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7
드래곤-3
#1
“휴우”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난 제황이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제 대략 30km 정도인가.”
제황의 향후 겨울계획은 삼천교를 와해시키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제황과 무적성의 방해와 색출로 인해 엘어스로 숨어들었지만, 재정비가 끝나면 분명 다시 수작을 부릴 게 분명했다.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잠입을 통한 수뇌부 암살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데는 명황안이 꼭 필요했다. 명황안은 단순히 추적의 능력일 뿐이지만 그것을 통해 제황이 뽑아낼 수 있는 전투계획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근래는 명황안의 숙련에 몰두하고 있다.
숙련도를 올리는 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방법은 꾸준한 추적이다. 특급밀령들 중 무적성 안에 상주하는 이에게 부탁하여 그의 피를 얻었다.
사용처에 대해서는 미리 이야기했고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제황뿐만 아니라 추적계열 스킬들의 숙련도를 올릴 때 서로서로 마음 맞는 이들끼리 비슷한 방법으로 수련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황과 같은 유니크급의 추적스킬을 지닌 특급밀령 1호는 제황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줬다.
“의외로 조건이 까다롭군요. 상대의 피라···. 피를 얻을 수 있을 정도면 상대에게 상해를 입힌다는 가정이 필요한데···. 숙련도 100%를 일단 찍어보시죠. 피라는 필요조건이 바뀔 수 있습니다···. 조건만 완화한다면 탐지거리를 따져볼 때 정말 쓸만할 것 같습니다.”
그가 지닌 추적스킬의 필요조건은 상대의 냄새라는데 추적 거리가 짧은 대신에 조건이 아주 쉬웠다.
명황안의 숙련도는 꽤 빠르게 올라갔다.
물론 제황이 레이드를 통해 레벨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명황안을 사용한 이유도 있었지만, 상대의 은신능력이 뛰어날수록 숙련도의 상승 속도가 다르니 특급밀령의 도움이 아니라면 이런 속도는 낼 수 없었으리라.
오후에는 북쪽 국경 근처로 오크로드 레이드가 잡혀 있기에 수련을 마칠 생각에 벗어놓은 옷을 주워들던 그때 무련천가의 요원 하나가 수련실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제황이 수련 중일 때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을 깨고 노크조차 하지 않은 채 들어온 것이다.
-제황님.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2
콰가가가가가가가각!!!
도시를 길게 찢고 지나가는 푸른 광선...
“도망쳐!”
쾅! 콰쾅! 쾅!!!
마구잡이로 폭발을 일으키는 자동차들 위로 동강난 건물의 파편이 쏟아져 내린다.
직선으로 뿜어지는 푸른 섬광은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으며 불태워 버린다.
누군가가 스마트폰캠으로 촬영한 듯 흔들리는 화면 속에 금빛으로 번쩍이는 거대한 몬스터가 푸른 섬광을 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눈부신 섬광이 번쩍일 때마다 스크린을 바라보는 이들의 굳은 표정을 비춘다.
화면이 전환되며 사이렌소리와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속에 한 아나운서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고 있다.
[이곳 LA 엘베나스 타운은 지금 과거 대융합의 지옥이 도래한 참혹한 모습입니다. 현재까지 사망자 142명 실종자 1264명으로 집계되는 가운데 미연방정부와 주정부가 MH 10 이라는 최고단계의 경계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이번 파괴행위를 일으킨 몬스터를 네임드 골드드래곤으로 명명한 가운데 골드드래곤은 LA 서쪽 방향으로 자취를 감춰...]
“블록하나를 초토화하는 데 3분이 걸렸습니다. 이를 토대로 추정할 때 골드드래곤은 최소 11티어 몬스터입니다.”
몬스터자원부팀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11티어라는 말에 회의실 내 모든 이들의 눈에 혼란스러움이 가득하다. 마치 사람들이 100억이라고 하면 ‘와 엄청 큰돈이다’ 하고 느끼지만 ‘1조 원’이라고 하면 그게 얼마만큼이지 하고 체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나 허황한 그 측정 강도에 모두가 머릿속으로 그 강함을 계산하기 바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조금 전 미대통령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회의실 문을 열고 급히 들어온 대외업무팀장이 말했다. 그의 말에 제황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이루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최소 11티어급 몬스터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제황에게 연락이 오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대외업무팀장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레이드 요청이 아닙니다. 레이드 지원요청입니다.”
