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근거지마련-2
#1
“저희 딸을 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는 마른 흙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흠”
그를 내려다보는 철호가 머리를 긁적인다. 이 남자가 죽을 끓이며 조심스럽게 권총을 챙기는 것을 봤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알았다. 나름 꽤 절박했으리라. 고민도 많이 했을 테고···. 이건 자신이 실수한 부분이다. 이곳에 오는 동안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저희는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습니다. 오늘 밤에 되기 전에 놈들이 들이닥칠 겁니다. 그러니 가실 때 제 딸만이라도···.”
간절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철호는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어쩌려고 하지?”
“제 딸만 데리고 가 주신다면 저희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끄응.”
그 말뜻의 속내를 파악한 철호가 머리를 더욱 벅벅 문질렀다. 그가 알기로 이곳은 도망칠 구석이 없다. 사방을 둘러싼 방벽은 외부의 몬스터를 막기 위한 기능뿐만 아니라 도시민들을 사육하기 위해 존재하는 철창이었다. 애절한 부정(父情)이다.
부모이기에 가능한 그것이다.
그때 입가가 초콜릿으로 범벅이 되어 있던 그의 딸이 아빠의 말에 울먹울먹하게 변했다. 말귀는 참 빨리도 알아듣는다.
“아빠...싫어.”
“파투마. 이분을 따라가야 네가 살 수 있어.”
“싫어. 싫어. 으아아앙”
“쉿! 조용히 해야 해!”
행여 누가 들을까 그는 딸의 입을 막고는 그녀의 귀에 뭐라고 속삭인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철호의 곁에 은근슬쩍 다가온 동생이 중얼거린다.
“형님이 책임지세요. 열 살짜리 형수 생겼네.”
“헛소리는 작작하고!”
“그러니까. 대충 구해주고 모른 채 했어야죠. 이 무슨 오해가 오해를 낳는 악순환입니까.”
“낸들 이럴 줄 알았냐.”
퍽!
빈정거리는 동생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여.”
“예?”
남자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 자신은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말하는 중인데 상대는 전혀 딴소리한다.
“설마 저희를 버리시려는....”
“버리긴 뭘 버려. 어차피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다 끝날 텐데···.”
“휩쓸다니요?”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철호가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헤드셋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 창밖을 주시하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판틀랜드 국경선을 지났고 도착 5분 전이란다.”
“허, 10분이나 빠르네. 제길... 아주 지들이 갑이야. 하긴 무적성 놈들이...”
“쓰읍, 좀 닥치고... 너랑 명우는 이 근방 맡는다고 너희 클마한테 연락드려라. 우리 위치 이동한 거 보고도 드리고...”
“형님은요?”
“난 어차피 전력 외로 분류된 예비대잖아. 여기서 민간인 보호 좀 할게. 어차피 너희 둘한테는 쉽잖아.”
“아니 쉬운 건 둘째 치고···. 우리 클랜 마스터 이런 거 깐깐한데···.”
“그러니까 너한테 말하는 거지. 니네 클마가 같은 클랜원은 또 끔찍하게 챙기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나까지 가면 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냐. 정 뭐하면 네가 남던가.”
“쯧···. 예.”
동생이 구시렁거리며 경계를 서고 있던 한 명과 함께 집 밖으로 사라지자 철호는 아직까지 땅에 엎드려 있는 아이의 아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기 옥상 있지?”
“예? 예! 있습니다.”
“그럼 같이 좋은 구경하나 하러 가지.”
“그게 무슨...”
“잔말 말고 빨리 안내해. 태어나서 난생처음 보는 쇼일 테니까.”
얼떨결에 그를 옥상으로 안내하는 파라다. 옥상에 올라선 철호가 먼저 납작 엎드렸다. 내리쬐는 햇빛에 달궈진 바닥이 후끈거린다.
“같이 기다리자고...”
그의 곁에 같이 엎드린 파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철호가 품에서 태블릿을 꺼내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가 맡은 일은 스킬을 이용해 이 근방에 세부지형정보를 갱신한 후 포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도시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궁전이 참으로 이질적이다. 국민들은 일개미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는데 통치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형국이다. 뭐 하긴 오늘로 그것도 끝이리라.
“그 괴물은 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서 자신이 만들어 줄 결과만 통보해주는데 그걸 씨발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렇지만 그는 약속 하나는 확실히 지키는 놈이니까 오늘 당신들은 이곳에서 도망칠 필요가 없을 거야. 다 끝났군.”
태블릿을 덮은 그가 멀리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음, 마침 저기 오는군.”
그의 말에 시선을 돌린 파라는 구름 한 조각보이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며 헛소리를 하는 철호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것은 각성자와 일반인의 시력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만 철호는 그것을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일은 아주 순식간에 끝날 테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옥상으로 통하는 덮개가 열리며 그의 딸내미가 빼꼼하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아빠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기어와 품에 안긴다.
“흑... 나 보내지 마. 아빠.”
“안돼. 파투마.”
“같이...같이가...”
“조용히 해. 그리고 절대 이분을 귀찮게 하면 안된다...”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 아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라고 딸과 헤어지고 싶겠는가. 그렇지만 감독관이 죽고 자신이 자리를 이탈했으니 분명 자신을 잡아다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전사가 죽은 것을 알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 모두 샤리아법에 따라 갖은 고문을 당하며 죽을 것이다.
그는 딸을 부둥켜안았다.
자신이 죽더라도 딸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는 마치 이제 마지막이라는 것처럼 딸을 꾸욱 안았다.
철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이 애절한 부녀를 보고 있자니 자꾸 자기가 나쁜 놈이 되는 기분이다.
