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41화 (241/301)

# 241

위기의 미국-2

#1

“이렇게 인터뷰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BBX의 마크트웰이라고 합니다.”

“엘이다. 본디 이름은 훨씬 길지만 엘이라고 부르거라. 그리고 마침 나도 할 말이 있었다.”

“마침 타이밍이 잘 맞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할 말이 있으시다는데 인터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일단,  전기 다시 들어오게 해라. 전기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겠다. 만약 내일까지 전기를 복구시키지 않으면 가장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사라질 것이다.”

천연덕스럽게 도시 하나의 멸망을 이야기 하는 엘이다.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전기라는 것은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저것 전문가들과 함께 가장 좋은 방법을...”

“말장난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를 더 주지. 그리고 관리할 인간들도 데려와라.”

“그건 그렇게 빠르게 정할 수...”

“그만... 정말 대형사고가 뭔지 보고 싶은 건가?”

“아, 아닙니다. 골드드래곤 엘 님의 요구사항 제가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

리포터는 지금 눈앞에 오만하게 앉아있는 이 여성이 또 어떤 요구를 할까 두려워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무리 자신이 메신저일 뿐이라지만 상대가 그런 것을 배려해 줄 것 같지는 않다. 적당히 어르고 달래는 기술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틱틱...딸깍...

마술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두툼한 시가 하나가 생겨나고 불꽃도 없이 시거에 불이 붙는다.

“후우...”

“콜록콜록...죄, 죄송합니다.”

“아니다. 금연은 좋은 것이다.”

“흠흠, 하나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물어봐라.”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나? 너희들이 엘어스라고 부르는 땅을 가꾸는 이 중 하나다.”

“신이십니까?”

“너희들이 말하는 종류의 신이라면 어느 정도는 맞다. 그렇지만 다르기도 하다.”

“어떻게 다르다는 거죠?”

“주시자로써 역사를 조율한다.”

“조율하신다면  지배자입니까?”

“너희들이 사용하는 지배자라는 단어의 뜻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간단하게 농부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더 묻지 마라. 귀찮다.”

“예. 예. 알겠습니다.”

“다음 요구다. 라스베이거스 동쪽 칼리코베이슨으로 식량을 가져와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어디에 쓰시려고...”

“몬스터들이 배고파한다. 알아서 찾아 먹으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너희가 바라는 것이 아니겠지?”

“알겠습니다.”

“그래. 식량을 가져오면 후버댐으로 가는 길에 몬스터들이 가로막지 않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세계 최초로 몬스터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 마크트웰은 뜨끔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본래 후버댐으로의 접근은 자신이 먼저 말을 꺼내려던 것이었다. 무인 시스템으로 움직일 수 있는 후버댐이지만 너무 오랜 기간 방치하면 가동을 멈출 수 있었다.

본래는 몇년 가량도 끄떡없지만 대량의 웜 계열 몬스터들이 온 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댐에 어떤 이상이 발생했을 수 있었다.

마나석 발전으로 수력발전이 사양길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아직 수력발전을 고집하는 중이다.

미정부에서 특별히 부탁했던 것인데 그녀가 선수 쳐서 말이자 이 전지전능에 가까운 몬스터가 자신의 머릿속까지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진 것이다.

“겁먹지 마라. 지금은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엘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치 그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 말이다.

“감사합니다.”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아니 머릿속에서조차 지우려 노력했다.

‘항모전단 하나와 핵미사일 기지, 1,100명의 헌터들은 당신을 공격하다가 죽어간 것은 응당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맞다. 그렇지만 당신 때문에 한 달 째 집을 잃고 난민이 된 LA와 에리조나,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시민들과 몬스터에게 죽어간 이만의 시민들, 그리고 당신이 몬스터들을 부려 하루아침에 지도상에서 지워버린 소도시들은!!!’

만약 상대가 인간이라면 당장에 일어나 상대의 멱살이라도 잡았을 것이다.

“너,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광폭한 절대자의 그것을 발견한 그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 나 또한 너희 미국이 내 땅에 들어와 저지른 짓 때문에 화가 나서 이러는 것이니 피차 마찬가지겠지. 이해한다.”

“아, 으음.”

