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25화 (225/301)

# 225

근거지마련-1

#1

소말리아는 지글거리는 태양이 푸른색 하나 보이지 않는 사막을 사시사철 달구는 그런 곳이다. 흙먼지를 동반한 거센 바람 속에 포탄과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낡은 흰 건물들 사이로 온갖 거적때기와 쓰레기로 만든 건물들이 옹기종기 달라붙어 있다. 거리를 걷는 남자들의 얼굴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는 듯 잔뜩 찡그린 채였다. 번뜩거리는 눈 속에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점철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눈빛...

마치 전쟁통의 피난촌 같이 옹기종기 붙어있는 건물들을 더욱 숨 막히게 만드는 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인지 감시하는 것인지 높이 20미터의 장벽이 도시를 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뙈악볕 아래 소총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장벽 위에서 도시 안을 노려보고 있다.

거리는 마치 작은 묘지와 같이 음울하다. 누더기 같은 옷을 처덕처덕 걸친 채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인,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길을 노려보는 아이들... 모두가 얼굴에는 한 점의 미소조차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시커먼 아바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조심조심 걷고 있는 작은 소말리아 소녀가 있다.

“헉...헉...”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걷던 소녀는 다 떨어진 처마 밑으로 몸을 숨겼다.

훅 밀려오는 피와 오물의 냄새...

수십 명의 헐벗은 남성들이 열심히 몬스터부산물을 나르고 있다. 번들거리는 검은 피부 위로 피와 땀이 뒤범벅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깃덩어리를 나르던 남성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소녀가 따라붙었다.

“아빠! 아빠!”

힘겨운 노동에 헐떡이던 사내는 허리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내려 소녀를 확인하는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는 그녀를 몸으로 가린 채 숨죽인 목소리로 외쳤다.

“파투마! 여길 왜 왔어!”

남자는 마치 주위의 모든 남자로부터 소녀를 보호하려는 듯 몸으로 가린다.

“엄마가 이상해!”

파투마의 말에 아빠는 주위를 둘러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집을 나설 때 안사람의 몸이 안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일을 끝마치지 않으면 식량을 얻을 수 없다. 안사람이 아픈 이유는 간단했다. 영양실조... 비실비실 거리더니 기어코 탈이 났다.

“얼른 가! 그리고 부뚜막에 숨겨놓은 밀가루가 있으니 그걸 먹여드려!”

파투마의 아비는 그녀를 거칠게 밀었다.

매정한 손길이지만 이렇게 떨쳐내지 않으면 그녀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띌 수  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파라! 왜 멈춰있는 거야!”

소총으로 무장한 남자가 그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일합니다!”

파라는 허리가 땅에 닿을 듯 굽실거렸다. 피로와는 다른 의미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른다. 그가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다.

“빨리빨리! 음?”

총구를 위협적으로 겨누던 남자가 경멸어린 눈으로 파라를 바라보다가 문득 골목 사이 어둠 속에 숨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를 발견한다.

“호오, 너 누구지?”

남자의 손짓에 파투마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지만 두려움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시커먼 아바야를 둘러 입은 파투마를 향해 손짓을 하던 소총의 사내가 눈썹을 흉하게 일그러뜨리며 소녀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쫘아악!

작은 소녀의 머리를 덮고 있던 아바야를 벗겨낸 사내의 얼굴에 음심이 차올랐다. 고작해야 10살이나 되었을까. 너무나 어린 아이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듯 소녀의 멱살을 틀어쥔 채 그녀를 질질 끌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아빠! 아빠!”

소녀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리자 그는 들고 있던 몬스터 부산물을 내팽개치고는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 돼”

아비는 자신의 딸을 끌고가는 그를 덮치듯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의 머리를 겨누는 소총이 먼저다. 총구를 겨눈 사내는 소녀를 땅에 내팽개치고 그 등에 발을 올린 채 남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가라. 조금 있다가 찾아가.”

“감독관님. 제...제발!”

눈앞의 그가 무슨 짓을 할지 뻔하다.

당장에라도 딸을 구해내고 싶지만 여기서 조금만 움직여도 저 방아쇠가 당겨질 것을 알고 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딸의 몸짓이 안쓰럽다.

“감히! 내 말을 무시해!”

퍼어억!

“아악!”

“아빠! 아빠! ”

노호성을 토한 감독관이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소녀의 아비를 후려쳤다.

