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34화 (234/301)

# 234

또다른 위기-1

#1

계절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건너 겨울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소말리아는 제황이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돈의 힘으로 고작 반년 만에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확실히 근 백 년이 넘는 빈민국의 때를 벗기는 것은 힘들었다. 역시나 가장 골치 아픈 것은 바로 종교와 종족 문제였다.

그러나 제황을 해냈다. 문상의 조언 그대로 항거할 수 없는 돈을 쏟아부었다.

쏟아붓는 조건으로 내민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종교와 부족을 초월한 화합이다.

반발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그들도 돈의 힘에 하나하나 무너졌다.

그리고 소말리아 전체를 해방할 수는 없지만 판틀랜드만큼은 확실히 휘어잡았다.

수조 원의 돈이 쏟아 부어졌다.

세계헌터사무국은 이번에도 배제되었다.

그들을 포함 시키면 금전적 부담이야 적어지겠지만 머리가 늘어난다.

수족과 같이 움직일 군세를 원하는 제황은 우직하게 홀로 그 돈을 감당했다.

무적성의 도움이 없었다면 고작 반년 만에 안정화할 수 없었으리라.

무적성에서는 제황이 하려는 일에 대해 인적 물적으로 전폭적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어느 정도 소말리아가 안정화 되자 제황은 각국에서 헌터들과 헌터지망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돈에 움직이는 헌터들이지만 제황은 그들에게 무시 못 할 조건을 내걸었다.

‘성장을 위한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향후 5년간 무련천가에 봉사 후 자유.’

일견 군각성자와 비슷한 조건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과는 전혀 다른 메리트가 존재했다. 군대라는 것은 개인을 몰개성으로 만들어 군대라는 하나의 군집으로 만들어 버린다. 전장에서 군인은 하나의 말이다.

경우에 따라 버리는 수로도 이용되며 군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그렇지만 제황이 내건 조건 안에서의 전폭적 지원에는 강제각성시술 뿐만 아니라 무적성의 검증된 헌터훈련프로세서가 그들을 뒷받침해 줬다.

그리고 제대로 된 몬스터 토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소말리아는 그야말로 몬스터들의 천국이었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곳이었기에 레벨업에는 그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제황 또한 레벨업과 돈벌이를 위해 세계 각국을 뛰어다니며 9티어 몬스터를 레이드하고 다녔다.

훈련과 명상을 통해 강해질 수도 있지만, 헌터의 강해지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은 고도화였다. 사람들은 당연히 제황이 최고 레벨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실상 제황은 아직 만렙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가을 초에 S랭크를 찍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권제의 경우에도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만렙이 되었다. 9티어 몬스터를 중심으로 레이드 했기에 가능한 속도다. 그러나 아직  SS랭크와 SSS랭크 두 단계가 더 남았다.

제황의 9티어 몬스터 레이드가 가속화됨에 따라 세계는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간혹 새로운 게이트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9티어몬스터가 레이드 되므로 몬스터와의 전선이 축소되어 헌터 자원이 남아돌기 시작하자 이제 제황이 아니어도 몬스터 웨이브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수혜를 받지 못하는 국가도 존재했다.

바로 일본이다.

다크어스 게이트로 오오가무시가 나타났을 때 제황에게 한껏 밉보인 죄로 제황은 일본 쪽 레이드 요청은 철저히 배제했다. 인도주의적 차원 어쩌고 하며 세계 여론을 통해 제황을 압박하려 했지만, 제황은 콧방귀로 뀌지 않았다. 일본이 저렇게 안달하는 것은 타국은 9티어 몬스터들을 레이드하며 천천히 영토를 회복하며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지만, 일본은 9티어 몬스터를 처리하지 못해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기 때문이다.

정신 못 차린 자민당에서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영원히 인정하겠습니다.’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을 하는 바람에 그나마 한국 내의 일본동정여론까지 말아먹은 일본은 요즘 들어서는 일본 국적을 포기하는 국민들이 꾸준히 증가하여 어쩌면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도 곧 망할 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에는 다시 한번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했다.

다행히 이전과 같은 다크어스 게이트가 아닌 엘어스 게이트였지만 그 위치와 나타난 몬스터로 인해 일본은 비상사태가 되었다.

[후지산 정상에 9티어급 라바골렘 출현]

대문짝만한 기사와 함께 한 장의 사진이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후지산은 절대 작지 않다. 만년설은 아니지만, 사계절 눈으로 덮여 있는 후지산은 일본인들에게 민족의 영산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지금 그 후지산 정상에는 눈이 존재하지 않았다. 시뻘건 화염과 연기가 솟구치고 있고 그 안에는 육안으로도 확인될 크기의 거대한 바위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추정 크기는 대략 신장 100미터가량이며 초고열의 마그마를 두르고 있는 라바골렘의 주변에는 수십 종의 화염계 몬스터가 함께 발견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라바골렘 후지산 대규모 분화를 촉발시킨다!]