카메라맨이 이것을 계속 생방송해도 되냐는 듯 작게 신호를 했고 마크트웰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에서는 되도록 미 정부에 해가 될 것은 방송되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상대가 먼저 꺼낸 말을 막으라는 소리는 없었다. 솔직히 자신도 알고 싶었다.

“저희 미국이 저지른 짓이요?”

“그렇다. 차원의 균열 아니 너희 말로는 게이트겠군. 게이트가 뚫렸으니 왕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너희들이 몬스터들을 죽이는 것 또한 아무 상관없다. 엘어스의 몬스터들 또한 지구로 건너가 많은 이들을 죽였지 않은가.”

“맞습니다. 저희 지구의 인간들은 엘어스와 다크어스의 몬스터로 인해 한때 인간의 멸망을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지만 나 또한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차원 간에 발생하는 균열에 간섭하는 것은 나 힘든 일이었다.”

“대융합 당시만이라도 몬스터들을 통제해 주실 수는 없었습니까?”

“통제를 한 수준이 그 정도였다. 그리고 너희는 너희 지구상에 모든 생명체들을 너희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내 권능이 닿는 한의 몬스터에게 간단한 명령 내리는 것이 다다.”

의외로 간단하게 자신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엘의 태도에 그는 조금 의아한 감정을 가졌다.

지금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어도 일단 상대는 적이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비집고 들어올 게 뻔한데도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그는 조금 더 파보기로 마음 먹었다.

“대략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마크트웰의 물음에 엘이 살풋 웃었다.그녀의 능력 한계를 가르쳐 달라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녀는 아량을 베풀기로 했다. 어차피 몬스터를 부리는 것은 그녀가 가진 능력에 극히 일부분일 뿐이니까. 만약 허튼짓을 한다면 얼마 전에 몰래 반입하려다 텔레포트 시켜버린 핵배낭 정도의 파괴력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권능이 닿는 한이라고 이야기 했다.

“모여라. 해산하라. 공격하라. 공격을 멈춰라. 먹어라. 쉬어라. 정도가 있다.”

“그렇군요.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와서 저희 미국이 엘어스에 어떤 피해를 줬습니까?”

마크트웰은 말을 교묘하게 바꿔 말했다.

엘어스는 어쨌건 전 세계가 새로운 신천지로 주목하고 있는 땅이었다.

또한 이종족의 존재는 널리 알려졌지만 정작 그들을 대화의 상대보다는 중세의 야만인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어느 정도 의도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건 신세계 개척을 위해 필수 불가결이었다.

또한 아무리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지만 자신은 어쨌건 미국의 시민이었다.

이 드래곤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미국은 전 세계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거나 혹은 잘 당했다식으로 지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물음에 엘은 미국에서 왔던 문화사절단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모두 끝나자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의 마크트웰이 물었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저희 측에서 죽인 엘님의 신전기사는 100여명이 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의 무게는 그 숫자를 초월해 중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엘님께서 저희 미국에 입힌 피해는 그보다 훨씬 많은 만 단위에 달합니다.”

“더 많이 죽었으니 억울하다는 건가?”

“예. 억울합니다. 또한 굳이 이런 폭력적인 방법보다는 대화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화라... 어째서?”

“대화라는 것은 지능을 지닌 고등종족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

“호호호, 너희가 나와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저와 나누고 계신 것이 대화가 아니고 뭡니까.”

“너희는 너희가 기르는 고양이나 개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개가 멍멍 짖는다고 너희는 개를 너와 동등한 대화의 상대로 삼을 수 있는가?”

“저희가 개가 아닙니다.”

“내 입장에서는 개나 너희나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듣기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만 엘은 굳이 말을 가리지 않았다.

사실이니까.

“좋습니다. 개라... 확실히 하나의 세계를 관장하시는 신적인 존재이시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향후 엘어스와 이 지구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신다면 조금 더 아량을 보여주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마크트웰이 말했다. 그러자 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후우, 귀찮군.”

“무슨 말씀이신지...”

“생각하는 바가 전혀 틀리다는 것이다. 좋아. 앞으로 내가 어떤 것을 하려는지 잠시 보여주지.”

그와 함께 엘의 몸으로부터 황금빛 기운이 솟구쳤다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그 기운이 마크트웰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기운이 훑고 지나간 마크트웰은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버렸다.

