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31화 (231/301)

# 231

배경싸움-3

#1

“네...네가...”

그는 그제야 자신의 팔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품에서 권총을 더듬는다. 그의 스킬은 총을 이용한 권격술이기에 거의 자동적으로 행해지는 동작이다.

그러나 그가 총을 채 반도 꺼내기 전 그의 곁에 나타난 제황의 행동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턱...

총을 꺼내는 손을 가볍게 돌려 권총을 떨군 뒤 다리를 슬쩍 건다.

“크아악!”

가뜩이나 팔이 걸레가 된 상태에서 다리가 걸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자 고통이 엄습했다. 그런 그의 등을 발로 밟은 제황이 그의 다친 팔에 손을 가져갔다.

“멈춰!”

그때 누군가가 제황을 향해 빛살같이 달려들었다. 아공간에서 꺼낸 범상치 않은 모양의 창이 제황의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창의 주인은 바로 진현이다. 부하가 공격당하자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것

그러나 제황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그 창을 상체 움직임만으로 벗겨버린 후 진현의 눈을 힐끔 바라봤다.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다.

단지 쳐다보는 것만으로...

“흡···.”

두 무릎이 풀려버린 진현이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으...으아...”

진현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맹수를 만난 초식동물의 느낌일까? 예전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노출된 사슴이 움직이지 못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공포로 인해 온몸이 굳어버리는 것이다. 창을 움켜쥔 두 손은 그의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 두 손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두 주먹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창을 쥐는 것뿐이다.

힘이 풀려버린 두 무릎으로 인해 몸을 일으키려는 그는 마치 술에 취한 이처럼 비틀거렸다.

“이, 이···. 네놈도 빌런···. 이었구나!”

그는 자신이 상대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빌런을 잡으러 다니는 체포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지 상기했다. 헌터는 교활하다. 인간은 몬스터와 다르다. 항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고 했건만 그 간단한 것조차 까먹고 있었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 벤치에 앉아 있기에 단지 오만한 디바우저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상대는 누구보다 강력한 빌런이었다.

분명 지금까지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저 미녀가 주의를 끌고 자신이 시선을 돌리는 순간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가장 위험한 자신을 제압한 것이다.

“크윽...”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자신의 하나 남은 조원을 바라봤다. 지금으로서는 그가 희망이다. 그렇지만 조원을 바라본 그의 눈에는 희망보다는 분노가 더욱 앞섰다.

“이, 이건 이길 수 없어.”

녀석은 겁에 질린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셋 중 가장 강력한 조장이 단지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뿐일까. 뒤에 앉은 초미녀 또한 손도 쓰지 않고 동료의 팔을 걸레로 만들어 버렸다.

“으아아!”

그는 그대로 패닉에 빠져 그대로 뒤돌아 도망쳐 버렸다.

#2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거지.”

진현이 이를 갈며 말했고 그의 물음에 제황이 피식하고 웃었다.

뭔가 단단히 오해해 버렸다.

좀 거칠게 끼어들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 기생오라비는 면상이 뜯겨 나갔을 수도 있었으니까. 자신이 그들의 목숨을 살려준 것을 모르는 눈치다. 궁기가 그의 곁에 있을 때는 나름 착한 척을 하지만 그녀의 기본 성향은 중립에 가까웠다.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궁기는 최대한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제황과만 소통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머릿속으로는 궁기를 열심히 달래는 중이다.

-감히 저것이 너를 두고 나를 협박하려 했단 말이야.

-알아. 그래도 그게 죽을 이유는 아니지.

-누가 죽인다는 거야. 팔 하나랑 면상만 갈아버리려고 했을 뿐인데

그 정도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몸에 힘 풀어. 네가 이 녀석까지 죽이면 골치 아파져.

제황은 궁기와 둘 사이를 교묘히 가로막고 있었다.

아마 궁기와 눈만 마주쳐도 둘은 심장마비로 죽으리라.

-안 죽이니까 좀 비켜봐.

궁기의 눈이 희번덕거린다. 간만에 피를 보니 흥분한 것. 따지고 보면 그녀는 전투계열의 반신이었다. 예전 저스틴포인트에서 중갑오크방패병들을 도륙하던 모습을 제황은 알고 있다. 일만에 가까운 피를 보고서도 성에 차지 않는지 더 싸우려 들었다. 그동안 굶주렸던 전투에 대한 갈망을 풀어내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인병기 그 자체였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보다 거의 3배는 강해진 상황이다.

“후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제황이 고개를 돌려 벤치에 앉아 있는 궁기에게 한발 다가섰다.