“지원요청이요?”
“예. 지원요청입니다.”
대외업무팀장의 말에 이루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레이드 요청과 레이드 지원요청은 엄연히 다르다. 요청은 레이드를 요청하는 것이고 지원요청은 자신들의 레이드를 지원해 달라는 뜻이다. 별 차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여기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기존의 무련천가는 작전지휘권은 물론 몬스터 사체까지 모두 가져가는 조건으로 레이드를 진행했었다. 이게 지원의 형식이 되면 작전지휘권를 미국이 한다는 뜻이 된다. 게다가 이름값은 제황이 더 높으니 만일 레이드에 실패했을 시 저들이 제황을 방패 삼을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무련천가가 몬스터에 욕심이 많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최적화된 레이드 방법이 있는데 굳이 쓸데없는 사공을 늘릴 필요가 없기에 현재까지 진행된 모든 레이드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의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전권을 확실히 하지 않고 들어갔다가 머리 위로 핵이 떨어질 뻔한 것을 이루미가 무력으로 막았었다. 미국이 일본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국가를 상대로는 맹목적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을 굳힌 이루미였다.
“지원요청이 확실한가요?”
“네. 두 번 확인 했습니다.”
“흠”
대외업무팀장의 말에 이루미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심하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일단 고려한다고 하세요.”
이루미의 말에 운영지원팀장이 손을 들었다.
“사무장님.”
“네.”
“염려하시는 바는 알지만, 상대는 11티어 몬스터입니다. 미국의 지원요청을 마냥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을 한 운영지원팀장의 주위의 눈치를 보며 손을 내렸다.
꽤 용기를 내 한 그의 말은 하나의 전제조건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제황이 11티어 몬스터를 홀로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9티어 몬스터를 밥 먹듯이 레이드하고 10티어 몬스터 오오가무시 또한 제황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지금 스크린 위에 보이는 골드드래곤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능대로 움직이는 몬스터는 보일 수 없는 전략적인 움직임이다.
장내가 싸늘하게 변했다. 이제는 하나의 믿음과도 같이 변한 제황의 무력을 의심하는 말이다. 그러나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지적한 바는 제황도 생각하고 있다. 아니 저들보다 아는 것이 많기에 고민의 깊이는 더 깊다.
-어째서 드래곤이 미국을 공격한 거지?
지금 제황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었다.
백린의 말로는 드래곤은 방관자이자 주시자였다.
마치 인간이 개미들의 싸움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차원이 합쳐지든 지금처럼 쪼개지든 상관하지 않는 부류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드래곤과의 싸움은 제황의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드래곤이 미국에 나타나 공격을 시작했다.
-골치 아프군.
백린은 드래곤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기를 부탁했다.
그들은 아군으로 삼기에도 적으로 삼기에도 너무 부담스러운 존재라는 것이고 그들의 존재가 퍼진다면 향후 차원분리계획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제황 또한 그 의견에 동감했고 그래서 지금껏 숨겨왔다. 무련천가의 구성원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비밀은 아는 이가 적을 때 비밀이다.
그러나 이제 드래곤과 일전을 치러야 할 수도 있기에 마냥 비밀로 묻어둘 수 없게 되었다.
재수 없으면 백린이 12티어라고 말한 드래곤과 목숨을 걸고 일전을 벌여야 할 수도 있다.
-저 한 마리로 따지면 승률이 얼마나 될까?
제황은 궁기에게 물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전투경험을 가진 궁기였기에 그녀의 말은 신뢰할 만 하다.
-너와 내가 전력을 다했을 경우 90프로
-역시 그렇지.
제황 또한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전성기의 힘을 되찾은 궁기와 자신이라면 제황도 그 정도의 승률을 점치는 중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드래곤은 한 마리가 아니다.
-만약 두 마리라면?
-20프로? 높게 쳐도 30프로는 넘지 않을 거야.
-그래.
드래곤의 숫자는 두 마리였다. 백린이 굳이 거짓을 말해 신뢰성을 깎아 먹는 자충수를 둔 게 아니라면 숫자는 정확하리라. 그렇기에 만약의 경우이기는 하지만 두 마리를 함께 상대해야 하는 변수 또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무작정 부딪혀서 전투를 운에 맡기는 것은 제황의 전투 스타일이 아니다.