“이거 번역이 이상한가. 자꾸 신파극을 찍고 있어. 이봐. 이제 그럴 필요 없다니까?”
“예?”
“저기 봐.”
철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그는 멀리 하늘 위에 찍힌 검은 점을 발견했다.
“놀라지 말고... 당신들이 보기에는 신의 사도 정도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냥 인간 모양의 괴물이니까 괜히 현혹되지 말고...”
부우우우...
은은한 비행 음이 들려오기 시작하고 검은 점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나타난것은 거대한 비행기였다. 아니 비행기라고 하기에는 모양이 좀 특이하다. 네 개의의 틸트로터가 사방에 달렸는데 그 하나하나가 약 20m의 지름을 지니고 있었다. 두툼한 장갑으로 둘러싸인 본체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공중요새와 같다.
“미확인항공기 출현! 경보를 울려!”
“움직여! 전투배치!”
위이이이이!
타타탕! 탕탕탕탕!
비행기는 그들만 발견한 것이 아니다. 도시 곳곳에서 성난 고함이 들려오고 공습경보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아수라장이 되었고 민간인들은 건물 안으로 서둘러 도망친다. 성벽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대공화기들도 무장한 군인들이 달라붙어서 사격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어...어...저걸 어째...”
파라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동동 굴렀다. 옆에 태평스럽게 엎드려 있는 동양인의 말을 들어보면 저것은 그의 아군일 것이다. 그러나 대공화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저것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떨어질 것이고 그 안에 타고 있는 이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슈슈슈슛!
아니나 다를까. 지상으로부터 네발의 지대공미사일이 동시에 솟구쳐 비행체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병신들... 미사일 포대 하나 놓쳤군.”
“안 돼!”
파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그리고 그의 몸을 철호가 눌렀다.
“보기나 하라니까.”
“예?”
파파파파파파팡!
마치 이미 감지하고 있었다는 듯 하얀 플레어 수백 개가 일시에 뿜어지며 화려한 빛의 날개를 만들어냈다.
쾅쾅쾅! 콰쾅!
흩뿌려진 플레이에 미사일들이 연달아 폭발하고 잠시 후 마치 그 공격에 응사하려는 듯 비행체의 하부가 갈라지고 깨알같이 작은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쏘아진 것은...
파앙
뭔가 대단한 반격을 예상했지만 그곳에서 발사된 것은 단지 한줄기의 붉은 빛무리다.
고작 저것으로 무엇을 할까 의심스러울 작은 그것이 지상을 향해 쏘아져 내려갔다.
지상에서는 그 빛줄기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그 작은 빛줄기의 주인을 사람들은 궁신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말이다.
파아앗!
파라의 동공이 갑자기 급격히 확장되었다. 동시에 그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알라시여.”
붉은 빛무리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뭔가에 요격당한 것이 아니다. 수십 갈래로 분열되어 마치 생명을 지닌 듯 꿈틀거리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비행체에서 떨어지는 붉은 빛무리는 이미 하나가 아니다. 수십 개의 붉은 빛무리가 연이어 떨어지더니 그것들도 앞에 있는 것과 같이 폭발하듯 분열하여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마치 붉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것 같다.
파팍! 파파파파팍! 파파팍! 팍팍!
붉은빛의 융단이 되어 사람들을 향해 쏟아져 내린다.
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일견 마구잡이로 떨어지는 것 같지만 분화된 그 빛줄기들은 정확히 총을 들고 항전하는 신의전사들만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시의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고풍스러운 궁전의 상공에 멈춰선 그것으로부터 이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빛줄기가 쏘아져 나갔고 그것은 이전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궁전 자체를 감싸 버렸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침묵 뿐이다. 항거할 수 없는 폭격에 모두가 저항의지를 잃어버렸다.
두두두두두...
할 일이 모두 끝났다는 비행체는 슬금슬금 사라져 버렸고 철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쭉 폈다.
“어이, 난 이제 가서 진압작전해야 되는데... 음...뭐, 그냥 가도 되겠군.”
넋이 나간 아이와 아이의 아빠를 내려다본 느는 볼을 긁적인 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지금부터는 자신들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야 할 차례다.
#2
“판틀랜드 점령 완료 되었습니다.”
“인명 피해는 어떻게 되죠?”
“제황님의 첫 공격에서는 경상 1,453명 중상 659명 사망 45명입니다. 이후 광역제압을 위해 투입된 헌터부대와의 교전으로 인해 경상 541명 중상 591명 사망자 112명이 발생했습니다. 포로는 총 3401명이며 헌터 2592명 나머지는 민간인입니다. 우군 헌터부대의 피해는 경상자 112명 중상자 34명 사망자는 없습니다.”
이루미의 보고에 제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의 공격에 사망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 최대한 위력을 낮춘 것이었다.
상대가 아무리 빌런이라도 사람 목숨을 파리 잡듯 죽이는 취미는 제황에게도 없다.
“그런데 사전에 들었던 정보와는 숫자가 맞지 않네요.”
제황의 말에 이루미가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죄송합니다. 수뇌부인 압둘 후세인과 그의 친위대 검은해골단 중 3000명 가량을 놓친 것 같습니다. 제황님의 기습폭격이 시작되자마자 저항을 포기하고 곧바로 궁전 내에 있는 엘어스 게이트로 도망친 걸로 추정 중입니다.”
“내부에 엘어스 게이트가 있었습니까?”
“네. 지름 약 20미터의 초소형 게이트가 있었습니다.”
“추격대 투입했나요?”
“밀령들을 곧 투입할 예정입니다.”
“후, 알겠습니다. 그 외에 특이사항은 없습니까?”
“예.”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판틀랜드 재건사업에 들어갑니다.”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