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32화 (232/301)

# 232

갑질하지마라-1

#1

“이게 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좀 복잡하네요.”

본래라면 와서 라이센스 카드 확인이나 한번 해주고 위신 한번 세워드린 후 사죄의 뜻으로 그에 합당한 보상을 듬뿍 안겨줄 작정이었다. 실수가 아니더라도 뭔가 접점을 더 만들어 선물을 안겨줘야 하는 게 제황이었다. 그런 식으로라도 엮어서 좀 더 가까워지는 것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다.

그에게 세계최강의 10성헌터는 너무 물욕이 없어 골치가 아픈 존재였다.

그런데 와보니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

특수체포대는 둘째치고 집행인 한상헌과 이사인 이상만이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제황을 적으로 상정했는지 그를 포위한 채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이런 미친...’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때 아직 정신 못 차린 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무총장님을 구해라!”

이상만의 고함소리에 포위하고 있던 이들이 다시금 달려들려 한다. 그때 사무총장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닥쳐! 죽여버리기 전에!”

그의 외침에 모두가 걸음을 멈춘 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만 끔벅인다.

그가 간곡한 어조로 제황에게 말했다.

“제,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그러시던가요. 저는 이만···.”

“예. 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차후···. 확실한 사죄를···.”

“됐습니다.”

제황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저들에게 더 신경을 쓰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대신 들고 있던 것을 사무총장의 발밑에 툭 던졌다.

그것은 그가 줬던 10성 헌터라이센스카드였다.

“이걸...왜...”

사무총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대한 제 생각을 재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현실을 부정하려는 듯 절레절레 흔드는 사무총장과 그의 뒤에 있는 사람들을 힐끔 바라본 제황이 말했다.

“저런 식으로 국가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게 헌터사무국이라니 참 실망이군요.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게 제가 아닌 민간인이라면 어땠을까요?”

뒤돌아 걸어가며 제황이 말했다.

“그런 곳에 굳이 제 증명을 맡기고 싶지도 않아졌습니다.”

사무총장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이건 위험하다.

“아닙니다! 이건 모두 저자의 독단적인...”

그의 변명을 제황이 막았다.

“아니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듯 이미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저와 함께 걸어갈 준비가 끝나면 연락하시죠. 이후로는 세계헌터사무국과 직접 이야기하겠습니다.”

제황의 마지막 한마디에 사무총장의 얼굴이 참혹하게 구겨졌다.

궁신이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소속이 되어 있다는 것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것을 전 세계로부터 양보받았는가. 이제 곧 그 결실이 맺어질 텐데 그것이 전부 틀어지는 것이다.

이제 중간다리로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을 무시한 채 세계헌터사무국과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것은 그사이에 발생할 모든 이권이 공중으로 흩어진다는 소리다.

“단...권제 할아버지의 얼굴을 봐서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예.”

“확실히 처리해 보세요.”

제황의 마지막 한마디에 사무총장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드러났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2

“어떻게 되는 거야.”

뭔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는 못하고 있는 이상만 이사였다.

그때 얼음장처럼 차가운 아니 얼굴에 문신처럼 일그러진 억지미소를 지은 사무총장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꿇어! 이 개새끼들아.”

후우욱...

그의 몸으로부터 터져 나온 강력한 기파에 특수체포대와 이상만이사의 무릎이 저절로 꿇려졌다. 집행인 한상헌만이 그나마 버티고 서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사무총장의 살기어린 눈빛에 그대로 바닥에 꿇어앉았다.

사무총장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조금 전까지 제황에게 굽실거리며 진땀을 흘리던 이는 이곳에 없다.

지금은 오로지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진짜 힘... 대외적으로 노출 시키지 않았던 숨겨진 비밀병기 특수작전부의 전(前) 총대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헌터사무국 특수작전부는 특수체포대 따위하고는 비빌 깜냥이 되지 않는 대한민국헌터사무국 무력의 실세였다.

수석원로인 권제로부터 훈련받았던 특수작전부 요원들을 총지휘하던 그는 본래라면 정치 쪽으로는 올 이유가 없는 인물이었다. 나이를 먹어 은퇴를 하고 슬슬 관리직으로 전환하여 띵가띵가 놀고 있던 그였다.

그러다가 전임 사무총장이 무적성과 제황에게 딴지를 걸다가 목이 달아난 후 권제가 믿을 만한 인물이 머리로 있어야 한다 했고 그 말을 들은 대통령이 그를 사무총장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 사단을 일으키다니...”