초고열의 라바골렘이 후지산 꼭대기에 나타난 원인인지 혹은 슬슬 터질 때가 되었는지 가뜩이나 지진이 많은 일본의 지진청은 후지산 부근의 심상치 않은 강도의 지진이 연일 계속되자 심각하게 후지산의 화산폭발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후지산은 도쿄로부터 고작 100km가량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오오가무시로 인해 씻을 수 없는 물적 인적 피해를 본 도쿄사람들은 다시금 피난을 준비해야 했다.

화산폭발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화산지형 위에 건물을 올린 일본의 특성상 화산이 폭발하면 거의 대규모의 지진을 동반한다. 지진이 일어나면 쓰나미가 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화산폭발이 일어나 대규모 분화가 시작되면 그것을 타고 라바골렘을 위시한 화염계몬스터들이 몬스터웨이브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일본은 대한민국의 궁신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오오가무시 때와는 다르게 그 어떤 조건이라도 수락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 아침이 쌀쌀해기 시작하는 늦가을의 11월 27일 오후 2시...

무련천가에서는 10성헌터 제황의 라바골렘 레이드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제황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던 세계 각국은 제황의 이번 결정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그 소식을 전 세계로 타전했다.

‘일본정부에는 유감이 많지만, 일본국민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일본인들은 모두 환호하며 기뻐했다.

오오가무시 레이드 당시 제황이 뻔히 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을 알면서 핵사용을 검토했던 일본정부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해서 알기에 그가 진정 수락할까에 대해서는 갑론을박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제황은 일본정부는 싫어할지언정 일본국민에게까지 죄를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레이드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수락을 했다. 그렇지만 일본은 고분고분 들어주면 안된다는 이루미의 의견에 그 발표 시기를 그녀에게 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발표가 있고 난 뒤 약 5시간이 지난 오후 7시···.

일본인으로서는 맥빠질 수도 있는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궁신 라바골렘 레이드 성공적으로 끝 마치다.]

라바골렘은 일본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9티어몬스터였다.

초고열과 라바골렘의 주위에 산재한 수천 마리의 화염계몬스터로 인해 접근조차도 지지부진했었다.

몇몇 호기롭게 도전했던 일본의 헌터들은 라바골렘에게는 접근조차 해보지 못하고 화염계몬스터들에 쫓겨 산을 내려왔다.

그렇게 최악의 경우 과거 오오가무시 때처럼 핵을 사용하는 것까지 검토했던 일본정부였건만 제황은 그 라바골렘을 고작 5시간 만에 레이드해 버린 것이다.

아니 실제 레이드 시간을 따지면 그보다 훨씬 적었다.

레이드를 할 채비를 마치고 레이드 전용 쿼드콥터 아틀라스를 타고 무적성에서 후지산까지 왕복하는데 든 시간이 5시간이었다.

제황은 후지산까지 가지도 않았다. 후지산에서 약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쿼드콥터를 선회시키며 화살 한 발을 발사했을 뿐이다. 아틀라스에 함께 탑승했던 누군가의 입에서 ‘거참 9티어 몬스터 체면도 좀 살려주지’ 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나 그 무성의한 화살 한 발에 적중당한 라바골렘은 그대로 후지산 위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워낙 그 크기가 거대하여 후지산의 높이가 조금 상승해 버렸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며 출현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라져간 라바골렘이었다.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 아무도 몰랐다.

일본의 라바골렘보다 더 큰 사건이 지구가 아닌 엘어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2

“헉헉...”

철컹철컹!!!

“달려!”

미군이 자랑하는 최신예 파워드슈츠를 걸친 수십 명의 헌터들이 이름 모를 나무로 우거진 숲을 뚫고 달리는 중이다.

“A지점까지만 달리면 추적은 없다! 모두 전력으로 달려!”

중심에서 달리고 있던 얼굴에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은 리더가 외쳤다.

“예!”

명령을 내린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기어를 조작했다.

“비둘기! 여긴 알파팀이다! 들리는가?”

-치직...칙...

“비둘기! 비둘기! 빌어먹을...역시나인가.”

답 없는 비둘기가 어떤 상황인지는 대략 유추가 간다.

자신들은 그나마 친분을 쌓아놨던 수인족들이 몰래 소식을 알려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지금까지 답이 없는 것을 보면 비둘기는 이미 날개를 찢겼으리라.

“엘 신전기사 70방향! 30기 출현!”

“교전 없이 돌파한다! 탱커!”