감독관의 발밑에 깔려있던 소녀는 아빠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자 연신 비명을 질렀다.

“다녀와서 보자.”

경멸어린 눈으로 소녀의 아비를 내려다보던 감독관은 소녀를 질질 끌고 골목의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의 눈물 젖은 동공 속에는 정신을 잃은 듯 땅에 쓰러져 있는 그녀의 아빠가 가득하다.

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건물 뒤편에 휴식을 위해 놓아둔 쇼파가 하나 있다. 지금처럼 여자들을 잡아다가 거사를 치르는 데는 아주 그만이다.

“흐흣!”

평소 일을 치르던 곳에 도착한 감독관은 소녀를 더러운 쇼파 위에 던져 놓고는 소녀의 아바야를 거칠게 벗겨냈다. 공포에 질려 눈물만을 줄줄 흘리고 있는 작은 소녀의 몸이 드러난다. 다 찢어진 헐렁한 셔츠를 받쳐 있는 소녀의 옷을 우왁스럽게 찢어낸 후 감독관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싫어요!”

쫘악!

“아악!”

소녀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답은 감독관의 손찌검이다. 축 늘어진 소녀를 내려다보며 소총을 빗겨맨 사내가 더욱 빠르게 벨트를 푼다. 어린 소녀를 겁탈하며 얻을 쾌감에 광기마저 섞인 그 눈이 소녀의 하반신을 노려보고 있다. 바지를 끌어내린 후 소녀를 향해 손을 뻗을 때였다.

뒤쪽에서 슬그머니 나타난 큼지막한 손이 감독관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애를...”

커컥!

목을 붙잡힌 순간 반항하려 했지만 목을 죄여오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목을 통째로 쥐어뜯을 듯한 거대한 손아귀에 감독관은 순식간에 정신이 핑하고 도는 것을 느꼈다.

그의 뒤로 나타난 것은 감독관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다란 건장한 사내였다. 천으로 머리와 입을 가린 사내가 감독관을 들어 올려 품평하듯 위아래를 훑는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경계!”

감독관의 목줄의 틀어쥔 사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의 뒤로 두 사내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두 사내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소녀를 살피고 한 사내는 사내가 들어온 골목을 감시하러 걸어간다.

“어억...어억...”

감독관이 목을 붙잡을 손을 어떻게든 떼어내려고 발버둥을 치자 붙잡고 있던 사내는 귀찮다는 듯 감독관을 그대로 들어 올려 벽에 기대 세운 뒤 손아귀에 힘을 줬다.

우드득...

사내가 목을 쥐어짜듯 해버리자 감독관의 목이 기형적으로 꺾여버렸다. 척추와 숨골이 완전히 으스러져 버렸다.

감독관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사내가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소녀의 상세를 확인하던 사내가 타박하듯 말했다.

“철호형님. 죽이면 어떡합니까.”

“딱 봐도 나쁜 짓 하러 들어온 놈이잖아.”

“얘가 이 새끼 마누라인지 어떻게 알아요. 이 동네는 미성년자 같은 거 없다는 거 못 들었어요?”

“어떤 새끼가 마누라 데리고 들어오는데 총으로 겨누냐.”

“그거야 그렇지만 공격명령 떨어지기 전까지는 숨죽이고 있어야 하잖아요.”

“에이 몰라. 내 아공간에 숨기면 되지.”

“아니, 그게 아니라...어휴...”

두 사내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경계를 서고 있던 사내가 골목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오던 소녀의 아비를 낚아채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우웁...”

공포에 질린 사내는 눈을 뒤룩뒤룩 굴리다가 이내 쇼파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입을 막고 있던 사내의 손길을 뿌리치며 소녀에게 달려들었다.

“어엇!”

사내가 실성한 듯 달려들자 소녀의 곁에 서 있던 남자가 사내를 향해 손날을 뻗으려 했지만 이내 감독관의 목을 꺾어버린 남자가 그 손길을 가로막았다.

“파투마!”

사내는 방금 자신이 죽을 뻔 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녀를 부둥켜안고는 소녀의 몸을 확인하기 바쁘다. 그러다가 터진 입술과 부어오른 볼을 확인하고는 바닥에 목이 기형적으로 꺾인 채 죽어있는 감독관의 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죽어! 죽어!”

“어이, 이봐. 그만해.”

어깨를 짚어오는 손길에 그가 살기가득한 눈으로 그 손의 주인을 돌아보던 소녀의 아빠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의 눈 속에서 타고난 포식자의 기운을 느끼고는 몸을 굳혔다.

