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
배경싸움-2
#1
-아버지. 저 진현입니다.
-오, 그래. 아들아. 일은 문제없이 처리 되었겠지?
주어가 없는 물음이지만 그는 아버지가 궁금해 하는 게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예. 아버지가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그년이 빌런으로 등록되어 있기는 해도 가진 스킬이 광역기에다가 마음이 여려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유인하면 맥을 못추지.”
아버지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그가 체포한 여성빌런은 그의 아버지가 엄선해서 골라준 표적이었다.
빌런이기는 하지만 사고친지도 오래되고 가끔 정부쪽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기에 알면서도 잡지 않던 그런 부류 말이다.
다분히 그의 실적을 높여주기 위한 월권행위다.
“예.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 다른 문제로 하나 여쭤볼 게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혹시 헌터라이센스 중에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별 하나만 찍힌 종류도 있습니까?”
그는 머릿속으로 라이센스 카드라고 주장하던 그것의 색과 모양을 떠올렸다.
“그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별?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이상만은 단언하듯 말했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겁니까?”
-그렇단다. 라이센스 카드의 양식이라는 건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것이 아닌 전 세계 모든 헌터들이 공통적으로 같다. 그렇기에 임의로 모양을 바꾸게 되면 그 카드는 영영 못쓰게 되지.
“후우....”
-무슨 일 있었느냐?
“예. 사실은...”
아버지의 물음에 그는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다 들은 그의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불편한 심기가 묻어 있다.
-허, 감히 헌터사무국 체포조를 우습게 봤다? 그리고... 그 카드를 준 이를 부른다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뒤가 든든한 놈인가 보군.
“예. 그리고 그 카드를 가지고 있던 녀석도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설마 그런 이가 초보적인 상식을 모를 리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간혹 잘난 맛에 사는 디바우저 같은 놈들이 라이센스 카드에 종종 헛짓거리를 하기는 한단다. 물론 그런 짓을 하면 그 카드는 효력을 잃기 때문에 다시 발급 받아야 되지.”
디바우저라는 말에 종현은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 자신감이 자연각성자인 디바우저라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면 모두 설명이 된다.
“역시, 그런가요. 후우 제가 괜한 걱정을 했군요”
그는 아버지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인 이상만 또한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는 자신을 중도파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사실 위에서는 그를 전임 사무총장 쪽 인물로 구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최근에 취임한 신임 사무총장이 진행하는 일에서는 아직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런 이유로 세계 유일의 10성헌터를 위한 특별한 헌터라이센스 카드가 논의되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상만이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내가 가주마.
“예? 아뇨. 아버지께서 오실 일 정도는 아닙니다.”
진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너무 과보호하는 성향이 있었다.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클수록 그런 과보호가 자신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에게는 아직도 자신이 미덥잖게 비친다는 뜻과 같다. 마치 아이가 자신의 일을 해결하지 못해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처럼 말이다.
-잔소리 말고 위치나 부르거라. 내 어떤 놈이 나오는지 한번 봐야겠다.
그런 진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만은 고집을 부렸다.
그는 근래 스트레스가 쌓이는 중이었다. 10성헌터의 출현으로 인해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의 위상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그 반대급부로 눈치를 봐야 할 상전이 많아져 버렸다. 그리고 그 상전은 뭐가 그렇게 청렴한지 이전에는 떳떳이 하던 여러 가지 것들을 이제는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권력 중 하나인 인사권을 박탈한 것이다.
헌터사무국은 거의 국가기관과 마찬가지인 곳이다. 비록 지분은 세계헌터사무국과 절반씩 나눠서 소유하고 있지만, 그 운영은 한국정부에서 맡는다. 황금알을 낳는 헌터관련산업과 연관되어 있기에 연봉도 세고 국가기관이기에 철밥통인 이중성을 가져서 인기가 좋은 직업 중하나다.
위상이 높아진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만만치 않게 사무국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인사권에 많이 관여하는 그에게 잘 보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중 능력 있는 이들 골라 자리에 꽂아 넣기만 하면 끝이었다.
상대는 좋은 자리를 차지해서 좋고 자신은 그에게 우호적이면서 빚을 지운 이들을 요직에 꽂아 넣을 수 있기에 한국형 윈윈 전략이었고 그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젠장 그게 뭐 어때서...’
사람들은 가진바 권력을 이용해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을 낙하산이라고 욕하지만, 이것은 사실 권력자가 좀 더 원활히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에 금전적 이해관계나 특혜 따위가 좀 낄 수는 있지만 그런 것은 서로간의 믿음을 좀 더 확실히 하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서로 특혜와 이익을 나눔으로서 ‘함께 주고받았다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궁신을 등에 업은 무적성은 대한민국헌터사무국을 위에서부터 강도 높게 개혁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그 흐름에 반항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구세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자신도 따지면 구세력이고 말이다. 그 첫 본보기가 바로 전임사무총장의 해임이다. 자신 또한 곧 그런 꼴이 되리라.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축출당하기 전에 그나마 남은 권력을 총 동원해 아들을 요직에 심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꽂은 아들놈인데!’
자신을 닮아서 외모도 반반하고 머리가 뛰어나다. 아직 어려서 리더쉽까지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헌터로써의 자질도 그럭저럭 훌륭하다. 최선을 다해 끌어올려 요직에 앉힌 후 찍어둔 경제계 유력가와 연을 맺을 작정이다.
