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위험한 선택-2
#1
부우우우...
낡은 SUV 한 대가 사막을 질주하고 있다.
본래라면 고속도로가 있었을 곳이지만 대융합 이후 각 주를 이어주던 도로를 관리할 능력이 사라진 미국은 인간이 이룩한 문명의 이기들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걸 용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끼기긱!
“재미있네.”
차를 운전해가는 엘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그려져 있다.
인간이 이룩한 이기들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만년을 넘게 살아가는 드래곤들은 타종족으로 폴리모프하여 그들의 삶을 살아가며 유희를 즐긴다. 엘 또한 가끔 그런 짓을 하곤 했다. 수십 개의 삶을 살아본 그녀이기에 자동차 운전 따위는 익히는 것은 10분이면 충분했다.
지금 그녀의 목적지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다.
공간을 꿰뚫는 텔레포트를 통해 빠르게 갈 수도 있지만 그녀는 오히려 느림을 즐겼다.
“후우... 백린놈 이렇게 좋은 게 있었으면서...”
그녀는 손에 들린 작은 궐련을 쪼옥 빨고는 밖으로 던졌다.
담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독한 마리화나다. 폴리모프 했다지만 드래곤으로서의 힘이 어디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것은 그런 최강의 육체도 몽롱하게 만들어 준다. 골초가 되어 버린 드래곤에게 또다른 색다름을 선사해 주는 즐거운 물건이다.
“녀석과 맹약만 맺지만 않았으면 자주 왔을 텐데”
만약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절대 불간섭맹약을 맺지 않았을 것이다.
백린과 맺은 것은 인간에게 피해를 받지 않는다면 절대 지구차원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맹약이었다.
고작해야 100년 남짓이나 살 인간과 맺은 맹약이기에 담배라는 신기한 지구의 문물을 받는 조건으로 가볍게 응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 맹약은 조금씩 깨져나가는 중이다.
“뭐, 의도한 것도 없잖아 있지만...”
백린이 가장 우려를 보였던 것은 바로 미국이라는 국가였다.
본래 태생이 침략을 통해 건설된 국가이기에 엘어스에서의 같은 짓을 할 거라고 하더니 역시나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물론 자신도 그들이 빤히 앞마당에 나타난 것을 못 본 체하며 방관했다.
아니나다를까. 역시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녀의 수족인 엘의 신전기사들을 죽였다.
나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백린과의 맹약보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성가시군.”
그녀는 권태로운 눈으로 마법 하나를 구현했다. 새롭게 꺼내든 마리화나에 불을 붙인 그녀의 손가락 끝에 금빛의 구가 형성되었다.
“인간을 찾아라.”
피이잉
금빛의 구가 터지며 반구형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빛무리가 스친 모든 것들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거기에 있군.”
상당한 거리 밖에서 인간의 군집이 감지되었다.
물론 그녀로서는 성가신 것들이 뭉쳐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후훗, 공격해 보거라.”
가볍게 웃은 엘이 악셀을 꾸욱 밟았다. SUV가 모래언덕을 날 듯이 뛰어오른다.
곧 인간의 공격이 시작되면 이 재미있는 놀이도 곧 끝날 테니 그 전에 신나게 타볼 생각이다.
저들은 알까? 자신이 이렇게 굳이 저들의 공격 앞에 몸을 노출하는 것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이번 공격만 끝나면 맹약이 꽤 부서지겠군.”
과거 백린과 맺었던 맹약이 깨지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과 드래곤이 가진 영혼의 그릇 차이 때문이었는데, 종의 차이를 넘어 억지로 맞춰 성립된 약속이기에 그만큼 큰 영혼의 그릇을 지닌 드래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그녀가 지구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양은 맹약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맹약은 인간의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점차 깨지고 있다.
종국에 모든 맹약이 깨지면 그녀는 일단 큼지막한 유성을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 소환해 자신의 힘을 제대로 보여줄 작정이다.
“그 후에 신기한 것들도 좀 뜯어내고... 쓸모있는 인간 놈들도 몇 놈 잡아가야지.”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를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있는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처장 진 테프먼은 약 백여대 가량의 거대한 트레일러를 신중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수제작된 트레일러는 본래의 트레일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장갑판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조금 특이하게도 외부로의 공격이 아닌 내부에 갇힌 뭔가를 구속하려는 용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박사, 제어장치는 확실하겠지요? 행여 저것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미국은 최악의 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진 테프먼이 그의 곁에 서 있는 연구복을 입은 대머리의 노인에게 물었다.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저것들에 뇌 속에 달린 생물학적인 제어장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확실히 작동할 겁니다.”
박사는 자신하듯 말했다.
“좋습니다. 30년간 이 프로젝트를 진행해 온 당신을 믿겠습니다.”
