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40화 (240/301)

# 240

위기의 미국-1

#1

“역시 인간은 어쩔 수 없구나.”

싸늘한 엘의 목소리가 뮤턴트의 체액으로 더럽혀진 네바다주 황무지 사막의 건조한 바람 속에 흩어졌다. 덤벼든 것들을 한 마리 남김없이 사막의 먹이로 던져줬건만 어째 엘의 심기가 불편해 보인다.

분쇄된 고깃조각들로부터 온갖 더럽고 추악한 에너지를 지닌 마나생물병기들이 공기를 타고 날아올랐지만, 그것들은 엘에게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투툭

발끝으로 지면을 건드리자 흙으로부터 수십 개의 손이 만들어지더니 땅에 남은 그것들을 끌고 사라져 버렸다.

“불쌍한 것들...”

그녀의 눈에 잠시 슬픔의 빛이 스친다. 그러나 언제 그런 기색을 보였냐는 듯 곧 조소어린 얼굴로 변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되 인간과는 또 다른 감정의 극변화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

인간이 건드려서는 안 될 금기의 영역을 밟은 것에 대한 수호자 본연의 분노였다.

지금 인간들이 그녀에게 사용한 무기는 지구가 세 개의 차원으로 분리되어야 했던 근본 원인과 비슷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드래곤 사이에서는 고대의 인간에 대한 기억이 전해 내려온다. 드래곤들은 망각하지 않기에 기억을 구전을 통해 전달한다. 그녀에게 고대인간의 기억을 전해 줬던 전대의 드래곤로드의 말이 떠오른다.

‘마도문명을 이룩한 여러 종족 중 고대인간들이 마지막으로 정복하고 싶어하던 것은 바로 수명이었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까. 끊임없는 탐구심의 연장선상일까. 인간은 수명이 너무나도 짧았고 인간은 그것을 극복하려 했다.

연구를 통해 조건부의 불로불사마저도 달성했지만, 이후로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마치 끝도 없이 치솟다가 태양에 녹아 스러진 날개를 안고 죽어간 이카루스 마냥

그렇게 연구에 연구를 지속하던 인간들이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진 곤충형 키메라들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지구에 비슷한 일들이 이곳에서 자행되고 있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마. 인간들이여.”

그녀의 눈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향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의 동공에 작은 점 하나가 반사되어 보인다.

“위험한 장난감이군.”

수천 년을 살아오며 쌓인 경험과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지능을 지닌 엘의 직감은 거의 예지와 가까운 제 6감과도 같은 예측력을 자랑한다. 처음 보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저것이 뭔지 곧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과거 백린과 나눈 짧은 대화의 한 토막까지도 생생하게 머릿속에 재생할 수 있는 그녀였다.

“저것이 핵미사일이라는 건가.”

지구의 인간들이 만들었다는 최악의 결전병기. 단 하나로도 도시하나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림과 동시에 생명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든다는 그것...

텔레포트를 사용해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오만함 따위와는 다르다.

모든 것을 초월한 절대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이다.

그녀를 중심으로 바람이 모여들었고 반경 100미터의 거대한 폭풍이 일어났다.

그 사이 점과 같이 보이던 그것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약 9미터가량의 검은색 유선형 동체를 지닌 5MT의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극초음속미사일이다.

소형이기는 하지만 TNT 500kt의 파괴력을 지닌 핵미사일이다.

이 단 한발로도 웬만한 소국 하나는 멸망시켜 버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공포스러운 위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하다.

“흠,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지금 사용하려는 마법을 사용하려면 본신의 마나로는 부족하기에 그녀는 주변의 마나를 한계까지 흡수했다. 가슴 앞으로 둥근 빛의 구가 생겨났다. 잠시 후 안정화된 그것은 황금빛의 아우라를 줄줄 흘리고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는 수십만 개의 깨알 같은 글씨가 주변을 공전하고 있다.

“가라.”

파아앙!