자신이 물러나면 젊은 아들놈은 친무적성 쪽으로 갈아탄 후 궁신과 친목을 쌓을 것이다.
궁신과 나이도 비슷하니 그와 발맞출 수 있는 차세대 리더라는 이미지로 밀어붙일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꽂아 넣은 아들이다. 너무 감싸고 보호하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지금은 살얼음판도 조심해야 할 때다.
-세상일은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네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잊어서는 안 돼. 이번에는 잠자코 내 말을 따르거라.
“예.”
아버지의 완강함에 진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마치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크레인을 불러 막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버지에게 위치를 전송한 진현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형님 어떻게 되셨습니까?”
동생들의 물음에 그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아버지께서 직접 오신단다.”
“예?”
진현의 말에 둘의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진현의 아버지인 이상만은 이런 곳에 와서 아들의 병풍질이나 해줄 레벨이 아니다.
“역시!”
그들은 다시 한 번 자신들이 줄 하나는 잘 섰다고 생각했다. 그를 얼마나 중히 보기에 이런 사소한 일에도 직접 나선단 말인가.
그러나 진현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변한 둘에게 오히려 주의를 주었다.
“아버지 오시면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예. 알겠습니다.”
둘의 얼굴을 보니 그다지 믿음이 가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나타나면 조용해지려니 하고 신경을 껐다.
곁눈질로 제황을 힐끔 바라본 진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불쌍한 놈 세상의 높은 벽을 한번 실감해 봐라.’
#3
따분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던 궁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뭔가가 나타나 제황을 보고 있는 그녀의 눈을 가로막은 것이다.
제황은 지금 그녀와 상당히 떨어진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이따가 사무총장이 오면 어찌되었건 그의 정체가 드러날 텐데 그때 같이 있으면 괜히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다. 제황은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지만 궁기는 자신이 다른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가로막은 것은 체포조 남자 중 하나였는데 나름 꽤 장신에 기생오라비 생겼다. 자신의 외모에 자신이 있는지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마저 띠었다. 물론 살아온 세월에서 오는 연륜과 제황의 외모에 단련된 궁기에게는 그냥 인간 수컷 중 하나일 뿐이지만...
“비켜.”
궁기의 쌀쌀맞은 한마디에 그의 미소에 작은 실금이 갔다.
그러나 그 또한 온갖 종류의 미녀를 다 겪어 본 베테랑 중에 베테랑인 듯 금세 표정을 회복하고는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궁기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조금 더 가까이 붙는다.
그리고 까칠한 말이 나오기 전에 그가 선수 쳐서 물었다.
“남자친구 분이신가요?”
궁기는 대답은 커녕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완벽한 무시다.
“저 사람, 참 안타깝네요.”
궁기가 듣던 안 듣던 그는 제황이 안됐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제야 궁기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게 무슨 말이지?”
“하하...”
“남자친구분이 뭘 믿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모시는 저분의 신분도 범상치 않거든요. 저분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남자친구분의 헌터인생이 꼬여버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
그의 대답에 궁기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듣기만 해도 불쾌하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떠나서 감히 어디서 신분을 논한단 말인가. 제황이야말로 세상 그 누구보다 우월하고 존귀한 이다. 신벌의 대행자 무련천가의 가주이며 무려 반신인 자신의 주인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궁기의 그런 반응을 제황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오해했는지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저분을 오랫동안 모셔온 제가 보기에 순순히 넘어가지는 않으실 것 같습니다.”
궁기는 옆에서 웬 개가 아직도 짖나 하는 생각으로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자신의 말이 통한 것으로 오해해 버렸다.
“그렇지만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방법이...”
기생오라비는 그 말과 함께 궁기에게 은근슬쩍 다가서며 손을 그녀의 어깨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우지지직...
섬뜩한 기음(奇音)과 함께 그의 손목이 공중에서 기이한 각도로 꺾여 버렸다.
“응?”
처음에 그는 자신의 손에 발생한 사태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상상력이 너무 부족했다. 그의 손은 마치 공중에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에 휩쓸린 것처럼 바깥쪽으로 둥글게 말려 비틀어지는 중이다.
우지직...우직...
으스러진 팔뚝이 뒤로 360도를 회전하고 나서야 그는 팔을 치고 올라오는 섬뜩한 고통에 그제야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혼비백산하여 팔과 몸을 뒤로 뺐으나 그의 팔뚝은 이미 연체동물의 그것처럼 흐늘흐늘해진 상태다. 그의 목소리에 장내 사람들이 그를 쳐다봤다가 비틀려진 팔을 발견했다.
“꺄악!”
“저게 뭐야! 저 사람 팔이 왜 저래!”
조각난 뼈들이 살을 뚫고 튀어나와 있고 기다렸다는 듯 피가 터져 나온다.
“크윽”
지혈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한 그는 팔뚝 위를 꾹 잡았다.
그리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설마 방금 자신의 팔을 이렇게 만든 게 눈앞에 있는 미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그였다.
그러나 그런 몬스터가 이런 도심 한복판에 있을 리 없다. 피가 멈추지 않고 서서히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하자 그는 궁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치유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아까 궁기가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을 보고 그녀가 힐러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궁기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가 왜?”
“네?”
“꺼져. 그 역겨운 그 면상까지 뜯어내 버리기 전에...”
“히익...”
그는 팔에서 올라오는 고통도 잊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한순간 그녀에게서 뿜어진 살기가 그의 생각이라는 것들을 날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