불만 어린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궁기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인다.

‘조금 정도 인간사에 익숙해졌으면 싶었는데’

제황이 오늘 그녀와 함께 다닌 것은 그런 이유였다.

더 그녀를 숨기고 싶지 않은 제황이다. 함께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은 좀 먼 후일의 이야기 같다.

궁기와 제황을 영혼으로 묶어버린 무련천가의 선조들이 이런 상황을 생각했을리는 만무하지만 제황은 이제 궁기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제황은 궁기의 턱을 붙잡았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궁기의 입술이 입을 맞췄다.

“흡...”

잠시 턱을 빼는 듯 하던 궁기가 이내 저항을 멈추고 가만히 제황의 입술을 받았다.

그러기를 한 3초 지났을까. 궁기의 두 팔이 제황의 목을 두른다. 그리고...

“으읍...”

가볍게 입술만 맞출 생각이었던 제황은 입술 사이를 밀고 들어오는 궁기의 항거할 수 없는 혀(?)에 그대로 입을 벌렸고 곧 그녀와 혀가 얽혔다.

“츄릅...으음...”

가벼운 키스가 프렌치키스로 변하고 그렇게 한참 타액의 교환을 나누던 중 궁기가 먼저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숨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제황을 바라보는 살짝 홍조를 띤 궁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맛있는데?”

빠알간 혀로 입술을 훔친 궁기가 끈끈한 눈으로 제황의 눈을 바라봤다.

“후우, 흠흠...”

조금 전 뜨겁고도 끈끈한 키스를 마친 제황의 두 볼이 붉게 물들었다.

궁기와의 키스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의 앞에서 해보기는 처음이다. 얼굴이 확확 달아오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제황이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진정되었으면 돌아가.”

“쳇, 알았어. 이거 다음은 이따가?”

“흠흠...”

볼이 더욱 붉어진 제황의 얼굴을 바라보며 키득키득 웃던 궁기가 둘을 바라보며 벙쩌있는 진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인간”

“!!”

그 말과 함께 궁기가 공기중으로 녹아들 듯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흩어진 공중에는 붉은 여울이 조금 남았다가 사라졌다.

“뭐, 뭐...”

황당해하는 진현이 궁기가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때였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 대의 육중한 리무진이 길가에 멈춰섰다.

그리고 리무진에서는 진현과 같은 제복을 입은 십 여명의 사내가 내렸다. 진현과 다른 점은 금색의 오른쪽어깨에 금색의 장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터사무국 특수체포대다. 잠시 후 그들의 호위를 받듯 리무진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감색양복을 걸친 뱃살이 후덕한 중년인이다. 리무진에서 내린 그가 땅에 쓰러져 있는 진현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노호성을 터뜨렸다.

“아니 이게 무슨...! 뭐하나! 어서! 저 빌런새끼를 처단해!”

“예!”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십여명의 특수체포조가 제황을 향해 다짜고짜 날아들었다.

제압조치도 아닌 처단명령이다. 손에 무기는 없지만 저들의 손은 하나하나가 흉기나 마찬가지다.

제황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현이 제압된 것은 긴급하게 응급처치가 필요한 상황에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디 이렇게 쓰러뜨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몸이 굳을 정도로만 절대권역을 사용했을 뿐이다. 죄인이라면 이녀석이 죄인이다. 약한 죄...

고개를 슬쩍 돌려 피투성이가 된 기생오라비 녀석의 팔을 확인했다.

“뭐 대충 괜찮겠지.”

피투성이가 돼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상처는 모두 치료한 상황이다. 기절해 있는 건 그 짧은 시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린 것, 배운 바로는 쇼크에 빠질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거기까지 오지랖을 부리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자신을 공격해 오는 십여 명의 사내를 상대할 때다.

제황의 손이 휙 하고 뒤집히자 한 대의 화살이 잡혔다.

엄지손가락의 힘만으로 활대를 꺾어 활촉을 잡은 제황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폭발하는 소나기’

콰콰콰콰콰콰쾅!!!

“으아아악!”

제황을 향해 날듯이 달려들던 그들이 달려들던 것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 나갔다.

그러나 모두 한가닥은 하는지 공중에서 중심을 잡은 채 내려앉아 제황을 향해 자세를 잡았다.

휘이이...

스킬을 사용한 후폭풍이 장내를 휩쓸고 지나간다.

“흠, 기절했네.”

스킬에 간접적으로 노출된 조장이라는 놈의 눈이 돌아가 있다.

