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위험한 선택-1
#1
LA 도심에 나타난 골드드래곤이 일으킨 대참사와 함께 11콜로니에서 벌어진 일 또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밝혀진 실종자와 사망자 수는 근 4000여 명에 육박했다. 최근 안정화 되고 있던 몬스터와의 전투추세를 생각하면 근래 들어 손에 꼽힐 큰 피해를 본 미국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추적을 자신했었다. 기존에 운용하던 오라클시스템을 탑재한 드론 수백 대를 모조리 동원했으니까. 그렇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는 드래곤의 추적은 매우 힘들었다. 물론 힘들다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꾸준히 드래곤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그러나 막상 드래곤의 대한 레이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골드드래곤의 행동 패턴 때문이었는데 드래곤은 기존의 몬스터들처럼 둥지를 정하고 주변으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것이 아닌 마치 테러를 일으키듯 곳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최소 11티어 몬스터를 상정한 레이드이기에 근처에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헌터 전력을 대기시켰지만, 그들은 드래곤의 꽁무니조차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드래곤이 11티어급의 공중몬스터라는 점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포착하고 주방위군이 기동성있는 전투기와 헬기등을 투입했지만, 그것들은 드래곤의 장난감조차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이 발사한 미사일들이 도심으로 떨어져 더 큰 피해를 양산해 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 미국 산업의 중심인 LA라는 것이었다.
LA 전역에서 드래곤의 난동이 벌어지기에 안전지대도 없었다.
혹자는 도쿄 도심에서 발생한 오오가무시의 예를 들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도쿄시민 전체가 피난을 간 것은 아니었다. 까딱하면 LA 시민 전체가 피난을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돌며 미국의 주가는 폭삭 주저앉았다.
현재 언론에 밝혀진 것은 골드드래곤이 라스베이거스 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것이다. 이 움직임에 대해 많은 몬스터 학자들이 수많은 예상을 내놨는데 그중 가장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라스베이거스 쪽에 골드드래곤을 끌어들이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전통판타지나 중세신화에 입각한 이들은 그것을 골드 드래곤의 알이나 새끼 또는 금과 같은 귀금속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시민들은 드래곤이 LA와는 차원이 다른 파괴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공포에 싸여 피난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골드드래곤 엘에게 대체 왜 라스베이거스로 가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단 한마디로 대답해 줄 것이다.
“쇼핑이다. 쇼핑”
현재 엘의 상태를 정확히 꼬집자면 인간을 단죄하는 한편 관광 및 쇼핑 중이었다.
어쩌다 보니 본래의 목적인 인간의 단죄보다 쇼핑에 더 치중하게 되었지만 본래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드래곤이다. 특히나 인간이 만든 갖가지 신기한 물건들은 드래곤의 호기심을 맹렬히 자극했다.
처음에는 겸사겸사 오래전 백린이 쌓아놓고 간 담배를 리필할 목적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싸구려 담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백 가지의 담배 종류에 놀랐고 또 담배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많은 신기한 물건들로 인해 드래곤은 상점 주인의 추천에 통해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로 목적지를 잡은 것이었다.
“아 귀찮네.”
골드드래곤이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사람들은 거리로 나오기를 꺼려했다. 그리고 엘은 인간으로 폴리모프해 돌아다니는 것이 불편해졌다. 골드드래곤의 본체로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인간의 체형에 맞춰진 쇼핑을 할 수가 없다.
‘투명하게 변해라.’
간단한 용언으로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날파리들의 눈을 피한 엘은 근처의 꽤 커다란 쇼핑몰로 척척 걸어들어갔다.
“오...”
본래 아름답고 반짝이는 것들을 좋아하는 드래곤의 습성도 있었지만 엘어스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지닌 1층 초호화매장은 엘의 눈을 반짝이게 했다. 특히나 그녀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각종 귀금속들과 화장품 코너다.
