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고독-1
#1
제황은 판틀랜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소말리아 중서부를 점유했다.
소말리아 과도정부는 무련천가의 판틀란드의 점령에 무조건적인 환영의 뜻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극렬 이슬람원리주의무장단체를 몰아냈으니 원하기만 한다면 제황을 소말리아의 대통령으로라도 뽑아줄 기세다.
세계헌터사무국에 판틀랜드의 점령을 알리고 통치권에 대한 심사를 요청하는 한 편 곧장 재건사업에 착수한다고 공표했다. 세간에서는 매우 성급한 행동이라고 우려를 표했는데 만약 세계헌터사무국에서 심사를 늦추거나 보류했을 경우 투입한 자원과 인력은 모두 허공으로 떠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제황이 무적성의 문상 조용기의 조언이 있었다.
점령이 끝난 후 무적성을 찾은 제황은 문상 조용기에게 회의를 요청했다. 그리고 소말리아의 재건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대융합이 있고 근 60년간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일으킨 산증인이나 마찬가지인 문상이기에 이런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확하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기간만 따지면 거의 150년 가까이를 무정부상태의 국가로 존재했던 소말리아였다.
그 길고긴 시간 동안 소말리아를 일으키려는 시도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것들을 다 떠나서 소말리아는 이미 제활의 의지조차 없는 식물인간과 마찬가지의 국가였다.
그리고 그 처방에 대해 제황이 물었을 때 문상은 간단한 한마디로 그것을 정리해 줬다.
“항거 할 수 없게 돈을 쏟아 부어야지.”
“그냥 쏟아 부으면 됩니까?”
문상의 간단한 한마디에 제황의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래. 대신 무시무시하게 쏟아부어야 해. 뿌리 깊게 찌든 그 가난을 모두 씻어버릴 정도로 말이야.”
“제가 알아본 바로는 종족간이나 종교적인 문제로 인한 문제가 크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런 건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제황의 반문에 조용기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빙글하고 돌렸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놈에 이슬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샤리아가 문제겠지. 일부 전문가라는 놈들이무조건적인 지원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그 말을 하는 놈들은 돈이 없는 놈들의 변명일 뿐이야. 이 커피 맛있군.”
“믹스 커피 몇 봉 챙겨드릴까요?”
“좋지. 이거 내 밑에 있는 놈들은 죄다 고상한 척 한다고 뭔 요상한 이름의 커피만 싸들고 와서 처치하느라 골치 아픈데 이런 걸로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지.”
세계 저명한 학자들을 모두 돈 없는 쫌팽이로 만들어버린 조용기가 동네 마트에서 파는 커피믹스를 탐내고 있다. 어깨를 으쓱한 제황이 다시 물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투입해야 할까요?”
제황의 물음에 조용기가 허허하고 웃었다.
막상 벌어들이는 주체가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잘 모른다. 하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다. 그 늘어나는 폭이 무시무시하다 못해 폭발적이었으니까.
제황이 벌어들이는 돈은 이미 단순히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을 지났다.
흔히 사람들이 몬스터의 사체만이 돈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몬스터가 9티어급이 되면 천문학적인 사체 가격뿐만 아니라 그 몬스터로 인해 탈환되는 땅에 대한 보상금과 9티어몬스터에 대한 현상금까지 엄청난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지금 그 돈들은 모두 꾸준히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중이다.
제황의 경우에는 굳이 투자해서 돈을 불릴 궁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벌어들이는 걸 잘 지키기만, 해도 제황의 잔고는 미친 듯이 상승하는 중이다.
오죽했으면 현재 제황의 계좌는 세계 각국에 수십 개로 분산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워낙 금액이 커서 그 돈이 대한민국으로 유입될 경우 경제에 악역향을 끼칠 수 있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제황의 레이드를 감당하기에 이제 대한민국은 너무나 좁다.
아마 지금까지 벌어들인 것의 정산만 모두 끝나도 전세계 부자 1위는 제황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네가 가진 계좌 몇 개만 털어도 소말리아는 가난에서 완전히 벗어날 거야. 아마 다 털어넣으면 소말리아 전체를 살 수도 있을 걸? 물론 추천하지는 않네. 자원 빼고는 그다지 쓸만한 땅은 없으니까. ”
조용기의 말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돈이라면 앞으로의 계획을 추진하는데 무리가 없으리라.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소말리아 재건 사업은 문상님이 전부 맡아 진행해 주십시오.”
“좋아.”
문상 조용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금액이 얼마인지도 말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
제황의 사정을 잘 아는 문상이었다. 아직 초기단계인 무련천가의 역량으로는 제황의 자산을 관리하기 힘들었고 그가 계속해서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권제에게 따로 언질도 들었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재건되기를 바라나?”
“가능하면 종교와 부족 따위는 잊어버리게 만들어 주십시오. 투자금액은 무제한입니다.”
“허허, 오랜만에 신나는 돈지랄을 해보겠군. 자네 형님처럼 빡빡하게 굴지는 않겠지?”
“당연합니다. 마음껏 가져다 쓰십시오.”