아니 마치 찰나의 순간 수십 년의 시간이라도 겪은 듯 그의 눈은 동태눈으로 썩어들어가는 중이다.

“잘 봤느냐.”

“어, 어째서...”

“내가 왜 너희들은 개라고 표현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하아...하아... 아, 알겠습니다.”

마크트웰은 손으로 인터뷰의 끝을 카메라맨에게 알렸다.

카메라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마크트웰은 지금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엘은 그에게 인간의 언어로 설명하는 귀찮음 보다는 그를 직접 겪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보여준 것들은 ...

“침략...”

“아니지. 너희들이 쓰는 말 중에 골라보자면 그래. 역지사지다. 너희 미국이 우매하다고 생각한 인디언을 몰아내고 나라를 세운 것처럼 나 또한 너희를 밀어내 볼 생각이다. 너희 미국이 엘어스에 하려던 것을 똑같이 해주려는 것 뿐... ”

“인간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이제 마크트웰은 그녀를 설득하거나 혹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을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앞으로 그녀가 해나갈 것들을 그에게 보여줬다. 아메리카 대륙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이제부터는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이전의 레이드와는 전혀 다르다. 이제는 전쟁이 되는 것이다.

몬스터와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리라.

“안다. 티브이를 통해 많은 것을 봤지. 꽤 재미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너희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다. 앞으로 한 달...”

“한 달?”

“그렇다. 한 달 뒤부터 네가 본 것을 시작하겠다. 그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거라.”

마치 아량을 베풀 듯 이야기하지만, 그는 안다. 그녀는 지금 인간에게 더 큰 절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후회하실 겁니다.”

“호호, 너희는 너희가 가진 핵이라는 것을 너무 과신하는 것 같구나.”

“우리에게는 핵 말고도 많은 무기가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그리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마크트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나마 엿 본 드래곤은 애초에 그를 대화의 상대로조차 보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어서 빨리 돌아가 드래곤이 벌이려는 것을 알려야 할 때다.

“심지만 남으면 다시 타오르는 것이 인간이지. 난 그 심지조차 뽑아버릴 것이다.”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아니다. 아, 돌아가는 길에 선물을 하나 주지.”

“선물이라니...”

엘의 말에 마크트웰의 얼굴이 굳어 갔다. 그의 직감이 불길하다고 외친다.

“너희들이 계획을 세우기 편하도록 내가 가진 힘의 일부를 조금 보여주겠다.”

그녀의 시선이 카메라를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말했다.

“마법의 종주 골드드래곤은...”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번쩍하고 빛났다.

“이런 것도 가능하지.”

***

[인간의 오만함이 불러온 신의 분노]

[BBX 방송 대참사! 역대 최대 시청률이 역대 최악의 대참사로 변하다.]

[생방송 시청자들 30% 식물인간이 되다. 피해 규모 집계 불가 식물인간이 되지 않은 이들도 고통을 호소하는 중]

[원인불명의 사태!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미대통령을 포함한 각료들... 백악관마저 식물인간 상태!]

[이번 사태가 벌어진 원인에 대한 해명을 바란다.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의 성토!]

[골드드래곤 엘의 군세가 진격을 시작한다. 기한은 한 달!]

[침묵으로 일관하는 궁신! 대항을 포기한 것인가.]

세계가 경악한 일명 ‘엘의 저주의 날’이 지난지 하루가 지났다. 웃기게도 BBX에서 방송한 드래곤과의 생방송 인터뷰로 인해 식물인간이 된 것은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일부 국가에만 국한 되었는데 미정부 및 여당에 우호적인 BBX가 독점인터뷰는 물론 방송권마저 획득하여  생방송을 송출한 게 오히려 다행이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와는 별개로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

[미국의 공격적인 이종족 정책이 발생시킨 대참사]

[지금이라도 미국이 숨기고 있던 모든 정보를 세계에 공개해야 한다.]

미국은 엘어스의 이종족에 관련된 정보들을 그동안 기밀로 묶어 취급해 왔었다.

외적으로는 그 정보들이 불온한 세력들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통제하고 독점해 왔는데 미국이 벌인 짓의 반대급부로 이제 엘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자 미국의 정책에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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