딱히 성이 없는 드래곤이지만 엘은 기본적으로 여성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엘어스에서 악신의 역할을 하는 레드 드래곤 알이 남성적인 성격을 취하며 자연스럽게 굳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 또한 꾸미는 것을 꽤 좋아했다.
귀금속이야 원래 좋아했던 것이지만, 수백 년에 걸쳐 발전된 인간의 화장품 또한 그녀의 마음을 훔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백린도 그렇지만 역시 인간 놈들이 쓸모는 많아.”
엘어스에도 비슷한 것들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것들에 비교하면 원시 수준의 조악한 것들뿐이다.
이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인간놈들을 몇 납치해 볼까 하는 꽤 생산적인 생각으로 매장을 거닐던 엘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벌써 왔나? 슬슬 쓸어가야겠군.”
그녀가 손을 머리 위로 휙 하고 흔들자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죽이지는 않았다. 깊은 수면에 빠져 버린 것이다.
“랄랄라...”
본래 생각은 이 상점 안의 인간들을 모조리 죽여버린 뒤 쓸어갈 생각이었지만 좋은 것을 발견해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아량을 베풀어 가볍게 기절만 시켰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그녀가 다시 한번 손을 흔들자 매장 안에 모든 물건은 마치 보이지 않는 뭔가가 들어 나르듯 공중으로 떠올라 그녀를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엘이 거대한 아공간을 한껏 벌리자 물건들이 그 안으로 쏙쏙 들어간다.
잠시 후 만족스러운 ‘쇼핑’을 끝낸 엘이 아공간을 닫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쇼핑몰을 나섰다.
-편대 공격대기하라.
-라져 댓.
쇼핑몰을 중심으로 건물 뒤에 숨어 호버링을 하고 있는 공격헬기들을 지휘하는 편대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미사일을 쏟아부어 건물째로 주저앉히고 싶지만, 건물 안에 있는 이들을 생매장시킬 수 없기에 골드드래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편대장, 쇼핑도 할 줄 아는 몬스터라면 충분히 대화의 여지가 있는 것 아닙니까? 사진으로는 엄청나게 예쁘던데...
편대원 하나가 자신의 의견을 말했지만 뒤따르는 건 편대장의 불호령이다.
-헛소리는 나중에 해라. 적은 수천의 인간을 죽인 몬스터다.
물론 그 편대원의 말대로 엄청나게 예쁘기는 하지만 그 이면은 수백 미터의 거구를 지닌 포악한 몬스터일 뿐이다. 그리고 ... 지금 그 몬스터는 그의 헬기 뒤에서 조용히 날개짓을 하는 중이다.
-6시! 6시!
뒤늦게 드래곤을 발견한 부조종사가 외쳤지만 이미 드래곤의 거대한 앞발이 헬기의 로터를 나뭇가지 분지르듯 부숴버린 후다. 편대장이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드래곤은 반대편 앞발로 헬기의 동체를 쥐더니 헬기의 밑부분에 달린 미사일을 손가락으로 떼내 다른 곳에 호버링중인 헬기들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크롸라라락!
마치 즐겁다는 듯 골드드래곤이 내지르는 울음 속에 헬기들의 연이은 폭발음이 뒤따랐다.
#2
“궁신은···.”
“골드드래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현재로서는 레이드가 할 수 없다는 태도입니다.”
“끙”
보좌관의 답변에 미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레이드에 등 떠밀고 싶지만, 레이드는 철저한 정보수집과 전투시뮬레이션을 통해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니 정보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궁신의 영향력은 미국의 대통령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 이렇다할 협상수단이 없는 이상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조금 전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드래곤에 의해 두 개의 헬기 편대가 또 전멸했으니까.
“한국 내에 있는 모든 영향력을 총동원해서 여론을 움직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한국의 여론은 죽 끓듯이 한다.
조금만 불을 질러주면 알아서 잘 타오른다.