“그가 누구...”

이상만이 벌벌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궁신 천제황이다!”

사무총장의 그 한마디에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뇌를 순간 정지시켜 버렸다.

“허억...”

“허어...”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구에게 덤볐는지를 깨달은 그들은 모두 혼이 달아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상대가 자신들을 얼마나 봐줬는지 말이다. 말 그대로 호랑이 입속에 있었다.

만약 그가 조금만 더 독한이었다면 이곳에 온전히 서 있을 인물이 있었을까.

특히 그 충격은 한상헌이 심했다.

비록 모르고 한 말이라지만 제황에게 내뱉은 말이 있는 그였다.

너무나 높은 곳에 있어 차마 얼굴조차 올려다보지 못할 신을 온갖 말로 모욕했다.

“어, 어쩌다가...”

말을 잇지 못하는 그였다. 청천에 날벼락이다. 의형이 위신 좀 세워달라기에 특수대를 거느리고 왔다가 횡액을 당했다. 그리고 그 옆에 주저앉아 있는 이상만 이사는 하체가 풀려 실금을 해버렸다.

뒷배 든든해 보이는 디바우저 하나가 주제도 모르고 날뛴다기에 위세나 한번 떨려고 했는데 그 디바우저가 궁신이다. 궁신... 세계 최강의 각성자

한쪽에 기절한 채 치료를 받는 아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이상만의 눈에는 원망의 빛이 가득해졌다.

‘멍청한 놈...멍청한 놈... 멍청한 놈...’

대한민국 아니 세상에서 가장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는 향후 그들 부자의 미래가 되어 줬을 수도 있는 그런 인물, 현 인류 최강의 정점에 서 있는 남자, 대한민국 헌터사무국이 전세계적으로 어깨를 펼 수 있게 해준 인간...

타국의 헌터들이 8티어 몬스터 하나를 잡기 위해 수 개의 공격대가 목숨을 걸고 덤비지만 그는 9티어 몬스터도 식후 간식처럼 레이드하는 괴물... 세계헌터사를 다시 쓰고 있는 인물이다.

이제는 그와의 관계가 문제가 아닌 그와 아들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어쩌면 오늘만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운 나쁜 인간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의 아들을 꼽을 것이다. 하필이면 왜 궁신과 엮이느냔 말이다.

저벅...저벅..

“너...”

그의 앞으로 사무총장의 구두가 멈췄다.

땅에 고개를 처박은 이상만이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변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의 뇌는 이미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곱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뿌드득...

이를 갈며 말하는 사무총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끝났다.’

#3

헌터사무국과 사소한 충돌이 있고 난 뒤 제황은 약 한 달간 더 레이드를 멈춘 채 다른 일에 몰두했다. 수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황이지만 궁기리에 짓고 있는 복지 지구가 완공되었다는 소식과 그 복지 지구에 들어올 이들을 선별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산골오지 벽촌에 세워진 복지지구가 뭔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입주문의가 폭주했다. 개중에는 수십억을 내고 그 있지도 않은 분양권을 사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웃기는 게 복지지구는 본래 계획이었던 보육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장애와 병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재활과 복지시설을 포함했다. 그러나 주거시설을 포함해 병원, 학교뿐만 아니라 갖가지 위락시설들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업을 주도한 것이 제황이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문의가 쇄도했다.

물론 지구 내에 일반 주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궁기리에 살던 사람들뿐 아니라 장애나 불치병을 지닌 아이의 가족 혹은 생활이 힘든 극빈층 같은 이들을 우선 대상으로 삼았다. 그런 이들을 위해 내부에 거주할 이들을 위해 약 일만 세대의 주거단지도 건설했다.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순수한 제황의 자금으로만 운용될 것이다.

그런데 분명 언론을 통해 입주 대상자에 대해 미리 발표했지만, 학습능력이 없는 건지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계속해서 문의가 왔다.

제황은 모조리 제외시키라는 지시를 내린 상태다. 그리고 그 지시를 받은 이루미는 입주민선별팀을 신설했다. 그리고 그 총책임자로 아주 특별한 사람 하나를 앉혀 놨다.

외부에서 초빙한 그 사람은 이루미의 제안에 아주 흔쾌히 승낙했다.

띠리리리릭!

전화가 울린다.