그녀의 손을 떠난 황금빛 구체가 날아오는 극초음속핵미사일을 향해 마주 날아갔다. 그렇게 서로 마주 부딪치려는 순간 엘의 입이 열렸다.

“허무의 공간... 시간의 미아”

투우웅

황금빛의 빛무리가 폭발하듯 떨쳐지며 마하 7로 내리꽂히던 극초음속핵미사일은 허공중에 멈춰 버렸다. 급정지를 한 것이 아니다.

빛무리 속에서 마치 초고속 카메라를 멈춘 듯 미사일은 아주 느릿한 속도로 떨어지기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미사일을 유도하던 관제센터는 난리가 났다. 공중폭발을 통해 최대의 피해를 주려 했으나 자동항법장치가 먹통이 되고 일정 고도에 이르면 자동으로 폭파되도록 설정된 탄두가 공중에서 우뚝 멈춰 요지부동이다. 곧장 폭파모드를 변경했지만 아무리 폭파 버튼을 눌러도 핵탄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이야.”

엘이 손가락을 빙글 돌리자 황금빛 빛무리가 눈부시게 빛나게 시작했다.

“네가 온 곳으로 돌아가거라.”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황금빛 빛무리에 휩싸인 휭 하고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그 핵미사일은 미사일이 처음 발사되었던 핵미사일의 기지 사일로 공중 위에 찬란한 빛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번쩍...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2

땅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깨알같이 먼 곳으로 오렌지빛 화광을 머금은 버섯구름이 솟구쳐 올랐다. 불꽃의 기둥이 어찌나 거대한지 금세 구름을 뚫고 피어오른다. 워낙 먼 곳에 있기에 버섯의 머리 부분만 보였지만 그 파괴력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단하네.”

그것을 바라보는 엘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백린에게 이야기 들었을 때는 조금 우습게 봤었다. 마법의 정수를 잃어버린 인간이 발버둥쳐봤자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눈에 보이는 그것은 그녀가 상상했던 파괴력을 상회하고 있었다. 만약 저것을 우직하게 막아섰다면 죽지는 않겠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조심해야겠네.”

그녀는 인간을 우습게 보던 마음을 조금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단지 조금 더 조심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번 공격으로 백린과 맺은 맹약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이제 진정한 본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슬슬 인간들에게 드래곤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차례다.

“오랜만에 하는데 잘 되려나 모르겠네.”

엘은 눈을 감았다.

‘찾아라.’

그녀를 중심으로 황금빛의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그녀의 머릿속에 수만에 달하는 크고 작은 생명체들이 감지되었다. 어떤 것들은 하늘을 날고 있고 또 어떤 것들은 땅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싸우거나 잡아먹는 것들도 보인다.

번쩍...

눈을 뜬 그녀의 동공은 파충류의 그것처럼 일자로 죽 찢어져 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 위로 거대하다는 표현 하나로는 부족할 황금빛의 머리가 불쑥 하고 떠올랐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비늘을 지닌 그것의 오만한 눈이 사위를 쓸어본다. 잠시 후...

소형차 한 대는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거대한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중으로 된 수백 개의 촘촘한 송곳니가 드러난다. 그 내부로 보이는 것은 사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한 그 입을 통해 엄청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앙!!!”

퍼퍼퍼펑!!!

소리와 맞닿은 황무지사막의 모래가 공중으로 터지듯 비산했다.

만약 그녀의 주변에 사람이 있었다면 당장에 고막이 터지며 기절했으리라.

거대한 골드드래곤의 입에서 시작된 울부짖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머리 위로 골드 드래곤의 머리가 사라지자 잠시 후 엘은 작은 한숨과 함께 허리에 손을 턱 올리며 중얼거렸다.

“모여라. 군세여.”

#3

네바다에는 과거 미공군기지로 쓰였던 폐허 하나가 존재했다.

