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평범하지 않은 일상-3
#1
이루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세계헌터사무국에서 파견된 파쥴의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협상도 회의도 아니다. 지금은 묵묵히 그녀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지금은 이것이 현재 제황과 세계헌터사무국의 위상 차이였다.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무련천가는 세계헌터사무국을 철저히 제 3자의 입장으로 두고 레이드를 진행했다.
그들도 자신들의 죄를 안다.
아무리 사무국장이 화해의 제스쳐를 취했다고 해도 사무국이 사무국장 혼자만의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사무국 내에는 아직도 제황에 대한 불만 세력이 존재했다. 특히나 10성 헌터에 대한 특별법 개정까지 준비했던 죄가 있는 그들이다.
물론 그들은 언제 그런 시도가 있었냐는 듯 뻔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감히 자신들을 제치고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식으로 세계헌터사무국은 정보창구를 닫고 몬스터에 대한 정보제공을 중지했다. 9티어 몬스터에 대한 축적된 정보는 매우 귀중하다. 세계헌터사무국에 오랜 기간 쌓이고 쌓인 몬스터에 대한 데이터들은 그 대단한 엠페러 조차도 그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레이드는 안전해진다.
세계헌터사무국은 수많은 헌터들의 피와 땀이 묻은 그 정보를 이용해 제황과 타협하고 9티어몬스터 레이드를 통한 그 수혜를 나누려 했었다. 그러나 제황 쪽이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으니 감정이 상했다.
그런 정보를 무련천가에는 제공하지 않았고 그것이 무련천가가 대규모로 정보팀을 신설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계헌터사무국은 제황의 9티어 몬스터 레이드가 두자릿수를 넘기 시작하자 자신들이 실수했다는 걸 절감했다.
무적성이 전 세계에 뿌려놓은 정보망은 그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또한 궁신이 가진 레이드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정교했다. 단순히 원거리에서 쏘아 죽일 수 있는 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9티어 몬스터가 왜 무서울까? 9티어 몬스터가 서식하는 곳 주변은 곧 몬스터들의 천국이 된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몬스터들의 천국에서는 새로운 7티어 8티어 몬스터들이 태어난다. 혹은 새롭게 9티어몬스터로 성장하여 인근으로 서식지를 넓히기도 한다.
그런데 궁신을 보좌하는 무련천가는 그런 모든 것들을 세계헌터사무국의 도움 없이 완벽히 파훼했다. 그 흔한 웨이브 조차 없이 마치 치과의사가 썩은 이를 뽑아 내듯이 9티어 몬스터만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세계헌터사무국에서 파견된 파쥴의원은 지금 무련천가에 협상할 건덕지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역시나 이루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런 일로 제황님의 스케줄을 조정할 수는 없습니다.”
“11만의...”
희생당할 민간인들의 숫자를 다시 한번 말하며 인도주의에 호소하려던 의원의 입을 가로막았다.
“좀 더 들으시죠. 빌런에 대한 무련천가의 방침은 언제나 ‘무협상’입니다. 저희는 어떤 빌미도 그들에게 남기지 않을 겁니다.”
이루미의 말에 파쥴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걸 그런 식으로 이어붙이면 할 말이 없다. 할 수 없음을 먼저 꺼낸 건 자신이다.
‘킁, 자국내의 붉은전사단과는 잘도 하면서...’
무적성과 빌런들의 관계...
알고는 있지만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다. 무련천가는 무적성과 다르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세상 그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지금도 이렇게 무적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무련천가를 운영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게다가 무적성이 대한민국의 빌런 단체인 ‘붉은전사단’을 뒤에서 암암리에 이용한다는 것은 웬만한 이들은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그때였다.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이루미가 낮게 한숨을 내쉰 뒤 조금은 안쓰럽다는 얼굴로 파쥴의원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도 몬스터로 인해 가족을 잃은 사람으로 그들의 불행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번 일에 대해서 제황님께 보고는 드리겠습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다.
“감, 감사합니다.”
파쥴의원이 반색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가 이렇게 이번 사태에 집중하는 이유는 소말리아에서 생산되는 자원들을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세계적인 자원기업과의 유착관계 때문이었다. 11만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웨이브로 인한 민간인의 피해는 이전부터 꾸준히 있었던 재해였다. 그들보다는 레이드로 인해 발생할 과실이 실제 목적이다.
만약 제황이 자이언트 스파이더를 레이드 해주기만 한다면 그 근방의 땅값은 폭등할 것은 물론이고 몬스터가 차지하고 있던 땅에 묻혀 있는 자원들은 모두 그들의 것이 된다.
파쥴의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이루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행복한 상상에 빠져드는 파쥴의원을 이루미의 차가운 목소리가 깨웠다.
“예? 어떤...”
“헌터법 제 81조 항을 들어 무련천가에서 레이드한 지역의 대한 소유권을 요구합니다.”
이루미의 말에 깜짝놀란 파쥴의원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흘렀다.
헌터법 제 81조는 반사회단체 혹은 무정부지역의 몬스터를 클랜이나 타국에서 탈환했을 경우 세계헌터사무국의 심사에 따라 일정 기간 통치권을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헌터사무국의 심사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심사만 넘긴다면 타국을 합법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상당히 오래전 제정된 법으로 세계헌터사무국에서 헌터들의 적극적인 몬스터레이드를 권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실제로 법이 적용된 적은 없다. 자국의 몬스터들을 몰아내기도 벅찬데 타국의 몬스터를 레이드하기 위해 자국의 헌터병력을 소모하는 것을 막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전제조건으로 대규모의 헌터병력이 필요하실 겁니다. 게다가 압둘후세인은 물론이고 그 주위에 있는 소규모의 군벌과도 마찰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것은 헌터들과 민간인 모두에 크나큰 피를 요구하는...”