감색양복 사내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저 녀석이 내 아들을 죽인다!!!! 어서 안 구하고 뭐하는 거야! 빨리 놈을 죽여버려!”

그의 입에서 돼지 멱따는 듯한 고함이 터져 나오고 제황을 포위한 그들의 손에 긴 금속 막대기가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그들의 손에 들린 건 삼단봉이었다. 말은 삼단봉이지만 거의 철퇴와 같은 수준이다. 첨두에는 날카로운 스파이크도 달려 있었는데 몬스터 보다는 같은 헌터를 많이 상대하기에 상대의 방어구를 파괴하는데 특화된 무기다.

그 때 분기로 인해 부들거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한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형님.”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을 확인한 중년남자의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 자네와 함께 오길 다행이군.”

그가 말한 이는 헌터사무국 내에서 무력으로 열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이었다. 각성 전 군대에 있었고 각성 후로는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스카우트 되어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특이한 케이스의 헌터다. 특히 대인공격스킬이 뛰어나 몬스터보다 사람을 더 잘잡기로 소문났다.

‘집행인 한상헌’

무시무시한 위명을 지닌 그는 대한민국 헌터사무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이자 이상만과 형동생을 하는 사이로도 유명했다.

“체포조를 앞에 두고도 그리 태연하다니···. 붉은전사단 소속인가?!”

그가 제황을 향해 외쳤다.

대한민국의 큼직한 빌런 단체는 대략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삼천교이고 또 하나는 붉은전사단었는데 삼천교는 지구 쪽에서 거의 몰아낸 상태라 활동을 중지한 상태다. 그래서 현재 가장 강력한 빌런단체는 붉은전사단이었는데 다른 잔챙이 빌런들은 공권력과 충돌을 피하는 반면 그들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닌데?”

제황이 어깨를 으쓱하고 답하자 그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고작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하는 놈이 감히 자신을 앞에 두고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하긴 조금 전 보인 실력이라면 자신할 만하다.

“말이 짧군.”

“짧아도 되니까.”

제황은 단답형으로 답했다.

대한민국헌터사무국 사무총장도 자신에게 존대를 한다.

물론 초면이니 말을 높여줄 만도 하지만 먼저 반말을 내뱉는데 존대를 해줄 이유는 없다.

“흥, 잡아놓고 심문해보면 알겠지.”

그의 말에 제황이 피식 웃었다.

“내가 왜? 난 빌런이 아니다.”

“하, 헌터사무국 체포조장과 조원을 그리 만들고서도 빌런이 아니라고 하다니 발을 빼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건 정당방위다.”

제황은 어깨를 으쓱했다.

맞다. 따지고보면 제황은 정당방위다. 물론 궁기의 몸에 손을 대려다가 황천길을 건너려 했던 녀석에게는 궁기가 너무 손을 심하게 쓴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그걸 치료해 주려 하는 그를 이 조장이라는 놈은 창으로 찌르려고 했고 그것을 막았을 뿐이다.

“뚫린 입으로 법을 들먹이는군. 버러지새끼가...”

“넌 닥치는 게 좋을 것 같군.”

제황은 더이상 저들과 말을 섞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을 빌런이라고 오해한 건 그렇다 친다. 그렇지만 자신의 헌터라이센스 카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이놈이다. 그리고 말을 나눌수록 기분이 언짢아진다.

“크큭, 도망쳐도 소용없다. 넌 이제부터 우리에게 쫓길 테니까. 그리고 네놈이 아끼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

그는 제황을 도발하려 했다. 기절해 쓰러져 있는 조장에게서 제황을 떨어뜨려 놓으려고 입을 연 것이지만 그런 도발에 걸리기에는 제황의 정신력은 너무나 공고했다.

그리고 어차피 더이상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끼이이이익!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금 수 대의 검은색 리무진이 도로에 무질서하게 멈춰섰다. 헌터들의 일이기에 멀찌감치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던 몇 대의 경찰차는 이제 차량 통제를 해야 할 판이다.

차의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내렸다. 그리고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둘러보던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리고 날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몸도 꽤 후덕했는데 달리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새롭게 나타난 인물을 쳐다보던 배불뚝이 중년사내와 한상헌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사무총장님!”

나타난 이는 바로 헌터사무국 사무총장이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현재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젊은 사내를 향해 씽하고 달려갔다. 그들의 입에서 위험하다는 말하기도 전에 그의 고개가 구십도로 꺾인다.

“제,제황님!”

“오셨네요.”

제황의 싸늘하고도 담담한 목소리가 장내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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