-백린에게 연락이 되면 좋을 텐데···.
백린은 드래곤과 안면이 있었다. 만약 그와 연락이 된다면 굳이 레이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백린은 지금 다크어스에 있었다. 없는 이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그걸 해야 할 수도 있어.
-정말 할 거야?
-그래. 천천히 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안 도와주네.
-너무 위험해.
궁기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지금 제황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궁기옥이었다. 과거 무련궁술을 깨닫기 위해 들어간 궁기가 만드는 영혼과 시간의 감옥이다. 그러나 지금 제황이 궁기옥에 들어가서 수련하려는 것은 무련궁술보다 한 차원 높은 여의용혈신공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여의용혈신공을 연구하려는 이유는 신벌의 화살 때문이다. 현재로는 전투 한 번에 한 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신벌의 화살 개수를 늘리는 것은 꼭 드래곤이 아니더라도 다크어스에서의 전투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문제는 여의용혈신공은 무련궁술과는 다르게 매우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의보주의 힘을 품은 용혈신공이 변하여 여의용혈신공이 되었다.
여의용혈신공을 연구한다는 것은 신의 힘이 형상화된 여의보주를 연구한다는 것과 같다.
궁기조차도 여의보주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궁기가 걱정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해야지. 일단 이들에게 모두 말해야겠지.
생각을 마친 제황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절대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황의 말에 눈치 빠른 이루미가 태블릿을 조작했다. 잠시 후 회의실 내부와 외부를 단절하는 격벽이 올라온다. 외부와의 모든 통신을 차단하는 격벽이다.
준비가 끝나자 제황은 천천히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황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모두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엘어스의 드래곤이 두 마리라는 것과 만약의 경우 그 둘을 함께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모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11티어가 아닌 12티어의 몬스터...그것도 두 마리다. 위험도는 단순히 두 배가 아닌 수십 배 커진다. 제황은 그들이 현재까지 고수하던 입장과 그것을 깨고 미국을 공격한 것에 대해 말했다. 제황의 설명이 끝나자 이루미가 조금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방관자의 입장인 드래곤들이 공격에 나섰다면 미국이 드래곤을 자극했을 수도 있군요.”
미국이 그 사실을 숨긴 건지 혹은 모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미국이 싸지른 똥이라면 똥을 치우는 것도 미국이 되어야 한다는 게 이루미의 생각이었다.
“그 정도의 지성을 지닌 존재라면 레이드는 좀 더 신중해야 합니다. 꼬인 곳을 풀 수만 있다면 좀 더 평화적인 방법도 가능할 겁니다.”
몬스터자원부팀장의 말에 제황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외업무팀장을 바라봤다.
“일단 미정부에는 레이드 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는 나설 수 없다고 하세요. 미국도 다른 말은 하지 못할 겁니다. 아울러 미정부로부터 최대한 골드드래곤의 정보를 짜내보세요. 정보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또한 이번에 새롭게 신설된 정보팀장님도 별개로 이번 일의 내막을 밝혀주세요. 이게 가장 시급합니다.”
“알겠습니다.”
짧은 단발의 날카로운 눈을 지닌 30대 초반의 여성이 답했다.
신설된 정보팀의 팀장인 나윤희라는 여성으로 총관 나길환의 추천을 받아 배치했다.
나길환의 딸이기는 하지만 그 능력만큼은 무적성 내에서 정평이 난 여성이다.
“몬스터자원부팀장님은 드래곤의 능력분석을 요청드립니다.”
“맡겨주십시오.”
“드래곤 레이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운영지원팀장님은 그에 맞춰 준비해 주십시오. 현재 보유하고 있는 9티어 몬스터 사체를 마음껏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외부로 팔려나간 숫자도 상당하지만 몬스터 사체의 국제시세를 생각해 자체보유하고 있는 숫자도 많다.
“알겠습니다.”
업무지시를 마친 제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지금부터 드래곤 레이드를 대비해 폐관수련에 들어가겠습니다.”
제황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상대는 12티어 몬스터다. 도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아 모두가 전투보다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 하는 이때 제황은 터무니없이 높은 상대를 상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