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21화 (221/301)

# 221

혼자 덤비게-4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쉰 제황이 조용히 읊조렸다.

-심하게는 안 할 거야.

제황도 기본은 안다. 손님이 왔는데 두들겨 패서 병신을 만들지는 않는다.

“손맛만 볼 거야.”

딱 반병신까지만 생각하는 제황이었다.

#1

‘뭐야 이 자식...’

토르는 눈앞에 서 있는 궁신을 바라봤다.

분명 활을 쓰는 원거리딜러라고 알고 있는데 활쏘기의 필수품인 슈팅글러브를 풀고 있다.

그러더니 깍지를 끼고 손을 풀고 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을 맨주먹으로 상대하겠다는 듯 보인다.

눈썹 사이가 절로 좁혀들었다. 감히 자신을 상대로 주무기를 들지 않는다? 그 자신을 철저히 무시한다는 뜻과 같다.

‘오냐. 이놈...’

사람들이 10성헌터라고 떠받들어주니 7성헌터 따위는 눈에 차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보인다. 실소가 터진다.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이럴까하는 자괴감도 든다. 자신의 부하 넷이 연달아 깨졌으니 그 우두머리인 자신도 우습게 보인 것이리라.

‘그래. 어울려주마.’

토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상대가 자신을 얕볼수록 빈틈은 커진다. 하긴 얼마나 같잖겠는가. 고작 7성헌터가 10성헌터에게 덤비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번 싸움에 대한 모든 시뮬레이션을 끝마친 상태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정보팀을 이용해 그가 사용하는 모든 스킬들을 수집했다. 추정 스텟을 분석했다.

전투패턴을 공부하고 그에 대한 카운터 스킬등도 연구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 온 것이다.

‘계획은 세워졌다. 10성 헌터를 꺾었다는 명예는 내가 가져가겠다.’

토르는 귀빈석에 앉아 있는 엠페러를 힐끔 바라봤다. 입국장에서 그가 궁신에게 날린 도발은 전해 들었다. 그도 분명 지금 앞에 서 있는 겉만 요란한 원거리딜러를 요리할 비책을 준비했기에 호기롭게 말한 것이리라.

그러나 실상 엠페러는 제황이 베히모스와 싸우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제황과의 대련을 승리보다는 패배 혹은 무승부를 상정하여 그런 발언을 한 것이었다.

엠페러의 본래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입국장에서 상대를 도발하는 가벼운 발언을 한 후 대련에 임해서는 그가 가진 최강의 탱킹 능력을 최대한 쥐어짜 버틴다. 버티고 버텨서 어떻게든 무승부로 이끌고 자신의 패배라고 말하며 가벼운 도발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며 끝마치는 것이다. 엠페러는 이미 제황을 자신보다 훨씬 위에 있는 강자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토르는 그것을 몰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제 묠니르는 주먹으로 막기 버거우실 겁니다.”

토르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에 제황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무적성에 오셨으니 무적성의 절기인 무적권을 보여드려야죠.”

무적권은 무적성의 헌터라면 가장 처음 익히는 기본 무술과도 같다. 따로 무기술을 익히지만 몬스터와의 싸움에서 불가피하게 무기를 잃을 수도 있고 또한 몸을 단련하는 효능도 있으므로 대부분 성원이 익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약한 무술도 아니다. 그 창시자가 권제이며 철권을 무기로 사용하는 권제의 주력스킬이기도 하다.

심판이 상석에 앉은 권제를 힐끔 바라보자 권태로운 표정으로 턱을 괸 권제가 더욱 짙어진 미소로 고개를 끄덕인다.

이로써 대련은 성립된 것... 물러선 심판이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외침과 함께 대련장 밖으로 물러났다.

‘계획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성공률이 가장 큰 계획을 수립해 왔다. 한정된 대련장이니 피하지도 못하리라. 여러모로 볼 때 그 자신이 유리하다. 그가 준비한 계획은 이것이었다. 상대가 강력한 은신과 속도를 가지고 있으니 첫 공격으로 바닥에 깔리는 대규모 전격 공격을 사용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볼 때 이 전격 공격에 당한 이들은 세 가지 패턴으로 대응한다. 첫째는 그냥 버티는 것이고 두 번째는 공중으로 뛰어 피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공격을 대충 아는 이들은 땅속으로 피한다.

‘어떻게 대응하든 상관 없다.’