파쥴의원은 그녀가 말하는 요구의 무리함을 가지고 설득하려 했다. 그렇지만 워낙 준비 없이 들은 터라 그에 대해 준비한 말이 없다.
“그것은 파쥴의원님이 걱정하실 부분이 아닌 것 같네요.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신다면 무련천가와 무적성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몬스터 뿐만 아니라 빌런 세력까지 깨끗이 정리한 후 지역의 안정화를 꾀하겠습니다.”
“그건...크흠”
파쥴의원은 진땀을 질질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차라리 찾아오지 않으니만 못한 결론...
그도 머리가 없는 이는 아니기에 정보가 사전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조건을 들고 나올 리 없다.
“일단 사무국과 상의를 해보겠습니다.”
파쥴의원은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과 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일단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는 파쥴의원을 바라보는 이루미의 입가에 얕은 미소가 걸린다.
#2
-문상님 감사합니다.
-네가 중간에 고생이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게 해야지.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다. 9티어몬스터의 사체에 침 한 방울 못 묻히게 했으니 몸이 달았을 거야. 이제부터 무적성에서도 전방위로 압박이 들어갈 거다.
문상의 대답에 이루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9티어몬스터의 사체에 대한 모든 권리는 무련천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황에게 있었다. 그리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 이루미는 그것들을 이용해 수많은 세계적 기업들을 떡주무르듯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루미는 그 힘을 무적성의 문상과 함께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첫 번째 결실이다.
압둘후세인이라는 군벌과 9티어몬스터 한 마리만 치우면 대한민국의 절반 만한 땅이 그대로 무련천가의 손에 들어온다. 한시적인 통치라고는 하지만 그것의 끝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까놓고 말해서 국민들이 원하면 통치권은 계속 연장될 수 있다.
물론 지금 시간이 남아서 뜬금없는 땅따먹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무련천가의 공격적인 경영을 통해 제황의 힘을 키워야 할 이유를 제황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루미였다. 향후 다크어스로의 대규모 원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무적성 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강력한 헌터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모으기 위해서는 그들이 흥미를 느낄만한 것을 갖춰야 한다.
그 시작이 되는 곳이 바로 소말리아가 될 것이다.
소말리아는 근 한 세기 동안 정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땅이었다.
굳이 9티어몬스터가 없다고 해도 몬스터들은 넘치고 넘치는 그런 최악의 땅...
그 몬스터자원을 통해 일치화된 강력한 헌터병력을 만들어 다크어스의 몬스터에 대항할 준비를 해야 한다.
또한 세계헌터사무국도 길들여야 한다. 창립 초기에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 속에 탄생한 그곳이지만 지금은 수많은 이권과 얽히고 얽혀 믿을 수 없는 파트너로 변한 것이다.
일단 썩어빠진 곳은 도려낼 생각이다. 제황의 이름으로 무력과 금력과 권력을 모두 집중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조율하는 것이 그녀의 사명이다.
-모집은 잘 되고 계신가요?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놈들이 태반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몬스터 청정국이니 놀고있는 헌터들이야 넘쳐나지.
문상의 대답에 이루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몬스터들을 모조리 몰아낸 국가가 되었다.
9티어 몬스터들까지 모두 정리해 버리고 과거의 국경까지 모두 인간의 땅으로 수복해 버렸다.
몬스터를 잡아야 돈이 되는 헌터들은 모두 슬슬 불만이 쌓이는 상황
오죽했으면 폐쇄한 다크어스의 게이트의 오픈까지도 슬슬 흘러나올 지경이다.
이들을 내버려 둔다면 모조리 엘어스 공략에 나선다고 들고 일어설 것이다.
그들 관점에서야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현재 엘어스보다는 다크어스를 대비할 때다. 그런 그들을 모조리 소말리아에 투입할 예정이다.
파쥴의원이 그렇게 겁을 주던 조직화된 압둘후세인의 1만 빌런들? 웃기지 말라고 해라.
말만 1만이지 대부분이 총으로 무장한 하급헌터들일 뿐이다. 민간인들에게야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한국의 헌터들이 투입되는 순간 그들은 일주일 안에 쓸려나갈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굳이 궁신을 예로 들 필요도 없다. 한국인의 특징이 무엇일까? 뭔가 하나에 꽂히면 아주 맹렬히 파고든다는 것이다.
타국의 헌터들이야 어느 정도 헌팅능력을 갖추면 더 상위의 몬스터에 도전하는 것을 꺼린다. 적당히 안전한 헌팅이 가능한데 굳이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그들은 레벨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그들과 좀 달랐다. 뭐든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대한민국의 헌터들은 레벨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었다.
오히려 그런 도전정신이 너무 과도하여 7성헌터가 세 명밖에 되지 않는 처지였지만 그 외의 고위헌터자원은 풍부하다 못해 넘쳐 흐른다.
-이참에 무적성의 진정한 힘을 슬슬 내보일 때가 된 것 같다. 형님께서도 찬성하셨다.
문상의 말에 이루미가 눈을 크게 떴다.
무적성의 진짜 힘이라고 한다면 굳이 대한민국의 헌터들을 수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세계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무적성의 강력한 군세를 세상에 내놓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좀 더 많은 땅이 필요하겠군요.
-그래. 그러니 앞으로 네 역할이 크다.
-예.
-그럼 고생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