“당신들은...누구”

정신을 차린 소녀의 아빠는 소녀의 찢어진 아바야로 소녀를 숨기기 바쁘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철호라는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이 이봐. 우리 말 알아듣겠어?”

사내의 물음에 소녀의 아빠는 머리를 정신없이 끄덕였다. 이런 위험한 냄새를 풍기는 이들에게는 반항해선 안된다.

“자리 좀 옮기지? 일단 우리 착한 사람들이야.”

조금 전 사람 하나의 목을 마른 나뭇가지 꺾듯 분질러버린 이 치고는 표정이 참 해맑다.

착한 사람이라는 그 말에 동의해 주지 않으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소녀의 아비는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감독관의 시체는 철호라는 사내가 아공간으로 깔끔히 수납해 버렸다. 마치 쓰레기 처리하듯 잘 접어서 아공간에 쑤셔 넣는 게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감독관이 죽었기에 사라진 그가 의심받을 만도 한데 무슨 생각인지 셋을 자신의 집에 들려놓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품에 안고 온 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남자가 방 한쪽 나무로 만든 침상 위에 누워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리는 여인의 상세를 확인하고는 부뚜막에 숨겨놓은 밀가루 한줌을 물에 타고 화덕에 불을 붙여 끓이기 시작했다.

“흠흠...”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세 남자 중 우두머리인 철호는 눈을 뜬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손을 휘적휘적 흔들자 겁먹은 소녀가 몸을 더욱 작게 움츠린다.

부어오른 얼굴을 보니 더욱 안쓰럽다.

“아, 왜 애를 겁 먹여요.”

철호라는 이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얼굴에 두르고 있던 천을 벗으며 타박하듯 말한다.

“임마. 내가 뭘 어쨌다고...쩝”

철호는 소녀에게 먹을 것이라도 주려고 아공간을 뒤적뒤적 했다. 접어 넣은 시체의 발이 잠시 드러나자 소녀의 얼굴이 공포에 물든다. 그걸 치우고 이곳에 투입되기 전 챙겨놓은 식량을 하나하나 꺼내 놓았다. 예비용으로 일주일치를 챙기기는 했지만 작전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오늘 이것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먹을래?”

초콜렛을 까서 소녀의 앞에 들이밀자 소녀는 눈앞의 초콜릿과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치를 살핀다. 멀건 흰죽을 끓이던 그가 먹어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쉬이 입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철호형님. 척보니까 저쪽은 환자 먹일려고 밀가루죽 쑤고 있는데 이런 거 내밀고 있으면 애가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음...그런가? 어이 이봐.”

“예. 예.”

헐호의 손에 들린 초콜렛`을 훔쳐보던 소녀의 아비가 다가오자 철호가 가지고 있던 전투식량 두 개를 내밀었다.

“가져가서 먹여.”

“가, 감사합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거절하지 않은 채 그것을 받아갔다.

행여 철호가 그것을 다시 집어넣을까 빠르게 받아든 그가 전투식량을 빠르게 까서 끓이고 있는 죽에 집어넣었다. 아빠에게 음식을 줘서인지 안심한 소녀가 철호의 손에서 초콜렛을 받아들고 입에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뜨더니 초콜렛을 빠르게 입에 밀어 넣었다.

“천천히 먹어라. 쯧”

철호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식량을 꺼내 바닥에 늘어놨다.

그도 집에 가면 이만한 딸이 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나타나서는 안 되지만 소녀가 강간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손을 써버린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그래. 착하네. 야. 네 꺼도 좀 까봐.”

“아, 왜 제 식량까지 내놔요.”

“임마. 어차피 쓸 일도 없잖아. 넌 피도 눈물도 없냐? 하긴 다크나이트 클랜 아니랄까봐.”

“아! 거참 남에 클랜 이름은 왜 꺼내요. 알겠수다.”

투덜거리며 그가 자신의 아공간을 열자 그의 아공간에서도 식량이 한가득 쏟아진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초콜렛의 황홀함에 그것을 입에 정신없이 밀어 넣던 소녀는 사라져버린 초콜렛이 아쉬워  한숨을 내쉬었으나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 한가득 쌓이는 갖가지 음식들에 놀라 입을 뻐끔거렸다.

그 때 죽을 끓이던 아이의 아빠가 철호라는 사내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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