다.
아직까지 과거의 혈맹이었던 미국을 기억하는 한국의 노인네들만이 몇 남았을 뿐 그가 기억하는 위대한 미국은 이제 대한민국에 없었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원하는 권력자가 많습니다. 그들이 힘을 쓰기 시작하면 분명 무적성이든 무련천가든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게 대한민국입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십시오.”
“끙, 그럴까.”
“예.”
간신히 그를 달랜 그의 수행비서 레이튼은 진테프먼 모르게 짙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보모노릇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진테프먼은 한때 ‘슈퍼아메리카’ 로 불리던 7성의 헌터였다. 그가 나이를 먹고 헌터계에서 은퇴한 뒤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으로 취임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물론 그를 보좌하며 안 사실은 그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백인우월주의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차피 미국의 상류층 중에 그런 자가 부지기수였다. 그렇지만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을 무려 10년 넘게 지내면서도 아직도 그런 편협한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실망에 앞서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대한민국이 갑이라는 것을 세상 모든 이들이 아는데 진테프먼은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진테프먼은 입에 침을 튀기며 외쳤다.
“헌터 어차피 한철이야! 돌연변이 같은 놈 하나 나타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승자는 우리 미국이라고!”
“맞습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진테프먼은 기분이나 달랠 요량으로 차량 내에 비치된 태블릿을 켠 뒤 신문기사들을 확인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이 우뚝 멈췄다.
“이, 이놈들이...”
그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다. 신문기사는 그의 방문을 다루고 있었다. 문제는 그 후속기사로 있는 뉴스영상이었다.
-무련천가의 이루미사무장은 현재 10성 헌터 궁신님은 개인훈련에 들어간 상태이기에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과의 만남은 당분간 약속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이, 이런...”
아무리 자신이 사전협의가 끝난 후 온 것이 아니라고 해도 감히 대한민국의 일개 헌터단체 따위가 자신의 방문을 거부한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것들이 그 새끼 하나 믿고 이렇게 기고만장하다는 거지.”
고오오...
우지직...우직...
쥐여 있던 태블릿이 그의 손아귀 힘에 으스러져 나갔다.
아무리 현직에서 은퇴한 지 오래고 훈련을 하지 않았다지만 그는 만렙을 달성한 7성의 헌터였다.
“비서실장!”
“예!”
“미헌터사무국 지부와 주둔 중인 미군 소속 헌터에서 긴급소집할 수 있는 병력이 어떻게 되지?”
“헉! 사무총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눈치 빠른 비서실장이 외쳤다.
진 테프먼은 지금 무척 위험한 눈빛으ㄹ하고 있었다.
아무리 혈맹국이라고 해도 이곳은 타국이었다. 타국에서 헌터병력을 모은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사무총장의 성격이라면 분명...
“난 네놈에게 의견을 물은 게 아니다! 몇 명이야!”
“지부의 방어병력을 제외한 숫자는 200명가량이고 군 소속 헌터는 500명가량이 있습니다.”
“좋아.”
진테프먼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질은 어떻지?”
“3성에서 5성가량이 평균입니다. 한국 쪽의 게이트 내에 한미 합작 프로젝트 때문에 500명 가량씩 순환근무 중입니다.”
현재 저스틴포인트의 관리는 한국군이 하고 있지만, 그 주변의 광물자원등은 아직 미군의 소유였다. 현재로는 비싼 사용료를 내고 저스틴포인트를 이용하는 형국이지만 풍부한 광물자원이 매설된 이곳은 아직도 미국이 한창 공들이고 있는 지역이다.
“좋아. 전부 불러.”
“안됩니다!”
“안되긴 뭐가 안돼! 나 미헌터사무국 사무총장 진테프먼이 이런 모욕을 당했는데 참아야 한다는 말인가? 감히 대한민국의 일개 헌터 따위에게!”
이 미친 상사의 똘끼 어린 외침에 그는 한동안 입을 뗄 수 없었다.
또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또라이라는 것은 또 새롭다. 지금 진테프먼에게 걸려있는 문제가 한두 개인가. 가만히 있을 때야 중간이라도 갔다. 그렇지만 헌터기본레이드 지침인 정확한 몬스터 스펙 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핵무기를 사용했다가 자국의 군 시설 두 개와 죄없는 군인들이 떼몰살을 당했다.
만약 지금 엘의 공격으로 미정부의 주요인사들이 식물인간이 된 상태가 아니라면 진즉에 옷을 벗고 끌려갔어야 하는 게 그였다. 그뿐일까. 이번 엘이라는 골드드래곤이 미국을 타깃으로 삼은 것이 미헌터사무국과 미정부가 합작으로 추진한 사절단이 발단이 되었다는 게 단초가 되어 지금 미정부에서는 책임질 희생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희생양 중 하나는 진테프먼이 될 것이다. 물론 진테프먼도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대한민국의 궁신을 찾아 온 것이건만 아직 예전 버릇을 못고치고 이 개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한바탕 욕이라도 하고 싶은 비서실장이지만 끝내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상대는 어쨌건 7성의 헌터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 따위는 손도 대지 않고 죽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몰락하면 자신 또한 끝장이기에 용기 내 입을 열었다.
“대체 어쩌실 생각입니까.”
“한미헌터조약 11조, 12조”
진테프먼의 말에 비서실장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미헌터조약이라는 것은 과거 대한민국과 미국이 체결했던 헌터 조약이었다. 그리고 11조는...
“11조 자국의 몬스터 레이드시 상대국에 지원병력을 파견을 요청할 수 있다. 요청을 받은 상대 국가 사무총장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12조다.
“레이드작전권과 징집권은 미국이 가진다.”
“그래. 놈이 아무리 날고 기는 헌터라도 국가간의 조약까지 무시할 수는 없겠지.”
“위력시위를 하시려는 거군요.”
“그래. 그러니 어서 불러!”
“알겠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었다.
“음, 맥 보좌관. 날세. 후우...”
비서실장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