“흐흐, 아무렴요. 저만 믿으십시오. 저 또한 또한 이번 일에 제 인생이 걸려 있습니다.”
박사의 장담에 고개를 끄덕인 진 테프먼은 트레일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안에 든 것들은 박사의 평생에 걸친 역작 들이었다.
뮤턴트 (변이체)라고 이름지어진 저것들의 시작은 엘어스와 다크어스의 몬스터들을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박멸할 방법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 연구가 시초였다. 일종의 살충제와 같은 것을 만들려 했었다.
아무리 그 생물학적인 근본이 비슷하다고 해도 세균이나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은 독립적으로 발전했다. 그 예로 인간들은 엘어스나 다크어스로부터 넘어온 질병에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지금이야 백신들이 개발되었기에 그런 일이 없어졌지만, 지구와 같은 경우가 엘어스와 다크어스에 똑같이 적용된다는 가정 하에 출발한 연구다.
그러나 연구는 곧 벽에 부딪혔다.
그 벽의 이름은 마나를 이용한 자체치유력과 방어력이다. 약한 몬스터들이야 질병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만 높은 티어의 몬스터들은 질병에도 강했다.
마나를 사용하는 몬스터들을 포획해 연구를 지속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각성자들을 실험체로 사용하게 되었다. 물론 주로 빌런들을 몰래 빼돌려 실험체로 사용했지만, 인간을 실험체로 사용했다는 비윤리적인 죄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 어느 정도 연구성과가 나와 상용화 할 수 있는 뮤턴트들이 준비되었지만,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제작되었다는 원죄가 있기에 함부로 꺼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실수는 없어야 합니다.”
이 일에는 자신의 목도 걸렸다.
“아무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것들이 만약 들었던 대로의 능력을 온전히 보인다면 골드드래곤은 확실히 처리할 수 있으리라.
“시작하겠소.”
“준비하겠습니다.”
“전 병력 탑승!”
진 테프먼이 헤드셋을 통해 외치자 헌터사무국 소속 헌터들과 연구소에서 나온 연구원들이 서둘러 대형헬기에 탑승했다. 헬기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다음은 박사의 차례다. 박사가 연구원들에게 지시하자 원격을 통해 트레일러들을 일제히 개방했다.
쿠쿵
크아아악!
괴성과 함께 트레일러 안으로부터 유백색의 비부를 지닌 신장 3미터가량의 이족보행 몬스터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유백색의 인간과 비슷한 피부를 지녔지만, 전체적으로 거대한 해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체모라고는 단 한점도 없는 그것들은 이목구비 또한 인간과 비슷했지만 물론 그 눈은 흰자위까지 붉은색이며 입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긴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다.
크르르륵... 크에엑
트레일러 한 대당 총 5마리의 뮤턴트가 구속되어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그것들은 내리쬐는 태양빛이 부담스러운지 괴성을 지르며 발광을 해댔다. 그러더니 저들끼리 마주보며 그르륵 거리는데 그 모습이 마치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혐오스럽군.”
“능력을 보시면 마음이 달라지실 겁니다.”
“됐소. 저 꼴로는 도저히 어디 내놓을 수 없겠군.”
사전에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물경 500여 마리를 한 번에 풀어놓자 절로 이맛살이 구겨졌다. 아무리 봐도 끔찍한 혼종일 뿐이다. 진 테프먼의 찌푸린 표정을 곁눈질하며 박사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아무리 겉모습이 혐오스럽다고 해도 저것들은 자신의 수십년이 녹아든 소중한 결과물들이었다.
‘흥 두고 보자. 뮤턴트들의 능력을 보기만 한다면 다시 쓰지 않을 수 없을 거다.’
그는 자신 있었다. 저것들에게 5티어 이하의 몬스터는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저것들의 숨결은 말 그대로 세균병기이기에 반경 10미터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대로 녹아버린다. 그뿐일까.
마나를 사용하는 고위몬스터들을 적으로 상정하여 제작했기에 마나를 사용한 모든 공격을 흡수해 에너지로 사용할 수도 있고 자체 회복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다. 자체 재생 세포가 있어 회복력 또한 트롤급이다.
또한 그 순수 신체적 능력은 6성의 헌터에 달하며 인간의 세포도 사용했기에 일부는 헌터들의 능력 조차도 흉내낼 수 있었다.
방어력 또한 몬스터의 세포구조를 이용했기에 순수방어력 만으로도 포탄을 막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평생을 들여 만든 역작이다.
만약 저것들의 지능까지 인간수준까지 도달했다면 자신이 나서서 폐기시켰을 것이다.
“시작하시오.”
“네.”
진 테프먼의 말에 허리를 꾸벅 숙인 박사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추적... 목표지정”
그의 지시에 따라 연구원들이 패널을 조작하자 서로 뒤엉켜 그르릉거리던 뮤턴트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크아아아아악!