이미 모든 계획은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후아압!”

토르는 전력을 다해 묠니르를 내리찍었다. 묠니르에 한계까지 뭉친 전격에너지가 거칠게 날뛸 준비를 한다. 6티어 몬스터도 정신 못차리게 만드는 그가 자랑하는 롤링썬더라는 이름의 광역기다.

그렇게 롤링썬더를 품은 묠니르가 바닥과 충돌하려는 순간!

으직...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대련장에 울려퍼졌다.

“크헉!”

토르는 턱이 마비되는 알싸한 고통과 함께 강제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뭔지?’ 라는 의문과 함께 바닥을 향하던 묠니르를 돌려 거의 반사적으로 상체를 방어했다. 그의 가슴 앞으로 번개가 미친 듯이 흩뿌려진다. 찰나지만 훌륭한 방어 그러나 상대는 터프했다. 맹렬한 위빙과 함께 번개를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근접으로 치고 들어온다. 그리고 두 주먹이 그의 중갑주가 가리지 못하는 유일한 곳인 턱을 맹렬히 두들기기 시작했다.

뻐! 퍼퍼퍼퍽! 뻐억!

“크악! 악악! 아악! 크악!”

연속적으로 턱을 가격당하면 뇌가 흔들린다. 아무리 회복기를 지닌 헌터라도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두들기면 소용없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지만, 턱을 두들기는 주먹은 멈출 줄은 모른다.

상대의 공격패턴은 야만 그 자체였다. 토르는 지금 그의 상대가 궁신이 맞는가라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가 본 영상 속에는 이런 야만적인 공격을 퍼붓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철저한 계획 속에 상대의 피해만을 강요하는 전투 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내는···.

숨 쉴 틈이 없다. 근접전에 있어서만큼은 궁신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그 자신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부수는 근접전의 달인이다.

퍼어엉!

밀어 올린 무릎 공격을 악으로 버텼다. 예상했다는 듯 복부를 두들긴다. 충격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중갑으로 인해 버틸만하다.

“흐아압!”

이대로 밀릴 수는 없다.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둔기술을 펼쳤다.

엠페러를 꺾을 생각에 밤낮으로 수십만 수백만 번을 훈련했기에 이 공격은 자면서도 휘두를 수 있는 궤적이다.

이번만은 무시할 수 없는지 상대가 살짝 멀어진다.

“내 차례다!”

토르는 중갑술을 이용해 우직스럽게 밀어붙였다.

평타싸움으로는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

일발역전을 노린다.

궁신의 신형이 멀어진다.

마치 근접전을 포기하는 모양새다.

물러서는 궁신을 쫓으며 토르가 이를 악물었다.

‘흥! 이제 은신을 이용한 중거리 변칙공격이겠군.’

기다리던 바다.

그는 묠니르를 든 주먹을 꾹 쥐었다.

이때를 위해 준비해 둔 회심의 한방이 있다. 단 한 번도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철저한 비공개로 준비한 비장의 공격이다. 묠니르를 든 팔이 단숨에 두 배 가까이 부풀어 올랐다. 단순히 힘을 준 것이 아니다. 그의 고유스킬은 보유한 스텟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물론 한계는 존재했다. 3~5스텟 가량을 순간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해 이제는 아주 찰나지만 10가량 스텟을 높일 수 있다. 그의 기존 근력 스텟은 20... 무려 30으로 폭증한 근력으로 묠니르를 집어 던졌다.

퍼어어어엉!

쏘아진 묠니르가 음속을 돌파하는 순간 맹렬한 소닉붐이 그의 주위를 찢어발겼다. 던져진 묠니르는 한참 뒤로 물러서고 있는 궁신을 향해 맹렬히 쏘아져 나갔다.

허점을 완벽히 공략하는 한 수다.

그는 자신했다. 이번 공격은 8티어 몬스터라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공격이다. 원거리딜러인 상대는 이 공격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맞았다!’

물러서던 궁신은 쏘아진 묠니르에 그대로 적중당했다.

비장의 공격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어엇!”

묠니르는 궁신을 그대로 뚫고 날아갔다. 묠니르에 적중당한 궁신의 신형이 흩어져 버린다.

‘자, 잔상?’

토르는 자신의 눈이 착각을 일으켰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쏘아지는 총알도 피할 수 있는 그였다.