“좋아 그럼 일어나 보겠네.”
제황의 집무실을 떠나며 조용기는 비서실에 잠시 들러 커피믹스를 챙겨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곧 수십 조를 움직일 거인임에도 입맛은 참 저렴한 인물이다.
#2
소말리아로 돌아온 제황은 판클랜드의 완전한 점령작전과 우두머리인 압둘후세인의 추격을 서둘렀다.
그리고 압둘후세인의 추격준비가 끝나는 순간 제황은 곧바로 추격대를 이끌고 엘어스로 건너갔다.
압둘후세인도 머리가 없는 것은 아니기에 게이트를 폐쇄하기 보다는 지독한 함정을 설치했다. 엘어스쪽의 게이트는 거대한 요새 내부에 있었는데 요새 곳곳에 수십 톤의 TNT를 쌓아놓고 넘어오는 추격대를 요격하려는 계략을 꾸몄다.
섣불리 들어섰다면 대형참사가 벌어졌을 테지만 선두로 투입된 것은 밀령에서 파견된 특급밀령 셋이었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모든 계략을 무력화 시킨 후 투입 된 추격대는 제황의 추격스킬을 이용해 빠르게 압둘후세인을 따라잡았다.
압둘 후세인은 강력한 몬스터의 서식지나 지형지물을 이용해 추격대를 교란하려 했다. 마치 게릴라처럼 철저한 잠행을 통해 도망쳤다. 사전에 탈출경로를 모색한 듯 조직적으로 제황의 추적을 방해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단 3일도 되지 않아 추격대에 따라 잡혔다.
압둘 후세인의 실수는 간단했다.
첫째는 제황이 몬스터들의 서식지를 피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라는 것과 두 번째는 제황의 추격스킬을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것이었다. 제황은 몬스터의 서식지를 그대로 관통했다. 갖가지 몬스터들이 제황에게 덤볐지만 그것들은 제황의 발걸음을 한시도 잡아두지 못했다. 또한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었다. 사냥감을 쫓는 것은 제황에게 너무나 쉬운 일이었고 엘어스의 넓은 평원에 멈춰선 압둘후세인은 제황의 추격대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전을 준비했다. 압둘 후세인이 준비한 한 수는 잔인했다.
자신을 따라온 3000명의 친위대의 몸에 폭탄을 두르고 헌터용 마약에 잔뜩 취하게 만들어 추격대에 돌격하도록 했다. 세뇌되다시피 한 그의 친위대는 약에 취한 채 추격대를 향해 미친 듯이 돌격했고 그들은 단 하나도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모조리 제황의 손에 고혼이 되었다.
압둘후세인과 그를 추종하던 잔존세력의 전멸은 전세계에 알려졌다. 그리고 전세계는 제황을 단순히 강력한 10성 헌터가 아닌 위험한 절대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량학살, 냉혹한 처형인, 세계의 비난 쇄도
판클랜드 점령 작전에서 15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실제 제황의 공격에 죽은 이들은 45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마치 156명 전체를 제황이 죽였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3000명의 목숨이 더해졌다. 자살공격 중 저들끼리 폭사한 것도 있었지만 세상은 더욱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모든 죽음은 모두 제황의 몫으로 돌아왔다.
-세계헌터사무국 10성 헌터 궁신 소환 예고
아무리 상대가 빌런이라 해도 무려 3,156명의 생명이다.
빌런은 범죄자이며 사회의 해악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인간이기에 재판을 받을 권리 정도는 있었다. 그런 그들을 마치 쓰레기 치우듯 휩쓸어 버리자 이제는 인권과 관련된 각종 단체에서 들고 일어났다.
-세계가 몬스터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있는 지금 인간의 존엄성은 다시 한 번 회고되어야 한다. 과거 빌런이라는 이유만으로 즉결처형의 대상이 되던 무법의 시대는 지났다. 그런 이유로 궁신이 소말리아에서 벌어진 대량학살 사태는 마땅이 지탄 받아야 할 일이다.
세계인권협회사무총장이 공식성명을 통해 제황을 언급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각 종교단체에서도 이번 제황의 무자비한 폭격을 성토하기 시작했고 특히 대한민국의 특정 종교는 무적성 앞에서 합동예배를 들이며 목사들이 무적성의 무자비함을 성토하는데 목의 핏대를 올렸다.
-모든 사람은 종교적으로 하느님의 자녀라고 그러거든요. 종교 교리에 분명히 나와 있고. 나쁜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고요. 또 아무리 잘못해도 최소한 국가가 생명을 박탈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생명이고, 우리 헌법이 부여한 인간 존엄이기 때문에. 생명을 박탈하는 것만은 안 된다 기본적인 입장이고. 흉악범 인권도 보호함으로 우리 사회 모든 사람의 인권이 더 잘 보호되는 겁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물고 뜯고 하기 바쁘던 각 종교들이 한 목소리로 제황을 성토하기 바빴다.
물론 제황은 그런 것에 단 일점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아무런 성명도 발표하지 않았다. 마치 저들이 오해할테면 오해하라는 듯 묵묵히 소말리아의 재건을 서둘렀다.