뮤턴트들이 갑자기 땅에 엎드린 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요!"
"흐흐,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우드드득...
등으로부터 얇은 피막의 창이 피부를 찢고 튀어나왔다. 평소에는 등뼈 밑에 숨겨져 있는 그것을 활짝 펴며 몇 번 홰를 치자 곧 거대한 날개로 변했다.
잠시 후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500마리의 뮤턴트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일반 연구원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다.
"저건 사전에 없었던 능력 아니오!"
박사로부터 뮤턴트들이 공중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없기에 진 테프먼이 소리쳤다.
“흐흐, 공중 몬스터를 잡기 위해 추가한 작은 능력일 뿐입니다."
"흠, 그렇게 쉽게 능력을 높일 수 있다니..."
놀라는 진 테프먼을 득이양양하게 바라보던 박사가 말했다.
"하나의 실전 데이터도 놓치지 마라.”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벌어질 모든 전투는 향후 뮤턴트들을 업그레이드 시키는데 소중한 초석이 될 것이다.
“끌끌끌, 세상에 너희들의 힘을 보여줘라.”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들이 드디어 실전에 투입된다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는지 박사가 나지막이 흉소(凶笑)를 흘렸다. 하늘을 날며 마법을 사용하는 골드드래곤은 뮤턴트들의 힘을 보여줄 너무나 훌륭한 시험케이스였다.
그러나 그런 박사를 한걸음 뒤에서 바라보는 진 테프먼은 저런 것들을 절대 미국의차원공략의 첨병에 넣을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뮤턴트들이 저 골드드래곤을 찢어발기는 순간 저것들과 골드드래곤을 모조리 사막의 먼지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저것들은 너무 위험하다. 이번만 사용하고 모든 자료를 폐기한다.’
그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약 1시간이 흘렀다.
“말도 안돼!”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스크린을 부여잡았다.
그가 30년 평생을 바쳐 만든 뮤턴트들이 스크린 속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있었다.
트롤에 준하는 재생능력이 있으면 뭘 하겠는가. 접근조차 불허하는 세균병기면 뭘하겠는가.
뮤턴트들은 저 골드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여인에게 다가서지도 못했다. 그녀는 타고 있는 낡은SUV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마치 공중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막이 있는 것 같다. 아니 그것은 보이지 않는 칼날의 폭풍이었다. 접근 한계는100미터가 고작이다. 달려드는 뮤턴트들은 말 그대로 갈려나가고 있었다. 뇌에 직접 내리는 명령을 통해 적의 숨통을 끊으라는 지령만을 충실히 수행하려 뮤턴트들은 팔다리가 찢겨나가면서도 달려들지만, 그것은 의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남은 것은 센티 단위로 분쇄되어 사방으로 튕겨 나간 뮤턴트 조각들뿐이다.
박사가 그렇게 자랑하던 뮤턴트들은 드래곤의 마법 하나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박사의 생각과는 다르게 뮤턴트들은 드래곤의 마법을 전혀 흡수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애초에 드래곤에 대한 박사의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신의 영역에 발을 걸친 존재다.
그리고 그런 드래곤들은 굳이 계산하기 귀찮은 마법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용언’
의지 자체가 발현을 이끌어내는 신의 언어.
“찢어지고 휘날려라.”
달려드는 뮤턴트들을 향해 엘이 날린 단 한마디의 용언이 지금 박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다.
‘이럴수가...’
좌절하며 무릎 꿇은 박사와 함께 스크린을 바라보는 진 테프먼 조차 드래곤이 보이는 저 믿을 수 없는 이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가 자신하던 뮤턴트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무참히 갈려서 죽어나가고 있다.
‘어서 그걸 써야 한다.’
여유 부릴 틈이 없다.
본래 계획은 저 뮤턴트들이 골드드래곤을 죽이면 뮤턴트들의 위로 미사일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도심도 아닌 사막이기에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는 모조리 주변에 배치한 상태였다.
그런데 꼴을 보니 죽이기는커녕 생채기조차 낼 수 없을 것 같다.
딸깍...
헤드셋의 주파수를 조작한 그가 나직이 말했다.
“미헌터사무국 사무총장 진 테프먼의 직권으로 트리니티 작전을 발동한다. 승인코드 A4325FA98... 목표는 골드드래곤”
-승인코드 확인 완료. 트리니티 작전 시작하겠습니다.
“안돼!!”
좌절에 빠져 있던 박사가 진 테프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함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짜악!
“컥!”
그러나 박사는 진 테프먼이 휘두른 가벼운 따귀 한 방에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끌고 나가.”
“옛!”
그의 명령에 그를 호위하는 헌터들이 축늘어진 박사를 질질 끌고 나갔다.
박사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전군, 핵공격의 피해범위 밖으로 이동.”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