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사거리 100만-219화 (219/301)

# 219

혼자덤비게-2

#1

엠페러의 돌발 발언이 한바탕 파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공식기자회견에서 피닉스 공격대 대변인은 향후 세계 레이드에 있어서 유기적인 전략적 제휴와 친교를 위해 방문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금일 도착 예정인 세계 레이드 랭킹 1위 2위 3위의 저희 피닉스 공격대와 검은가시 공격대, 마지막으로 버서크공격대는 나흘간 일정을 통해 대한민국헌터사무국 방문 및 위령탑 순례 마지막으로 무적성 방문의 일정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엠페러님의 발언에 대한 해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적성을 방문할 예정이기는 하지만 기자님이 우려하시는 그런 무력 충돌을 없을 것입니다. 물론 헌터들 간이니 가벼운 대결을 통해 기량을 확인하는 대련은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우호적인 입장에서의...“

기자회견을 끝낸 피닉스 공격대는 사전에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서 준비해 준 차를 타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신 겁니까?”

피닉스공격대의 딜러장을 맡고 있으며 엠페러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7성딜러 엘머 헨리가 옆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엠페러에게 물었다.

“음, 뭐가?”

“한판 붙으려고 오셨다는 그 발언 말입니다?”

“음...”

알렉스의 말에 엠페러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기본 목적은 향후 레이드에 있어서 전략적 제휴와 친선을 도모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자신의 피닉스 공격대가 아메리카 대륙을 엠페러스의 검은가시 공격대가 서유럽 마지막으로 버서크 공격대가 북유럽의 상위 티어 몬스터에 대한 레이드를 맡고 있었는데 이제 9티어 몬스터에 대한 안정적인 레이드가 가능한 인물이 나타났으니 좀 친해지자는 의도에서 다 함께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자의 강력함은 함께 보시지 않았습니까.”

“나도 알아.”

“그럼 어째서...”

“이유를 말하자면 좀 길어. 그러니까...”

잠시 후 엠페러의 설명이 이어졌고 이윽고 엘머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다.

“괜찮겠습니까?”

“이렇게라도 친해져야 하니 문제다.”

“아니 그렇지만 굳이...”

“뭐, 한판 붙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해. 일단 대련의 형식이라면 상성이 있으니 내가 그리 불리한 것도 아니고···. 내가 가진 무구들의 능력들을 전부 활성화하면 최소한 1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패배를 상정한 대결이라니요.”

엘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엠페러는 이미 패배를 생각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얼마나 멋지게 패배하느냐가 문제지.”

“대련을 통해 궁신과 좋은 관계를 마련하거나 혹은 ...”

“부상을 핑계로 ‘그곳’ 의 레이드를 요청하는 거지. 이리저리 압박하면 저들도 들어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그곳이라...”

엠페러가 그곳이라고 말하는 곳은 엘머도 잘 아는 곳이었다.

레이드 강국인 미국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곳이 있다. 미국 내 최대 크기의 다크어스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최소 8티어 최대 9티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엠페러의 고향이었다.

엠페러의 숙원과도 같은 레이드지만 차마 그 극악한 난이도로 인해 손대지 못하고 있는 그곳...

“그런데 잘하면 내가 안 나서도 다른 놈이 먼저 덤빌 수 있어.”

“다른 놈이라면?”

“헨릭슨, 버서크 공격대의 공대장 그놈 말이야.”

“토르 말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엠페러는 버서커 공격대의 공대장을 떠올렸다. 이명은 토르... 그와 마찬가지로 본명인 헨릭슨보다는 토르라고 더 많이 알려진 남자다.

그의 스킬과 아티펙트등이 그리스 신화에 근거를 뒀다면 토르는 북유럽신화에 혈통을 둔 각성자였다. 8성의 헌터라는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능력이 부족해서 오르지 않은 게 아닌 엠페러를 상대로 패배했기에 그 자신을 8성헌터의 위에 올리지 않은 것이었다. 엠페러스 그녀야 뭐 원래 능력 자체가 너무 다르므로 논외로 치지만 토르는 엠페러를 꺾을 날만을 절치부심하며 칼을 가는 이였다.

“랭킹 1위에 목마르던 놈이었는데 뜬금없이 새로운 비공식 세계랭킹 1위가 나타났으니 눈이 뒤집힌 거지. 거기에 그놈은 궁신을 인정하지 않아.”

“근접성애자라서 입니까?”

“그렇지. 너도 알다시피 그놈은 원거리딜러들을 업신여기지. 피와 살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멍청한 고정관념을 지닌 웃긴 놈.”

“흠, 그건 녀석의 원래 소속이 하이랜더 공격대 쪽이라서 그런 것이지요.”

“뭐, 어쨌건 궁신과 녀석의 싸움도 주목해야 해. 만약 토르녀석이 궁신에게 부상이라도 입힌다면 그걸 핑계로 좀 친해져 봐야지.”