전화가 놓인 책상에 앉아 한참 모니터를 응시하던 여직원이 전화기에 뜬 번호를 확인하고는 익숙한 손길로 버튼을 눌러 전화를 꺼버리고는 다시금 업무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화는 계속해서 울렸다. 세 번가량 전화를 끊은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전화를 받았다.

“네 무련천가 입주민선별팀 사원 신아리입니다.”

-여보세요. 여기 W그룹 비서실 대리 한준희라고 합니다.

전화기 저편으로 남성의 듣기 좋은 저음이 들려온다. 그러나 그녀는 방심하지 않았다.

감추고는 있지만 불편한 심기가 느껴진다.

“네. 어떤 일로 전화 주셨죠?”

-예.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청운군에 건립된 복지 지구에 대해 문의를···.

아니나 다를까 또 그 문제다. 청운군은 궁기리가 있는 군의 이름이었다. 본래도 규모가 컸지만, 이것저것 포함을 시키다 보니 청운군 자체가 지구 안에 포함되어 버렸기에 그렇게 부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신아리가 극히 사무적인 톤으로 상대의 말을 끊으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해당 건에 대한 문의 사항에 대해서는 유선 상이 아닌 무련천가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사이트 주소는...”

-하하, 사이트 주소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일이 저희 VIP께서 지시하신 것이라...

“죄송합니다. 유선상으로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신아리가 단호하게 답하자 상대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 W그룹 비서실입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규정상 불가합니다.”

-하하,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그녀가 조금 더 단호한 어조로 답했지만 역시나 상대는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이 꽤 있다. 그녀는 상대를 이해시키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다. 몇 번 겪으니 이제 적응이 되었다. 이런 이해력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비슷한 놈들이다.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특권층이라고 하는 이들이다. 혹은 그들의 위세를 등에 업은 가여운 월급쟁이들 말이다.

“예. W그룹 비서실 한.준.희님... 해당 사항에 대해 담당자께 유선을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저 그런데 지금 전화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전화를 받을 때 이미 말을 했지만, 굳이 다시 묻는 이유는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다시는 전화가 오지 않을 테니까.

“무련천가 입주민선별팀 사원 신아리입니다.”

-예. 사.원 신아리님. 알겠습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지만, 신아리는 본래 짜여진 프로세서대로 능숙한 손길로 보류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외쳤다.

“총책임자님 VJ 전화입니다!”

여기서 VJ 라는 말은 VIP 진상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녀의 외침이 넓은 사무실 안을 울리자 중앙에 놓인 책상에 앉아 한참 모니터를 보고 있던 중년인이 푸근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전화 돌리세요.”

“예!”

그의 대답에 신아리가 총책임자로 있는 사내의 자리로 전화를 돌렸고 잠시 후 그의 전화기가 울리자 그는 전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댄 뒤 기계적인 목소리로 이미 수십 번 해본 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예. 무련천가 입주민선별팀 팀장이자 대한민국헌터사무국 사무총장 임준석 전화 받았습니다.”

-예? 예? 여보세요?

W그룹 비서실의 한준희 대리는 당황했다.

자신은 분명 무련천가의 입주민선별팀이라는 별 해괴한 이름의 부서에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는 총책임자라는 이가 자신을 대한민국헌터사무국 사무총장이라고 소개한다.

“예, 잘 들립니다. 말씀하시죠.”

사무총장 임준석은 느긋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모니터에 떠 있는 고스톱게임의 쓰리고 버튼을 꾹 눌렀다.

-아뇨. 아니... 그게...

“어떤 용건으로 전화하셨습니까?”

-아, 그게 저희 VIP께서 이번 청운군에 건립된 복지지구에 대해 문의를... 아니 아닙니다. 확인한 후 다시...

그는 지금 하늘과 같은 VIP의 지시사항을 뜬금없이 등장한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에게 문의해도 되는가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분명 무련천가에 전화했는데 어째서 사무총장이 총책임자로 있단 말인가. 만약 상대가 진짜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사무총장이라면 자신 따위는 감히 말도 못 붙일 거물과 지금 핫라인으로 통화를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아니 자신의 VIP조차 순번 뽑고 전화를 해야 만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무총장 임준석은 상대가 토해낸 똥 쌍피를 주워 먹으며 포고를 꾹 눌렀다. 그리고 느긋하게 말했다.

“용건 말하라고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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