그리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딸은 강간을 당할 뻔했던 파라는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구호물품과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건되는 도시를 바라보며 조용히 두 손을 모아 하늘에서 내려준 신의 사자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3
“맛있다.”
보기 만해도 촉촉해 보이는 티라미슈가 붉은 입술 사이로 쏙 사라졌다.
“여긴 어떻게 알아냈어? 음? 정말? 와 우리 제황이 많이 컸네. 이런 기특한 짓도 하고...”
“...”
자기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제황을 칭찬하기 바쁜 궁기다.
문제집을 노려보며 열심히 펜을 돌리던 제황이 궁기의 말에 피식 웃었다.
뻔히 다 알면서 저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 그녀와 함께 있는 이 작은 골목제과점은 제황이 특별히 지시를 내려 찾아낸 대한민국의 숨겨진 맛집이었다. 그리고 궁기는 제황이 하는 일을 빤히 다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일부러 꺼내 제황을 칭찬한다.
언제나 모든 것을 함께하기에 그리고 영혼이 엮여 있기에 그들 사이는 감추고 싶어도 감추기 힘든 사이다. 처음 궁기와 함께하게 되었을 때는 참 많은 것이 불편했다. 당장에 화장실에 가는 것에서부터 씻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물론 일부러 의식하면 생각 같은 건 막을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것도 귀찮아 그냥 두는 형편이었다.
어느새 너무나 익숙하게 되어 버렸고 너무나 당연하게 되어 버렸다.
“내가 대신 공부해 줄까?”
그녀의 물음에 운전면허필기시험집을 풀고 있던 제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했다.
“아니, 네가 대신 운전할 건 아니잖아.”
“그거야 모르지. 그런데 굳이 그런 걸 따야 해? 자가용헬기도 있잖아. 운전기사를 써도 되고...”
궁기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자가용헬기 뿐일까. 원하기만 한다면 최근에 미국에서 구입한 하늘을 떠다니는 요새 초대형쿼드콥터 아트라스를 대한민국 상공에 띄울 수 있는 제황이었다. 물론 제황은 그런 것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그냥 나도 자가용이라는 걸 한번 가져보고 싶네.”
얼마 전 동철의 결혼식이 있었고 제황은 동철의 몸에 맞는 헌터용 오프로드 수제차량을 선물했다. 그런데 막상 선물을 하고 보니 제황도 마이카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남자의 로망은 마이카라고 하더니 자신도 남자인 모양이다. 왜 돈 많은 헌터들이 돈 벌면 집 산 뒤 차를 뽑기 시작하는지 늦게나마 이해가 가는 제황이었다.
“흐응.”
궁기가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나중에 제대로 놀아줄게.”
“말로만...”
“응.”
“갈수록 능구렁이가 되가는 것 같아.”
“칭찬 고마워.”
“어떤 놈이 우리 순진한 제황이를 이렇게 버려놨을까.”
뭔가 음험하고도 구체적인 주변 정리 계획을 꾸미려던 궁기지만 때맞춰 종업원이 쟁반에 아름답게 플레이팅된 디저트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으로 무산되었다.
“주문하신 ‘마담 까뜨린 특선’ 나왔습니다.”
“먹어봐. 미리 주문하지 않으면 맛 볼수 없는 거라고 하더라.”
“흐으응.”
살짝 비음을 낸 궁기가 상당히 커다란 케이크 조각을 한 번에 푹 찍어 입에 밀어 넣고 전투적으로 씹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씹었을까 볼이 빠알갛게 물든다.
“흐응, 너무 맛있잖아.”
반신도 맛있는 것에 대한 면역과는 상관 없는 것 같다.
“쿡...”
“웃지 마. 정 떨어져.”
궁기의 말에 피식 웃은 제황이 다시금 눈을 문제집에 집중했다. 과거에는 필기시험이 무척이나 쉬워서 합격자가 90프로가 넘었다는데 지금은 시험이 워낙 어려워져서 합격자가 30프로도 채 되지 않았다. 공부의 재능이라는 건 일반인이든 헌터든 별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헌터가 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과 달랐다. 단지 집중력이 좋아져서 학습능력이 향상되는 것이지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지금 가장 크게 절감하고 있는 제황이었다. 답안을 맞춰본 제황은 틀린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난 공부랑은 인연이 없나봐.”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니까.”
“그건 아니고.”
“고지식하긴...”
궁기의 시큰둥한 대답에 제황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좋네.”
아무도 그들을 신경쓰지 않는다. 마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연인들처럼 제과점에 앉아 평범한 일상을 나눈다.
오늘을 위해 호위하는 이들도 모두 물렸다. 그리고 궁기의 술법을 통해 제황과 궁기의 존재감까지 살짝 흐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할 하루지만 제황에게는 힐링이 되는 하루다. 너무나도 소중한 하루...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간식을 먹어치우던 궁기가 하늘하늘 변하더니 제황의 무릎 위에 나타났다.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 궁기는 제황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