“토르가 궁신에게 상처입힐 수 있겠습니까?”

엘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산이 쓰러진다. 그의 주군인 엠페러라 하더라도 감히 정면을 가로막을 엄두가 나지 않을 사족보행 초거대 괴수 오오가무시가 궁신의 단 한방의 공격으로 무너지던 충격적인 광경을 말이다.

“글쎄, 그런데 그 토르 놈도 만만치는 않아서 문제야. 역시 상성문제지.”

엠페러의 말에 엘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군요. 토르는...”

“그래. 은신과 원거리계열에게는 아주 천적이야. 그리고 그런 천적 관계가 녀석이 원거리 딜러들을 업신여기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말이야.”

“만약, 그 토르가 궁신을 제압하기라도 한다면?”

“후후, 그렇게 되면 일은 더 쉬워지는 거지.”

엠페러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2

엠페러가 들어온 뒤 차례로 입국한 레이드순위 2,3위의 공격대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입국한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는 세 살 먹은 아이도 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10성 헌터 가히 일인 공격대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은 궁신 천제황 때문이다.

언론과 여론이 떠들든 말든 그들은 본래의 일정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들러 친선과 우호를 확인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위령탑에 들러 향도 꽂고 아주 평범한 일정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그들을 따르는 기자들은 뭔가 수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들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을 말이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무적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적성의 거대한 정문이 열리고 무적성의 성원 전원이 대광장에 모여 세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세 개의 공격대를 진심으로 환영했다. 밀령등과 같은 특수한 성격을 지닌 단체 등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무려 이천에 달하는 헌터들이 나란히 도열하여 그들을 바라보자 랭킹 1위 공격대의 딜러장인 엘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10성 헌터인 궁신만을 주목했는데 그건 아주 큰 실수였다.

대한민국헌터사무국에 들러 한국의 랭커들과도 만났지만, 그들에게는 이런 박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 모든 국가를 통틀어 가장 빨리 몬스터 사태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의 진짜 저력이다.

가장 높은 단상에 서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권제가 보인다. 그리고 순간 엘머의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지금까지 오연하게 앞서 걷고 있던 엠페러도 마찬가지였다.

“주군.”

“그래. 안다.”

엠페러도 느끼고 있었다. 권제라는 인물에게서 뿜어지는 가공할 패기가 피부를 간지럽힌다. 그가 알기로 무적성의 절대자 권제는 7성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지만 8성 헌터인 엠페러는 느끼고 있었다.

“나와 동급... 혹은 이상이군.”

“그, 그 정도 입니까.”

“그래. 이거 용담호혈에 발을 디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하나하나 장난이 아닙니다.”

“어머 정말요?”

엘머의 말을 받으며엠페러의 곁으로 한 여인이 번쩍하고 나타났다. 마치 허공중에서 나타난 듯 보이지만 엠페러는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능력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줄 좀 맞추지?”

“어머, 딱딱하게 굴기는···.”

은은한 자색의 천으로 만든 로브를 입은 금발의 미녀다. 로브이기는 하지만 투명한 로브 안으로는 매끈한 몸매가 은은히 비치는데 오히려 그 모습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뿌리고 있었다.

“엠페러스···. 우리 애들 눈 돌아간다.”

“호호, 건강한거죠.”

고혹적인 눈빛으로 주위를 슥 둘러보는 그녀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에 푸른 눈빛과 피처럼 붉은 입술의 그녀가 바로 세계랭킹 2위의 엠페러스다. 물론 이제는 3위로 밀려난 형국이지만···.

“궁금한 게 뭐야?”

권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엠페러가 말했다.

“알고 있었어요?”

“아니...”

엠페러도 무적성은 처음이다.

“흠...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래. 나도 놀라는 중이다. 대놓고 드러내는 전력이 이 정도라면 대체 뒤로 숨기고 있을 전력은 어느 정도 일지 감도 안 잡히는군. 저 뒤에서 따라오는 토르 새끼한테 경고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엠페러의 말에 엠페러스가 멀리 뒤에 따라오는 은색으로 번쩍거리는 중갑주를 입은 한 남자를 바라봤다. 금발에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허리에는 특이한 모양의 망치를 차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미남자다.

그의 뒤로는 중병기로 무장한 오십 인의 사내가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절도있게 걸어들어오고 있다.

남자의 눈을 마주친 엠페러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저 새끼···. 이 상황에서도 사고 칠 것 같은데···.”

주눅 들지 않는 건 기특한데 아무리 봐도 상황파악을 못 하는 눈치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그리 빗나가지 않았다.

#2

“와...”

엠페러스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

그와 함께 귀를 찢는 폭발음이 작렬하며 한 남자가 거대한 홀의 천장에 부딪히고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쉬익...철컥

방금 전 한 남자를 날려버린 여자가 자신의 키만한 거검을 옆으로 가볍게 떨치고는 고개를 까딱인다.