과거 기지를 습격한 몬스터들로 인해 이제는 황폐한 철구조물만 가득한 그곳은 한때 온갖 외계인에 대한 루머에 휩싸였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2티어 3티어의 몬스터들이 둥지를 튼 이곳은 나름 지구에 정착하여 작은 생태계를 이룬 몬스터의 서식처일 뿐이다.

드라이한 황무지 사막 속  온갖 풀들이 가득한 활주로에 누워 태양빛을 즐기던 5티어 몬스터 등갑바실리스크 무리는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크르륵”

그들이 이 단단한 활주로 위를 거주지로 삼은 것은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을 잡아먹고 사는 7티어의 몬스터인 헬웜은  단단한 황무지사막의 모래 속을 기어 다니다가 땅 위의 있는 모든 것을 감지해 모래 째로 꿀꺽 삼켜 버리는데 그것들이 유일하게 건드리지 않는 곳이 바로 이 폐쇄된 활주로였다. 비행기의 이착륙을 위해 땅을 깊이 파 기반을 다졌기에 두께가 수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아무리 모래를 삼키는 헬웜이라도 이곳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헬윔이 나타나기 전의 전조가 일어나자 등갑바실리스크 무리가 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헬윔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등갑바실리스크들이 조금씩 경계를 풀 때였다.

갑자기 등갑 바실리스크들의 머리가 일제히 한곳을 향해 돌아갔다.

아무리 헬웜에게 한끼 식사꺼리 밖에 되지 않는다지만 체장 12미터 체고 4미터에 달하는 두툼한 갑주를 두른 수십 마리의 등갑바실리스크가 한 곳을 바라보자 묘한 위압감이 감돈다.

쿵... 쿵쿵...

그리고 마치 홀린 듯 그 방향을 향해 그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등갑바실리스크들 만이 아니었다. 기지 내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기어 나와 한 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는 서로 먹이사슬의 포식자와 피식자였던 것들도 있었다.

평소라면 서로 잡아먹거나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 다녔을 그것들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고 있다.

쿠구구구구...

네바다 공군기지로부터 한참 떨어진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의 어느 곳...헌터도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 절대의 금지에 낮은 땅울음과 함께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모래들이 춤추듯 꿈틀거린다. 그런 곳은 수십 군데에 달했는데 그것은 헬윔들이 지면과 가까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쿠구구구...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 하나가 풀썩 주저앉았다. 마치 땅속으로 꺼진 양 사라져 버린 그곳에는 거대한 싱크홀이 만들어져 있었다.

꾸이이익!

몇몇 싱크홀을 피하지 못한 헬윔들이 싱크홀로 떨어져 내렸다. 수 마리의 헬윔들이 떨어져 내리며 구슬픈 비명소리를 내질렀지만 검은 무저갱의 바닥으로 떨어진 그것들은 다시 위로 솟구치지 못했다.

쿠구구구구...

12개의 작은 산이 싱크홀을 중심으로 솟구쳐 올라 턱 하고 맞물렸다.

이 네바다 사막을 지배하는 9티어 몬스터 ... 그 강대한 미국이 핵으로조차도 죽이기를 포기한 최악의 몬스터 일명 데스웜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것은 이 데스윔이 보기보다는 겁쟁이라는 것과 모래질로 된 곳이 아니면 활동 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도시와 같은 곳은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하지만 네바다를 수복하지 못하는 것은 이 데스윔의 존재 때문이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겁 도 없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헬윔들을 사냥한 데스윔은 뱃속으로 초대한 헬윔들을 소중히 꼭꼭 씹어 삼키던 중 뇌를 뒤흔드는 영혼의 떨림에 우뚝하고 그 움직임을 멈췄다.

거부할 수 없는 절대자의 부름이다.

언제인지 생각나지도 않는 아니 고대의 고대로부터 새겨진 절대자의 대한 복종의 본능...

쿠구구...

언제나 주변을 지나는 몬스터들이나 게걸스럽게 탐하던 데스윔이 드디어 수년 만에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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