나름대로 압박이 될 것으로 생각한 그가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 진테프먼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피닉스 공격대와 버서커 공격대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가 들어서자 대통령이 대뜸 물었다.
“기존에 소화하던 레이드 스케줄을 취소하고 날아오는 중입니다. 도착하는 대로 레이드를 준비할 겁니다.”
“그들로 가능합니까?”
“최근 장비들을 교체했기에 전체 전력이 월등히 상승한 상태입니다. 듣기로는 이번에 에리조나 주에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했다고 하더군요. 군과 협동한다면 무리없이 레이드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테프먼이 자신하듯 말했지만, 대통령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가능하다?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고 있소? 전문가들은 저 골드드래곤이 본격적으로 파괴행위를 벌이면 LA에 핵을 떨궈야 할 수도 있다고 하더군.”
“레이드는 실패를 전제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봐요.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도전 후의 실패 따위는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오!”
떼쓰듯 소리치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진테프먼은 속으로 궁신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게 다 궁신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희생에 대해 관대했다. 그런데 궁신이 출현한 후로 사람들의 눈이 높아졌다. 궁신이 워낙 고위급몬스터를 손쉽게 레이드 해내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어느 순간 희생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져버린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의 입지 또한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미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이라고 하면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했는지 지금은 뭐만 하면 궁신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그 하나가 있는 대한민국과 비교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도 궁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미국의 수많은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 해 준 덕분에 많은 영토를 회복할 수 있었다.
자신도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궁신은 9티어몬스터를 독식하지 않았다. 피닉스 공격대나 버서커 공격대와도 합동레이드를 진행하며 그들의 지분을 인정해 줬다. 비록 실제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 한 건 오롯이 궁신이지만 그 외의 몬스터를 처리한 공로를 인정해준 것이다.
그렇게 얻은 9티어몬스터에 미헌터사무국도 숟가락 하나를 올릴 수 있었으니 궁신이 은인이라면 은인이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미대통령의 한마디가 그의 자존심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피닉스와 버서커공격대의 레이드 준비를 중단하고 엠페러와 토르를 한국에 급파하시오.”
“예?”
“그 둘이 궁신과 친분이 있다고 들었소. 그들을 대사로 파견해 궁신이 하루빨리 골드드래곤을 레이드하도록 독려하는 게 낫소.”
‘이놈도 저놈도 모두 궁신...’
대통령의 말에 진 테프먼은 주먹을 꾹 쥐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것을 사용하기로 말이다.
“대통령 각하”
“말하시오.”
“궁신이 아니라도 저 골드드래곤을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의 말에 대통령의 눈이 커졌다.
그라고 언제 올지 모를 궁신을 기다리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진테프먼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실 미헌터사무국이 미정부의 비밀연구소가 비밀리에 추진하던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비밀 프로젝트요?”
“예. 아직 실험단계이기는 하지만 공격력 만큼은 확실하다고 자신합니다.”
미국이 외부에 밝힐 수 없는 비밀연구가 한두 가지겠냐만 대통령은 저 엄청난 몬스터에 대적할 수단이 연구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들은 바 없었다.
“그게 뭡니까.”
대통령의 물음에 진 테프먼이 굳은 표정으로 그것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은 욱하는 심정에 뱉은 말이었다. 외부로 노출되어 그 실체가 밝혀진다면 해명이 뒤따라야 할 정도로 비인도적인 수단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더이상 그가 사랑하는 미합중국이 동양의 작은 나라의 헌터 따위에게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말을 모두 들은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어할 수단은?”
“충분합니다.”
진 테프먼의 대답에 대통령은 자리에 앉아 한참을 고심했다.
그가 말한 그것이 가진 능력이 확실하다면 저 골드드래곤 뿐만 아니라 엘어스 아니 나아가 다크어스까지 정복이 가능할 수도 있다. 마음을 굳힌 대통령이 말했다.
“좋습니다. 실행하세요.”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