그의 외침에 전면에 달리고 있던 십여 명의 탱커가 각자 아공간에서 거대한 쇳덩이들을 꺼내 들었다.

철컥! 철컥!

그것들을 한 대 붙이자 거대한 공성추와 같은 모양의 철 구조물이 만들어졌다. 중간에 방패가 달려있어 전면에서 날아오는 투사체를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다.

“돌파! 돌파!”

리더의 외침에 그 공성추를 든 탱커들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앞으로 진형을 짜고 있는 신전기사들이 나타났다.

키가 거의 4미터에 근접할 그들은 거대한 갑옷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그 갑옷에는 온갖 울긋불긋한 오오라가 물결치고 있다.

그르르르...

거대한 갑주에 어울리는 방패와 대검을 쥔 그들이 앞을 가로막자 말 그대로 벽이 만들어져 있다. 지휘자로 보이는 화려한 갑주의 리더가 그 한가운데 서 있다.

“흥! 괘씸한 인간놈들! 감히 그 더러운 발을 어디 들이려는 것이냐!”

신전전사의 가장 선두에 선 이가 엘 어로 외쳤다.

그러나 이쪽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수인족들의 언어가 변역기를 통해 들어오지만 무시했다. 저들과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오히려 호기라 생각한 그가 외쳤다.

“사격!”

콰쾅쾅쾅쾅! 쾅쾅! 콰콰쾅!

수십 명이 일제히 50구경의 대구경소총을 마구 갈기자 그들은 잠시나마 움찔했고 인간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성추로 그들을 뚫고 나갔다. 몇몇이 신전기사들이 헌터들을 대검으로 베어버렸지만, 대부분 온전히 돌파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휘자의 손이 올라갔다.

“멈춘다!”

“헉헉...”

그의 외침에 그를 따르던 이들이 바닥에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후우, 제대로 왔군.”

내비게이션을 통해 현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리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저들이 신성한 땅이라 부르는 곳으로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신이 강림한 땅이라며 고대로부터 신성하게 생각한다는데 그런 고리타분한 미신을 믿을 그들이 아니다.

“제임스... 비둘기는 끝난 건가요?”

그때 그의 뒤로 한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그래. 샬롯”

그의 대답에 여성의 입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까! 마나석의 거래는 좀 더 시한을 두자고 했잖아요!”

“제길! 난 군인이야! 나라고! 후우...”

샬롯의 말에 고함을 치려던 그는 그녀의 눈에 가득한 눈물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평화사절단인 비둘기팀에는 그녀의 친동생과 마찬가지인 학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제길, 파월 중령 놈이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지만 않았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는 일이 어쩌다가 이리되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곰곰이 생각했다.

대한민국의 대현클랜이라는 곳에서 구출된 수인족 소녀가 엘어스 거대 부족국가의 고위귀족이라는 사실에 미헌터사무국은 정부와 연계하여 엘어스의 수인족들과 교류를 하기 위해 그녀를 그녀의 나라까지 안전하게 호위한다는 핑계로 평화사절단을 구성해 파견했다.

도착까지 꽤 오랜 여정이기는 했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 받은 열렬한 환영은 그 수고를 모두 잊게 했다. 일은 아주 순조롭게 돌아갔다. 다른 이종족과 다르게 수인족들은 워낙 여러 가지 종류의 수인족들이 뭉쳐 만들어진 부족국가라서 특이한 생김새의 인간에게 크게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다

약식이기는 하지만 국왕과 평화조약도 맺고 그들과 문화적인 교류도 나눴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경제교류를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해 협상에 들어갔을 때 부터였다.

“마나석은 거래할 수 없습니까?”

“절대로 불가합니다. 마나석은 신전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합니다.”

저들은 절대 불가를 외치며 못을 박았다..

타당한 이유는 존재했다. 마나석은 엘어스에서도 중요한 자원으로 통했다.

그들 또한 고유의 비술을 실생활에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마나석이 사용되었다.

문제는 마나석은 하나의 생명을 거둬야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몬스터를 통해 얻을 수도 있지만 수인족들 또한 죽으면 마나석을 남긴다.

과거 마나석을 얻기 위해 서로 부족을 말살시켰을 정도로 마나석으로 인한 폐해는 이들도 심했다. 그렇기에 마나석은 아주 오래전부터 일괄적으로 엘 여신을 모시는 신전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통을 철저히 엄금했다. 국법으로 엄금하여 사사로이 마나석을 거래하면 신전이 직접 나서서 관련자를 몰살시켰다.

문제는 평화사절단의 한 축이었던 파웰 중령이 비밀리에 마나석 거래선을 구축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들이 저 신전기사들에게 쫓기는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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