“다음 나오세요.”

웅성웅성...

그녀의 말에 한편에 도열에 있는 거한들이 웅성거린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서 있던 금발의 미남자가 입술을 비쭉거리더니 외쳤다.

“시그룬! 나서라!”

“예!”

그의 외침에 대머리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거대한 배틀엑스였는데 원형경기장 한가운데 선 가녀린 여인과 비교하면 거의  1.5배는 됨직한 크기다. 그렇지만 시그룬이라는 남자는 방심하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저 검에 인사불성이 된 동료가 셋이다.

“버서커 공격대의 시그룬이오!”

“이루미입니다.”

이미 세 번 가까이 자기소개를 했기에 이름만을 간단히 말한 이루미가 대련시작을 알리는 외침이 울리자마자 시그룬이라는 남자에게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마치 남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전진이지만 섣불리 덤빈 그의 동료 셋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그는 신중한 옆걸음으로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 배틀엑스를 곧추세웠다.

자꾸만 게걸음으로 물러서는 대머리 거한의 행태에 따라가는 것을 멈춘 이루미가 금발의 미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그가 외쳤다.

“시그룬! 버서커 공격대의 돌격대장의 힘을 보여줘라!”

공대장의 말에 시그룬이라는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그도 이러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최소한 상대의 빈틈이라도 보여야 어떻게 덤벼보지 않겠는가. 아니 빈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온몸이 빈 틈투성이다. 어디를 쳐도 이길 것 같다.

게다가 저 여인과 자신의 체급 차는 거의 네다섯 배는 됨직하다. 힘으로만 찍어 눌러도 이길 것 같은 날씬한 체구다.

공대장의 외침에 이를 악문 시그룬은 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발동시켰다.

아무리 최고의 힐러들이 대기하고 있다지만 지금 그가 사용하는 참격은 7티어 몬스터도 한방에 골통을 부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다. 여기서 자신까지 무너지면 버서커공격대는 여인 하나에 모조리 개박살났다고 전세계로 퍼질 것이다.

“흐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지르며 단숨에 도약해 배틀엑스를 내리그었다. 그의 배틀엑스에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오러가 여인을 뒤덮을 듯 사납다. 아마 종전의 상황을 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그 공격에 놀라 어서 빨리 대련을 멈추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종전의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라면 말이다.

그 오러의 공격대상이 된 이루미가 두손으로 창궁룡검을 말아쥐었다. 그리고...

쉬잉....퍼어어엉!

피하지도 않았다. 날아오는 거대한 배틀엑스를 그대로 베어버렸다. 찰나의 순간 창궁룡검에서 피어오른 검강이 배틀엑스의 오러를 베어버림과 동시에 배틀엑스 까지 갈라버렸다. 그리고 여력이 남아 그 배틀엑스의 주인을 이전의 동료들과 같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천장에 처박혔다가 바닥으로 수직 낙하하게 만들어 버렸다.

후우...

“으아아...”

함성은 없다. 들려오는 건 그녀의 압도적인 무위에 질식해버린 사람들의 신음성뿐이다.

가볍게 숨을 내쉰 이루미가 또다시 창궁룡검을 가볍게 내리고는 버서커 공격대를 향해 턱짓을한다. 그리고 그 꼴을 바라보던 엠페러가 옆에 앉아있는 엘머에게 물었다.

“한번 나가볼래? 6성이래.”

그러자 엘머가 질려버린 눈으로 엠페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게 어디를 봐서 6성입니까.”

“역시 그렇지? 6성이 아니지?”

“7성 상급...아니 8성... 아니 이동네는 어떻게 된 게...”

상석에 앉아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 권제도 세간에 알려지기는 7성헌터다. 그런데 8성 헌터인 엠페러조차도 권제라는 저 노인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6성이라고 알려진 무련천가의 사무장이라는 여인은 지금 7성이라고 알려진 사내 넷을 단 한호흡으로 모조리 박살 내고 있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후우...”

그의 말에 엠페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토르가 사고 칠 줄은 예상하였지만 이렇게 끔찍하게 박살 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저 토르도 환영행사가 끝난 후 연회에서 가벼운 여흥으로 대련을 제안했을 뿐이고 무적성의 지배자 권제가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에서 제황을 도발한 자신을 힐끔 노려볼 때 저도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란...

그리고 시작된 대련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예상대로 버서커 공격대였다. 그리고 버서커 공격대의 공대장인 토르는 권제의 옆에 앉아서 음료를 홀짝이고 있는 궁신을 지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궁신의 뒤에 그림자처럼 시립하고 있던 여인이 대신 나섰다.

그리고 조금 마른 듯한 여인의 조용한 등장에 버서커 공격대의 공대원들의 입가에는 가벼운 비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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