적을 시야에서 놓쳤다는 충격에 잠시 움찔해버린 토르다.

그런 그의 턱밑으로 궁신이 나타났다.

퍼어엉!

목뼈가 부러지도록 뒤로 젖혀졌다.

물러서던 것보다 더욱 빠르게 치고 들어온 궁신의 어퍼컷이 그의 턱에 작렬했다.

‘아아...’

토르는 아래턱이 부서지는 감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 끝났다.

‘이게 뭐야!!!’

상대의 주무기에 당한 것도 아니다. 만약 지금 상대의 손에 냉병기라도 하나 들려 있었다면 자신은 이미 바닥에 피바다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퍼퍽! 퍽퍽!

머리만을 노리며 맹렬히 두들겨 오는 주먹의 감각 속에 토르는 자신이 완전히 졌음을 깨달았다. 상대를 완전히 분석했다는 자만심에 차 있었다. 비장의 무기를 너무나 맹신했다. 상대는 그 자신보다 훨씬 위에 있는 이였다. 까마득히 먼 위에 있던 이에게 덤빈 것이다.

‘하, 하하...크헉!’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두들겨 맞은 토르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데굴데굴 굴러가 구겨진 휴지처럼 바닥에 널부러졌다. 주위에 흐르는 고요 속 청명한 심판의 목소리만 울린다.

“대련 끝!”

#2

꽤 임팩트 있던 대편은 무상 최진하의 표현으로는 ‘팔팔하니 좋구만’ 이라 평으로 마무리 되었다.

피닉스 공격대와 검은가시 공격대의 손님들이야 대련에서 나온 끔찍한 결과에 친선보다는 무적성이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속으로 우려를 표했지만, 승자인 제황에게 술을 권하며 원래 무적성의 대련은 이 정도가 보통이라는 권제의 호탕한 한마디에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대련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제황이도 버서커공격대의 토르도 이번 대련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기를 빈다. 또한, 이번 대련 결과에 대해 입을 여는 이는 무적성이 친히 찾아갈 테니 그리 알도록!.”

권제가 나서서 일을 수습하니 이 대련을 지켜본 모두는 대련의 결과를 머릿속으로만 기억하기로 했다. 어차피 무적성에는 기자 등이 출입할 수 없기에 자리에 있었던 이들만 입을 다물면 끝이다.

게다가 막상 개박살이 난 당사자인 토르는 다음날 일어나 지난 밤 대련에 대해 아무런 항의 의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권제에게 부탁하여 버서커 공격대 전원이 무적성에서 한 달간 특별훈련을 받을 수 있게 요청했다.

손님에게 그럴 수는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권제에게 ‘버서커공격대를 개처럼 굴려도 좋다’ 라고 외친 토르는 권제의 허락을 받자마자 향후 모든 레이드 스케줄을 취소한 채 무적성의 장기체류를 결정해 버렸다.

어젯밤 그렇게 영혼이 털리도록 깨졌음에도 무적성의 각종 수련시설들과 강자들의 존재를 확인한 토르는 배알도 없는지 시커먼 수컷들과 키득거리며 무적성을 거닌다. 그리고 그런 토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엠페러는 ‘저새끼 저거 내가 하려던 것을...’ 이라고 생각했을 지경이다.

#3

“한 달간 잘 부탁드립니다!”

제황은 눈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금발 사내를 띠꺼운 눈으로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아침 훈련을 마치고 들어오다가 버서커 공격대와 마주친 제황이었다. 선두에 서 있던 토르와 눈이 마주쳤지만, 제황은 고개를 까딱하고는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토르는 그런 제황을 그냥 보낼 생각이 없는지 대뜸 그를 막아선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한 달 동안 무적성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청도 크다. 토르가 고개를 숙이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떡대 전원이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뭐, 잘 받아보세요.”

제황은 그들을 지나치려 했다.

어차피 자신은 개인수련실이 있기에 마주칠 일이 없다.

“대련을 부탁드립니다!”

외면하려는 제황을 막아선 토르가 외쳤다. 그러자 제황의 눈썹이 모인다.

걸음을 멈춘 제황이 토르의 위아래를 훑어보며 말했다.

“혼자 덤비려고요?”

상대를 완전히 깔보는 투다.

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토르를 도발하는 제황이다. 도발에 걸려들면 다시는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자근자근 짓밟을 참이다. 그런데 토르는 제황의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환해지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